2008년 2월 29일 금요일

[공연] 계몽시대 오케스트라, 합창단 2008년 2월 28일

요한수난곡. 슈클에서 단체예매를 했는데 1층이나 2층 뒷자리보다 3층 맨앞 또는 박스석이 나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공연 날짜가 다가오자 슬슬 자리를 잘못 골랐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3층은 무대에서 너무 멀다. 더구나 내 예상과는 달리 관객이 별로 많지 않을 것이라고 했기 때문에, 1, 2층 뒷편에 앉아도 그다지 시야가 방해받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결국 공연 당일 아침 기획사에 전화해서 1층 뒷편으로 바꾸었는데... 결국 이건 매우 잘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사실 예당 콘서트홀에선 그날 오후 뉴욕필의 공연이 있었던 모양인데... 그 시끌벅적했었을 흔적이 저녁무렵에 내가 갔을 때는 별로 남아 있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

수난곡 공연이라서 교회 다니시는 엄마를 모시고 갔다. 공연 전 엄마에게 곡과 연주단체에 대해 좀 말씀을 드리려고 했는데, 부지런하고 학구적인 엄마는 이미 인터넷에서 마사키 스즈키의 요한수난곡 동영상을 보셨고 책을 뒤져서 가사까지 복사해서 들고 오신 데다가 공연에 대한 설명도 꼼꼼히 찾아서 읽고 오신 것이라는 걸 알았다. 존경스러운 우리 엄마다 ^^;;

공연장에 들어가니 한 연주자가 비올라다모레를 조율하고 있었다. 오오... 비올라다모레로 연주를 할 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막상 보니 조금 흥분이 되었다. 비올라다모레는 세컨 바이올린 1풀트의 연주자들 두명이 가지고 있었다. 한편에는 비올라다감바도 놓여 있었고 오보에 연주자 옆에도 여러 가지가 놓여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 오보에다카치아와 오보에다모레도 연주될 모양이다.

Viola D'Amore / Th. Eberle / 1772 / Napoli www.practiceofpaul.net/

Boy with Viola da Gamba
www.cama-lekx.com/

Image:Oboe da caccia.jpg
(Wikipedia.org... 원래 붙였던 사진이 웹상에서 사라져서 사진 급 변경;;)

연주자들이 입장. 솔리스트가 합창도 겸하는데 뒷편의 합창 및 솔리스트들은 모두 12명. 파트별로 3명씩인 듯. 바이올린은 각 4명씩, 비올라 2명, 첼로, 베이스, 트라베르소 2명, 오보에 2명, 바순 그리고 오르간. 성우 김종성씨가 나와서 요한복음을 낭독하고 곡은 시작되었다.

놀랄만큼 힘이 있으면서 조용한 합창. 오케스트라와 앙상블을 이루면서 시종일관 경건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 중의 백미는 누가 뭐래도 마크 패드모어. 혼자 라운드티를 입고 머리를 빡빡 깎은 모습으로 나와서 저게 누군가 했는데, 그가 바로 에반겔리스트였더라. 나중에 보니 발에도 깁스를 하고 공연 후반부에선 기침까지 하는 것으로 보아 몸 컨디션이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도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해 처음부터 끝까지 수난곡 공연을 이끌고 있었다. 정말 청아한 그의 미성은 예수의 수난에 같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으로 비추어 졌다. (얼굴도 고통에 찬 표정으로 줄곧이었다.) 요한수난곡은 마태수난곡처럼 극적이지는 않았지만 매우 경건하고 에반겔리스트의 역할도 더 중요한 것 같다.

캐롤린 샘슨이 빠지고 들어온 소프라노 리디아 토이셔는 얼굴만큼이나 목소리도 아름다왔고, 간혹 커크비여사를 연상시키는 청아함을 들려 주었다. 알토의 마이클 챈스, 빌라도역의 매슈 브룩을 비롯 모든 단원들이 훌륭했다.

실연으로는 처음 들어보는 비올라다모레. 소리가 매우 작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1층으로 좌석도 바꿨고..) 생각보다는 그렇게 작지는 않았다. 특유의 곱고 부드러운 음색이 테너 (마크 패드모어)와 또 베이스와 아름다운 앙상블을 만들었다. 류트가 없는 것이 조금 아쉬웠지만.... (비올라다모레 중 한 분은 바로크보우로, 또 한 분은 모던보우에 가까와 보이는 활로 연주를 했다. 조금 멀어서 정확히는 안보이긴 했다. )

처음부터 끝까지 콘티뉴오를 담당하여 연주하던 오르간, 베이스, 첼로도 멋졌다. 특히 첼리스트인 조나단 맨슨은 매우 안정되고 깨끗한 음색으로 슬픔에 가득찬 선율을 연주해 주었다. 알토와 함께한 그의 비올라다감바도 좋았는데, 사실 그가 연주하는 바로크첼로 소리도 만만치 않게 좋았다. 비올라다감바는 정말 고요하고 아름답게, 비장하게 최후가 다가왔음을 노래하는 알토와 같이 노래하고 있었다. 비올을 내려놓자 마자 다시 첼로를 잡은 조나단 맨슨은 이어지는 베이스의 아리아에서 서로 선율을 주고 받으며 이어 나갔다. 정말 아름다운 첼로!

오보에다카치아는 소프라노의 아리아에서 트라베르소와 같이 부드럽게 예수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었다.

2부 시작 전에 시편과 T.S. 엘리엇의 시 낭독도 성우분이 나와서 했는데, 과문한 탓에 엘리엇의 시를 이해하기가 쉽지는 않았다. 한국어로 듣는데도 무슨 말인지 이해가 잘 안가서 자막을 읽고 있었는데, 어차피 읽어야 할 것이라면 원래 영시로 들려 주는 편이 영시라면 있었을 라임도 느껴질 수 있고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수난곡의 마지막 합창까지 매우 감동적이었다. 수난곡이 끝나고 합창단과 오케스트라가 모두 같이 야코프 한들의 '보라, 의인이 어떻게 죽었는지를'을 부를 때에는 정말 같이 따라 부르고 싶을 정도였는데... 불행히도 나는 그 노래를 예습하지 못해 프로그램에 가사가 쓰여져 있는 데에도 부를 수는 없었다... (따라 불렀으면 돌 맞았을까?) 오케스트라까지 같이 부르는 데도 합창단의 맑은 음색이 압도하고 있어서 무반주로 울려 퍼지는 곡이 수난곡의 끝부분에 너무나 아름다운 여운을 남기고 있었다.



(미디파일 링크: http://wso.williams.edu/cpdl/sound/handl/gall-ecq.mid)

종교가 없슴에도 들으면서 감동을 느끼게 되는 바흐의 수난곡.... 바흐가 느끼고 이해하고 가슴 아파했던 예수의 수난이 그의 음악을 타고 300년 가까운 세월을 뛰어넘어 나에게 온다니... 그렇기에 음악은 신비한 것인가 보다.

프로그램

요한복음 1장 1절-5절 낭독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요한수난곡 BWV 245 1부
시편 22장 1-29절 낭독
리틀 기딩 5부 (T.S. 엘리엇, 4개의 사중주 중) 낭독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요한수난곡 BWV 245 2부
야코프 한들: 보라, 의인이 어떻게 죽는지를

Reading from Gospel of St.John I: 1-5
J.S.Bach : Johannes Passion BWV245 PART I
Reading of Psalm 22:1-19
Reading of T.S.Eliot "Little Gidding" part V from "Four Quartets"
J.S.Bach : Johannes Passion BWV245 PART II
Jacob Handl: Ecce quomodo moritur just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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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 성토마스 합창단 2008년 2월27일

재작년 헤레베허가 와서 B단조미사를 연주했을 때 미국 출장과 날짜가 겹쳐 버렸다. (올해도 이미 예매한 허프 리사이틀과 출장 날짜가 겹칠 듯...ㅡㅜ) 정말 가고 싶었는데 갈 수가 없게 되어 버렸다. 나중에 공연이 감동적이었다는 후문을 듣고 어찌나 안타깝던지...

28일의 계몽시대오케스트라의 요한수난곡을 일찌감치 신청하여 놓고, 이 공연은 갈까 말까 한참을 망설였다. 다른 이유가 아니라, 연이어 이틀을 공연을 가야 하고, 또 바로 전 주말에는 페레니와 쉬프 공연을 잡아 놓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프로그램이 B단조 미사였던 탓에 결국은 예매를 했다. 합창석.

공연 시작전. 내가 앉은 좌석 주변이 영 분주하다. 아마도 별로 바람직하지 않은 이웃 관객들을 만난 듯 했다. 그래도 정숙하길 요구하는 자막과 안내문, 방송까지 계속 하고 있으니 별 탈이야 없겠지라고 생각했다.

생각보다 오케스트라의 규모가 작았다. 바이올린은 파트별로 6명씩, 비올라 4, 첼로3, 베이스2. 트럼펫, 오보에, 플룻, 바순, 혼, 오르간, 하프시코드.... 아주 작다고 할 수는 없을지도 모르지만 예상했던 것보다는 작은 규모였다. 성토마스 합창단은 오케스트라에 비해 규모가 컸다. 대충 60명이상이 되는 듯.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의 아이들에서 고등학생 정도까지 되는 큰 아이들까지 있었다. 동양아이로 보이는 소년도 한 명있었다.

오케스트라는 합창에 비해 숫적으로도 작았지만 소리도 좀 작았다. 현은 비브라토를 거의 하지 않은 채로 연주를 했다. 요즘 같은 세상에 바흐의 음악을 논비브라토로 연주하는 것은 전혀 특이한 일은 아니긴 하지만 말이다. 대체로 오케스트라는 깔끔하고 간결한 연주를 들려 주려고 노력했었던 것 같다.

합창석에 앉은 탓에 독창자들의 노래는 충분히 감상하기에 좀 어려움이 있었다. 합창은 좀 어수선한 감이 없잖아 시작하긴 했지만, 몇몇 곡들은 꽤 멋진 화음과 여운을 들려 주었다. 먼 나라에 와서 열심히 부르는 꼬마들이 정말 귀여웠다고나 할까...^^;

악장 아저씨가 소프라노와 연주할 때는 사실 좀 실망스러웠다. 대체적으로 현의 연주는 큰 감동이 없었다. 그에 비해 관은 괜찮았고... 연주가 모두 끝나고 솔리스트로 연주를 했던 사람들이 하나씩 일어나 인사를 하는데, 오르간과 하프시코드가 인사하는 차례가 되자 합창단 아이들이 발을 굴렀다. 아마도 평소 오르가니스트와 같이 연습했었거나.. 그 아줌마와 상당히 친밀한 관계인 듯... 박수가 이어지자, 예정에 없던 앵콜이 있었다. 칸토르가 합창단 쪽으로 다가가 아이들에게 곡명을 이야기하고는 바로 합창이 시작되었는데... 아마도 평소 잘 부르던 곡인지 모두들 악보없이 불렀고 무척 아름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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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

그 "바람직하지 못한" 이웃 관객은 사실 나의 이번 공연관람을 거의 완벽하게 망쳐 주었다.

뭔 짐이 그렇게 많은지 공연 시작 전부터 부시럭대던 내 옆의 아가씨 또는 아줌마는...  인터미션 전까지 전반부 내내 어디론가 문자를 보내고 있는 듯 했다. 문자를 보내기 않을 때는 비단조 미사에 맞추어 머리를 흔들었다. 이봐요... 이건 춤곡이 아니라 미사곡이란 말입니다...;; 라고 말하고 싶은 걸 참았다. 살살 흔드는 것이 아니라 거의 상체가 움직여서 바로 옆의 나는 음악에 집중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후반부, 빈자리로 옮길까 말까 심각하게 고민하다가... 그냥 그자리에 앉은 것이 나의 잘못이었다. 전반부 문자대화의 주인공인 남자친구가 온 모양이다. 이제 문자는 안보내겠구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아가씨 기침을 시작한다. 기침을 막아 보려고 사탕통과 물병을 번갈아 찾으며 사탕을 물었다 물을 마셨다 난리가 났다. 다 좋은데... 동작이 다 크다. 짐이 많아 사탕통은 바닥에 내려 놓고 집었다 놨다. 물병은 손에 들고 있다가 귀찮은지 의자 뒤로 어정쩡하게 세워 두려다 결국 바닥에 떨어 뜨리더라... 후반부 내내 그러면서... 곡에 맞춰 머리 흔드는 것도 여전하다. 정말 짜증이 엄청나게 밀려 왔는데....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곡. 그 두 남녀는 급기야 떠들기 시작했다. 뭔 이야기인데 공연 중에 손곤소곤 대냔 말이다.

공연이 끝나고 30초를 기다려 달라는 안내문을 무시하고 그다지 오래지 않아 박수가 나왔다. 그러나 그 남녀, 자랑스럽게.. "30초 기다리라는데 박수친다"며 낄낄대며 떠들기 시작했다. 본인들은 최대한 공연장 예절를 지켰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사실 공연 내내 무시하려고 애쓰고, 끝나고도 기억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난 아직까지 아마 화가 풀리지 않은 모양이다. 박자 맞춰 춤추는 것... 제발 집에서 혼자 음악들으면서만 하세요.... ㅡㅜ)

그냥...

어제 오늘 연달아 바흐 연주를 들었는데도 - 둘은 좀 많이 다른 바흐였지만... - 계속 바흐를 듣고 싶은 기분인데다가... 사놓고 뜯지도 않은 음반들이 집안 여기저기 돌아 다니고 있는데도 이리저리 만나는 음악들을 또 듣고 싶으니...

마치 숙제가 잔뜩 밀린 학생이 된 것 같은 느낌이다.  (지겹고 하기 싫은 숙제말고... 재밌고 흥미진진한 숙제...)

세상은 넓고 음악은 너무나 많다. 너무나 많은 작곡가들의 너무나 많은 곡들이 있고 너무나 멋진 수많은 연주자들이 있다.... ㅡㅜ

그나저나 어제와 오늘의 공연 후기는 다음 기회에....

2008년 2월 25일 월요일

[공연] 안드라스 쉬프 독주회 2008년 2월 24일

일요일이라서 가족모임이 있었는데, 연주회 시간에 맞춰 저녁도 먹다말고 일어나 나왔다. 드디어 오늘이 쉬프의 바흐를 듣고 볼 수 있는 날이 아니던가...

가격대비 효용이 큰 합창석. 역시 피아니스트의 손가락이 보이는 위치에 자리를 잡았다. (공연을 보면서 합창석 중간으로 할 걸 그랬다는 후회가 좀 들었다. 뒤쪽에서는 그의 페달링 - 뭐.. 바흐에선 페달을 전혀 안썼다고는 하지만 - 이 잘 보이지 않았고, 어떤 표정으로 연주하고 있는지도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연주회장 밖에서 김선욱군이 친구들과 같이 있는 모습을 보았는데, 홀에 들어 오니 멀리 1층에 정명화씨가 앉아 있는 모습도 보인다. 엊그제 페레니와의 듀오 연주회가 끝나고 나서도 정명화씨를 볼 수 있었는데 말이다.

프랑스 모음곡으로 시작된 쉬프의 연주는 놀랍도록 명확한 아티큘레이션을 들려 주었다. 명료한 음색. 주선율과 부선율이 또렷또렷 살아나 마치 바흐의 악보를 눈 앞에 펴 놓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쉬프의 연주하는 뒷모습에 악보들이 펼쳐져 같이 흐르고 있는 환상이 보이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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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
J.S. Bach, French Suite No.5 in G major BWV 816
J.S. Bach, Italian Concerto BWV 971
J.S. Bach, Partita No.2 in c minor BWV 826
Schumann, Fantasie in C major, Op. 17
Beethoven, Piano Sonata No.21 in C major, Op. 53 "Waldstein"


인터미션에 계단에서 임동혁군이 걸어 내려오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쉬프의 바흐를 들으면서 요즘 한창 바흐로 전국투어를 하고 있는 임동혁군이 생각났었다. 바흐와 임동혁을 연결시키는 것이 어려워 그 공연은 보지 않기로 했었는데, 그래도 임동혁의 바흐는 어떨까 조금 궁금했었는데... 쉬프의 연주회에 와 있었을 줄은 몰랐다. 같은 연주자로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인터미션 후에 이어진 슈만의 환상곡은 피아노곡이라는 생각을 넘어 마치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듣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만들었다. 요즘 슈만 교향곡 1번을 연습하고 있기 때문에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정서적인 불안감을 느끼게 만드는 조울증 환자의 곡 같은 ... 그런 매우 슈만스러운 느낌은 쉬프의 극적인 연출로 더 힘을 얻었다. 프로그램의 마지막 곡인 발트슈타인. 헉.... 지금까지 들어왔던 수많은 발트슈타인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역시 매우 극적인 연출이고 매우 독특한 해석으로 느껴졌는데, 템포를 꽤 많이 변화시키면서 연주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피아노 한 대로 들려 줄 수 있는 가장 다양한 음색을 연출해 내는 낯선 발트슈타인이었다고나 할까....

어떻게 피아노, 피아니시모로 연주하면서 저렇게 명확한 음색을 들려 줄 수 있는 것일까....

열광적인 박수갈채가 이어지고, 쉬프는 예의바르게 객석 이쪽 저쪽을 향해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예전에 보았던 키신의 절도 있는 인사와도 비슷했다. 쉬프는 이어 3곡의 앵콜을 들려 주었다. 슈만의 아라베스크, 슈베르트의 헝가리안 멜로디, 그리고 바흐 파르티타. 슈만은 너무나 유려했고, 헝가리안 멜로디는 슈베르트의 곡이라는 것을 못듣고 제목만 간신히 알아 들었는데 헝가리 출신이라 선곡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다 어영부영... 마지막 바흐의 파르티타 1번은 연주회 전반부에 감동을 주었던 바로 그 바흐를 다시 들려 주었다. 브라보!

(역시 집에와서 구글에서 헝가리안 멜로디로 검색.... 유튜브에서 너무나 젊은, 아니 젊다 못해 어린 쉬프의 연주를 찾아 냈다 ^^)
Schubert Hungarian Melody D817 in B minor

[공연] 미클로스 페레니, 안드라스 쉬프 듀오 콘서트 2008년 2월 22일

금요일 저녁.  페레니의 공연을 마다하다니... 본인이 싫다는데에야 어쩌랴. 첼로 공부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것 같아 2장이나 표를 구입했었는데... 남편 대신 이제 8살인 도윤이와 같이 예술의전당을 찾았다. 워낙 유명한 연주자들이라 관객이 많을 줄 알았는데, 콘서트홀을 반정도 채웠을까 싶을 정도.. 도윤이와 같이, 피아니스트의 손가락과 첼리스트가 바로 보이는 박스석에 앉았다. 8명이 앉을 수 있는 박스석엔 우리 밖에 없었다.

프로그램은 전곡 베토벤. 피아노와 첼로를 위한 소나타 2번이 시작되자 페레니가 들려주는 첼로의 음색에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쉬프의 선명한 아티큘레이션과 페레니의 아름다운 음색이 어우러져 만들어 지는 베토벤의 첼로소나타...

Photo: Miklos Perenyi and Andras Schiff











페레니 사진 더보기

프로그램:
베토벤,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제2번 G단조, Op.5 No.2
베토벤,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제4번 C장조, Op.102 No.1
베토벤, 모차르트 <마술피리> 중 ‘한 소녀나 여인을 파파게노 원하오’ 주제에 의한 12개의 변주곡 F장조, Op.66 베토벤,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제3번 A장조, Op.69


페레니와 쉬프는 오래 전부터 작업을 같이 해왔다고 들었는데, 언젠가 누군가의 블로그에서 둘의 연주를 듣고 하모니가 엉망이었다고 평을 올려 놓은 것을 본 적이 있어서 사실은 내심 불안했었더랬다. 2004년에 베토벤 첼로소나타 음반을 내놓은 이후로 두 연주자는 베토벤으로 이루어진 유사한 프로그램으로 세계 곳곳에서 상당히 많은 연주를 해왔었고, 각각이 너무나 뛰어난 연주자인데... 앙상블을 이루지 못했다니...

그러나, 그런 불안감은 연주가 시작되자 서서히 사라져 갔다. 쉬프의 피아노는 첼로와 듀오일때 피아노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대답을 들려 주는 것 같았고, 페레니의 첼로는 안정적이고 거침없는 피아노를 바탕으로 자신의 길을 가고 있었다. 예전에 동영상으로 본 굴드와 로즈의 연주보다 맑고 투명한 느낌이었지만, 둘의 조화와 앙상블은 그 연주처럼 완벽했다.

관객의 태도도 나무랄데가 없었다. 나는 도윤이가 혹시라도 부시럭대고 소릴 낼까봐 좀 불안했지만, 꼬마는 나름대로 의젓하게 "지루한" 2시간을 참아 주었고... 관객들은 곡의 마지막 여운까지 감상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유명한 3번 소나타로 본 프로그램을 마친 후, 쉬프와 페레니는 차례대로, 멘델스존의 무언가, 베토벤의 마술피리 변주곡, 쇼팽의 첼로소나타 3악장을 앵콜로 연주해 주었다. (지극히 쇼팽다운 쇼팽의 첼로 소나타는 너무나 감성적이었다.)

음악을 들으면서 한동안, 콘서트홀의 높은 천정들 아래 공간 속에서 음표들이 부드럽게 날아 다니며 춤을 추는 모습을 보는 것 같은 착각에 빠졌었다. 페레니의 첼로가 들려 주던 놀라울 정도로 맑은 음색은 절대 잊을 수가 없을 것 같다.

(페레니의 음색에 빠져버린 나는... 집에 와서... 한참 인터넷을 뒤져 페레니의 악기가 1730년 갈리아노라고 쓰여 있는 사이트를 발견했다. 어느 갈리아노가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Alessandro Gagliano? 코지오닷컴에도 별다른 정보는 없었다.) 하지만, 페레니 음색의 비밀은 결코 악기만은 아닐 것 같다. 놀라울 만큼 완벽해 보였던 그의 보잉이 아마도 맑고 투명한 음색의 비밀이지 않을까...)

2008년 2월 19일 화요일

허접 블로그에 대한 변명

큰오빠가 내블로그에 와본 모양이다. 사용하지도 않고... 사용한 적도 거의 없는... 싸이월드 미니홈피 대문에 블로그 주소를 써놓았는데 그걸 보고 이 쪽으로 넘어 왔다고 한다. 나이와 이름만 알면 검색이 되는 대단한 싸이월드....

블로그가 왜 그리 조잡하냐는 둥... 바이올린 관련된 블로그라는데 뭐 별로라는 둥.... ㅡㅜ 한 시니컬씩 하는 우리집 식구들답게 영 맘에 안든다는 투로 얘기한다.

사실 블로그를 만들어 볼까라는 생각을 했을 때는, 내 이야기를 많이 써볼 생각이었다. 바이올린을 배우면서, 음악을 들으면서 느낀 이런 저런 생각들을 적으면서 스스로 정리도 하고 (허공에 대고 떠드는 것 같긴 하겠지만) 스트레스도 풀고...ㅎㅎ 그러다가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글들도 가끔은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또, 영어로 되어 있거나 체계적으로 되어 있지 않은 자료들도 나 나름대로 정리하고, 번역하여 볼 생각도 있었다. 내가 영어를 그다지 잘 못해서인지, 영어로 된 글을 읽으면 우리말처럼 머리에 쏙쏙 들어오질 않는다. 문장을 하나하나 번역하면 비록 시간도 걸리고 어떤 식으로 옮겨야 할지 고민도 하게 되지만, 내용이 나 스스로에게 더 잘 이해가 되기도 하여, 관심이 있는 article은 블로그에 번역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여러가지 다른 내 블로그 아니어도 인터넷의 곳곳에 엄청나게 깔려 있는 것이니 굳이 그걸 옮겨다가 반복할 생각은 없었다. 음악파일의 경우도, 굳이 블로그에 올려서 들어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면 별로 올려 보고 싶지 않았고...

그런데, 블로그를 관리하고 읽어볼 만한 글을 정기적으로 올리는 일은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일단, 블로그에 게시글을 하나 올리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단지 인터넷에 접속하여 글을 쓰는 시간이 아니라... 그 글에 어떤 내용을 담기 위해서 내가 준비하고 생각해야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저 스쳐지나가는 일들에서 한 가지를 잡아내어 논리적으로 또 풍부한 자료를 가지고 그것을 나만의 생각과 내가 관심있어 하는 주제로 연결시키는 일은, 단순히 (이 글이나 다른 글들처럼) 느낌이나 감정을 문자로 적어보는 일과는 많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현재는 그저 다분히 감정적인, 그리고 지루하게 반복적인 나의 일상사에 관련된 글들이나... 또는 어딘가에 있는 자료의 reproduction만을 하고 있다 (copy & paste만 하는 것은 아니라고 자위하면서....). 더구나 번역이라고 해 놓은 글들은 아름다운 우리말을 파괴할 뿐만 아니라... 도무지 무슨 뜻인지도 알 수 없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기도 하고...;;

흠... 언젠가는 나도 매우 informative하면서도 나만의 논리가 들어 있는 '좋은' 글을 쓸 수 있을까나...

2008년 2월 18일 월요일

프랑수와즈-조세프 고섹 1734-1829


François-Joseph Gossec (1734-1829)

가보트와 탕부랭으로 유명한 고섹. 어린이를 위한 음악을 주로 작곡한 작곡가가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들만큼 발랄하고 아름답고 신나는 선율의 곡들이다.

고섹은 1734년 1월17일에 네덜란드 남쪽의 베르니스 (현재는 벨기에)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고, 17세에 프랑스로 건너간 이후로 프랑스에서 작곡가로서, 지휘자와 음악감독으로, 또 교수로서 일생을 보냈다. 그는 요한 슈타미츠의 영향으로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교향곡 형식을 익혔고, 라모의 지휘 하에서 바이올린과 베이스를 연주하기도 하였다. 수많은 교향곡을 써서 프랑스에서 교향곡을 대중화시켰고, 줄곧 귀족들을 위한 오케스트라와 오페라좌에서 일했었지만,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자 공화주의자로서 신체제를 옹호하며 혁명 대중을 위한 음악들을 작곡하기도 하였다. 프랑스 학술원 및 콩세르바튀르의 창립멤버이기도 했으나, 나폴레옹이 득세하고 다시 귀족정치가 시작되자 물러나 후학을 양성하는데에 몰두한다. 나폴레옹의 워털루 패전 후 콩세르바뛰르가 문을 닫자 그는 파리교외의 파씨로 은퇴한 후 95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고섹은 서정적인 곡을 쓰는 재능과 오케스트라의 소노리티에 대한 예민한 감각을 가지고 있었고 이 둘은 결합되어 그의 최고의 작품들에서 뛰어난 효과를 거두었다고 한다. 앞서 언급한 바대로, 요한 슈타미츠의 강한 영향을 받았으나 매우 독자적인 면도 있었다. 후기 교향곡들은 충만한 소노리티와 뛰어난 관파트가 있는 훌륭한 작품들이다.

그는 실질적으로 18세기 프랑스 음악을 이끌며 많은 작품을 쓴 다재다능한 작곡가였다. 그는 화성적인 상상력과 소리의 질감에 대한 감각에 의존하여 오케스트라의 역량을 증가시켰다고 한다. 또한 그는 낭만주의를 예고하는 많은 실험을 하는데, 예를 들어, 그의 테 데움 (1779, 1200명의 가수와 300명의 관악주자)은 훗날 베를리오즈의 작품에 영향을 주었다. 그의 음악에 있어서 분명한 형식과 오케스트라 색채의 혁신은 프랑스 기악음악 발전에 강한 영향을 주었다. 프랑스 밖에서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작곡가라고 할 수 있으나, 모차르트와 베를리오즈는 그의 레퀴엠을 극찬하고 자기들의 장례미사곡의 모델로 삼았다고 한다.

2008년 2월 17일 일요일

German organ tablature

기타가 타블라추어를 쓰고 있다는 것은 많이 알고 있고, 류트나 옛 현악기들의 경우에도 타블라추어 악보들을 많이 쓰고 있는 것도 비교적 많이 알려져 있다. 사실 현들 위에서 운지를 하는 현악기의 경우에는 타블라추어 악보를 어떤 모습일지 충분히 상상이 간다.

아래는 비후엘라의 타블라추어.
(Sample of numeric vihuela tablature from the book "Orphenica Lyra" by Miguel de Fuenllana)
Image:Vihuela-Tab Fuenllana 1554.jpg

그런데, 오르간 타블라추어는 과연 어떤 모습일지... 바흐의 전기를 읽고 있는 중인데, 그는 어린 시절에는 타블라추어로 공부를 했었고, 성년 이후에도 타블라추어 꽤 작업을 했던 것 같다. 오르간 타블라추어는 어떤 모습일까?

바흐 칸타타 사이트에는 이와 관련된 discussion이 있었던 것 같다.
http://bach-cantatas.com/Topics/Manuscripts.htm (아래 부분)

볼프의 하버드 강연
http://athome.harvard.edu/dh/wolff.html

몇 가지 링크를 따라가다 보면,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사진 자료를 볼 수가 있다.
http://www.repubblica.it/2006/05/gallerie/esteri/bach-inediti-ritrovati/1.html

블로그에 올려도 될 지는 잘 모르겠지만... 살짝 옮겨 붙여 보면....
<B>Gli inediti manoscritti di Bach sopravvissuti alle fiamme </B>
<B>Gli inediti manoscritti di Bach sopravvissuti alle fiamme </B>

또 다른 악보 자료는 타블라추어와 오선지 악보가 비교되어 있다. Fantasia c minor BWV1121. 1982년에 발견된 타블라추어 악보라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봐도 어떻게 비교해서 봐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는 것...ㅡㅜ)
http://bach-cantatas.com/Scores/BWV1121-Tablature.htm



2008년 2월 16일 토요일

묵주 소나타와 scordatura

비버의 묵주소나타는 스코르다투라를 사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눈으로 보고 있는 것이 귀로 듣는 것과 다를 수 있게 때문에, 이것은 바이올리니스트들에게 시각과 청각간의 계속적인 괴리를 발생시킨다. 예를 들면, A라고 쓰여져 있지만 그것은 B 또는 G, 또는 또 다른 소리가 날 수 있는 것이다. 음표는 오선지 위의 F#이라고 되어 있지만, 그것은 한 옥타브 아래의 F일 수도 있다. 물론, 두 음 모두 다 전혀 F음과 비슷하지도 않은 소리가 날 수도 있는 것이다! 올라가는 것으로 보이는 것은 사실 내려가는 음일 수도 있거나, 올라가기 시작하다가 그 중간에 밑으로 뚝 떨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11번 소나타에서처럼 가운데의 두 현이 사실 서로 엇갈려 있는 경우에는 오른쪽 현에 손가락이나 활을 대는 것 조차도 정신적으로 복잡한 체조를 하는 느낌이 들 수 있다! 비버가 이 곡을 쓰기 위하여 얼마나 어려웠을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실험을 했었을지 상상을 해보라!" - Walter Reiter

Tuning of the strings for Biber's Rosary Sonatas

Tuning of the strings for Biber's Rosary Sonatas


(그림 출처: http://www.jsbchorales.net/biber.shtml)

위에서 보듯이, 1번과 마지막 파사칼리아를 제외하고는 14개의 소나타 전부 스코르다투라가 사용되었다. 실제로, 예수의 생애의 신비스러움을 노래하고 있는 이 곡들은 색다른 조현법이 신비로운 느낌을 만들어 내는 데 도움을 주고 있는 듯 하다.

아래는 실제 현이 엇갈려 조현되어 있는 악기의 모습. 헤드 쪽 펙박스에서도 이 두 현은 서로 엇갈려 있을 것이다.
Image:Biber mysterien.jpg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모차르트의 신포티아 콘체르탄테에서 비올라도 가끔 scordatura로 연주되는데, 그 경우에는 피치를 반음 정도 올려서 약간 높게 조율하여 비올라의 음색을 더 밝고 두드러지게 하는 경우. 파가니니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이나 말러 교향곡 4번 2악장에서도 쓰인다. 18세기 이후 바이올린의 경우에는 거의 쓰이지 않지만... 현대 음악에서는 종종 쓰이기도...

2008년 2월 13일 수요일

레슨... 소감...

설 연휴라서 일주일을 건너뛰고 어제 레슨을 갔었다. 여행갔다가 집에 와서 조금 연습을 했었기 때문에, 레슨 전날엔 피곤하기도 하고 해서 연습을 건너뛰었는데.....

흐리말리부터 음정이 영 맘에 안들더니, 계속 레슨 내내 음정이 불안 불안... 게다가 활은 왜 갑자기 안쓰던 활을 꺼냈었는지 삐끄덩 삐끄덩 미끌어지고... 송진이라도 좀 바르고 갈 껄... 활도 영 무겁고...

레슨도 10분 넘게 지각했는데, 다음 레슨생은 또 너무 일찍와서 기다리고 있어서, 카이저는 아예 하지도 못하고 45분 정도만 레슨을 받고 말았다. 연휴 끝나고 나서 계속 몸 컨디션이 안좋아서 그런건가... 일주일 내내 활 한 번 안잡아 보다가 고작 두어번 연습하고는 그나마 하다말고... 그리고는 레슨을 갔으니 그대로 그게 드러난 걸까...

내일 오케 연습에서는 좀 비슷하게라도 따라서 해야 할텐뎅.... 오늘도 연습도 못했는데 벌써 9시가 다 되어 간다....

2008년 2월 12일 화요일

우리의 초상, 타버린 숭례문

모두들 얘가 잘못했네, 쟤가 잘못했네 하면서 떠들어 댄다... 중구청은 예산도 안주고 관리하라던 문화재청의 잘못이라고 하고, 문화재청은 불이 났으면 꺼야 하는 소방서의 책임이라고 한다. 한나라당은 뭐든지 대통령 탓이라고 하고, 반대편에선 당초에 전시행정을 했던 서울시의 원죄라고 한다. 문화재 관리에 예산도 제대로 배정하지 않은 국회의 잘못도 크다고도 말한다.

이 모든 사람들이 바로 나 자신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누구처럼, 본인 잘못은 한마디도 인정하지 않으면서 국민성금으로 복원하자는 소리나 해대는 뻔뻔함이 옳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렇게 엉망진창 행정이 바로 내가 한 사람의 국민으로 살고 있는 오늘 대한민국의 현실이라는 것이다.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이 모두 문화재의 소중함을 잊고 있었던 것이 사실 아닌가. 대충대충 처리하고, 중요한 것을 뒤로 미루며 살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말이다. 눈 앞에 이익에 급급하여 천박한 실용주의 자본주의가 지상 최고의 가치라고들 알게 모르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타버린 숭례문은 현재 우리의 문화행정, 문화정책, 문화에 대한 국민들의 생각을 그대로 보여준다. 잿더미가 된 문이 바로 우리들 문화의 초상이다.

2008년 2월 11일 월요일

설 연휴의 마지막을 슬픔과 분노로 마무리 짓다니



(사진 출처는 각 사진 참조)

40년 가까이 서울에서 살면서 수백, 수천번 지나가면서 보았지만 가까이에서 본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예전에는 차로로만 둘러쌓여 외로운 도시의 섬처럼 떠 있는 남대문의 모습이 많이 안쓰러워 보이기도 했었지요. 최근에 달라진 숭례문 앞의 풍경을 보면서, 세상 참 많이 달라졌다는 생각도 들었고... 가뜩이나 길 막히는데 왜 저런 공사는 할까하는 생각도 했었습니다.

정말 꼬마였을 때 엄마는 우리 남매와 버스타고 시내 나들이를 하면서 건물들을 하나 하나 설명해 주시곤 했었더랬습니다. 잘 기억은 안나지만 숭례문도 그 중의 하나였겠지요. 명동이나 남대문 시장이라도 갈라치면 뿌연 매연에 둘러 쌓여 있던 숭례문을 아무렇지도 않은 풍경의 하나로 무심히 쳐다보곤 했었지요.

이제, 저렇게 힘없이 타무너져 내린 숭례문을 보고 있으려니.... 너무나 가까운 친구를 잃은 것처럼 가슴이 아려 옵니다. 저 뿐만 아니라 어릴 적부터 서울에서 쭉 자라온 사람들에게는 숭례문은 단순한 국보가 아니라, 그렇게 가까이에 친구처럼 느껴지는 무언가였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는군요.

어제 새벽까지 TV로 생중계되는 화재현장을 보면서 정말 기가 막히더군요. 어떻게 이렇게 전국민이 손놓고 앉아 저런 참담한 생중계롤 보고 있어야 하는 것인지.... 작은 건물에 불과한 누각의 불길이 어찌 저리도 잡히지 않는지 말입니다. 아까 사무실로 오면서 차를 타고 지나가면서 화재현장을 봤는데, 정말 처참하더군요. 주변에 사람들로 가득했는데, 모두 넋빠진 표정으로 잿더미가 되어 버린 숭례문 쪽만을 바라보고 있더군요. 믿기지가 않는 듯 연방 사진들을 찍으면서 말이지요. 

사무실에 들어와서 뉴스를 보니 이건 더욱 더 한심합니다. 아무런 대책도 방비도 없이 문화재 개방한다며 생색만 엄청 내놓고는... 이제와서 또 남 탓만 하고 있는 모씨와 모당도 꼴보기 싫고.... 생색내느라 무인경비시스템 도입하고 조명 시설 설치했던 사람들이 그 동네 사람들 아니었던가요. 방화인지 누전인지는 모르지만, 애당초 장기적인 안목의 문화적 생각이라고는 전혀 없어 보이는 전시행정들이었잖습니까... 더구나, 주인없는 국보 1호가 방재시설 우선순위에서 다른 문화재들에게 밀렸다는 이야기도 차마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예산이야 부족했겠지만, 이런 문화행정도 목소리 큰 문화재, 주인있는 문화재가 우선인 것인지요...

정초부터 정말 눈물 나는군요. 우리 아이들에게 모른척... 그러니까 불조심 해야 한단다... 이렇게만 말해 줄까요?

2008년 2월 9일 토요일

정해년 섣달의 강원도 여행

휴가를 이틀이나 내고 강원도에 갔다. 작년 강원랜드에 새로 스키장이 생겼다는데 남편이 거길 예약한 모양이다. 사실 추운 것이 딱 질색이라 스키장을 별로 좋아하지 않긴 하지만, 가서 그 근처를 돌아볼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았다.

강원도 쪽으로 갈수록 눈이 많이 쌓여 있었다. 국도로 내려서 사북, 태백으로 향하는 길에 보는 눈 쌓인 산들은 마치 커다란 동양화 병풍이 눈앞에 펼쳐져 있는 듯했다. 비록 주로 흑백으로만 표현되지만 동양화야말로 지극히 사실적인 그림들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앞을 빼곡히 메우고 있는 산, 산, 산들 사이를 빠져나가는 길가에는 층층이 눈이 쌓여 있었다. 눈이 잔뜩 오고 흙먼지가 쌓였다가 또 눈이 잔뜩 오고 또 흙먼지로 뒤덮였다가 또 눈이 오고... 겨우내 그렇게 반복된 눈이 마치 시루떡처럼 켜켜이 쌓여 있었던 것이다.

하이원 콘도는 새로 지어서 깔끔해 보였다. 늦게 출발한 탓에 도착하니 해가 저물어 구경은 포기... 콘도만 둘러보았다. 태백 눈축제를 간 것은 다음날. 예전 탄광 마을들이 있던 동네는 아직도 검은 땅, 검은 물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게 눈으로 뒤덮여 있었다. 태백산 주차장 옆의 개울에 있는 얼음과 눈 사이로 보이는 작은 바위들과 돌들은 붉은색이었다. 예전 탄광에 있던 레일이 철거되지 않아, 이제야 부식되어 녹물이 흐르는 탓이 아닐까... 생각을 하며 눈축제 장으로 향했다.


눈축제장 입구의 포토존에서 한 장


입구

눈 조각품들이 있는 곳으로 들어가는 입구

하트

키가 맞는 사람들이 들어가면 하트가 만들어지도록 만들어 놓은 곳

눈썰매?!

눈이 하도 많아서 아무 곳이나 약간의 경사만 있으면 눈썰매장으로~!

호랑이

호랑이 입으로 들어간 우리 딸들...

돼지모양 조각

눈조각 전시장 전경

눈조각 전시장 전경


눈조각 전시장 전경

눈조각 전시장 전경


실컷 눈썰매를 탄 아이들과 함께 바로 옆의 석탄 박물관에 갔다. 눈축제 마지막 날이어서 워낙 사람들이 많아서 박물관 안에도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았다. 옛날 석탄을 캐던 광산촌의 모습을 전시해 놓은 것을 보니.... 나에게는 아직 기억이 생생한 광산 사고 뉴스들, 대학시절 가슴을 아리게 만들었던 탄광촌 아이들의 이야기를 그린 '아빠 얼굴 예쁘네요'의 기억들이 이제 우리 아이들에겐 한국전쟁만큼이나 옛날이야기처럼 보이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밖의 눈축제장의 모습, 등산복을 입은 아저씨 아줌마 관광부대들, 무심하게 전시되어 있는 사북, 태백의 수십 년간의 탄광이야기가 물과 기름처럼 뱅뱅 겉도는 듯한 묘한 느낌을 받으면서 석탄 박물관을 빠져나왔다.

아이들은 완전히 지쳐 있었고, 우리는 일단 근처의 식당에서 요기했다. 전문 레스토랑처럼 엄청나게 깔끔한 서비스를 원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최소한 컵, 그릇 등만큼은 깨끗했으면 했는데... 식당은 몰려드는 관광객들로 대목을 맞아 엄청나게 바빴고, 컵을 교환해 달라는 말도 한 번 이상 하기 어려웠다. 음식이 맛이 없는 것은 아니었는데, 도무지 청결하지 못한 탓에, 대충 눈을 감고 허기를 때울 수밖에 없었다.

오는 길에 남편은 동해에 가서 바다를 보고 회를 먹자고 했다. 그렇게 할까 하다가 표지판에, 한강의 발원지인 검룡소라고 쓰인 것을 보고는 방향을 그쪽으로 바꿨다. 도로가 눈길이어 미끄러울까봐 걱정을 했는데, 검룡소로 가는 길은 제설작업도 그런대로 잘 되어 있어 좋았다. 가는 길도, 가서도 한적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차를 세워 놓은 검룡소 입구에서 약 1.3킬로미터 정도 산길로 들어가면 검룡소가 있다고 적혀 있었다. 고즈넉한 눈길을 따라 한참을 걸어 들어갔다. 사람들이 다녀서 좁은 눈길이 나 있었고, 그 옆에 쌓인 눈을 밟으면 수십 센티 눈 속으로 발이 푹푹 빠졌다. 눈 덮인 산길은 너무나 고요하고, 아름다웠다.

검룡소 600m라고 쓰인 표지판이 놓여 있는 계곡의 다리에서 우리 가족은 돌아섰다. 검룡소를 보고 싶긴 했지만, 다섯 걸음마다 한 번씩 넘어지는 도윤이를 너무 무리시키면 안 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눈 길

눈 덮인 산길을 걷는 도윤이와 아빠

눈 길

뛰다 싶이 신이 나서 가는 지윤이와 쫓아 가느라 힘든 도윤이

계곡

검룡소 600미터 앞의 다리


다음날은 밤새 온몸을 두들겨 맞은 것처럼 몸이 아팠다. 별로 많이 돌아다니지도 않았는데, 눈 속에서 놀아서인지 피로가 몇 배나 더 되는 것 같았다. 지윤이는 아빠와 스키장으로 나가고, 도윤이와 나는 방에서 자다가 TV 보다가 하면서 오전을 보냈다. 오후가 되어서야 스키장도 구경하고, 잠시 피시방도 들러 보았다.

하이원

스키 소녀 지윤~

사우나로 몸을 풀고, 저녁은 고한읍의 횟집에서 해결. 벵에돔 (벵어돔 또는 벵이돔)을 주문했는데, 싱싱하고 맛있었당^^ 다만..... 벵에돔 중 한 놈은 살아서 입을 움직이고 있었는데, 종업원을 불러 머리를 좀 치워 달라고 이야기할까 하다가... 그냥 미안하다고 말하고.... 먹어 버렸다....;;

뱅에돔

사진 오른쪽에 보이는 놈은 살아서 입을 움직이고 있었다.

뱅에돔 지리

마지막 날, 체크 아웃하고 떠나려다가 곤돌라를 안 탄 것이 생각났다. 그리하여... 곤돌라를 타고 '마운틴탑'이라고 불리는 산꼭대기로 올라갔다. 가파른 상급자 코스를 위에서 바라보며 탄성을 지르고, 초급코스에서 헤매는 중생들을 비웃으며... (난 아예 안탔었으면서....;;;) 올라간 정상은..... 정말 감동을 자아낼 만큼 아름다웠다. 태백산맥의 한가운데에서 눈 쌓인 산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세상 근심이 다 사라지는 듯... 솔직히... 융프라우보다 더 아름다웠다.

마운틴탑

중급자코스 내려가는 길에서 한 컷.

마운틴탑

전망대에서 바라본 서쪽 풍경

마운틴탑

고산지대에서 자라는 나무 군락 (나무이름은 잘 모르겠다..ㅡㅡa)

마운틴탑

역시 나무.... 흰색...

마운틴탑

슬로프. 리프트를 타고 올라오는 사람들이 멀리 보인다.

이제 정말 스키장과 안녕을 고하고, 남쪽으로 내려왔다. 시댁으로 가는 길에 마지막으로 들를 곳은 단양. 천연기념물인 고수동굴. 동굴 입구의 주차장도 한산하고, 가게들은 대부분 철시를 했다. 겨울이 동굴관광에는 비수기여서 사람들이 없는 것인지, 설 전이라 다들 가게 문을 닫은 것인지... 근처에는 중국이나 동남아 쪽에서 온 것으로 보이는 관광객들만 조금 있을 뿐이었다.

동굴 안에도 관광객이라고는 우리 가족밖에 없었다. 워낙 좁은 굴이라 사람이 더 많지 않은 것이 동굴 관람에는 훨씬 좋았다. 동굴은 조용하고, 따뜻했다. 바깥기온이 거의 영하였는데, 동굴 내부 온도는 10도를 넘어서고 있었다. 석회암 동굴인 고수동굴에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석순과 종유폭포, 종유벽 등이 환상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폭포처럼 늘어져 있는 종유석들의 모습은 마치 파이프 오르간을 보는 것 같은 생각이 들게 했다. 여기서 바흐의 오르간 곡을 연주한다면 무척 아름답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 (하지만, 동굴 생물들에는 엄청난 악영향을 미치게 될 지도....)

버지니아에 있던 룰레이 동굴에 데려갔었지만, 기억이 잘 안 나는 우리 딸들은 고수동굴은 기억할 수 있으려나... 룰레이 동굴의 규모에 비하면 작았지만, 아기자기하고 아름답기는 그에 못지않은 고수동굴이었다.

고수동굴

고수동굴

고수동굴

고수동굴

고수동굴

성당의 파이프오르간 같은 종유석들

고수동굴

고수동굴

서로를 향하여 자라는 석순과 종유석.. 사랑바위라는 이름이 붙어있다.

고수동굴

고수동굴

고수동굴

오르간의 건반 같다.


고수동굴의 출구에는 원색의 차양이 쭉 처져 있는 계단길이 있었다. 계단 길옆의 상가들은 역시 다들 문을 닫았다. 너무나 아름다운 동굴에 정말 어울리지 않는 원색의 천막 길... 관리가 잘되지 않고 있는 듯한 주변의 모습에 이렇게 훌륭한 관광자원을 더 잘 개발하면 상당히 괜찮은 수익사업으로 만들 수 있을 텐데... 라는 아쉬움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룰레이 동굴 근처엔 작은 박물관도 있고, 좀 더 잘 꾸며진 기념품 가게들도 있고, 입구나, 주변도 잘 정리되어 있었던 기억이 떠올랐었다.

슬슬 배가 고파진 우리는 단양을 떠나기 전, 단양역 바로 앞에 못 쓰는 열차를 고쳐 만든 식당으로 갔다. 역시 그다지 깨끗하지 않은 환경이긴 했으나...(제발 두루마리 휴지만은 식탁에 올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ㅡㅜ) 오래간만에 보는, 나무나 석탄을 때는 난로와 열차를 타는 듯한 느낌이 들게 하는 객실식당의 색다른 맛은 그런대로 맘에 들었다. 사실 태백에서나, 여기서나, 음식 맛 자체는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겨울여행은 여기까지. 설 전전날 저녁에 시댁에 도착하고 나니, 아이들은 계속 즐겁게 놀긴 하는데... 나는 설거지와 전 부치기에 전념할 수밖에 없었고.....ㅡㅜ 우리보다 조금 늦게 스키장에 놀러 갔던 친정식구들은 설 연휴 내내 엄청나게 신나게 놀았다는 후문이.........

게다가 긴 연휴에 휴가까지 덧대어 꼬박 9일을 놀고 월요일 직장으로 복귀할 생각을 하니 아직 하루가 남아 있는데도 스트레스가 몰려 오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