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2월 29일 금요일

[공연] 계몽시대 오케스트라, 합창단 2008년 2월 28일

요한수난곡. 슈클에서 단체예매를 했는데 1층이나 2층 뒷자리보다 3층 맨앞 또는 박스석이 나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공연 날짜가 다가오자 슬슬 자리를 잘못 골랐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3층은 무대에서 너무 멀다. 더구나 내 예상과는 달리 관객이 별로 많지 않을 것이라고 했기 때문에, 1, 2층 뒷편에 앉아도 그다지 시야가 방해받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결국 공연 당일 아침 기획사에 전화해서 1층 뒷편으로 바꾸었는데... 결국 이건 매우 잘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사실 예당 콘서트홀에선 그날 오후 뉴욕필의 공연이 있었던 모양인데... 그 시끌벅적했었을 흔적이 저녁무렵에 내가 갔을 때는 별로 남아 있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

수난곡 공연이라서 교회 다니시는 엄마를 모시고 갔다. 공연 전 엄마에게 곡과 연주단체에 대해 좀 말씀을 드리려고 했는데, 부지런하고 학구적인 엄마는 이미 인터넷에서 마사키 스즈키의 요한수난곡 동영상을 보셨고 책을 뒤져서 가사까지 복사해서 들고 오신 데다가 공연에 대한 설명도 꼼꼼히 찾아서 읽고 오신 것이라는 걸 알았다. 존경스러운 우리 엄마다 ^^;;

공연장에 들어가니 한 연주자가 비올라다모레를 조율하고 있었다. 오오... 비올라다모레로 연주를 할 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막상 보니 조금 흥분이 되었다. 비올라다모레는 세컨 바이올린 1풀트의 연주자들 두명이 가지고 있었다. 한편에는 비올라다감바도 놓여 있었고 오보에 연주자 옆에도 여러 가지가 놓여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 오보에다카치아와 오보에다모레도 연주될 모양이다.

Viola D'Amore / Th. Eberle / 1772 / Napoli www.practiceofpaul.net/

Boy with Viola da Gamba
www.cama-lekx.com/

Image:Oboe da caccia.jpg
(Wikipedia.org... 원래 붙였던 사진이 웹상에서 사라져서 사진 급 변경;;)

연주자들이 입장. 솔리스트가 합창도 겸하는데 뒷편의 합창 및 솔리스트들은 모두 12명. 파트별로 3명씩인 듯. 바이올린은 각 4명씩, 비올라 2명, 첼로, 베이스, 트라베르소 2명, 오보에 2명, 바순 그리고 오르간. 성우 김종성씨가 나와서 요한복음을 낭독하고 곡은 시작되었다.

놀랄만큼 힘이 있으면서 조용한 합창. 오케스트라와 앙상블을 이루면서 시종일관 경건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 중의 백미는 누가 뭐래도 마크 패드모어. 혼자 라운드티를 입고 머리를 빡빡 깎은 모습으로 나와서 저게 누군가 했는데, 그가 바로 에반겔리스트였더라. 나중에 보니 발에도 깁스를 하고 공연 후반부에선 기침까지 하는 것으로 보아 몸 컨디션이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도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해 처음부터 끝까지 수난곡 공연을 이끌고 있었다. 정말 청아한 그의 미성은 예수의 수난에 같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으로 비추어 졌다. (얼굴도 고통에 찬 표정으로 줄곧이었다.) 요한수난곡은 마태수난곡처럼 극적이지는 않았지만 매우 경건하고 에반겔리스트의 역할도 더 중요한 것 같다.

캐롤린 샘슨이 빠지고 들어온 소프라노 리디아 토이셔는 얼굴만큼이나 목소리도 아름다왔고, 간혹 커크비여사를 연상시키는 청아함을 들려 주었다. 알토의 마이클 챈스, 빌라도역의 매슈 브룩을 비롯 모든 단원들이 훌륭했다.

실연으로는 처음 들어보는 비올라다모레. 소리가 매우 작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1층으로 좌석도 바꿨고..) 생각보다는 그렇게 작지는 않았다. 특유의 곱고 부드러운 음색이 테너 (마크 패드모어)와 또 베이스와 아름다운 앙상블을 만들었다. 류트가 없는 것이 조금 아쉬웠지만.... (비올라다모레 중 한 분은 바로크보우로, 또 한 분은 모던보우에 가까와 보이는 활로 연주를 했다. 조금 멀어서 정확히는 안보이긴 했다. )

처음부터 끝까지 콘티뉴오를 담당하여 연주하던 오르간, 베이스, 첼로도 멋졌다. 특히 첼리스트인 조나단 맨슨은 매우 안정되고 깨끗한 음색으로 슬픔에 가득찬 선율을 연주해 주었다. 알토와 함께한 그의 비올라다감바도 좋았는데, 사실 그가 연주하는 바로크첼로 소리도 만만치 않게 좋았다. 비올라다감바는 정말 고요하고 아름답게, 비장하게 최후가 다가왔음을 노래하는 알토와 같이 노래하고 있었다. 비올을 내려놓자 마자 다시 첼로를 잡은 조나단 맨슨은 이어지는 베이스의 아리아에서 서로 선율을 주고 받으며 이어 나갔다. 정말 아름다운 첼로!

오보에다카치아는 소프라노의 아리아에서 트라베르소와 같이 부드럽게 예수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었다.

2부 시작 전에 시편과 T.S. 엘리엇의 시 낭독도 성우분이 나와서 했는데, 과문한 탓에 엘리엇의 시를 이해하기가 쉽지는 않았다. 한국어로 듣는데도 무슨 말인지 이해가 잘 안가서 자막을 읽고 있었는데, 어차피 읽어야 할 것이라면 원래 영시로 들려 주는 편이 영시라면 있었을 라임도 느껴질 수 있고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수난곡의 마지막 합창까지 매우 감동적이었다. 수난곡이 끝나고 합창단과 오케스트라가 모두 같이 야코프 한들의 '보라, 의인이 어떻게 죽었는지를'을 부를 때에는 정말 같이 따라 부르고 싶을 정도였는데... 불행히도 나는 그 노래를 예습하지 못해 프로그램에 가사가 쓰여져 있는 데에도 부를 수는 없었다... (따라 불렀으면 돌 맞았을까?) 오케스트라까지 같이 부르는 데도 합창단의 맑은 음색이 압도하고 있어서 무반주로 울려 퍼지는 곡이 수난곡의 끝부분에 너무나 아름다운 여운을 남기고 있었다.



(미디파일 링크: http://wso.williams.edu/cpdl/sound/handl/gall-ecq.mid)

종교가 없슴에도 들으면서 감동을 느끼게 되는 바흐의 수난곡.... 바흐가 느끼고 이해하고 가슴 아파했던 예수의 수난이 그의 음악을 타고 300년 가까운 세월을 뛰어넘어 나에게 온다니... 그렇기에 음악은 신비한 것인가 보다.

프로그램

요한복음 1장 1절-5절 낭독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요한수난곡 BWV 245 1부
시편 22장 1-29절 낭독
리틀 기딩 5부 (T.S. 엘리엇, 4개의 사중주 중) 낭독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요한수난곡 BWV 245 2부
야코프 한들: 보라, 의인이 어떻게 죽는지를

Reading from Gospel of St.John I: 1-5
J.S.Bach : Johannes Passion BWV245 PART I
Reading of Psalm 22:1-19
Reading of T.S.Eliot "Little Gidding" part V from "Four Quartets"
J.S.Bach : Johannes Passion BWV245 PART II
Jacob Handl: Ecce quomodo moritur justus

포스터 보기


댓글 7개:

  1. 직장 생활 하시면서 이렇게 활발하게 취미활동을 하시는거 보면 슈삐님은 엄청나게 부지런한 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대단하시네요.....

    답글삭제
  2. @슈타이너 - 2008/03/01 07:17
    전혀요^^ 그저 재밌어서... 사실은 이번주는 연주회가느라 오케스트라 연습도 다 빼먹었어요.

    답글삭제
  3. 정말 존경스런 어머니를 두셨네요.^^

    답글삭제
  4. @종윤 - 2008/03/02 05:43
    네^^ 감사합니당

    답글삭제
  5. 흑... 이런 글은 게시판에도 좀 올려 주시지.... ㅠ.ㅠ

    답글삭제
  6. @상헌 - 2008/03/22 03:16
    어쩐지 까페 게시판에는 좀....^^;;; 슈클 덕분에 좋은 공연 잘 볼 수 있어서 늘 감사드려요~~

    답글삭제
  7. @슈삐 - 2008/03/22 10:52
    다음부터는 종종 올려 주세요~ 올려 주세요~ 엉엉... ㅠ.ㅠ

    답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