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2월 9일 토요일

정해년 섣달의 강원도 여행

휴가를 이틀이나 내고 강원도에 갔다. 작년 강원랜드에 새로 스키장이 생겼다는데 남편이 거길 예약한 모양이다. 사실 추운 것이 딱 질색이라 스키장을 별로 좋아하지 않긴 하지만, 가서 그 근처를 돌아볼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았다.

강원도 쪽으로 갈수록 눈이 많이 쌓여 있었다. 국도로 내려서 사북, 태백으로 향하는 길에 보는 눈 쌓인 산들은 마치 커다란 동양화 병풍이 눈앞에 펼쳐져 있는 듯했다. 비록 주로 흑백으로만 표현되지만 동양화야말로 지극히 사실적인 그림들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앞을 빼곡히 메우고 있는 산, 산, 산들 사이를 빠져나가는 길가에는 층층이 눈이 쌓여 있었다. 눈이 잔뜩 오고 흙먼지가 쌓였다가 또 눈이 잔뜩 오고 또 흙먼지로 뒤덮였다가 또 눈이 오고... 겨우내 그렇게 반복된 눈이 마치 시루떡처럼 켜켜이 쌓여 있었던 것이다.

하이원 콘도는 새로 지어서 깔끔해 보였다. 늦게 출발한 탓에 도착하니 해가 저물어 구경은 포기... 콘도만 둘러보았다. 태백 눈축제를 간 것은 다음날. 예전 탄광 마을들이 있던 동네는 아직도 검은 땅, 검은 물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게 눈으로 뒤덮여 있었다. 태백산 주차장 옆의 개울에 있는 얼음과 눈 사이로 보이는 작은 바위들과 돌들은 붉은색이었다. 예전 탄광에 있던 레일이 철거되지 않아, 이제야 부식되어 녹물이 흐르는 탓이 아닐까... 생각을 하며 눈축제 장으로 향했다.


눈축제장 입구의 포토존에서 한 장


입구

눈 조각품들이 있는 곳으로 들어가는 입구

하트

키가 맞는 사람들이 들어가면 하트가 만들어지도록 만들어 놓은 곳

눈썰매?!

눈이 하도 많아서 아무 곳이나 약간의 경사만 있으면 눈썰매장으로~!

호랑이

호랑이 입으로 들어간 우리 딸들...

돼지모양 조각

눈조각 전시장 전경

눈조각 전시장 전경


눈조각 전시장 전경

눈조각 전시장 전경


실컷 눈썰매를 탄 아이들과 함께 바로 옆의 석탄 박물관에 갔다. 눈축제 마지막 날이어서 워낙 사람들이 많아서 박물관 안에도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았다. 옛날 석탄을 캐던 광산촌의 모습을 전시해 놓은 것을 보니.... 나에게는 아직 기억이 생생한 광산 사고 뉴스들, 대학시절 가슴을 아리게 만들었던 탄광촌 아이들의 이야기를 그린 '아빠 얼굴 예쁘네요'의 기억들이 이제 우리 아이들에겐 한국전쟁만큼이나 옛날이야기처럼 보이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밖의 눈축제장의 모습, 등산복을 입은 아저씨 아줌마 관광부대들, 무심하게 전시되어 있는 사북, 태백의 수십 년간의 탄광이야기가 물과 기름처럼 뱅뱅 겉도는 듯한 묘한 느낌을 받으면서 석탄 박물관을 빠져나왔다.

아이들은 완전히 지쳐 있었고, 우리는 일단 근처의 식당에서 요기했다. 전문 레스토랑처럼 엄청나게 깔끔한 서비스를 원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최소한 컵, 그릇 등만큼은 깨끗했으면 했는데... 식당은 몰려드는 관광객들로 대목을 맞아 엄청나게 바빴고, 컵을 교환해 달라는 말도 한 번 이상 하기 어려웠다. 음식이 맛이 없는 것은 아니었는데, 도무지 청결하지 못한 탓에, 대충 눈을 감고 허기를 때울 수밖에 없었다.

오는 길에 남편은 동해에 가서 바다를 보고 회를 먹자고 했다. 그렇게 할까 하다가 표지판에, 한강의 발원지인 검룡소라고 쓰인 것을 보고는 방향을 그쪽으로 바꿨다. 도로가 눈길이어 미끄러울까봐 걱정을 했는데, 검룡소로 가는 길은 제설작업도 그런대로 잘 되어 있어 좋았다. 가는 길도, 가서도 한적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차를 세워 놓은 검룡소 입구에서 약 1.3킬로미터 정도 산길로 들어가면 검룡소가 있다고 적혀 있었다. 고즈넉한 눈길을 따라 한참을 걸어 들어갔다. 사람들이 다녀서 좁은 눈길이 나 있었고, 그 옆에 쌓인 눈을 밟으면 수십 센티 눈 속으로 발이 푹푹 빠졌다. 눈 덮인 산길은 너무나 고요하고, 아름다웠다.

검룡소 600m라고 쓰인 표지판이 놓여 있는 계곡의 다리에서 우리 가족은 돌아섰다. 검룡소를 보고 싶긴 했지만, 다섯 걸음마다 한 번씩 넘어지는 도윤이를 너무 무리시키면 안 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눈 길

눈 덮인 산길을 걷는 도윤이와 아빠

눈 길

뛰다 싶이 신이 나서 가는 지윤이와 쫓아 가느라 힘든 도윤이

계곡

검룡소 600미터 앞의 다리


다음날은 밤새 온몸을 두들겨 맞은 것처럼 몸이 아팠다. 별로 많이 돌아다니지도 않았는데, 눈 속에서 놀아서인지 피로가 몇 배나 더 되는 것 같았다. 지윤이는 아빠와 스키장으로 나가고, 도윤이와 나는 방에서 자다가 TV 보다가 하면서 오전을 보냈다. 오후가 되어서야 스키장도 구경하고, 잠시 피시방도 들러 보았다.

하이원

스키 소녀 지윤~

사우나로 몸을 풀고, 저녁은 고한읍의 횟집에서 해결. 벵에돔 (벵어돔 또는 벵이돔)을 주문했는데, 싱싱하고 맛있었당^^ 다만..... 벵에돔 중 한 놈은 살아서 입을 움직이고 있었는데, 종업원을 불러 머리를 좀 치워 달라고 이야기할까 하다가... 그냥 미안하다고 말하고.... 먹어 버렸다....;;

뱅에돔

사진 오른쪽에 보이는 놈은 살아서 입을 움직이고 있었다.

뱅에돔 지리

마지막 날, 체크 아웃하고 떠나려다가 곤돌라를 안 탄 것이 생각났다. 그리하여... 곤돌라를 타고 '마운틴탑'이라고 불리는 산꼭대기로 올라갔다. 가파른 상급자 코스를 위에서 바라보며 탄성을 지르고, 초급코스에서 헤매는 중생들을 비웃으며... (난 아예 안탔었으면서....;;;) 올라간 정상은..... 정말 감동을 자아낼 만큼 아름다웠다. 태백산맥의 한가운데에서 눈 쌓인 산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세상 근심이 다 사라지는 듯... 솔직히... 융프라우보다 더 아름다웠다.

마운틴탑

중급자코스 내려가는 길에서 한 컷.

마운틴탑

전망대에서 바라본 서쪽 풍경

마운틴탑

고산지대에서 자라는 나무 군락 (나무이름은 잘 모르겠다..ㅡㅡa)

마운틴탑

역시 나무.... 흰색...

마운틴탑

슬로프. 리프트를 타고 올라오는 사람들이 멀리 보인다.

이제 정말 스키장과 안녕을 고하고, 남쪽으로 내려왔다. 시댁으로 가는 길에 마지막으로 들를 곳은 단양. 천연기념물인 고수동굴. 동굴 입구의 주차장도 한산하고, 가게들은 대부분 철시를 했다. 겨울이 동굴관광에는 비수기여서 사람들이 없는 것인지, 설 전이라 다들 가게 문을 닫은 것인지... 근처에는 중국이나 동남아 쪽에서 온 것으로 보이는 관광객들만 조금 있을 뿐이었다.

동굴 안에도 관광객이라고는 우리 가족밖에 없었다. 워낙 좁은 굴이라 사람이 더 많지 않은 것이 동굴 관람에는 훨씬 좋았다. 동굴은 조용하고, 따뜻했다. 바깥기온이 거의 영하였는데, 동굴 내부 온도는 10도를 넘어서고 있었다. 석회암 동굴인 고수동굴에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석순과 종유폭포, 종유벽 등이 환상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폭포처럼 늘어져 있는 종유석들의 모습은 마치 파이프 오르간을 보는 것 같은 생각이 들게 했다. 여기서 바흐의 오르간 곡을 연주한다면 무척 아름답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 (하지만, 동굴 생물들에는 엄청난 악영향을 미치게 될 지도....)

버지니아에 있던 룰레이 동굴에 데려갔었지만, 기억이 잘 안 나는 우리 딸들은 고수동굴은 기억할 수 있으려나... 룰레이 동굴의 규모에 비하면 작았지만, 아기자기하고 아름답기는 그에 못지않은 고수동굴이었다.

고수동굴

고수동굴

고수동굴

고수동굴

고수동굴

성당의 파이프오르간 같은 종유석들

고수동굴

고수동굴

서로를 향하여 자라는 석순과 종유석.. 사랑바위라는 이름이 붙어있다.

고수동굴

고수동굴

고수동굴

오르간의 건반 같다.


고수동굴의 출구에는 원색의 차양이 쭉 처져 있는 계단길이 있었다. 계단 길옆의 상가들은 역시 다들 문을 닫았다. 너무나 아름다운 동굴에 정말 어울리지 않는 원색의 천막 길... 관리가 잘되지 않고 있는 듯한 주변의 모습에 이렇게 훌륭한 관광자원을 더 잘 개발하면 상당히 괜찮은 수익사업으로 만들 수 있을 텐데... 라는 아쉬움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룰레이 동굴 근처엔 작은 박물관도 있고, 좀 더 잘 꾸며진 기념품 가게들도 있고, 입구나, 주변도 잘 정리되어 있었던 기억이 떠올랐었다.

슬슬 배가 고파진 우리는 단양을 떠나기 전, 단양역 바로 앞에 못 쓰는 열차를 고쳐 만든 식당으로 갔다. 역시 그다지 깨끗하지 않은 환경이긴 했으나...(제발 두루마리 휴지만은 식탁에 올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ㅡㅜ) 오래간만에 보는, 나무나 석탄을 때는 난로와 열차를 타는 듯한 느낌이 들게 하는 객실식당의 색다른 맛은 그런대로 맘에 들었다. 사실 태백에서나, 여기서나, 음식 맛 자체는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겨울여행은 여기까지. 설 전전날 저녁에 시댁에 도착하고 나니, 아이들은 계속 즐겁게 놀긴 하는데... 나는 설거지와 전 부치기에 전념할 수밖에 없었고.....ㅡㅜ 우리보다 조금 늦게 스키장에 놀러 갔던 친정식구들은 설 연휴 내내 엄청나게 신나게 놀았다는 후문이.........

게다가 긴 연휴에 휴가까지 덧대어 꼬박 9일을 놀고 월요일 직장으로 복귀할 생각을 하니 아직 하루가 남아 있는데도 스트레스가 몰려 오는 듯....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