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2월 25일 월요일

[공연] 안드라스 쉬프 독주회 2008년 2월 24일

일요일이라서 가족모임이 있었는데, 연주회 시간에 맞춰 저녁도 먹다말고 일어나 나왔다. 드디어 오늘이 쉬프의 바흐를 듣고 볼 수 있는 날이 아니던가...

가격대비 효용이 큰 합창석. 역시 피아니스트의 손가락이 보이는 위치에 자리를 잡았다. (공연을 보면서 합창석 중간으로 할 걸 그랬다는 후회가 좀 들었다. 뒤쪽에서는 그의 페달링 - 뭐.. 바흐에선 페달을 전혀 안썼다고는 하지만 - 이 잘 보이지 않았고, 어떤 표정으로 연주하고 있는지도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연주회장 밖에서 김선욱군이 친구들과 같이 있는 모습을 보았는데, 홀에 들어 오니 멀리 1층에 정명화씨가 앉아 있는 모습도 보인다. 엊그제 페레니와의 듀오 연주회가 끝나고 나서도 정명화씨를 볼 수 있었는데 말이다.

프랑스 모음곡으로 시작된 쉬프의 연주는 놀랍도록 명확한 아티큘레이션을 들려 주었다. 명료한 음색. 주선율과 부선율이 또렷또렷 살아나 마치 바흐의 악보를 눈 앞에 펴 놓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쉬프의 연주하는 뒷모습에 악보들이 펼쳐져 같이 흐르고 있는 환상이 보이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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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
J.S. Bach, French Suite No.5 in G major BWV 816
J.S. Bach, Italian Concerto BWV 971
J.S. Bach, Partita No.2 in c minor BWV 826
Schumann, Fantasie in C major, Op. 17
Beethoven, Piano Sonata No.21 in C major, Op. 53 "Waldstein"


인터미션에 계단에서 임동혁군이 걸어 내려오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쉬프의 바흐를 들으면서 요즘 한창 바흐로 전국투어를 하고 있는 임동혁군이 생각났었다. 바흐와 임동혁을 연결시키는 것이 어려워 그 공연은 보지 않기로 했었는데, 그래도 임동혁의 바흐는 어떨까 조금 궁금했었는데... 쉬프의 연주회에 와 있었을 줄은 몰랐다. 같은 연주자로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인터미션 후에 이어진 슈만의 환상곡은 피아노곡이라는 생각을 넘어 마치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듣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만들었다. 요즘 슈만 교향곡 1번을 연습하고 있기 때문에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정서적인 불안감을 느끼게 만드는 조울증 환자의 곡 같은 ... 그런 매우 슈만스러운 느낌은 쉬프의 극적인 연출로 더 힘을 얻었다. 프로그램의 마지막 곡인 발트슈타인. 헉.... 지금까지 들어왔던 수많은 발트슈타인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역시 매우 극적인 연출이고 매우 독특한 해석으로 느껴졌는데, 템포를 꽤 많이 변화시키면서 연주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피아노 한 대로 들려 줄 수 있는 가장 다양한 음색을 연출해 내는 낯선 발트슈타인이었다고나 할까....

어떻게 피아노, 피아니시모로 연주하면서 저렇게 명확한 음색을 들려 줄 수 있는 것일까....

열광적인 박수갈채가 이어지고, 쉬프는 예의바르게 객석 이쪽 저쪽을 향해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예전에 보았던 키신의 절도 있는 인사와도 비슷했다. 쉬프는 이어 3곡의 앵콜을 들려 주었다. 슈만의 아라베스크, 슈베르트의 헝가리안 멜로디, 그리고 바흐 파르티타. 슈만은 너무나 유려했고, 헝가리안 멜로디는 슈베르트의 곡이라는 것을 못듣고 제목만 간신히 알아 들었는데 헝가리 출신이라 선곡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다 어영부영... 마지막 바흐의 파르티타 1번은 연주회 전반부에 감동을 주었던 바로 그 바흐를 다시 들려 주었다. 브라보!

(역시 집에와서 구글에서 헝가리안 멜로디로 검색.... 유튜브에서 너무나 젊은, 아니 젊다 못해 어린 쉬프의 연주를 찾아 냈다 ^^)
Schubert Hungarian Melody D817 in B minor

댓글 3개:

  1. 저도 시프, 페레니와 시프 연주회를 다녀왔습니다. 정말 황홀했던 두밤이었죠. 좋은 글들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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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만술[ME] - 2008/02/26 11:32
    네 너무 좋았었죠~ 요즘은 언드라시 시프로 부르시는 분들도 많은 것 같아요. 헝가리 출신이지만 영국에서 활동을 하고 있으니, 영어식으로 불러도 무관하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드는데.. 본인은 어떻게 불리는 것을 원하는지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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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만술[ME] - 2008/02/26 11:32
    영어식 발음을 따라서 표기한다면 어쩌면 '언드라스 시프'일지도 모르지만 본인은 별로 신경 안 쓸 것 같은데요? 어쨌든 로마자 철자는 같기 때문에 그들에게 '표기법' 문제는 크게 중요하지 않고, 음운 하나 하나를 정확하게 발음하는 것보다도 퍼스트 네임에서는 아마도 두번째 음절에 악센트가 있다는 게 더 중요한 문제일 겁니다. 그게 한국말과 서양말 사이의 큰 차이점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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