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2월 22일 일요일

[번역] 현존하는 안드레아 아마티의 악기들 1부

로렌스 위튼 II (Laurence C. Witten II),

October 1982, Early Music Vol. 10, No. 4, pp 487-494

1525년에서 1575년까지 북부 이탈리아에서는 중세 후기의 현악기 – 특히 비올라 다 브라치오의 형태를 가지고 있었던 –는 변형의 과정을 거쳤고 이 시기가 다 가기 전에 바이올린족 악기로의 완전한 발전이 이루어 졌다. 19세기 후반에 볼로냐의 바이올린 역사 전문가인 지오반니 리비 (Giovanni Livi)[footnote] 'Gasparo da Salo e l'invenzione del violino', Nuova antologia, 3rd ser., 16 (1891), pp.663-81; I liutai bresciani (Milan, 1896)[/footnote]는 초기 제작자들에 관한 연구들에서 의존했었던 많은 기록에 대한 조사를 수행했다. 1930년대에는 누가 바이올린족의 “창조자”인지 관한 논쟁의 시기가 이어졌었다[footnote]See C. Bonetti, 'La genealogia degli Amati liutai e il primato della scuola liutistica cremonese', Biblioteca storica cremonese, 5 (1937), pp.3-63; A. M. Mucchi, Gasparo da Salo: la vita e l'opera (Milan, 1940); O. Foffa, Pellegrino da Montichiari inventore del violino (Brescia, 1937).[/footnote]. 늘날, 우리는 이 중요한 악기족의 모든 특징을 다 발명해낸 것은 한 사람이 아니며 많은 장인들이 그 발전에 일정한 역할을 담당했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당시 베네치아의 화집[footnote]Summarized in my article 'Apollo, Orpheus, and David: A Study of the Crucial Century in the Development of Bowed Strings in North Italy 1480-1580 as seen in Graphic Evidence and some Surviving Instruments', Journal of the American Musical Instrument Society, 1 (1975), pp.5-55[/footnote]은 북동부 이탈리아의 위대한 상업 및 군사자본에서 그러한 발전의 명확한 패턴을 보여 주지만, 크레모나, 브레시아와 볼로냐 같은 바이올린 제작의 중심지, 또는 밀라노와 같은 아마도 바이올린제작이 활발했을 듯한 곳에 관한 비슷한 문서들은 거의 없다. 그러나, 새로운 출판물, 복사물, 전시회들의 덕분으로 또 직접 방문을 함으로서 초기 찰현악기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이제 현존하는 악기들과 문서들에 대하여 이전에 가능했었던 것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증가된 지식의 결과로서, 안드레아 아마티가 현대 바이올린족의 크기를 표준화하고 구조적인 특징을 명확하게 했던 최초의 마스터로 등장하게 되었다. 다른 초기 북부 이탈리아의 바이올린 제작자들과 관련하여 안드레아 아마티의 중요성을 이해하기 위하여 도상학적인 증거들과, 현재까지 남아 있는 악기들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과 함께, 언급된 출판물들[footnote]이들 연구들은 주로 문헌적인 자료들에 바탕을 둔 것이다. 그들은 종종 악기의 사진들을 포함하고 있지만 현재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속성들을 다 포함하고 있지는 않다.[/footnote]에 대한 연구를 통해 얻어진 것들을 조사하는 것이 유용하다. 초기 바이올린 제작자들과 그들의 악기에 대하여 알려진 것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브레시아 (Brescia) 


페레그리노 또는 펠레그리노 드 미켈리 (Peregrino or Pellegrino de' Micheli)는 1520-22년 경에 브레시아 근방의 몬티치아리 (Montichiari)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자네토 (Zanetto, c1489-1564)였는데, 지오반니 마리아 란프란코(Giovanni Maria Lanfranco)가 1533년에 브레시아에서 출판한 Scintille di musica의 마지막 판권 페이지에서 칭송하던 제작자였다. 자네토의 서명이 있는 두 대의 비올이 알려져 있으나 그 악기들이 사실은 그의 아들의 손으로 만들어 진 것이라는 점은 확실한데, 제작솜씨, f홀들, 스크롤이 의심할 바 없이 아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악기들은 자네토의 말년에 제작되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고, 아마도 1564년[footnote]A cornerless tenor viol in the Brussels Conservatoire is no. 1410 in V.-C. Mahillon, Catalogue descriptif et analytique du Musee instrumental du Conservatoire royal de musique de Bruxelles, 3 (Brussels, 1912), where its original label, reading 'Zanetto in Bressa' in chancery script, is not noted; most unfortunately the label is now apparently lost, though I saw it in situ and a photograph of it in the viol is preserved. A small bass viol of identical workmanship with a similar manuscript label, is in the Witten family collection, Connecticut.[/footnote]에서 오래 전은 아닐 것이다. 페레그리노는 뛰어난 비올라들을 꽤 많이 제작했는데 그 중에서 내가 본 것은 3대[footnote]그 중의 하나는 the Witten family collection에 속해 있다.[/footnote]이다. 페레그리노가 바이올린도 만들었다는 것을 암시하는 몇 개의 출판물들이 있기는 하지만, 나는 그 악기들을 본 적이 없으며 그들의 진위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첼로가 만들어졌다고 알려진 적은 없다. 페레그리노의 라벨은 종종 고딕체로 인쇄되었거나 손으로 씌여졌고 날짜가 기록된 적은 없다. 그러나 그가 아버지가 1564년에 사망한 이후에야 악기들에 자신의 이름을 서명하기 시작하였다는 점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있을 것이다. 

가스파로 베르톨로티 (Gasparo Bertolotti)는 1540년에 살로(Salo)에서 세례를 받았다 (그리하여 가스파로 다 살로라는 이름으로 매우 유명하게 된 것이다). 그는 1565년에 브레시아에서 자신의 공방을 열었고 그 곳에서 1609년 사망할 때까지 일했다. 현존하는 그의 악기를 조사한 적은 없지만, 상당 수의 여러가지 크기와 종류의 비올들이 알려져 있고, 적어도 10 또는 15대의 비올라 (역시 여러가지 크기의)와 훨씬 적은 수의 바이올린들도 알려져 있다. 현재 알려진 바로는 남아있는 첼로는 없다. 가스파로의 작품이라고 여겨지는 매우 많은 악기들은 대부분 그의 작품이 아니라는 것이 확실하다. 그것들은 도매상들이 가스파로의 이름으로 초기 브레시아 악기들에 다시 붙인 라벨들 때문에 우리가 오늘 날에는 누구인지 알기 어려운 다른 브레시아 제작자들의 작품인 경우가 보통이다. 이렇게 라벨을 다시 붙이는 관습은 가스파로의 시대 또는 그의 사망 직후에 시작되었던 것일 것이다. 가스파로의 진품 라벨 중 어느 것도 날짜가 적혀있지 않으며, 이는 다른 모든 초기 브레시아 라벨들도 마찬가지이다.

베니스 (Venice) 


비록 위대한 베니스 제작자인 벤투라 디 프란체스코 드 마케티 리나롤(Ventura di Francesco de' Macchetti Linarol)을 찬양하는 전기적 연구서는 없으나 그는 1581년[footnote]이 악기는 전에 파두아 근방의 Palazzo Catajo 의 Obizzi 가의 수집품에 속해 있었고 현재는 비엔나의 Kunsthistorisches Museum에 있다; see J. von Schlosser, Die Sammlung alter Musik- instrumente. beschreibendes Verzeichnis (Vienna, 1920), no.C.96.[/footnote] 뛰어난 바이올린을 만들었고 베니스와 파두아에서 1577년에서 1591년까지 많은 비올과 리르 다 브라치오를 제작하였다. 지금까지 출판된 자료를 가지고 있는 악기들은 주로 비엔나와 라이프찌히의 콜렉션들이다[footnote]Vienna, Kunsthistorisches Museum; Leipzig, Musikinstrumenten- Museum der Karl-Marx-Universitat, including the Heyer Collection[/footnote]. 위튼 콜렉션(Witten family collection)에 있는 작은 베이스 감바는 1582년 베니스라고 서명되어 있으며 절묘한 솜씨로 제작되어져 있는데 1585년 파두아에서 만들어진 더블 베이스와는 작은 사이즈로 된 쌍둥이라고 할 수 있다[footnote] Vienna, Kunsthistorisches Museum; Schlosser, op cit, no.C.78[/footnote]. 찰스 비어(Charles Beare)는 최근에 전형적이고 아름다운 작은 베이스 비올을 취득하였다. 그것은 코너가 없는 디자인이며 뒷판의 메인 바를 없애 남아있는 서명을 볼 수 있는데, 'Ventura de francesco Linarol in Venetia i59i'라고 되어 있다. 벤투라의 아버지인 프란체스코도 역시 잘 알려진 제작자였다. 1563년[footnote]Great Missenden, Bucks., collection of William E. Hill & Sons[/footnote]에 그가 만든 리라 다 브라치오가 남아있으며 베니스와 브뤼셀 콜렉션에 몇 개의 비올이 있다. 1535년 경부터의 베니스의 그림에서는 꽤 자주 큰 비올라들이 나타나지만, 초기의 발전기에 만들어진 베니스산 비올라로 남아 있는 유일한 것은 팔라조 카타조[footnote]Vienna, Kunsthistorisches Museum; Schlosser, op cit, no.C.70[/footnote]의 비올라 다 브라치오이다. 나는 이 악기가 대략 1540년에서 50년 정도 (슐로써 (Schlosser)의 주장처럼 1500년까지는 아닐 것이다)의 악기라고 생각하며 프란체스코 리나롤이 서명한 악기들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 시기의 도상학적인 자료들은 그렇게 큰 비올라가 베니스에서 사용되어졌음을 보여주지만, 내가 아는 한 그것들은 결코 첼로를 묘사한 것은 아니었다. 이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첼로로 현존하는 것은 도리고 스필만(Dorigo Spilman)의 것으로 현재는 베니스에 있다. 그는 또한 1591년 파두아에서 포쉐트 (pochette, 'TanzmeisterGeiglein')에 서명을 했었다. 그러나 이 악기는 남아있지 않다[footnote]See Schlosser, op cit, no.C.lll and C.114.[/footnote]. 

볼로냐 (Bologna)


1628년[footnote]United Kingdom, private collection[/footnote] 볼로냐에서 안토니오 브렌치(Antonio Brenzi)에 의하여 서명된, 좀 큰 크기의 훌륭한 비올라는 분명히 오늘날 알려진 볼로냐 최초의 바이올린족 악기이다. 그러나 이 제작자 (브렌티우스 (Brentius) 또는 브렌시우스 (Brensius)로 알려진)는 거의 4세기 전에 살았었음이 확실한데, 라이프찌히에 있는 'Antonius Brensius Bonon. 1592' 라고 서명된 잘 생긴 베이스 리라 다 감바가 이를 증명한다[footnote]Leipzig, Musikinstrumenten-Museum der Karl-Marx- Universitat, formerly Cologne, private collection of Wilhelm Heyer; G. Kinsky, Musikhistorisches Museum von Wilhelm Heyer in Koln (Cologne, 1910- 12), no.782. See also E. Winternitz, Musical Instruments of the Western World (London, 1967), no.l1.[/footnote]. 예전의 바이올린 제작자들에 관한 사전에서 안토니오 브렌스우스 또는 브렌치가 불가능할 만큼 이전 시기에 상당히 많은 악기를 만들었다는 것은 충분히 추측할 수 있다. 그러나, 안드레아 아마티 전생에 동안 또는 가스파로와 페레그리노의 초기 제작기에 바이올린족 악기들이 볼로냐에서 만들어졌다는 증거는 없다. 

밀라노 (Milan) 


내가 아는 한, 1660년에서 75년 경 이전에 만들어진 밀라노산 바이올린족 악기는 남아있지 않다. 그러므로 이 도시는 초기 시기에 바이올린 제작의 중심지로 간주될 수는 없을 것이다. 

크레모나 (Cremona) 


안드레아 아마티가 살던 곳과 출생일은 알려져 있지 않으나 보네티(Bonetti)는 그가 1505년 경에 살고 있었을 것이 틀림없으며 1580년에서 81년 경에는 45년 정도 현악기 제작 장인으로 크레모나에서 일했었다는 점을 확신을 가지고 보여주었다. 안드레아의 사망 이전에 크레모나에서 다른 제작자에 의하여 만들어진 어떤 종류의 악기도 알려져 있지 않다. 16세기 크레모나산 악기 중에서 안드레아와 그의 두 아들이 아닌 다른 제작자에 의한 악기도 알려져 있지 않다. 그리고 아마티가에서 제작된 상당 수의 현존하는 악기들 모두가 바이올린족의 악기들이다. 그리고, 주요 북부 이탈리아 중심지들에서 제작된 현명악기(chordophones)들은 종류와 수에서 많은 차이들을 가지고 있다. 비올라는 페레그리노와 가스파로의 브레시아 공방들의 제작품들에서 상당한, 그러나 지배적이라고 할 만큼은 아닌,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그들은 바이올린을 덜 만들었고 아마도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첼로는 거의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베니스에서는 비올과 리라를 주로 제작하였고 그 중에 오직 1대의 16세기 바이올린, 1대의 바올라 다 브라치오 – 이것은 완전히 발전한 모습의 바이올린족 악기는 아니지만 – 그리고 파두아 근방에서 아마두 1600년 이전에 제작되었을 1대의 첼로가 있을 뿐이다. 대조적으로, 크레모나에서는 16세기 제작품으로 알려진 모든 악기가 바이올린족의 악기에 속하며 모두 아마티가의 작품들이다. 만약 남아있는 악기들이 좋은 표본이라면, 이런 악기들의 생산은 매우 견고한 것이다. 

오늘날, 안드레아 아마티의 공방에서 생산된 4가지 크기의 악기들이 알려져 있다. 작은 크기의 바이올린들은 342mm정도의 바디길이를 가지고 있고, 좀 더 큰 크기의 바이올린들은 354mm정도이다. 매우 큰 비올라는 테너 사이즈인데 470mm정도이고, 첼로도 역시 매우 큰 사이즈이나 사이즈가 줄여지지 않고 현재까지 남아있는 것은 없다. 원래의 바디길이는 약 795mm정도로 추측된다[footnote]W. Henry, F. Arthur and Alfred E. Hill, Antonio Stradivari, his Life and Work (London, 1902), appendix IV, state: 'We are only able to give the approximate dimensions of the Violoncello as made by the successive generations of the Amatis, as no example is known to us, the proportions of which have not been diminished.' They believed a body length of 31 inches, about 790mm, 'to be fairly accurate' and gave the length of the 'Aylesford' Stradivari cello of 1696, an instrument of the standard large Cremonese size, as 31 1/4 inches. Although uncut then and later while owned by Gregor Piatigorsky, this cello was reduced in size in the 1960s by a dealer to facilitate its sale.[/footnote].

댓글 2개:

  1. 부지런하시네요^^

    그런데 저만 그런건지 문장이 겹쳐 보이는 곳이 있어서 글을 읽기 힘든 곳이 꽤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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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슈타이너 - 2009/02/22 14:08
    워드에서 작성한 각주를 옮겨 붙였더니, 파이어폭스나 구글크롬에서는 멀쩡해 보였는데 익스플로러에서는 이상하게 보였나 봐요. (요즘 익스플로러가 에러가 나서 잘 안썼더니만 몰랐네용)



    결국 블로그의 텍스트입력기의 각주 기능을 이용하여 다시 하나하나 가져다 붙였습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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