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2월 15일 일요일

어느 선생님과의 일 년

대학교부터는 빼고...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12년 동안의 선생님들을 돌이켜 본다. 나쁜 기억력 때문에 모든 선생님들을 다 기억하지 못한다. 특히 초등학교 저학년때의 선생님들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래도 가장 좋았던 분들은 기억이 난다. 단순히 교사라는 직업으로서만 선생님이로 존재했던 사람들이 아니라, 아이들을 사랑하고 그 마음을 표현하셨던 분들이 계셨었다. 그 때는 잘 몰랐지만, 나중에 생각해 보면 집에 가서 아이들에게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고민하고 또 고민하셨을 선생님들이 분명히 계셨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때의 나는 잘 몰랐었다.

대학 원서를 쓸 무렵, 우리 부모님은 나에게 특별히 어느 과를 가라고 강요하신 적은 없었다. 나 자신도 특별히 하고 싶은 것이 없었고...  다른 많은 아이들처럼 나도 내 성적에 맞는 학교와 전공을 선택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때는 세상이 내가 입학할 학교와 전공으로 나를 평가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아버지께 "아빠, 제가 어느 과에 갔으면 좋으시겠어요?"라고 물어본 적이 있기는 하다. 그 때 아빠는 사범대를 가는 것이 어떠냐고 하셨었다. 평생 교육부에서 일하셨었고, 나중에 은퇴해서 작은 학교를 세우는 꿈을 가지고 계셨던 아버지의 말씀이었는데, 나는 '내 점수로 사대를 가면 너무 아깝잖아'라는 턱없이 오만한 생각을 하면서 무시했었다. 그렇지... 그렇게 오만하고 세속적인 생각들로 가득했던 나는 선생님이 되는 길을 선택하지 않았던 것이 확실히 맞는 것이었다.

그리고 20년 후에, 나는 둘째 아이를 초등학교에 보냈다. 두 아이를 키우면서, 그 동안 또 많은 선생님들을 만났었다. 유치원과 초등학교 선생님들은 모두들 아이들을 사랑하는 모습이 느껴지는 좋은 분들이었다. 오래 전엔 나를 가르치셨던 선생님들의 마음을 잘 몰랐던 나는 이제, 나보다 훨씬 어린 우리 아이의 유치원 선생님들, 내 또래의 우리아이의 초등학교 선생님들을 만나면서 이상하게도 그 분들의 마음이 이젠 훨씬 더 잘 보인다. 이제 나도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가 되었기 때문인가 보다. 그런데, 올 해 만난 한 선생님은 정말 특별한 분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만 6년째 맡아 오고 계신 그 선생님은 40대 중반의 남자 선생님이다. 우리 반 아이들 모두가 선생님은 내년에 개그맨 데뷔를 준비 중이라는 말을 믿고 있을 정도로 재미있는 분이다. 얼마나 부지런하신지 주말에도 쉬지 않고 늘 가족들과 어딘가 다녀오시곤 하시고... 하교 시간에, 선생님과 아이들이 헤어질 때마다, 이 선생님은 아이들 하나하나의 이름을 불러주고 꼭 안아주신다. 선생님은 매일 매일 학급 홈페이지에, 아이들에게 한 장, 부모님께 한 장 편지를 쓰신다. 그걸 프린트해서 나누어 주고 "새끼손가락"이라는 공책에 붙이게도 하신다. 그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내는 숙제는, 봄놀이 가기, 주말에 실컷 놀기, 비오는 날 나가서 맨 발로 물 밟아 보기, 눈 사람 만들기, 달 보고 소원빌기, 나무 심기.... 그런 것들이다.

어제는... 이제 그 선생님과 보낸 일 년이 끝나서 곧 모두 지워져 버릴 학급 홈페이지에서 선생님이 일년 동안 써 놓은 편지들을 읽어 보다가, 너무 아쉬워서 모두 다 저장을 했다. 다시 꼼꼼히 읽어 보니... 선생님이 얼마나 많이 그 여덟살짜리 아이들을 사랑했는지, 그 넘쳐나는 사랑을 학부모들과 얼마나 나누고 싶어했는지가 참 많이 느껴지는 글들이었다. 또 공부 잘하는 아이들보다는 더불어 살아갈 줄 아는 아이들, 주위의 모든 것에 사랑을 느끼는 아이들로 키우고 싶은 선생님의 마음이 절절하게 느껴지는 글들이었다.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그 어느 학교보다 교육에 열올리는 학부모들이 많은 학교다. 영어 유치원을 안다녀본 아이는 우리 아이 밖에 없는 듯 하고... 학년이 올라가면 아이들이 과외 서너개씩은 다 하고... 맞벌이 엄마라서, 또 그다지 또래 아줌마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성격이라서, 엄따가 되어버린 나로서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걱정만 될 뿐인 그런 분위기다. 그래서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 지를 늘 고민하고 답답해했었다.

그런데, 그런 학교에 이런 선생님이 계셨던 거다. 사실... 문제는 학교나 선생님이 아니었다. 선생님이 써 놓은 글들을 읽으면서... 오히려 선생님은 지치고 스트레스 받는 아이들에게 숨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는 분이었던 것이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이제 2학년이 되고, 점점 더 점수, 사교육, 시험... 이런 경쟁으로 가득찬 공간으로 들어가게 될 아이들에게 그래도 여덟 살때 만큼은 행복하고 아름답게 만들어 주고 싶었던 선생님의 마음이 그 글들 속에 가득 들어 있었다. 우리 아이는 20년 30년 후에도 초등학교 1학년 시절, 이 선생님과 함께 했던 시간 만큼은 아름답게 기억할 수 있겠지.

그 동안 선생님이 쓰신 글을 읽으면서, 참 대단한 분이다라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어떤 날은 그 글은 대충 읽고 밑에 적어 놓으신 그날 그날 챙겨야할 준비물, 숙제 등 알림장 내용만 체크하고 아이보고 빨리 숙제하라고 잔소리만 해대기도 했고, 또 어떤 날은 바쁘고 피곤하여 아예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지도 못하기도 했다. 매일 매일 그 글을 찬찬히 읽으면서 내 아이, 부모의 역할, 우리가 사는 삶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지는 못했던 것이 이제와 지난 일 년의 시간을 돌아 보면서 참 아쉽기만 하다. 그랬더라면, 내가 조금 더 내 아이를 사랑할 수 있었을 텐데, 아니 내가 내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하고 아이와 같이 행복을 느낄 수 있었을 텐데... 이렇게 후회를 한다.

아래는 선생님의 허락 없이 몇 개의 글을 옮겨왔다. 아래 글 이외에도 너무나 좋은 글들이 많지만 "불펌"이라..ㅡㅡ;; 혹시라도 관심있으신 분들은 아래 닫아 놓은 글을 열어 보시면 된다.

(이 글은 그 선생님께서 쓰신 것으로, 모든 권리가 그 분에게 있고, 여기에 옮겨져서 잘 못 전달된 부분은 모두 저의 책임입니다. 이 곳에서만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또, 문제가 되면 제가 나중에 삭제할 수도 있습니다. 원래 허락을 받고 올렸어야 하나, 그간 너무나 성의없었던 불량 학부모로서 허락을 받는 게 송구스러워서....ㅡ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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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개:

  1. 참 아름답긴 합니다만 동시에 우울한게 느끼는건 저 혼자만은 아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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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슈타이너 - 2009/02/21 12:27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에서 자라는 아이들도 힘들고,

    그 속에서 아이를 키워하야 하는 부모도 힘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선 현장에서 아이들을 교육시켜야 하는 교사들도 힘들고...

    왜 교육이 우울하게 되었는지 참... 우울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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