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8월 20일 월요일

7/8 바이올린 사용기

키도 작고, 팔도 짧고, 손가락도 짧아서, 4/4 악기를 쓰면서도 늘 불만이 가득했었다. 악기만 조금 더 작으면 정말 연주가 너무나 잘 될 것 같은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고나 할까. 그날 그날 연습이 안되면, 악기가 너무 커서 그렇다는 둥, 바디가 36센티나 되는 거대 악기라는 둥.. 온갖 핑계를 악기의 크기에 갖다 붙이곤 했다.

레슨 선생님도 손이 작다는 둥, 악기가 크다는 둥의 말을 가끔씩 하셨는데, 그게 학생의 실력을 탓해서 기분을 상하게 만드는 것 보다는 나아서 그러시는 것이라고 짐작은 하면서도.. 7/8을 가져보고자 하는 내 열망에 부채질을 하는 격이 되었었다.

4/4인 빅토르 오디놋을 처분하고... 잠시 3/4을 사용해봤었는데, 3/4은 정말 연주가 편하긴 했지만, 너무 심하게 작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무래도 3/4는 아닌 것 같고, 4/4 중에서도 넥이 얇게 빠져 있거나, 길이가 좀 짧은 악기를 구하거나, 정말 7/8을 구해야 겠다고 생각을 하고 있던 중.... 이 악기를 발견했다.

모양도 그런대로 나쁘지 않았고, 판매자가 올려 놓은 사운드 샘플도 그럭저럭 맘에 들었다. 가장 맘에 든 것은 가격...ㅡㅡ;; 한국에 가져와서의 수리비까지 고려해도 많이 저렴했다. 그리하여.. 이 악기는 나에게로 오게 되었고, 수리하지 않고 대충 써보려고 했으나, 가져온 지 하룻만에 지판 분리라는 황당한 일이 발생하여, 지판을 올리고 브릿지를 교환하는 수리를 거치게 되었고, 수리 후에는 상당히 놀랄만하게 음질이 개선되었다.

악기가 온 것이 4월 초이니 벌써 꽤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사용 후의 총평은 매우 만족. 일단 악기가 손에 맞으니, 음정 잡는 것이 훨씬 부드럽다. 특히나 겹음을 연주할 때 훨씬 좋은 것은 사실. 악기의 소리 크기는 사실 비교를 할 수가 없다. 4/4라고 해도 워낙 차이가 있으니까.

이 악기는 세팅을 제대로 하고 나니 소리는 더 좋아 졌고 커졌는데, 아직도 브릿지나, 사운드포스트를 워낙 좋지 않은 걸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개선의 여지는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악기 사이즈가 작은 것에 비해서는 소리가 시원시원하고 울림이 좋다. resonance가 좋다는 것은 나같은 초보에게는 참 잘된 일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운지를 했을 때 제대로 운지가 되었는지 파악하는 것이 쉽기 때문이다.

7/8을 써보고 나니, 사이즈가 작다고 해서 특히 소리가 작거나 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실 악기가 음량에서 차이가 난다고 하더라도, 손가락이 짧아서 연주가 힘들다고 불평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7/8을 적극 권하고 싶다.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이나 세종문화회관에서 리사이틀을 할 것이 아니라면, 사실 악기의 음량은 아마추어에게 그다지 중요하지는 않을 것인데, 굳이 연주하기 어려운 악기를 붙들고 있어야 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내가 살면서 바이올린을 연주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남았다고....

문제는, 7/8에 익숙해진 손가락으로는 연주해 볼 수 있는 악기의 숫자가 줄어들 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나중에 더 좋은 악기들을 만나게 되면, 분명히 대부분은 4/4일테니, 7/8로 연습을 해온 나로서는 연주가 힘들 수도 있을 듯하다. 글쎄... 그건 내가 좀 더 악기를 잘하게 되면 또 극복가능한 문제가 아닐까? 같은 4/4라도 차이가 많이 나곤 하니까...

나중에 좋은 사진기를 구하게 되면 악기 사진을 올려봐야 겠다.

댓글 7개:

  1. 7/8 사이즈가 있는 줄은 몰랐내요. 저는 비올라를 취미로 배우고 있는데 저도 좀 작아서-_- 약간 작은 비올라를 쓰고 있죠. 15인치 반짜리. 현악기는 특히 몸에 잘 맞아야 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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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amaDeus - 2007/08/22 20:03
    비올라를 배우시는군요^^ 저도 15인치 또는 15인치 반짜리 비올라를 하나 구해볼까 생각 중인데.. 아직 맘에 드는 악기를 못만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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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제 악기 역시 7/8 사이즈 랍니다. 묘한 사이즈라고 불평했던 게 어제오늘 같은데 이젠 제 악기가 가장 소중하게 느껴지네요^^ 하드케이스 임에도 불구하고 갖고 다니다가 부딪히면 어쩌나, 걱정되는걸요. 바이올린 열심히 연주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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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Cello - 2007/08/23 00:26
    7/8첼로^^ 동지애가 느껴지는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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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resonance가 좋다는 것은 나같은 초보에게는 참 잘된 일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운지를 했을 때 제대로 운지가 되었는지 파악하는 것이 쉽기 때문이다.



    -> 동감동감.. 이래서 악기를 질러야 합니다!! 악기병을 온 세상에 퍼트리세...



    비올라는 최소 16 1/2인치정도는 되야 ㅡ_-;;



    첼로는 바이올린과 달리 7/8쓴느 분이 상당히 많더군요!! 옜날의 대형 첼로들이 죄다 컷다운 된 이유가 수긍이 가기도 한다는... 그래도 무식한넘들 ㅡㅜ..



    슈삐님, 그래도 예전에 제가 만난 아가씨는 슈삐님보다 더 작았는데 풀사이즈 썼어요.. 연습하세요!!! (노현정 버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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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저도 7/8올드바이올린 쓰지만, 4/4랑 싸이즈비교하면 별차이안나던데, 4/4연주하다가 7/8연주도 해보고 그래요 현의넓이나, 지판이동에도 별다른차이가 안나는데 글쓴님은 상당히 차이가 나는듯 얘기하시니 의아해서 글올려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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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래궁이 - 2009/09/09 01:04
    바이올린은 악기마다 차이가 많이 나니까 각자 써본 악기에 따라 경험이 다를 수 있겠지요. 4/4라도 넥이 가는 악기는 7/8만큼 편하기도 하더군요. 전 7/8을 2대 가지고 있는데 모두 4/4보다 조금씩 편합니다. 그러나 그 두 악기도 차이가 있습니다.

    또 손이 4/4에 맞는 사람에겐 별 차이가 없을 수 있지만 저처럼 손이 많이 작아서 4/4로 핑거링이 힘들었던 경우엔 차이가 클 수도 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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