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월 15일 목요일

[번역] Homage 해설 by James Ehnes

(허접 날림으로 쭉 써봤다... 이 해설 말고도 제작자 계보도도 한 페이지 들어 있고, 바이올리니스트, 피아니스트, 풀턴에 대한 설명도 한 페이지씩 들어 있으나... 일단 손가락 아파서 생략... 번역이 이상한 점이 있으시면....  번역자에게 연락하시지 마시고... 그냥 알아서 생각들 해주셈...)

불펌은 절대 금지....



음악은 역사와 함께 발전해왔고 악기도 그러하다. 현악기, 관악기, 타악기의 분류는 변함이 없지만, 악기들 그 자체는 계속적으로진화해왔다. 오늘날의 플룻은 고대 그리스에서 연주되던 플룻과는 거의 관련이 없고, 오늘날의 콘서트 그랜드 피아노를 만약 바흐가보게된다면 깜짝 놀랄 것이다. 그러나 현악기들은 예외이다. 가장 탐나는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들은 수백년전에 북부 이태리의작은 지역에서 몇 명의 전설적인 제작자들이 만든 것들이다.

가장 좋은 현악기들은 음의 아름다움, 폭넓은 다양한 음색, 선명한 음과 뻗어나가는 힘의 완벽한 결합을 이루고 있다. 많은 악기들중에서 이런 특징들 중 하나 혹은 심지어 두 가지를 가지고 있는 악기를 찾는 것은 드문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요소들을 한악기가 모두 가지고 있는 경우를 찾는 것은 정말로 드믄 일이다. 이 음반에서 연주되는 악기들의 제작자들은 누구도 뛰어 넘지 못한바이올린과 비올라들을 제작했다. 왜 현악기 제작이 역사 속에서 이 특별한 시기에 정점을 이루었었는지는 미스테리로 남아있다.아마도 단 하나의 합리적인 설명은 현악기의 제작이 단순한 공작이 아니라 예술의 형태를 라는 것일 것이다. 많은 예술들과마찬가지로 바이올린의 제작도 훌륭한 예술가들이 악기에 대한 수요가 높았던 때에 가까운 거리에 살고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쳐비교할 수 없을 만큼 위대한 작품들을 창조하게 되는 "황금기"를 가졌던 것이다.

수 세기동안, 이 지역의 악기들은 전 세계로 흩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때때로 이 훌륭한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들로 중요한콜렉션을 만들었던 개인들이 있었고, 그런 콜렉션들을 통하여 악기들을 이야기 맥락에 맞게 감상할 수 있는 귀중한 기회를 가질 수있었고, 연주자들이 단지 개인적으로 악기들을 감상할 뿐만 아니라 비교하고 대조하면서 연주할 수 있게 되었다. 데이비드 풀턴박사는 역사상 가장 멋진 개인 콜렉션을 모아왔는데, 세계에서 가장 알려진 현악기들이 그 콜렉션이 포함되어 있다. 이 음반은 지금시점에서 이 악기들에 대한 기록을 남기려는 그의 비전의 결과물이다.

바이올린은 1500년대에 지금 현재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안드레아 아마티(대략1505년 - 1578년)는 "근대" 바이올린의아버지로 여겨진다. 아마티는 현재의 북부 이탈리아의 포 계곡에 있는 도시인 크레모나에서 작업했다. 비록 현재까지 전해내려오는그의 악기는 얼마되지 않지만, 크레모나가 이탈리아에서 현악기 제작의 중심지가 되고, 과르네리가,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 카를로베르곤지와 아마티 자신의 후손들 - 히에로니무스, 니콜로와 히에로니무스 2세 - 을 포함한 많은 다른 훌륭한 제작자들의 그 곳에살게된 것은 그의 성공 때문이다.

1700년대 초반까지 바이올린 제작은 정점을 이루었다. 그 시절의 논란의 여지 없이 가장 위대한 제작자는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 (1644-1737)이다. 스트라디바리의 초기 라벨은 그가 니콜로 아마티의 제작였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으나, 오늘날의 많은 전문가들은 이것은 단순히젊은 스트라디바리가 그가 만든 악기들의 신뢰도를 높여 보이고자 대담하게 꾸며낸 라벨들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그가 그의동시대인들처럼 아마티에게서 큰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30대와 40대에 그는 유럽에서 가장 유명하고 부유한가문들을 위하여 악기를 만들었는데, 스페인 왕족과 플로렌스의 메디치가들도 포함된다. 1700년대 초에 (대략 1709년 -20년. 몇몇 전문가들은 그 시기를 1703년부터 또는 심지어 1700년부터 시작한다고 확장하기도 한다), ) 그는 소위"황금기"라고 불리우는 시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표준적인 바이올린으로 정의되는 악기들이 바로 이 시기에 제작된 악기들이다. 이 기간의 그의 바이올린들은 완벽한 음질과 디자인의 아름다움이 완벽하게 결합되어졌으며 연주자들과 수집가들이 모두 열망하는 악기가 되었다.

쥬제페 과르네리 "델 제수" (1698-1745)는 역사상 위대한 바이올린 제작자 가문에서 나온 가장 위대한 제작자이다. 그의 할아버지인 안드레아 과르네리 (1626-1698)는 니콜로 아마티의 견습생으로 일을 시작했었으며 이 녹음에 사용된 비올라를 비롯한 많은 뛰어난 악기들을 생산했다. 안드레아의 두 아들, 쥬제페 ("필리우스 안드레아"또는 안드레아의 아들)와 피에트로 ("만투아의 피터")도 또한 뛰어난 제작자들이었다. 그들의 바이올린은 일반적으로 아버지의 바이올린들보다 더 나은 수준의 악기들로 여겨진다. 쥬제페 필리우스 안드레아도 역시 두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피에트로 ("베니스의 피터")와 IHS (예수의 그리스식 약어) 라는 문자와 라벨의 십자가 오늘날 우리가 "델 제수"로 부르고 있는 쥬제페이다. "델 제수"는 생전에 스트라디바리와 같은 명성과 부를 얻지는 못하였으나 현재는 스트라디바리와 동급으로 생각되어 진다. 스트라디바리가 유럽의 가장 부유하고 영향력있는 시민들을 위하여 악기를 만들었던 반면, "델 제수"는 지역의 음악가들을 위하여 악기를 만들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이것이 현존하는 델 제수의 악기들의 숫자가 상대적으로 작다는 점을 설명해 줄 것인데, 약 140대의 바이올린과 한 대의 첼로 (그의 아버지의 라벨을 달고 있지만 확실히 젊은 "델 제수"의 작품이다)만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조적으로 스트라디바리의 악기는 600대가 넘는다.

스트라디바리와 과르네리 델 제수의 바이올린에 대한 비교는 꽤 많다. 많은 위대한 바이올리니스트들은 두 제작자의 바이올린들을 시연하는 것을 즐겼었다 (헨리 비에니압스키, 프리츠 크라이슬러, 야샤 하이페츠, 예후디 메뉴인, 아르투르 그뤼미오, 이작 펄만) 그러나 다른 많은 바이올리니스트들은 한 제작자의 악기만을 평생 연주했었다. 1742년 델 제수를 주로 사용하는 연주용 악기로 정하여 델 제수가 마땅히 받아야할 만한 인정을 받게 만들었던 것은 전설적인 니콜로 파가니니였다. 그러나 그는 스트라디바리도 또한 소유하였고 연주하였었다. 이 악기들과이 악기들이 연주회에서 사용될 만한 것인지에 대한 오해들이 많이 있다. 1700년대 초의 스트라디바리는 "연주용"으로는 이상적이지 않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 되었는데 이 믿음은 이 시기의 가장 위대한 바이올린들 중 몇몇의 연주를 듣게 되면 확실히 틀렸다는 것이 나타난다. 스트라디바리의 "롱 패턴" 시기 (몇 가지 현저한 예외들을 제외하고는 대략 1692-99)의 바이올린들은 성공적이지 못한 실험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이들 바이올린 중의 몇 대는 훌륭한 연주용 악기들이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소리가 뻗어 나가고 크고 선명한 톤을 가지고 있다. 비슷하게, 1740년 이후의 "델 제수"의 작품들이 더 우수하다는 믿음도 존재한다. 그의 가장 뛰어난 바이올린들이 이 시기에 나왔다는 것이 사실이기는 하지만, 그 악기들이 초기의 가장 우수한 바이올린들보다 정말로 더 높은 수준의 음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합리적으로 증명되지는 않는다. 어느 한 제작자의 다른 제작자에 대한 "우위"는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다. 서로 다른 악기들은 각기 다른 연주자들에게 맞을 것이다. 각 제작자의 최고의 바이올린들은 악기가 연주되는 곳의 음향이나 선곡에 따라 다른 악기들보다 더 낫기도 할 것이고 또 연주자가 만들어 내고자 하는 음악에 따라서도 달라질 것이라는 것이 나의 견해이다. 궁극적으로, 이들 악기들은 표현의 수단이며 두 제작자의 위대한 악기들은 사실 끝없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이들 악기로 하는 연주에서의 어떤 단점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연주자의 잘못이지 제작자의 잘못은 아니다.

1698 Pietro Guarneri (Peter of Mantua) "Shapiro"
만투아의 피에트로 과르네리 (1655-1720)의 악기들은 매우 드물다. 그는 제작자인 동시에 음악가였고 이러한 두 가지 경력때문에 그가 악기를 많이 만들지 않았다을 것으로 생각되어진다. (알려진 바이올린은 42대, 1대의 테너 비올과 1대의 첼로가 있다) 연주에 쓰인 이 바이올린은 앞판과 뒷판의 각 코너에 모두 아름답게 새겨진 fleur-de-lys 덕분에 특별한 관심을 불러 모은다.

1709 Antonio Stradivari "La Pucelle"
이 유명한 바이올린은 현존하는 가장 잘 보존된 스트라디바리 중의 하나이다. 이 별명은, 위대한 바이올린 제작자이며, 딜러, 수리복원가였던 J.B.뷔욤이 1850년 경에 처음 이 바이올린을 보고 이것은 "comme une pucelle!" ('처녀 같다!')라고 경탄한 데에서 왔다고 한다. 달리 말하자만, 이 바이올린은 스트라디바리의 손에서 떠난 이후로 한번도 열려진 적이 없었던 것이다. 뷔욤은 이 악기를 모던 악기로 만들었는데, 넥, 베이스바와 피팅을 바꾸었다. 이 바이올린은 그 때 이후로 어떤 변경이나 수리라고는 전혀 없었다. 이것은 아직도 뷔욤의 펙과 테일피스를 달고 있으며 테일피스는 쟌 다르크 (프랑스에서 "오를레앙의 처녀"로 알려져 있는)의 이미지가 아름답게 새겨져 있다. 이 바이올린은 이전에 녹음이 된 적이 전혀 없다.

1713 Antonio Stradivari "Baron d'Assignies"
이 바이올린은 밝고 강한 음색과 매우 잘 되어 있는 보존 상태가 뛰어난 점이다. 이 바이올린은 아주 많이 사용된 흔적이 보이지 않고 사실 1955년까지 전문가들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데이비드 풀턴은 알려져 있던 이 바이올린의 소유자들 중 3번째이다. 구조에서 한가지 주목할만한 면은 앞판의 두께인데, 2.9mm이고 다른 알려진 스트라디바리 바이올린들 보다 1/4mm정도가 더 두꺼운 것이다.

1715 Antonio Stradivari "Marsik"
나는 1999년 9월부터 이 바이올린을 나의 연주용 바이올린으로 이용해왔는데 이는 매우 즐거운 일이었다. 벨기에의 바이올리니스트인 Martin-Pierre Marsik의 이름이 이 악기에 붙어있기는 하지만, 그는 이 악기를 1879년에 취득하여 1880년에 팔았기 때문에 단지 1년만 소유했었다. 악기의 소유자들은 1870년에서 20세기 초까지 알려져 있다. 그 후의 어느 시점에 바이올린은 소련으로 넘어갔고 영국의 딜러인 Peter Biddulph가 1990년에 되살 때까지 그 곳에 머물러 있었다. "Marsik" 스트라드는 하나 더 있는데 1705년에 제작된 것으로 나중에 데이비드 오이스트라흐의 연주악기가 되었었다. Marsik은 20세기로 바뀔 무렵에 1726년 스트라드도 하나 더 가지고 있었다는 증거도 존재한다.

1715 Antonio Stradivari "Baron Knoop"
스트라디바리의 가장 유명한 악기들 중 하나인 이 바이올린은 위대한 수집가였던 Johann Knoop 남작 (1846-1918)의 이름을 받았다. 그는 전 시대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현악기 콜렉션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다. 유명한 영국의 딜러인 알프레드 힐에 따르면, 이 바이올린은 남작이 가장 좋아하는 악기였다. 이 악기는 힐의 스트라디바리에 관한 책에서 "Bevan" (훗날의 소유자)로 불리워졌었으며 "일급의" 악기로 특별히 언급되고 있다. 야샤 하이페츠는 이 악기를 1936년 12월에서 1938년 1월까지 사용했었다.

1719 Antonio Stradivari "Duke of Alba"
이 악기의 소유자들은 1788년까지 알려져 있는데, 그 때 Duke of Alba가 마드리드의 Vicenzo Ascensio에게 수리를 맡겼었다 (아직도 라벨에는 Ascensio의 글씨가 적혀있다). 많은 위대한 바이올린들처럼, 이 악기도 1850년 프랑스의 딜러인 뷔욤에게 가게 되었고 그 후 독일의 귀족인 Wilhelm von Booth의 가족에게 판매되었으며 1911년까지 그 가족이 악기를 소유했다. Otto Booth (Wilhelm의 아들)가 20세기초까지 소유하고 있었으나 바이올린은 남미에 있었고 아서 힐에 따르면, 그 시기 그 쪽에 있었던 유일한 스트라디바리였다.

1733 Antonio Stradivari "Sasson"
스트라디바리 말년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이 악기는 보존이 매우 잘되어 있고 그동안 대부분 아마추어 연주자들과 수집가들의 손에서 전해져 왔다. 이 바이올린은 1892년 Roussy가 (Nestle 우유의 창업자) 구입하였고 75년동안 그들의 소유였다. 이 시기의 대부분 이 바이올린 사실상 전혀 연주되지 않았던 것처럼 보인다. 1924년에서 1966년까지 악기는 런던의 창고에 있었다. 스트라디바리의 후기 악기들의 전형으로, 뒷판, 옆판과 스크롤의 메이플은 평범한 무늬이고 바니쉬는 "황금기"의 악기들보다는 더 갈색이다.

1737 Giuseppe Guarneri 'del Gesu' "King Joseph"
이 바이올린은 델 제수의 중후반기의 가장 우수한 작품으로 장인으로서의 솜씨가 보여주는 위대한 아름다움이 놀라운 음색과 결합되어 있다. 뒷판은 원피스 슬랩컷의 메이플인데 델 제수의 작품으로는 약간 특이한 모습이다. 미국으로 건너온 첫번째 델 제수 바이올린으로 알려져 있는데, 별명처럼 그의 가장 위대한 걸작으로 종종 평가된다. 흥미롭게도, 이 바이올린은 이 전에 "킹" 조셉 과르네리로 알려져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지금은 "킹 조셉" 과르네리로 알려져 있다. 아마도 역시 "킹"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1735년 델 제수와의 혼동을 피하기 위한 목적인 것 같다.

1742 Giuseppe Guarneri 'del Gesu'"Lord Wilton"
이 유명한 바이올린은 예후디 메뉴인의 마지막 연주악기였다. 그는 1940년대부터 이 악기를 연주해왔고 1978년에 구입했다. 악기의 상태는 완벽하고 수 세대동안 가장 음색이 뛰어난 델 제수로 인식되고 있다. 이 악기는 힐가문이 특히 좋아했던 악기였는데, 그들은 과르네리가문의 제작자들에 대한 1931년의 책에서 이 악기를 특별히 언급했었다.

ca. 1560 Gasparo Bertolotti (Gasparo da Salo)
안드레아 아마티가 크레모나에서 근대 바이올린을 발전시켰다면, 가스파로 다 살로 (1540-1609) - 가스파로 베르톨로티로 보통 알려져 있는 - 는 브레시아에서 울퉁불퉁하기는 하지만 음색은 뛰어난 악기들을 제작하고 있었다. 가스파로 다 살로가 만든 비올라들은 깊고 멋진 울림의 음색으로 추앙받고 있지만 큰 사이즈 때문에 비올리스트들이 긴 팔과 손가락이 없이는 연주하기가 힘들다. 슬프게도, 많은 그의 악기들은 작은 연주자들에 좀 더 "실용적"이 되도록 수년동안 크기가 줄여져 왔다 (이것은 스트라디바리의 초기 첼로의 운명과도 같은 것인데, 그 첼로들은 현재의 기준으로는 비정상적으로 크게 만들어졌었다). 이 악기는 원래의 크기를 유지하고 있다. 비올라의 바디 길이는 결코 표준화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 악기의 바디길이인 17과 5/8인치는 일반적으로 '풀사이즈' 비올라라고 여겨지는 길이보다는 1인치 정도 더 긴 것이다.

1676 Andrea Guarneri "Count Vitale, ex Landau"
현존하는 가장 사랑받는 비올라로 이 제작자가 만든 것으로 알려진 5대의 비올라 중 하나이다. 200년동안 아마추어와 수집가들의 손에 있었으며 거의 완벽한 보존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악기는 유명한 제작자인 카를로 만테가자에 의하여 모던악기로 바뀌어지기는 했지만, 원래의 넥을 가지고 있는 크레모나 악기로서는 드믄 예이다. 이 악기의 기록은 코지오 디 살라부에 백작의 1816년 4월1일의 일기인데, 그때 밀라노의 비탈레 백작에게 소유권이 넘겨졌고 그의 이니셜 (S.V)는 뒷판의 버튼에 새겨졌다. 이어서 윌리엄 커티스 경 (1790년에서 1826년까지 런던시 의회의 멤버였으며 1795년에는 Lord Mayor)에게로 소유권이 넘겨졌고 조지 4세의 실내악 음악 공연에서 종종 사용되었다고 보고되고 있다.

1793 Giuseppe Guadagnini "Rolla"
쥬제페 과다니니 (1753-1805)는 뛰어난 제작자인 J.B.과다니니의 아들이다. 그의 아버지처럼, 그도 생전에 많은 도시들을 다니며 일했는데, 이 비올라는 파르마에서 제작되었다. 이 악기는 상대적으로 작은 사이즈로 만들어졌고 바디의 길이는 15와 5/8인치에 불과하다.

현악기에 맞는 활을 짝 맞추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어떤 활이 바이올린이나 비올라에 만들어 내는 차이는 현저한 것이어서 쉽게 설명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훌륭한 활은 밝은 악기에 깊이를 더해줄 수도 있고 부드러운 악기에 밝은 톤을 더해줄 수도 있으며, 더 선명하고 강하게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위대한 바이올린에 위대한 활을 매치시키는 것만으로 좋은 결과를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다. 잘못된 결합은 악기의 음색을 억누르거나 바람직한 수준을 넘어서서 음색의 특정 측면만을 과장해 버릴 수도 있다.

이 녹음에 사용된 활은 두 명의 가장 걸출한 활 제작자인 프랑소와 자비에르 투르트 (1747-1835)와 도미니크 페카트 (1810-1874)에 의해 제작된 것들이다. 데이비드 풀턴은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활 콜렉션도 아지고 있는데, 나는 서로 다른 활들을 서로 다른 악기에 비교해보면서 완벽한 매치를 찾기 위하여 많은 시간을 보냈다. 9대의 바이올린들에서, 나는 4대의 서로 다른 활을 사용했다. 두 대의 델 제수 바이올린에는 투르트활, "Baron Knoop", "Pucelle" 그리고 "Duke of Alba" 스트라디바리에는 또 다른 투르트, 그리고 "Sassoon" 스트라디바리에는 또다른, 초기의 투르트를 썼고, "Marsik"과 "Baron d'Assignies"스트라디바리와 피에트로 과르네리에는 페캇을 사용했다. 나는 각각의 비올라에 모두 다른 활을 사용했는데, 과르네리와 가스파로 다 살로에는 투르트들을, 과다니니에는 페캇을 사용했다.

이 프로젝트를 위한 선곡은 특별한 과제였다. 이 녹음이 음악적인 장점을 가질 수 있게 하는 것과 많은 악기들이 사용된다는 점에 관계없이 흥미있고 즐거운 프로그램이 되도록 하는 것이 나에게는 중요했다. 나는 또한 개별 바이올린과 비올라의 특별한 장점을 잘 보여주는 곡들을 고르고 싶었다. 데이비드 풀턴과의 우정 덕분에 나는 이 녹음을 하기 전 수 년동안 이들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꽤 잘 알 수 있었다. 이 녹음의 모든 선곡은 특정한 악기를 염두에 두고 고른 것이며 문제의 악기의 음색을 잘 보여 줄 수 있게 하려는 생각에서 된 것이다.

브루흐의 스코틀랜드 환상곡의 일부와 베를리오즈의 이탈리이 기상곡의 일부는 내가 몇 년간 바이올린과 비올라들을 시연해보면서 연주했었던 곡들이다. 악기의 전 음역을 커버하면서 이 음악들은 특정한 악기의 음색의 가능성을 알아 볼 수 있는 빠른 길이 된다. 악기들 간의 서로다른 음색은 사실 매우 미묘하고 물론 연주자의 특질이 어느 바이올린이나 비올라가 만들어 내는 소리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나는 청중들은 이 엄청난 악기들 각각의 독특하고 개별적인 목소리를 들게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제임스 에네스

댓글 14개:

  1. 이렇게 번역까지 올려주시다니 좋은 참고가 되겠습니다.^^

    저도 가끔 인터뷰 같은 것을 번역해 올릴까 하다가 이해는 되는데 우리말로 옮기기 어려운 경우가 너무 많고, 타이핑 노가다가 끔찍해서 포기하곤 하는데 너무 수고하셨습니다.

    이참에 DVD 자막작업까지 해주시면 좋겠습니다...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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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만술[ME] - 2009/01/15 09:49
    쭉 읽어가면서 타이핑하고 proof-reading을 안해서 아마 비문에 오탈자 투성이일 겁니다. ㅎㅎㅎ 제가 꼼꼼하질 못해서..;; 그런데 DVD 자막작업은 제 능력을 벗어나는 일일 것 같은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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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이 글을 읽고 사러 동네 레코드가게에 달려갔더니, 없었다는 슬픈 전설이....



    슈삐님 덕분에 자막 안읽어도 되는 행운이...러키...



    조만간 위에 언급된 악기들에 관한 내용을 블로그에 올려보죠...사진과 함께 ㅡ_-;; 훗... 델 제수에 관한 책만 몇권인지...ㅡㅡa... 지른 바이올린 책값만 웬만한 직장인 몇달치 월급이... ㅡ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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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ViolinHolic - 2009/01/17 23:21
    저 번역은 DVD에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고 CD속지에 나오는 거에요^^ 제가 산 것은 자막은 없었는데, 자막이 있다면 읽으셔야 하고 아니면 잉글리쉬 리스닝 쩜 하셔야 할겁니다.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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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좀전에 사가지고 오는데, 속지에 써있는 내용이더군요 ^^;; 제가 따로 번역은 안하고 슈삐님 자료를 불펌하겠... ㅡ_-;; 악기 사진들도 올라와 있는데 조그맣게 올라와있네요. 조만간 집에 있는 과르네리 델 제수 책에서 찾아다가 스캔해서 좀 올려야겠네요.. 물론 비공개로..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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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Violinholic - 2009/01/18 20:19
    금방 사셨네요^^ 악기 사진은 DVD에 영상이 자세히 나와 있어서 그런지 큰 사진은 없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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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무엇보다 제임스의 연주가 압권이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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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슈타이너 - 2009/01/19 14:21
    글쵸? 그다지 비디오에 걸맞는 외모라고 볼 수는 없는데도 너무나 멋져 보이는 것이... 역시 연주자는 연주로 승부가 나는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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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반가운 이름(James Ehnes)에 들어와 봤습니다. 작년에 그의 콘서트에 간 적이 있었는데 정말 놀라왔죠. 아직 한국에는 발매가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나중에라도 꼭 사야겠습니다. 좋은 정보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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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이오공감 - 2009/01/25 03:32
    한국에서 라이센스판으로 나올지는 잘모르겠구요. 수입음반은 풍월당에 들어와 있다는 것 같더군요. 다른 음반쇼핑몰도 찾아 보시면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전 성질이 급해서 해외에서 걍 사버렸습니다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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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james ehnes 정말 관심있는 연주자입니다. 예전에 보스턴에서 BSO와 연주를 했었는데 반응이 정말 좋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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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손가락쟁이 - 2009/01/30 14:34
    한국에도 한번 들러 줬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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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지나가다가 우연히 발견하고,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

    예술분야의 전문적인 자료를 번역체로 만나지 못하는 시점에서 손쉽게 인터넷검색으로 이런 글을 접하니 슈삐님께 너무 감사해서 리플 한 자 남깁니다.^^;;;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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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듀스 - 2009/04/16 19:22
    글 남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종종 놀러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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