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3월 30일 일요일

[책] 두 종의 바흐 전기

작년에 구입한 두 종의 바흐 전기의 일독을 마쳤다. 첫번째 바흐 전기인 포르켈의 바흐의 생애와 예술 그리고 작품(1802년)이라는 작은 책과, 바흐 전문가로 작년 바흐페스티벌에 한국을 방문했었던 크리스토퍼 볼프의 책 (2000년)이다.

특히 볼프의 책은 앞으로도 두고 두고 읽어 볼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원제는 Johann Sebastian Bach, The Learned Musician - 바흐의 음악과 삶에 딱 어울리는 명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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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책 소개는 번역서를 발간한 한양대학교 출판부에서 가져왔다.

바흐의 생애와 예술 그리고 작품[음악연구소 파르나스 총서 01]
저 자: J.N.Forkel 저 강해근 역
쪽 수: 236면
크 기: 신국판변형(양장)
발 행 일: 2005.05.18
가 격: 12000원



이 책은 바로크 음악의 거장이며 흔히 ‘음악의 아버지’라 불리는 바흐에 관한 첫 전기이자 음악사의 첫 번째 평전인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의 생애와 예술, 그리고 작품”을 서울 국제 바흐 페스티발을 기획한 강해근 교수가 번역한 것이다. 1802년에 독일에서 출간 당시 저자인 포르켈이 바흐의 두 아들로부터 직접 들은 생생한 정보를 바탕으로 서술했기 때문에 바흐에 관한 1차 자료로서 중요한 의미가 있으며 여러 나라에서 오랫동안 재번역되어 널리 읽히고 있다. 제2의 르네상스라고 불릴 만큼 음악계의 거장 바흐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고 있는 이때에 음악가의 전기가 별로 없는 우리에게 좋은 읽을거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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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세바스찬 바흐 (1) [음악연구소 파르나스 총서 02]

저 자: 크리스토프 볼프 저/변혜련 역
쪽 수: 454면
크 기: 신국판
발 행 일: 2007.10.24
가 격: 20,000원


요한 세바스찬 바흐 (2) [음악연구소 파르나스 총서 02]

저 자: 크리스토프 볼프 저/이경분 역
쪽 수: 480면
크 기: 신국판
발 행 일: 2007.10.24
가 격: 20,000원


이 책은 현재 바흐 연구의 최고권위자로 꼽히는 미국 하버드대 크리스토프 볼프 교수의 저서를 2007년 최신 발굴 정보까지 반영하여 번역한 것이다. 바흐가 음악가로서 이룩한 업적이 학자로서의 끊임없는 학문적 노력과 탐구의 산물임을 조명하고 그 천재성을 좀더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지적 결과물로 이해하고 있다. 특히 동시대의 여러 자연과학과 인문과학(즉 철학, 신학, 문학, 논리학, 수사학, 물리학, 음향학 등등)과 음악의 상호연관성을 강조하고 바흐가 수행했던 직무의 정치적, 종교적, 기능적 상황이 작품에 끼친 영향 등에 많은 지면을 할애함으로써 자칫 감상과 낭만적 정서에 쏠리기 쉬운 음악이해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음악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여러 인문과학 분야의 학생들과 학자들은 물론 음악을 사랑하고 탐구하는 일반 애호가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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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29일 토요일

영어에 얽힌 기억들

지금도 영어를 잘 못하지만, 유학가기 전엔 영어를 더 못했다. 읽고 쓰는 건 그 때나 지금이나 비슷한데, 듣고 말하기는 지금 보다 확실히 못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지금도 못한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에는 지금과 달라서 원어민교사는 커녕 영어 테입도 거의 들은 적이 없다. 중학교 때인가 리스닝 테스트를 했던 것 같기는 한데, 그 때 중학영어 수준이라는 것이 아이 엠 어 보이, 유알 어 걸 하는 수준인데다가 엄청나게 천천히 발음해주는 쉬운 문제들이었던 것 같다. 그나마도 고등학교때는 다시 문법과 독해 위주로 돌아갔던 것 같고... 게다가 나는 중고등학교 내내 영어라는 과목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었다. 상대적으로 수학 같은 과목을 좋아했었기 때문인 것도 같지만, 같은 외국어였던 불어는 좋아했었던 걸 보면 그것도 아닌 것 같고.... (그때부터 반미감정이...??) 어쨌거나 영어는 그다지 흥미있는 과목은 아니었었다.

대학와서는 교양과목으로 영어를 한과목 정도 들어 본 것이 전부. 그것도 한국인 영문과 교수의 영어소설 독해강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한국어로 수업했었다..; 영어학원도 다녀 본 적이 없다. (중고등학교 때는 물론 학원 비슷한 것도 다니지 않았다. 과외나 학원교습이 허용된 것이 대학 2학년 때부터였으니까.) 그러다가 대학원 입학 시험을 보느라 Vocabulary 22000이니 33000이니 하는 책들을 사서 공부했었다. 역시 듣기 읽기와는 거리가 있었던 영어공부였다.

회계법인에서 국제조세쪽으로 부서를 이동하면서 영어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그러고도 한참 후. 회사 근처 영어회화 학원엘 한 달 정도 등록했었는데 재미도 없고 바보취급 당하는 것도 같고... 귀찮고... 결국 계속 다니지는 못했었다. 회사에서 토익점수를 내라고 해서 토익 시험은 봤는데 요즘 학생들이나 직장인들처럼 만점에 가까운 점수가 나온 것은 아니었지만 당시로서는 그다지 나쁜 점수도 아니었길래 한 번 보고 말았다. 그걸로 어디 갈 것도 아닌데 점수 잘 받아 뭐하랴는 생각과 귀차니즘 때문에 더이상 점수를 올려 놓을 생각은 들지 않았었다.

회사에서 업무 결과물들의 상당 부분을 영어로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읽고 쓰기는 계속 연습이 되었는데, 외국사람들과 미팅을 하거나 전화를 할 때에는 아무래도 소극적이 되었었다. 싱가포르나 홍콩에 있는 사람들과 통화를 하게 되면 어찌 짜증이 나던지... 언젠가는, 전화보다는 이메일로 연락을 하자고 이야기 했더니, 전화가 쉽고 간단한데 왜 이메일을 써야 하냐는 싱가폴 아줌마 때문에 열받았던 적도....;;;;

그 후에 회사를 옮기고 (합병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옮겨간 것이지만) 그 회사에서 몇 주간 영어 합숙교육을 보내준 적도 있었고, 팀원들과 함께 회사 바로 옆의 영어학원을 잠시 다니기도 했다. 불행히도 미군부대 출신의 멍청한 영어강사와 싸워 버려서 역시 한 달 정도 밖에 못 다니고 말았지만..;;

물론 그 흔하디 흔한 어학연수 혹은 배낭여행도 다녀 온 적이 없다. 그리고는 GMAT과 토플을 공부하기 시작했는데 그럭저럭 점수가 나왔고, 인터뷰도 교포와 했는데 생각보다 무난하게 통과.. 에세이는 완전히 내맘대로 썼으나 어쨌건 통과... 하여 유학을 가게 되었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사람을 상당히 주눅들게 만드는 면이 있었다. 그 동안 한국에서 귀차니즘과 대충주의로 그럭저럭 살아 왔었는데, 이게 통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마구마구 들기 시작했었다. 막상 학기가 시작되고 나니.... 으... 정말 장난이 아니더라. 배우는 내용이야 학부 때 아무리 공부를 열심히 안했어도, 원래 전공이 경영학이라 그다지 어렵지는 않은 것들인데... 문제는 영어. 수업시간에 알아 듣기도 힘들고... 교수 말은 그래도 나은데, 학생들 참여가 많은 수업들이 대부분이라서 학생들 발음은 더 힘들었다. 특히 양쪽 해안가 출신들 (동부나 서부의 도시 지역) 발음은 그런대로 괜찮았는데 (물론 그 당시엔 그것도 애들 말이 하도 빨라서 알아 듣기 힘든 경우가 많았지만), 대륙 한가운데, 그것도 남부 어드메 출신들은 발음이 더 잘 안들렸었고... 그래도 미국애들은 나은데, 프랑스, 러시아,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남미 (포르투갈어를 쓰는 브라질은 좀 낫더라), 인도... 이런 동네에서 온 애들은 도무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발음도 낯선데다가 말들은 어찌들 빨리 하는지.... 머리 속에서 해석하면서 따라가기가 정말 힘들었다.

그래도 같은 동양계라서 중국과 일본 출신 학생들과는 훨씬 나았었다. 그게 꼭 영어 발음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주로 백인들 밖에 없는 곳에서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을 보니 마음이 안정되었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그러고 보니, 네이티브 발음을 가졌으나 동양계인 미국아이들 (말하자면 교포같은..)과도 훨씬 편안했던 것도 같다.

학교에서 만들어 준 스터디 그룹에는 불행히도(?) 미국인 3명, 외국인 2명이었는데... 그 외국인 중 하나가 토론토 출신의 캐나다애였다. (도대체 뭐가 외국인이라는 건지...;;) 나머지 한 명은 물론 나. 정말 적응안되는 분위기,,, 같이 토론을 해야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데 난 도무지 끼어들기가 어려웠었다. 그래서 토론하는 과목은 대충하고... 문제풀이 숙제 같은 것을 먼저 풀어서 동료들에게 나눠 주는 식으로 때우면서 근근히 1년을 보낼 수 밖에 없었다. 나중에 얘기해 보니, 걔들은 (토플시험은 물론 볼 필요가 없어서 안봤고..) GMAT같은 경우에 verbal 파트를 거의 만점씩 맞았다고 하더라... 치.. 나도 국어로 시험봤으면 만점 받는다 뭐... (정말?)

그 이외에도 이런 저런 모임에서 영어 고문은 쭉 계속되었다. 처음에는 이것저것 해보려고 하다가 좌절.. 좌절.. 하면서 결국은 '미국에서 계속 살 생각도 없는데 대충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2학년때는 훨씬 편안하게 지냈다. 과목도 토론 수업은 많이 줄었고 (세부전공이 finance라서...) 문제푸는 거야 어찌어찌 별 어려움 없이 했고... 그러느라 미국생활에는 익숙해졌지만 영어하고는 그다지 더 친해지지는 못한 채로 유학생활이 마무리가 되었다. (그래도 이전 보다야 조금 나아졌겠지만...)

졸업하고는 3달은 싱가포르, 1달은 시드니에서 일했는데, 그 4달 동안 사무실에 한국인은 나 밖에 없었다. 사실 미국에선 한국친구들이 워낙 많았고, 원래 알던 후배도 있었고... 사실 한국사람들이야 한 두 명 건너면 다 언니 오빠 동생이 아니던가.... 하여 사실 이런 느낌은 없었는데... 그야말로 서바이벌 게임이 시작되었다. 대충 지금까지 이야기를 읽으신 분들은 눈치채셨겠지만... 나는 워낙에 그다지 적극적인 성격이 아니고 오히려 꽤 소심한 터라 모르는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 이야기하는 일도 거의 없다. 보통은 대충 모른척 지내다가 열받으면 말 많이 하는 성격....;; 그런데 정말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 외국에서... 심지어 한국사람도 하나도 없는 곳에서....

그런데, 바로 이 경험이 2년간의 유학생활보다 훨씬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그 곳은 회사의 아시아 지역본부라서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또, 3달 동안 중국, 홍콩, 인도, 인도네시아, 태국을 돌아 다니면서 현지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같은 아시아인데도 나라마다 이렇게 문화가 다를 수 있다는 것도 처음 느꼈고, 영어 발음도, 쓰는 영어도 많이들 다르다는 것도 느꼈다. 아시아 북쪽은 미국영어의 영향이 강한데, 남쪽은 영국영어의 영향이 훨씬 강했다. 회사에서도 백인 중에도 미국사람들은 별로 없고 영국이나 호주, 뉴질랜드 사람들이 주로였었다. (미국회사였는데도 말이다...)

언젠가 내가 싱가폴 친구에게 '이 곳 영어는 미국과는 많이 다른 것 같아'라고 이야기 했더니, '미국사람들은 뭐든지 다 이상하게 말한다니까...'라고 대꾸하더라는...

시드니에서는 대부분이 호주인들이었다. (피지 근처의 다른 섬나라인 통가에서 온 푸근한 아저씨도 있고 간혹 영국 등 유럽 출신들도 있기는 했지만) 그런데, 이 사람들이 내가 영어로 이야기하면 "너 미국에서 왔니?"라고 묻곤 했다. "아니 한국에서 왔는데."라고 답하면, "네 발음에 미국액센트가 있어"라면서 웃곤 했다. 미국 액센트가 호주사람들에게는 재미있게 들리는 모양이다. 그러면 나는 "한국에선 미국영어를 가르치기 때문일거야"라고 이야기해주곤 했었다. 그래도 발음 때문인지, 아니면 나를 뽑은 곳이 미국 본사였기 때문인지 (본사에서 뽑아서 해외로 연수를 보낸 후에 한국으로 보내는 프로그램이었다) 사람들은 자주 "미국에서 오셨어요?"라고 물었다.

평생 영어와 결코 친하지도 않고 좋아하지도 않았던 나에게 그 질문은 정말 신기하게 들렸었다. 내 평생에 이런 말을 들을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회계법인에 있을 때 보다는 훨씬 강도 높은 영어고문이 이어졌다. (그래도 영어공부는 여전히 안해주는 훌륭한 귀차니즘 정신!) 미국계 다국적기업에서 일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그 회사에서 지금 회사로 옮긴 후에도 역시 그렇다. 두 회사의 차이점이 있다면, 전에 회사는 미국본사보다 아시아 지역본부와 일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서 싱글리쉬, 칭글리쉬, 인디안 잉글리쉬 또는 호주영어에 익숙해졌어야 하는 반면, 지금 회사는 대부분의 일이 미국과 직접 이야기해야 하는 것이라 (일본에 있는 아시아 지역본부에도 미국사람들만 많다는) 또다시 미국영어를 들어야 하고, 이제는 아무도 내 발음이 미국발음이라고 말하면서 웃지는 않는다는 점일 것이다.

그나저나... 영어는 여전히 그다지 즐겁지 않다. 이제 익숙해질만도 한데, 머리가 멍한 날이나 몸상태가 안좋은 날은 단어들이 문장이 안되고 조각조각나기 시작한다. 내가 아는 어느 분이 - 나와 학부, 대학원, MBA까지 같은 곳을 나오고 같은 분야에서 (나는 갑, 그분은 을로;;) 일하시는 약 15년 정도 선배 - 언젠가 월요일 아침이라 영어가 잘 안된다고 한국어로 이야기 하겠다고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 말이 맞다. 하긴 컨디션 좋은 날도 편안하진 않은데다가 난 주로 컨디션이 안좋지만 말이다...;;; 영어는 나에게 세컨 랭귀지가 아니라 단지 '외국어'일 뿐이라서 여전히 나의 뇌 한쪽에서는 번역기가 돌아가고 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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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린 친구되기에 어느 분이 영어에 얽힌 에피소드들을 올려서 한동안 나의 영어편력을 생각해봤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어쩌다가 영어를 접해야 하는 경험이 많아져 버렸던.... 이야기들.

2008년 3월 28일 금요일

[공연] 프라이부르크 바로크 오케스트라 (캐럴린 샘슨 협연)

월요일부터 심해지기 시작한 감기몸살에 회사 탕비실에 있는 종합감기약으로 대충 때우고 있었더니 영 차도가 없었다. 재채기에 콧물까지 나서 연주회 동안 괜찮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놓치고 싶지 않은 공연이라 퇴근 후 예당으로 향했다.

차가 그다지 밀리지 않아서 여유있게 도착하고 표를 찾고 돌아서는데 아는 얼굴을 만났다. 고음악연주회에서 만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친구인데... 작년부터 첼로를 배우고 있는 친구가 첼로 동호회 사람들과 같이 온 것이었다. 모 악기사 겸 공방에서 초대권을 얻어서 왔다는데... 찾고 보니 무려 VIP..... 공연 소식을 듣고 손꼽아 기다리다가 미리미리 할인받아서 겨우 A석을 구입했는데, 공연이 있는 줄도 모르다가 지난 주에 우.연.히 악기사에 들렀다가 얻은 초대권이 VIP석이라니.. 갑자기 엄청 허탈해지는 기분이었다.

프로그램

G.Ph. Telemann Ouverture F-Dur TWV 55: F12
G.Fr. Handel 2 Arias from  "Alcina" HWV 34:
     "Ma quando tornerai"
     "Ah mio cor"
G.Ph. Telemann Concerto in D major TWV 54: D1

*** INTERVAL ***

W.Fr. Bach Sinfonia in D minor Falck 65
J.S. Bach Concerto in D minor BWV 1043 for 2 violins, Str and Basso Continuo
G.Fr. Handel 2 Arias from Giulio Cesare
    "Piangero la sorte mia"
    "Da tempeste il legno infranto"
J.D. Heinichen Concerto con corni da caccia in F major


공연 시작되기 전까지 친구와 수다를 떨다가 (주로 공짜 티켓을 구하고도 알려 주지 않은 것에 대한 불평이었지만..) 입장했다. 텔레만의 서곡과 아리아가 시작되었다. 경쾌하면서도 우아한 느낌의 곡. 연주회 내내 지속되었던 맑고, 가볍고 투명한 느낌이 시작되었다. 연주자들은 음악에 맞추어 넘실거리고 있었고 고트프리트 폰 데어 골츠는 바이올린을 들고 그 경쾌한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었다. 전에 핀커스 주커만이 바이올린을 들고 시향을 지휘하는 모습을 본적이 있는데, 그때는 맡은 역할이 "지휘"였기 때문인지 그다지 잘 어울려 보이지 않았는데, 골츠는 딱히 "지휘"가 아니어서 인지 상당히 즐거워 보였다.

사실 자리는 지난 번 요한수난곡을 들었던 때와 비슷한 위치였는데, 음량은 상대적으로 작았다. 물론 그때는 성악이 주로였기 때문에 더 크게 느껴졌을 수도 있고, 또 이번에는 감기때문에 귀가 잘 안들렸을(?) 수도 있지만 인터미션 후에 '메뚜기'를 뛰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어 등장한 캐럴린 샘슨. 헨델의 '알치나' 중 두 곡의 아리아를 불러 주었다. 역시 기대했던 바대로 청아한 목소리로 감동적인 연주를 들려 주었다. 특히 "아, 나의 마음이여"에서는 가슴이 떨릴 만큼 감동적이었다. 류트와 어우러지는 소프라노... 무척 아름다왔다.

두 명의 트라베르소가 등장하고, 텔레만의 협주곡이 이어졌다. 바이올린, 첼로, 두 대의 트라베르소가 독주악기들로 앞에서 연주. 서로 주고 받는 독주악기들의 솔로 패시지들도 좋았고, 4중주로 울려 퍼지는 가보트도 좋았다. 정말 "드레스덴풍"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텔레만풍"이라고 해야 하나.... 어쨌건... 텔레만의 드레스덴 시절 궁정으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사실 골츠의 바이올린에서는 홀로웨이의 연주회에서 생겨났던 고음의 삑사리가 종종 들려 나왔는데, 홀로웨이 연주회때 봤던지라...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듣는 나도 좀 안정이 되었고, 골츠나 다른 연주자들도 흐름을 놓치지는 않으려 노력하고 있는 듯 했다. 트라베르소의 음정이 조금 맞지 않는 부분도 있었지만... 동료 연주자들이 같이 있다는 것이 확실히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고 보면 홀로웨이는 혼자서 무대에서 정말 고생스러웠을 듯 하다.
(이 곡의 마지막에는 재채기를 참느라 사실 정신이 좀 없었다. 콧물도 나고...ㅡㅜ)

 


(출처: 조선일보)

인터미션에 VIP석 주위에 빈자리가 많았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그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C블럭, D블럭 14열인데 다른 열보다 앞 쪽 공간이 더 넓었다. VIP석이라서 그런가... 콘서트홀의 VIP석에 앉아 본 기억이 없어서...;

후반부 첫 곡은 요한 세바스찬이 끔찍히 아꼈다는 큰아들의 곡. 단조이기 때문인지 텔레만의 곡들 보다 호흡이 길게 느껴졌다. 이어지는 곡은 아버지 바흐의 BWV 1043. 골츠와 세컨 바이올린의 카트린 트뤼거가 나왔다. 바로크 바이올린 위에서 움직이는 가벼운 뾰족활들의 움직임을 보고 있으니 황홀하기 그지 없다. 예전의 타펠무지크의 연주보다는 정통적이라는 느낌. 독일 연주단체라서 그런 느낌이 들었을까? 심지어 2악장에서도 비브라토를 거의 쓰지 않아 맑고 투명한 느낌이 계속 되었다. (2악장은 아름답지만 간혹 "느끼"할수도 있는데 말이다.) 두 바이올린 독주자의 악기에서 가끔 고음의 잡음이 들려왔지만 음의 흐름이 무너지지는 않고 있었다.

다시 캐럴린 샘슨이 나오고 헨델의 "줄리오 체사레" 중의 두 곡의 아리아가 울려 퍼졌다. 소프라노와 하프시코드의 레시타티보 후에 이어지는 아리아는 류트의 리드로 스트링 반주. 클레오파트라의 슬픔이 느껴지는 아름다운 절창. 두번째 곡은 밝은 곡이어서 큰 박수가 이어졌다. 샘슨은 목소리만 훌륭한 것이 아니라 기교도 나무랄 데가 없는 소프라노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 주었다. 잠시 그녀의 뱃속에 있는 아가는 정말 행복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중간에 앵콜을 하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는데, 샘슨은 다시 나와 리날도 중의 울게하소서를 불러 주었다.

마지막 곡은 텔레만, 바흐와 비슷한 시기를 살았던 하이니헨의 곡. 코르노 다카치아 협주곡이라서 다시 호른 주자들이 나왔다. 자세히는 보지 못했지만, 밸브가 없는 악기로 어떻게 그렇게 연주하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연주자들은 다시 넘실거리며 예당 콘서트홀의 무대를 드레스덴의 궁정으로 만들었다. 알라브레베에서의 피치카토 소리는 또 어찌나 맑던지... 전에 DVD에서 본 것처럼 쾨텐 궁정에서 브란덴부르크협주곡을 연주하듯 드레스덴 궁정에서 텔레만과 하이니헨을 듣는다면 어떤 기분일지 궁금해졌다..

시종일관 경쾌하고 투명한 느낌의 멋진 연주가 끝나고 환호하는 객석을 위해 그들이 준비한 곡은 J.S.바흐의 관현악모음곡 중의 Air. 현들의 연주하는 아름다운 선율. 그런데, 바이올린은 곡의 첫 시작의 온음표를 올림활로 하고 활의 아랫부분에서 짧은 16분음표를 연주했다. 밑활에서 저토록 가볍게 연주하다니... 바이올리니스트들의 가벼운 보잉에 다시 한번 감동... (곡 후반부는 기침 참느라 거의 집중을 못했다. 아.. 정말 괴로운 감기)

(덧글 1) 수요일이 연주회였는데, 목요일과 금요일 내내 회사 일로도 힘들고 감기 때문에 몸도 힘들고, 병원 잠깐 다녀올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오케스트라 연습도 물론 못 갔고... 고양에서 이어졌던 다음날 공연에는 슈클에서 무료초대권을 나눠 주었는데, 정말 시간과 마음의 여유만 있었다면 오케스트라를 땡땡이 치고 가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둘 다 못갔지만..)

(덧글 2) 홀로웨이의 통영 공연은 대역전극이라고 할만큼 좋았다고 한다. 정말 습기가 문제였던가. 아니면 일단 최악의 상황을 경험해서 대비가 되었던 걸까. 통영 공연을 본 사람들이 부럽기 그지없다. (프라이부르크의 연주를 보면서 류트와 하프시코드, 베이스 그리고 첼로까지 저음부 악기가 받쳐 주는 든든함이 고음의 삑사리와 불안정함을 상쇄시키고 음악이 제 흐름을 되찾아 가는 데에 정말 중요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덧글 3) 스트레스 절정의 한 주였다. 주말에 좀 쉬고 나면 다음 주는 괜찮아 졌으면...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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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24일 월요일

[공연] 존 홀로웨이 바로크 바이올린 리사이틀 2008년 3월 21일

금요일 저녁. 회사에서 차로 5분정도 밖에 안걸리는 곳이라서 여유있게 도착할 수 있었다. 커피 한 잔을 받아들고 나니, '공연 전 10분 토크'를 할 것이라고 했다. 어제 홀로웨이를 만나 2시간을 인터뷰 했다는 노승림씨의 이야기를 잠시 듣고 홀 안으로 들어갔다.

John Holloway


가벼운 복장으로 악기를 들고 홀로웨이가 무대로 나왔다. 작은 쿠션형 어깨받침이 달려 있는 바로크 바이올린에 악보가 그려져 있는 손수건을 받치고는 약간의 조율 후 바로 연주가 시작되었다.

프로그램:

텔레만_판타지아 B flat 장조
바흐_소나타 1번 G단조
비버_묵주소나타 중 파사칼리아  
텔레만_판타지아 D장조
바흐_파르티타 2번 D단조

뭔가 불안하게 출발한 듯한 그의 텔레만 판타지아 연주였다. 가끔씩 들려오는 e현에서의 삑사리 때문에 음악에 몰입하기가 힘들어 졌다. 음색도, 저음부는 조금 풍부하게 느껴졌지만, 대체로 현과 악기의 울림은 거의 전해지지 못하곤 했다. 가냘픈 바이올린, 그것도 원래 음량이 작은 바로크 바이올린으로 이 홀을 채우는 것은 무리였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곡이 끝나고 홀로웨이가 무대 뒤로 사라졌다. 이번에는 좀 상황이 나아졌으면 하고 기대하고 있는데 연주자가 다시 무대로 나왔다. 그는 두꺼운 종이에 바흐의 오리지널 악보를 붙여 놓은 악보책을 열고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 1번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전히 불안한 연주가 이어졌다. 박자나 연주 자체에서 여유로움을 찾아 보기가 어려웠다. 홀로웨이가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프레스토 악장에서 그의 연주는 가볍게 들리지 못했다. 송진이 덜 칠하여지고 힘이 너무 들어간 보잉에서 나는 듯한 음색이 들려왔었다.

그리고 비버의 파사칼리아. 음반에서 처럼 안정된 소리는 아니었지만 (이미 나도 같이 불안해져 있어서 어떤 연주도 "안정된" 느낌을 받기는 어려웠다), 텔레만이나 바흐 1번때 보다 훨씬 잘 음악에 몰입할 수 있었다. 저음과 고음 성부가 확연히 음색이 대조되었고, 바로크 바이올린의 아름다움을 잘 느낄 수 있는 연주.

인터미션 후의 텔레만 판타지아 10번은 리듬감있는 밝고 아름다운 춤곡 풍의 곡이었다. 악보를 꼭 구해서 연주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대 뒤로 나가지 않고 바로 진행된 바흐의 파르티타 2번. 전반부 보다는 조금 안정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지그까지는 .... 바흐가 태생적으로 단선율 악기인 바이올린으로 어떻게 여러 성부를 오가는 화성을 창조해 내고 있었는지를 감탄하게 만드는 연주가 이어졌다. 비록 완벽한 연주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리고나서 마지막의 챠코나. 음정이 엇나가거나 고음의 삑사리가 간혹 이어지는 부분이 있었지만... 곡 후반부가 시작될 때까지는 곡에 몰입할 수 있었다. 여린 거트현의 울림으로 들려오는 챠코나가 그 날 어찌 슬프게 들려던지... 나는 음악을 들으면서, 참혹하게 죽임을 당해 세상을 떠난 어린 영혼들을 생각하면서 한동안 슬픔에 젖어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갑자기 연주가 살짝 중단되었다. 1시간 반 여 동안 힘들게 연주하던 홀로웨이는 결국 한 부분을 놓치고 만 것이다. 본인도 놀라 약간의 신음소리를 내면서 곧 다시 연주가 이어졌는데, 사실 이런 경우는 연주회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일은 아니라 나도 흠칫 놀라고 말았다.

그렇게 본 연주가 마무리되었다. 그가 앵콜을 한다면 오늘의 연주가 지금까지의 컨디션 난조 때문일 것이고 앵콜을 하지 않는다면 악기에 문제가 있슴에 틀림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두 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했을지도 모르지만... 그는 'There is a lot more Bach... Largo from C major Sonata'라고 이야기 하면서 바흐의 오리지널 팩시밀리 악보를 한 장 넘겨서 앵콜을 해 주었다. 그것으로 더 이상의 앵콜은 없었다. 나는 평소처럼 싸인회는 패쓰... 집으로 향했다.

집에 오는 길에서도, 그날 밤에도, 그 다음 날에도 계속 왜 연주회가 엉망이 되었을까 궁금했다. 바로크 바이올린 음악을 듣기만 했지 실제로 연주해보거나 관리해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그것이 악기 탓인지.. 아니면 정말로 연주자의 컨디션이 안좋아서인지 알 수가 없었다. 홀이 넓어서 울림이 적은 것이야 각오했을 것이고... 더 넓은 예당 콘서트 홀에서도 - 비록 바이올린 독주는 아니더라도 - 고악기들이 무사히 잘 연주되곤 하는데 말이다. 요즘 계속 기분이 다운되었었는데, 연주회를 보고 나서도 그 분위기가 계속되고 있는 것 같아 (아니 좀 더 심화되는 것 같아) 영 편치가 않았다.

여기저기에서... 홀이 지나치게 건조하여 거트현이 제대로 된 음색을 내지 못했다는 이야기도 들려왔고... 홀로웨이가 상황에 맞추어 주법을 달리하다 보니 실수가 잦았었다는 이야기도 들려왔다... (그래서 지금은 "후기"를 쓸 만큼은 기분이 좀 나아지긴 했다..^^)

홀로웨이의 악기는 Ferdinando Gagliano의 1760년 악기이다. 그런데, 그에게는 세컨 악기가 있다. 1700년 경 바이올린의 카피로 1997년에 젊은 스위스 제작자인 Christian Sager가 만든 악기가 그것이다 (2005 interview at Sunday Baroque). 홀로웨이는 미국 여행 중이었던 이 인터뷰에서 해외여행에는 갈리아노를 들고 다니지 않고 자거의 악기를 들고 다닌다고 했는데, 그 날 호암아트홀에서 고생했던 악기가 갈리아노인지 자거의 악기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느 악기이건, 악기 자체 보다는 거트현이 더 말썽의 원인이 되었을 것 같기도 하고...

아쉬웠던 마음이 커서 쓰다보니 너무 실망이었던 것처럼 쓰긴 했지만... 사실 부분부분 좋았던 연주도 있었고... 텔레만도, 비버도 좋았었다. 두 시간 가까운 시간동안 무대에서 혼자서, 악조건과 싸우면서 연주해 주었을 홀로웨이.... 오늘 통영에서는 만족스러운 연주가 되기를 바란다.

2008년 3월 14일 금요일

심난한 나날들

원래 성격이 무심한 편이라, 내 주위와 내가 사는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가끔 시니컬해지기는 해도 내 일처럼 흥분하거나 걱정하는 성격은 아니다. 그런데, 내가 나이가 든 것인지 아니면 요즘 세상이 정말 흉흉하게 돌아가는 것인지 며칠 동안 정말 걱정이 되어 일이 잘 안될 정도로 심난하다.

요즘 나를 심난하게 만들었던 것들을 쭉 적어 보면....

1. 새정부의 교육정책들

영어공교육이니 몰입교육이니 영어로 수업을 진행하느니 하면서 정초부터 머리를 아프게 만들더니, 어제는 학원을 24시간 하게 허용하겠다는 말도 나왔다. 도무지 그 사람들은 지금 사교육 시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지 궁금하다. 자칭 타칭 전문가인 엄마들과 선생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정말 무서울 정도인데 말이다.

2. 심난해 보이는 경제지표들

유가가 100불을 넘더니 이제 110불을 넘어가고, 고철, 밀가루부터 시작된 원재료 가격도 가히 폭등이라고 부를만한 수준이다. 게다가 환율도 너무나 빠르게 그리고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경제를 살리겠다고 호언장담하여 당선된 새대통령이 꾸린 경제내각은 10년 전 경제환란을 가져왔던 바로 그 내각이고... 그들이 잘해 주길 바라지만 어린아이에게 아궁이 불을 맡긴 것처럼 불안하기 짝이 없다. 경제가 엉망이 되고 나면 사회는 결코 잘 돌아갈 수가 없는 법. 가뜩이나 높아지는 범죄율은 더 올라갈 것이고 비통하게 세상을 원망하며 살아 가는 사람들도 늘어 날 것이다. 이 정부가 해결할 의지라고는 조금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비정규직 문제며.... 캄캄한 터널이 끝이 안보이는 것 같은 느낌이다.

3. YTN 돌발영상과 그 후속조치에서 보이는 과거로의 역행 움직임

정말 개그콘서트가 따로 없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봤는데, 그 이후에 일어나는 일들은 더욱 가관이다. 기본 중의 기본을 모르는 사람들이 다시 돌아왔구나라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언론의 구실을 하지 못했던 다른 신문 방송도 한심하지만, 그렇게나마 사실을 전했던 기자들의 출입을 금지시키는 제재를 가한 것은 명백한 언론의 자유 침해이다. 80년대에 너무나 당연하게 너무나 자연스럽게 벌어졌었던 온갖 말도 안되는 일들이 또다시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들지 않을 수가 없다.

4. 남대문 화재로 드러난 실용주의의 만연
(이건 전에 쓴 글이 있으므로 생략... )

5. 연이은 아동 관련 범죄 뉴스들

언제부턴가 인터넷 뉴스를 보는 것도 끔찍하다. 매일 빠지지 않고 올라오는 뉴스는 아동 관련 성범죄, 아동 학대 뉴스들이다. 예전에도 이런 일들이 많았는데 보도가 많이 되지 않았던 것인지 아니면 세상이 이렇게 흉악해 진 것인지 모르겠다. 어제는 종일 뉴스 볼 시간도 없이 있다가 밤에 오케스트라 연습을 끝내고 집에 갔는데... 며칠 전의 토막시체가 성탄절에 실종되었던 아이였다는 뉴스를 보고 경악을 했다. 그걸 보고는 정말 걱정이 되어, 내가 아이들을 놔두고 이렇게 회사에 다녀도 좋은가 심각하게 생각해 볼 정도였다.

새엄마가 아이를 때려 죽였다는 둥 하는 뉴스도 있었고, 또 바로 전에 어린 소녀들이 포함된 일가족 살인 뉴스가 세상을 뒤흔들더니... 이번엔 더 강도 높은 충격이다. 이제 웬만한 일로는 놀라지도 않을 세상사람들을 한 번씩 크게 놀래키려고 작정들을 한 것인가....


좀 더 내 주변의 일들로 돌아와 보면....

6. 어떻게 아이들을 키워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

주변에서 보고 들리는 학부모들의 이야기와 아이들의 이야기는 정말 경악스러울 정도이다. 요즘 초등학교 고학년은 보통 12-1시에 잠자리에 들어야 할 정도로 할 것이 많다고 하는데... 나 어릴 적을 돌아 보면 도무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다. 우리 애가 공부하는 영어는 거의 내가 고등학교때 배웠던 수준인데,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엄마인 나도 참 이해하기 힘들다. 하지만 '독야청청' 입장을 견지했던 선배의 자식교육 실패 경험담을 들어 보면 심하게는 아니어도 이 트렌드에 어느 정도 발 맞추어 나가는 것이 안전한 선택인 것도 같고... 정말 한국사회에서 아이들 키우기 쉽지 않다.

7.  직장과 가족 그리고 미래

아이 교육과도 역시 연관되는 문제인데...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엄청나게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이 일을 계속 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에 관한 문제이다. 물론 이유는 매우 명확하게 "돈"이다. 하지만 경제적인 이유로 영원히 다시는 돌아 오지 않을 아이들의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내지 못하는 엄마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참 서글픈 일이다. 하지만, 엄청난 교육비와 생활비 등등을 생각해 보면 열심히 버는 것만이 길인 것도 같고... 무엇인가 돌파구가 있지 않을까...

돈을 버는 일이 회사에 다니는 길만 있는 것은 아닌데.... 단기간에 끝날 고민은 아니지만 이제 장기적으로 다시 곰곰히 고민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8. 사소해 보이지만.... 어제 오늘 스팸의 공격

어제 밤에 블로그에 달린 어색한 번역투의 스팸 덧글들..... 100개도 넘는 것 같은 댓글들을 다 지우고 아이피를 차단하려고 보니 다 달랐다. 아이피 차단으로 해결될 문제는 아닌 듯해서 대충 처리하고 잤다. 아까 점심을 먹고 블로그에 와봤더니.... 어제와 같은 방식으로 또 줄줄이 덧글이 달려 있다. 일단 덧글의 유형을 파악하고 자주 나오는 단어와 어구들을 필터링 처리해 놓았다.

덧글에 대충 연결되어 있는 주소의 모양새를 보니 해외의 성인사이트인 것 같다. 저렇게 해서까지 그런 장사를 해야 하나... 정말 이해할 수가 없다. 또 그런 사이트에 들어가 잘못된 성에 대한 인식을 키우게 될 청소년들도 걱정되고 성에 대한 잘못된 가치관을 가지게 되어 벌어지게 될 수많은 성범죄들도 끔찍하다. 단순히 스팸만의 문제가 아니라, 연쇄적으로 전방 후방 효과가 일어나서 벌어지게 될 일들이 한동안 나를 열받게 만들었다....... 가뜩이나 심난한데 말이다.

이거... 이민을 가야 하는 건가... 우리나라에서 사는 것만 이렇게 힘든 것인지 온 세상이 다 이런 것인지... 하긴 미국에선 학교에서 총 맞아 죽기도 하는 것을....

하여간 정말 심난한 나날들이다. 날씨도 따뜻해지고 봄도 오는 것 같은데 왜이리 마음이 스산해 지는지...

2008년 3월 6일 목요일

오케스트라 연습일지 2008년 3월 6일

한 주를 건너뛰고 갔는데 아직 4악장을 하고 있었다. (지난 주엔 어딜 연습했었을꼬....?) 오늘은 결국 4악장까지 모두 끝냈다. 스타카토 부분이 영 어영부영으로 넘어가긴 했지만... 지휘자님도 어쨌거나 4악장까지 공부 (또는 강의?)를 끝냈다는 데에 의의를 두고 연습도 일찍 끝내 주셨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연주회까지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4월19일이 연주회이고 벌써 3월의 첫 연습을 했으니... 좀 급하게 생각한다면 한 달 남짓이라고 할 수 있을 듯... 게다가, 비록 이번엔 슈만 교향곡 1번 단 한 곡만이 프로그램에 들어있기는 하지만, 앵콜곡도 나름 좀 연습을 하실 예정이라고 하신다. 카라비안의 해적이 될 듯? 그런데, 여유로우신 우리 지휘자샘은 이 와중에 다음 연주회곡이 될 지도 모르는 브람스 교향곡 3번도 좀 읽어 보시고 싶으신 듯..^^ 너무 한 곡만 해서 지겹다고... 그 말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나 같이 연습량 미달자는 이제사 이 곡이 좀 재밌게 느껴질까 말까 한데...

남은 한 달여 동안, 파트 연습에도 참가하고... 개인적으로도 안되는 부분 부분들을 좀 많이 해야 할 듯 하다. 아니면 활씽크 기술이라도 좀 익히거나...ㅡㅡ;;

2008년 3월 5일 수요일

누워서 책 읽기?!

게을러서 그렇겠지만... 누워서 책을 보는 일이 꽤 많다. 어릴 적에 누워서 책을 읽으면 눈나빠진다고 혼났었던 기억이 있는데, 이젠 나이가 들어서 눈도 안나빠지고... 누워서 책을 읽어도 혼내는 사람도 없다.

그런데... 누운 자세에서는 엎드려서 책을 읽어도 고개를 들어야 해서 불편하고 그냥 누워서 읽으면 책을 드느라 팔이 아프다. 그래서 가끔 책을 읽다가 천장에 달아 놓을 독서대 같은 것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는데, 어제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의 글을 발견했다. 바로 여기.

윗 분의 글에서 의자형 말고, 천정에 매달려 있는 독서대는 딱 내가 상상해 왔던 그런 설계도이다. 사실... 나 같이 게으른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이 또 있다니 사람이란 다들 비슷한가 보다. 하지만, 저런 제품은 만들어진다고 해도 전신마비 장애인용으로만 팔릴 수 있지 않을까 싶긴하다. 비용도 꽤 들 것 같다.

이 분 글에 달린 댓글에도 여러가지 재미있는 책읽기 아이디어가 많이 나오는데 한번쯤은 지나가면서 생각해봤을 법한 것들이다. 상품화될 만한 것은 없을까...^^
 
그런데 또 하나 다른 분의 블로그에서 사진을 하나 발견했는데, 이건 비록 내가 생각해 오던 디자인은 아니지만 설계도가 아니라 실제 설치하고 찍은 사진이라는 점에서 매우 놀랍다... (아니 매우 재미있다^^) 출처 (이 블로그가 원본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디씨에서 나온 사진이라는 설도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책 장을 넘길 때 좀 불편하고, 모로 누울 경우에 살짝 책과 각도가 맞기 어려울 것 같다는 점이 단점으로 지적될 듯 하다 ^^;; 아크릴판의 받침대 역할을 하고 있는 레고 블럭도 나름 귀엽(?)다. 깔려 있는 이불의 모양새도 매우 폐인스럽고...ㅎㅎㅎ

2008년 3월 4일 화요일

좌절의 레슨

설 연휴에 한 주 건너 뛰고 레슨 갔을 때는 불안불안 했어도 그냥 그런대로 지나갔었는데, 이번 주는 완전히 좌절이었다. 지난 주 회사일과 공연들 때문에 일주일 내내 활 한 번 안잡아 보고 주말에 한시간 정도 연습하고는 월요일에 레슨을 갔다. 집에서 연습할 때도 손가락도 안돌아가는 것을 물론이려니와 영 보잉이 잘 안되었었는데.... 레슨 시간 내내 팔꿈치를 지적받고.. 스타카토도 안되고.. 포지션 이동도 깔끔하게 안되고...

배우고 있는 책 5권이 모두 모두 제자리걸음으로 끝나고 말았다. 레슨 시간은 1시간을 훌쩍 넘겼는데, 정말 어떻게 해야 좋을까 심란하기만 했다고나 할까. 분명히 잘 되야 할 하모닉스는 선명하지 않은 소리를 내었고, 안정되지 않은 팔꿈치를 안정시킬 방안이 생각나지 않았다. 다음 주까지 뭘 고쳐야 나아 질 것인지...

그냥 Back to basic... 자세와 보잉에 치중하는 연습을 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