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3월 29일 토요일

영어에 얽힌 기억들

지금도 영어를 잘 못하지만, 유학가기 전엔 영어를 더 못했다. 읽고 쓰는 건 그 때나 지금이나 비슷한데, 듣고 말하기는 지금 보다 확실히 못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지금도 못한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에는 지금과 달라서 원어민교사는 커녕 영어 테입도 거의 들은 적이 없다. 중학교 때인가 리스닝 테스트를 했던 것 같기는 한데, 그 때 중학영어 수준이라는 것이 아이 엠 어 보이, 유알 어 걸 하는 수준인데다가 엄청나게 천천히 발음해주는 쉬운 문제들이었던 것 같다. 그나마도 고등학교때는 다시 문법과 독해 위주로 돌아갔던 것 같고... 게다가 나는 중고등학교 내내 영어라는 과목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었다. 상대적으로 수학 같은 과목을 좋아했었기 때문인 것도 같지만, 같은 외국어였던 불어는 좋아했었던 걸 보면 그것도 아닌 것 같고.... (그때부터 반미감정이...??) 어쨌거나 영어는 그다지 흥미있는 과목은 아니었었다.

대학와서는 교양과목으로 영어를 한과목 정도 들어 본 것이 전부. 그것도 한국인 영문과 교수의 영어소설 독해강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한국어로 수업했었다..; 영어학원도 다녀 본 적이 없다. (중고등학교 때는 물론 학원 비슷한 것도 다니지 않았다. 과외나 학원교습이 허용된 것이 대학 2학년 때부터였으니까.) 그러다가 대학원 입학 시험을 보느라 Vocabulary 22000이니 33000이니 하는 책들을 사서 공부했었다. 역시 듣기 읽기와는 거리가 있었던 영어공부였다.

회계법인에서 국제조세쪽으로 부서를 이동하면서 영어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그러고도 한참 후. 회사 근처 영어회화 학원엘 한 달 정도 등록했었는데 재미도 없고 바보취급 당하는 것도 같고... 귀찮고... 결국 계속 다니지는 못했었다. 회사에서 토익점수를 내라고 해서 토익 시험은 봤는데 요즘 학생들이나 직장인들처럼 만점에 가까운 점수가 나온 것은 아니었지만 당시로서는 그다지 나쁜 점수도 아니었길래 한 번 보고 말았다. 그걸로 어디 갈 것도 아닌데 점수 잘 받아 뭐하랴는 생각과 귀차니즘 때문에 더이상 점수를 올려 놓을 생각은 들지 않았었다.

회사에서 업무 결과물들의 상당 부분을 영어로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읽고 쓰기는 계속 연습이 되었는데, 외국사람들과 미팅을 하거나 전화를 할 때에는 아무래도 소극적이 되었었다. 싱가포르나 홍콩에 있는 사람들과 통화를 하게 되면 어찌 짜증이 나던지... 언젠가는, 전화보다는 이메일로 연락을 하자고 이야기 했더니, 전화가 쉽고 간단한데 왜 이메일을 써야 하냐는 싱가폴 아줌마 때문에 열받았던 적도....;;;;

그 후에 회사를 옮기고 (합병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옮겨간 것이지만) 그 회사에서 몇 주간 영어 합숙교육을 보내준 적도 있었고, 팀원들과 함께 회사 바로 옆의 영어학원을 잠시 다니기도 했다. 불행히도 미군부대 출신의 멍청한 영어강사와 싸워 버려서 역시 한 달 정도 밖에 못 다니고 말았지만..;;

물론 그 흔하디 흔한 어학연수 혹은 배낭여행도 다녀 온 적이 없다. 그리고는 GMAT과 토플을 공부하기 시작했는데 그럭저럭 점수가 나왔고, 인터뷰도 교포와 했는데 생각보다 무난하게 통과.. 에세이는 완전히 내맘대로 썼으나 어쨌건 통과... 하여 유학을 가게 되었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사람을 상당히 주눅들게 만드는 면이 있었다. 그 동안 한국에서 귀차니즘과 대충주의로 그럭저럭 살아 왔었는데, 이게 통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마구마구 들기 시작했었다. 막상 학기가 시작되고 나니.... 으... 정말 장난이 아니더라. 배우는 내용이야 학부 때 아무리 공부를 열심히 안했어도, 원래 전공이 경영학이라 그다지 어렵지는 않은 것들인데... 문제는 영어. 수업시간에 알아 듣기도 힘들고... 교수 말은 그래도 나은데, 학생들 참여가 많은 수업들이 대부분이라서 학생들 발음은 더 힘들었다. 특히 양쪽 해안가 출신들 (동부나 서부의 도시 지역) 발음은 그런대로 괜찮았는데 (물론 그 당시엔 그것도 애들 말이 하도 빨라서 알아 듣기 힘든 경우가 많았지만), 대륙 한가운데, 그것도 남부 어드메 출신들은 발음이 더 잘 안들렸었고... 그래도 미국애들은 나은데, 프랑스, 러시아,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남미 (포르투갈어를 쓰는 브라질은 좀 낫더라), 인도... 이런 동네에서 온 애들은 도무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발음도 낯선데다가 말들은 어찌들 빨리 하는지.... 머리 속에서 해석하면서 따라가기가 정말 힘들었다.

그래도 같은 동양계라서 중국과 일본 출신 학생들과는 훨씬 나았었다. 그게 꼭 영어 발음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주로 백인들 밖에 없는 곳에서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을 보니 마음이 안정되었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그러고 보니, 네이티브 발음을 가졌으나 동양계인 미국아이들 (말하자면 교포같은..)과도 훨씬 편안했던 것도 같다.

학교에서 만들어 준 스터디 그룹에는 불행히도(?) 미국인 3명, 외국인 2명이었는데... 그 외국인 중 하나가 토론토 출신의 캐나다애였다. (도대체 뭐가 외국인이라는 건지...;;) 나머지 한 명은 물론 나. 정말 적응안되는 분위기,,, 같이 토론을 해야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데 난 도무지 끼어들기가 어려웠었다. 그래서 토론하는 과목은 대충하고... 문제풀이 숙제 같은 것을 먼저 풀어서 동료들에게 나눠 주는 식으로 때우면서 근근히 1년을 보낼 수 밖에 없었다. 나중에 얘기해 보니, 걔들은 (토플시험은 물론 볼 필요가 없어서 안봤고..) GMAT같은 경우에 verbal 파트를 거의 만점씩 맞았다고 하더라... 치.. 나도 국어로 시험봤으면 만점 받는다 뭐... (정말?)

그 이외에도 이런 저런 모임에서 영어 고문은 쭉 계속되었다. 처음에는 이것저것 해보려고 하다가 좌절.. 좌절.. 하면서 결국은 '미국에서 계속 살 생각도 없는데 대충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2학년때는 훨씬 편안하게 지냈다. 과목도 토론 수업은 많이 줄었고 (세부전공이 finance라서...) 문제푸는 거야 어찌어찌 별 어려움 없이 했고... 그러느라 미국생활에는 익숙해졌지만 영어하고는 그다지 더 친해지지는 못한 채로 유학생활이 마무리가 되었다. (그래도 이전 보다야 조금 나아졌겠지만...)

졸업하고는 3달은 싱가포르, 1달은 시드니에서 일했는데, 그 4달 동안 사무실에 한국인은 나 밖에 없었다. 사실 미국에선 한국친구들이 워낙 많았고, 원래 알던 후배도 있었고... 사실 한국사람들이야 한 두 명 건너면 다 언니 오빠 동생이 아니던가.... 하여 사실 이런 느낌은 없었는데... 그야말로 서바이벌 게임이 시작되었다. 대충 지금까지 이야기를 읽으신 분들은 눈치채셨겠지만... 나는 워낙에 그다지 적극적인 성격이 아니고 오히려 꽤 소심한 터라 모르는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 이야기하는 일도 거의 없다. 보통은 대충 모른척 지내다가 열받으면 말 많이 하는 성격....;; 그런데 정말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 외국에서... 심지어 한국사람도 하나도 없는 곳에서....

그런데, 바로 이 경험이 2년간의 유학생활보다 훨씬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그 곳은 회사의 아시아 지역본부라서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또, 3달 동안 중국, 홍콩, 인도, 인도네시아, 태국을 돌아 다니면서 현지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같은 아시아인데도 나라마다 이렇게 문화가 다를 수 있다는 것도 처음 느꼈고, 영어 발음도, 쓰는 영어도 많이들 다르다는 것도 느꼈다. 아시아 북쪽은 미국영어의 영향이 강한데, 남쪽은 영국영어의 영향이 훨씬 강했다. 회사에서도 백인 중에도 미국사람들은 별로 없고 영국이나 호주, 뉴질랜드 사람들이 주로였었다. (미국회사였는데도 말이다...)

언젠가 내가 싱가폴 친구에게 '이 곳 영어는 미국과는 많이 다른 것 같아'라고 이야기 했더니, '미국사람들은 뭐든지 다 이상하게 말한다니까...'라고 대꾸하더라는...

시드니에서는 대부분이 호주인들이었다. (피지 근처의 다른 섬나라인 통가에서 온 푸근한 아저씨도 있고 간혹 영국 등 유럽 출신들도 있기는 했지만) 그런데, 이 사람들이 내가 영어로 이야기하면 "너 미국에서 왔니?"라고 묻곤 했다. "아니 한국에서 왔는데."라고 답하면, "네 발음에 미국액센트가 있어"라면서 웃곤 했다. 미국 액센트가 호주사람들에게는 재미있게 들리는 모양이다. 그러면 나는 "한국에선 미국영어를 가르치기 때문일거야"라고 이야기해주곤 했었다. 그래도 발음 때문인지, 아니면 나를 뽑은 곳이 미국 본사였기 때문인지 (본사에서 뽑아서 해외로 연수를 보낸 후에 한국으로 보내는 프로그램이었다) 사람들은 자주 "미국에서 오셨어요?"라고 물었다.

평생 영어와 결코 친하지도 않고 좋아하지도 않았던 나에게 그 질문은 정말 신기하게 들렸었다. 내 평생에 이런 말을 들을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회계법인에 있을 때 보다는 훨씬 강도 높은 영어고문이 이어졌다. (그래도 영어공부는 여전히 안해주는 훌륭한 귀차니즘 정신!) 미국계 다국적기업에서 일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그 회사에서 지금 회사로 옮긴 후에도 역시 그렇다. 두 회사의 차이점이 있다면, 전에 회사는 미국본사보다 아시아 지역본부와 일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서 싱글리쉬, 칭글리쉬, 인디안 잉글리쉬 또는 호주영어에 익숙해졌어야 하는 반면, 지금 회사는 대부분의 일이 미국과 직접 이야기해야 하는 것이라 (일본에 있는 아시아 지역본부에도 미국사람들만 많다는) 또다시 미국영어를 들어야 하고, 이제는 아무도 내 발음이 미국발음이라고 말하면서 웃지는 않는다는 점일 것이다.

그나저나... 영어는 여전히 그다지 즐겁지 않다. 이제 익숙해질만도 한데, 머리가 멍한 날이나 몸상태가 안좋은 날은 단어들이 문장이 안되고 조각조각나기 시작한다. 내가 아는 어느 분이 - 나와 학부, 대학원, MBA까지 같은 곳을 나오고 같은 분야에서 (나는 갑, 그분은 을로;;) 일하시는 약 15년 정도 선배 - 언젠가 월요일 아침이라 영어가 잘 안된다고 한국어로 이야기 하겠다고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 말이 맞다. 하긴 컨디션 좋은 날도 편안하진 않은데다가 난 주로 컨디션이 안좋지만 말이다...;;; 영어는 나에게 세컨 랭귀지가 아니라 단지 '외국어'일 뿐이라서 여전히 나의 뇌 한쪽에서는 번역기가 돌아가고 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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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린 친구되기에 어느 분이 영어에 얽힌 에피소드들을 올려서 한동안 나의 영어편력을 생각해봤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어쩌다가 영어를 접해야 하는 경험이 많아져 버렸던.... 이야기들.

댓글 6개:

  1. 전 100% 오리지날 한국발음...ㅡㅜ.. 토메이토가 머야? 토마토지.. 아륀지? 그런거 멀러.. 오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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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ViolinHolic - 2008/03/29 11:30
    저도 오리지널 한국발음이에요. 그런데 그게 미국 액센트라더군요^^;; 어딘가 그사람들에겐 그런 느낌이 들었나봐요.. 미드를 너무 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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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저는 슈삐님과 정반대로 언어 공부를 무척 좋아했고 수학이나 과학은 ㄷㄷㄷ

    심각할 정도로 저는 아직도 숫자에 약한데 심지어는 잔돈 계산 못해서 아내한테 아직도 꾸지람듣고 살고 있답니다....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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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슈타이너 - 2008/04/01 05:39
    저도 잔돈 계산은 잘 못해요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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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오.. 잔돈은 계산 안하시는 슈삐님.. 역시 고소득 전문직... 아흑 ㅡ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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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ViolinHolic - 2008/04/14 12:12
    헉... 저 잔돈 계산해요.... 자주 틀려서 그렇지..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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