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3월 24일 월요일

[공연] 존 홀로웨이 바로크 바이올린 리사이틀 2008년 3월 21일

금요일 저녁. 회사에서 차로 5분정도 밖에 안걸리는 곳이라서 여유있게 도착할 수 있었다. 커피 한 잔을 받아들고 나니, '공연 전 10분 토크'를 할 것이라고 했다. 어제 홀로웨이를 만나 2시간을 인터뷰 했다는 노승림씨의 이야기를 잠시 듣고 홀 안으로 들어갔다.

John Holloway


가벼운 복장으로 악기를 들고 홀로웨이가 무대로 나왔다. 작은 쿠션형 어깨받침이 달려 있는 바로크 바이올린에 악보가 그려져 있는 손수건을 받치고는 약간의 조율 후 바로 연주가 시작되었다.

프로그램:

텔레만_판타지아 B flat 장조
바흐_소나타 1번 G단조
비버_묵주소나타 중 파사칼리아  
텔레만_판타지아 D장조
바흐_파르티타 2번 D단조

뭔가 불안하게 출발한 듯한 그의 텔레만 판타지아 연주였다. 가끔씩 들려오는 e현에서의 삑사리 때문에 음악에 몰입하기가 힘들어 졌다. 음색도, 저음부는 조금 풍부하게 느껴졌지만, 대체로 현과 악기의 울림은 거의 전해지지 못하곤 했다. 가냘픈 바이올린, 그것도 원래 음량이 작은 바로크 바이올린으로 이 홀을 채우는 것은 무리였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곡이 끝나고 홀로웨이가 무대 뒤로 사라졌다. 이번에는 좀 상황이 나아졌으면 하고 기대하고 있는데 연주자가 다시 무대로 나왔다. 그는 두꺼운 종이에 바흐의 오리지널 악보를 붙여 놓은 악보책을 열고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 1번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전히 불안한 연주가 이어졌다. 박자나 연주 자체에서 여유로움을 찾아 보기가 어려웠다. 홀로웨이가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프레스토 악장에서 그의 연주는 가볍게 들리지 못했다. 송진이 덜 칠하여지고 힘이 너무 들어간 보잉에서 나는 듯한 음색이 들려왔었다.

그리고 비버의 파사칼리아. 음반에서 처럼 안정된 소리는 아니었지만 (이미 나도 같이 불안해져 있어서 어떤 연주도 "안정된" 느낌을 받기는 어려웠다), 텔레만이나 바흐 1번때 보다 훨씬 잘 음악에 몰입할 수 있었다. 저음과 고음 성부가 확연히 음색이 대조되었고, 바로크 바이올린의 아름다움을 잘 느낄 수 있는 연주.

인터미션 후의 텔레만 판타지아 10번은 리듬감있는 밝고 아름다운 춤곡 풍의 곡이었다. 악보를 꼭 구해서 연주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대 뒤로 나가지 않고 바로 진행된 바흐의 파르티타 2번. 전반부 보다는 조금 안정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지그까지는 .... 바흐가 태생적으로 단선율 악기인 바이올린으로 어떻게 여러 성부를 오가는 화성을 창조해 내고 있었는지를 감탄하게 만드는 연주가 이어졌다. 비록 완벽한 연주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리고나서 마지막의 챠코나. 음정이 엇나가거나 고음의 삑사리가 간혹 이어지는 부분이 있었지만... 곡 후반부가 시작될 때까지는 곡에 몰입할 수 있었다. 여린 거트현의 울림으로 들려오는 챠코나가 그 날 어찌 슬프게 들려던지... 나는 음악을 들으면서, 참혹하게 죽임을 당해 세상을 떠난 어린 영혼들을 생각하면서 한동안 슬픔에 젖어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갑자기 연주가 살짝 중단되었다. 1시간 반 여 동안 힘들게 연주하던 홀로웨이는 결국 한 부분을 놓치고 만 것이다. 본인도 놀라 약간의 신음소리를 내면서 곧 다시 연주가 이어졌는데, 사실 이런 경우는 연주회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일은 아니라 나도 흠칫 놀라고 말았다.

그렇게 본 연주가 마무리되었다. 그가 앵콜을 한다면 오늘의 연주가 지금까지의 컨디션 난조 때문일 것이고 앵콜을 하지 않는다면 악기에 문제가 있슴에 틀림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두 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했을지도 모르지만... 그는 'There is a lot more Bach... Largo from C major Sonata'라고 이야기 하면서 바흐의 오리지널 팩시밀리 악보를 한 장 넘겨서 앵콜을 해 주었다. 그것으로 더 이상의 앵콜은 없었다. 나는 평소처럼 싸인회는 패쓰... 집으로 향했다.

집에 오는 길에서도, 그날 밤에도, 그 다음 날에도 계속 왜 연주회가 엉망이 되었을까 궁금했다. 바로크 바이올린 음악을 듣기만 했지 실제로 연주해보거나 관리해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그것이 악기 탓인지.. 아니면 정말로 연주자의 컨디션이 안좋아서인지 알 수가 없었다. 홀이 넓어서 울림이 적은 것이야 각오했을 것이고... 더 넓은 예당 콘서트 홀에서도 - 비록 바이올린 독주는 아니더라도 - 고악기들이 무사히 잘 연주되곤 하는데 말이다. 요즘 계속 기분이 다운되었었는데, 연주회를 보고 나서도 그 분위기가 계속되고 있는 것 같아 (아니 좀 더 심화되는 것 같아) 영 편치가 않았다.

여기저기에서... 홀이 지나치게 건조하여 거트현이 제대로 된 음색을 내지 못했다는 이야기도 들려왔고... 홀로웨이가 상황에 맞추어 주법을 달리하다 보니 실수가 잦았었다는 이야기도 들려왔다... (그래서 지금은 "후기"를 쓸 만큼은 기분이 좀 나아지긴 했다..^^)

홀로웨이의 악기는 Ferdinando Gagliano의 1760년 악기이다. 그런데, 그에게는 세컨 악기가 있다. 1700년 경 바이올린의 카피로 1997년에 젊은 스위스 제작자인 Christian Sager가 만든 악기가 그것이다 (2005 interview at Sunday Baroque). 홀로웨이는 미국 여행 중이었던 이 인터뷰에서 해외여행에는 갈리아노를 들고 다니지 않고 자거의 악기를 들고 다닌다고 했는데, 그 날 호암아트홀에서 고생했던 악기가 갈리아노인지 자거의 악기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느 악기이건, 악기 자체 보다는 거트현이 더 말썽의 원인이 되었을 것 같기도 하고...

아쉬웠던 마음이 커서 쓰다보니 너무 실망이었던 것처럼 쓰긴 했지만... 사실 부분부분 좋았던 연주도 있었고... 텔레만도, 비버도 좋았었다. 두 시간 가까운 시간동안 무대에서 혼자서, 악조건과 싸우면서 연주해 주었을 홀로웨이.... 오늘 통영에서는 만족스러운 연주가 되기를 바란다.

댓글 2개:

  1. 음....고악기 소사이어티에 잠시 귀띔을 해주셔가지고 그냥 그랬구나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직접 이렇게 연주 상황 중계를 들으니^^; 상황이 무척 안좋았던 것 같습니다.

    넵..제 생각에도 고음악은 차별화된 공간이 필수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모던 퍼포먼스에 어울리는

    장소에서 연주되는 고음악은 거의 항상 뒷끝이 좋지 않더군요. 여기 이태리에서도 마찬가지구요.

    몇 년 전에 쿠이겐도 한국에서 바이올린 솔로 독주회를 열었었는데....그 때도 이와같은 문제가

    있었지 않나 싶습니다. 생각해보면 이윤추구를 위해 일을 하는 기획사의 입장도 있는 것이기 떄문에

    한국에서 메이져급 고음악 연주자들이 울림이 좋은 작은 공간에서 연주한다는 것은 어찌보면 거의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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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슈타이너 - 2008/03/25 04:47
    아주 작은 홀이나 성당 같은 곳이 좋을 텐데... 말씀대로 이런 스타급 연주자들을 데려오는 기획사들 입장에서는 어려운 일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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