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월 11일 금요일

대설주의보...

아침에 일어나 보니 어째 날씨가 어두침침하다. 창 밖을 보니 눈이 내린다. 그것도 엄청나게. 이렇게 눈이 많이 오는 것이 참 오랫만이다. 아무리 교통이 불편해져도 겨울엔 역시 눈이 와야 겨울 같다. 

어릴 적엔 서울에도 눈이 많이 왔었다. 국민학교 때 수업시간에 눈이 내리면 쉬는시간에 모두 몰려 나가 누가 먼저 운동장에 발을 찍나 해보며 놀았던 기억이 난다. 등하교길 공터에 내린 눈에 아무도 지나간 흔적이 없으면 아무리 바빠도 꼭 발자국을 내고 지나가곤 했었다. 겨우내 눈이 자주 왔었고 새학기가 시작될 무렵까지 동네 여기저기에 눈이 쌓여 있곤 했었다. 어떤 때는 30-40센티미터나 눈이 쌓이기도 했었다.

중고등학교 때에는 눈과 얽힌 기억이 별로 없다. 그 6년간 서울지방에 눈이 그다지 많이 안왔었나....? 아니면 내가 더이상 겨울에 동네를 돌아다니며 놀지 않았었는지도 모르겠다. 고등학교 때 큰 홍수가 나서 대치동 은마사거리가 물에 잠겼던 기억은 있지만... 큰 눈에 대한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대학교 1학년에서 2학년으로 넘어가던 해, 큰 눈이 왔었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눈썰매를 타고 놀 수 있을 정도 였다. 비료푸대를 얻어다가 타야 잘 미끄러진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은데, 내가 뭘로 썰매를 탔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엄청 재미는 있었다. 학교가 산이라 눈이 시내보다 더 많이 오곤 했었다. 오늘 온 눈 정도만 해도 버들골에서 또 눈썰매를 탈 수 있을지도... (요즘 대학생들이 그런 식으로 놀 것 같진 않지만)

눈 보다는, 눈이 온 후에 날씨가 추워지기라도 하면 학교의 길들이 꽁꽁 얼어 붙는 것이 정말 고역이었다. 우리과가 사회대 쪽과 붙었있었을 때에는 얼음으로 뒤덮힌 길이 군데군데에 있는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을 오고 가야 했다. 최악의 길은 법대에서 내려가는 후생관 옆길. 요즘도 그럴지 좀 궁금하다. 그 길을 가기 싫어서 비싼 좌석버스를 타고 지하철역까지 가기도 했었다.

그리고는 계속 눈이나 겨울의 추위에 대한 기억이 없었다. 스키장이나 가야 눈 구경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자연설이 쌓여 있는 장면들을 다시, 엄청 자주 보게 된 것은 미국에서 였다. 필라델피아는 사실 다른 북쪽 도시들에 비하면 눈이 많이 오는 편은 아니다. 보스턴이니 미시간이니 시카고니 그런 곳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필라델피아에 있는 것이 가끔 감사할 정도긴 했다. 하지만.... 그래도 서울보다는 눈이 너무나 너무나 많이 내렸다. 발이 푹푹 빠지도록 눈이 오는 것은 다반사. 한 번 내리면 너무 많이 와서 학교가 문을 닫기도 하고. 눈이 워낙 일상사이다 보니 눈에 대한 대처능력도 꽤 신속해서, 밤에 눈이 좀 온다 싶으면 밤새도록 제설차가 동네를 헤짚고 다니는 소리가 들렸다. 큰 길은 아침에 나가보면 보통은 깨끗하게 치워져 있곤 했다. 하지만 covered parking lot을 살 돈이 없는 가난한 유학생은 눈 온 날 아침엔 차 위에 쌓여 있는 눈을 치워야만 했다. 나중엔 수퍼에서 중간 크기의 막대가 있는 빗자루를 하나 사서 눈이 오면 그걸로 눈을 치웠다.

가족들이 다 있으면 좀 덜 서러웠을 텐데... 혼자서 한숨을 푹푹 쉬면서 내리는 눈을 보다가 빗자루를 들고 나가 힘겹게 눈을 치우는 것이 어찌 서럽던지... 서러운데다가 엄청 힘들고...ㅜㅜ 어느 날인가 눈이 정말 많이 왔을 때, 혼자 치우고 또 치우다가... 정말 힘들어서 아르바이트로 눈을 치우는 흑인 꼬마애들에게 부탁을 했었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주로 사는 가난한 아파트에 있는 자동차들은 온갖 눈치우는 도구들을 들고 팔팔하게 돌아 다니는 걔네들에게는 좋은 수입원이 되어 주고 있었다.

겨우내 그렇게 눈이 오고... 이 제 봄이 되는구나 싶어서 겨울의 기억을 잊어 버릴 때 쯤, 한 번 더 눈이 내리곤 했다. 4월에 눈이 오다니... 물론 4월에 내리는 눈은 금방 녹곤 했었다.

창 밖에 내리는 눈을 보고 있으려니 옛날 생각들이 났다. 오늘 밤까지 눈이 올 것 같다는데... 기상청일 믿기도 어렵고... 눈이 내릴 때 나가서 놀아야 재미있는데, 우리 아이들은 오늘 밖에서 놀았나 모르겠다. 지윤이는 미국에서 눈이 오면 그렇게 좋아 했었는데 말이다. 내일은 아이들과 좀 놀 수 있으려나....

댓글 6개:

  1. 음.....눈에 대한 옛추억에 대해서 말씀을 하시니 대목 대목 저도 떠오르는 기억들이 있네요...

    사내아이들은 발자국 놀이...이렇게는 않 놀죠. 조금 착한 놈들은 눈 속에 연탄재를 넣어서 던지고

    나쁜 놈들은 짱돌을 넣어서 눈 뭉치를 만들어 던집니다. 그런 무식한 눈 뭉치를 한 번도 맞지 않고

    이렇게까지 성장한 걸 보면....전 참 운이 좋은 사람 같습니다.^^;

    제설작업이라...흠....대한민국 육군을 다녀온 사람이라면 주차장의 눈은 한 삽거리라고나 할까요.

    이야기를 들어서 아실지도 모르겠지만....군대에서는 멍청할 정도로 무식하게 제설작업을 합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밤에 잠자리 들기전까지 제설작업을 한 기억이 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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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슈타이너 - 2008/01/12 17:26
    ㅎㅎ 하긴 군대 다녀오신 분들에게 그정도 눈치우는 일이야 암것도 아니었겠군요^^ 예전에 바친기 가입인사에 어떤 분이 "군인입니다. 더 이상 무슨 소개를 하리요. 또 눈 오네요. 휴~" 뭐 이 비슷하게 쓰셨던 기억도 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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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ㅋㅋ 저도 은마사거리에 물잠겼던거 생각나요^^ 전 토욜반 오전에 계속나가고 있어요. 진도는 자진해서 다시 앞부터 하고 있어요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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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토마토^^ - 2008/01/13 17:53
    앗 토욜 오전반으로 바꾸셨군요... 언제 한번 같이 연주해봐야 하는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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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 보스톤에도 미시간에도 살았던 1人... (게다가 서러운 솔로!)



    지금 사는 곳은 그때만큼 눈이 많이 내리진 않지만 그래도 역시 제일 기피하고 싶은건 차에 쌓인 눈 치우기에요.

    게다가 계속 현재진행형으로 눈이 내리고 있는 상황이라면 더 최악... (차 뒤 치우고 앞 치우고 다시 뒤를 보면 이미 도로 소복이 쌓여있는 눈... 아악)



    평소 조용히 눈팅만 하고 가다가 왠지 심금(..)을 울리는 글이 있길래 한자 남기고 갑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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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dapi - 2008/01/15 09:48
    뉴저지도 서울에 비하면 눈이 많이 오죠^^ 필리나 뉴저지나 비슷... 눈 녹을 때까지 숨어 계셔요~ 다피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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