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월 10일 목요일

[공연] 서울시향 정기연주회 - 성시연, 티엠포 2008.1.9 (수)

갑작스레 이번 주 일정에 여유가 생겨서 볼 만한 공연을 찾아 보았다. 이번 주는 공연이 그리 많지는 않은 것 같았는데 서울 시향의 정기연주회가 있었다. 협연자는 세르히오 티엠포! 성시연이라는 젊은 여성이 지휘를 맡는다고 한다. 일전에 시향에서 날라온 콘서트 미리공부하기 일정이 생각나 찾아 보니, 월요일이다. 그래서 월요일엔 진희숙씨가 진행하는 콘서트 미리공부하기에 참여하고, 수요일엔 바로 그 콘서트에 가기로 결정했다.

Kurtag, Stele Op.33
쿠르탁, 스텔레(석판)
Schumann, Piano Concerto in a, Op. 54
슈만, 피아노 협주곡 a단조, 작품 54
Shostakovich, Symphony No. 5 in d, Op. 47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번 d단조, 작품 47

월요일의 미리공부하기. 생소한 음악인 죄르지 쿠르탁의 석판에 대한 설명은 나중에 공연에서 음악을 감상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 슈만의 피아노 협주곡은 아르헤리치의 연주로 들었고, 쇼스타코비치에 관한 짧은 다큐를 보았다.

수요일. 김밥 한 줄을 잽싸게 먹고 공연장으로 들어 갔다. 1층 뒷쪽에 자리를 잡았다. 2층을 예매했었다고 생각했었는데, 아니었나 보다. 지윤이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았던 쌍안경을 빌려 왔는데 생각보다 별로 유용할 것 같진 않다. 무대는 잘 보이는데 소리가 걱정이었다. 세종문화회관은 회사에서 가깝다는 점 이외에는 장점이라고는 전혀 없는 곳이다.

자그마하고 젊은 아가씨가 머리를 하나로 묶고 턱시도 비슷한 옷을 입고는 무대에 등장했다. 지휘자는 여자라도 남자처럼 입어야 하는 것인가? 하긴, 치렁치렁한 드레스를 입고 포디엄에 올라가는 것도 좀 이상할 것 같긴 하다. 어쨌거나 여성 지휘자는 처음이라서 호기심이 생겼다.

첫 곡인 쿠르탁의 석판. 친구의 죽음을 슬퍼하며 1994년에 작곡한 곡이라고 하는데, 그런 대로 들을 만했다. (연주의 quality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현대음악을 잘 모르는 내가 듣기에 큰 불편은 없었다는 뜻) 좋은 연주였는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콘서트 미리공부하기에서 들었던 3악장의 장송행진곡 에서 느꼈던 무게감이 잘 느껴지지는 않았다. 세종문화회관이라서 그런 건지, 목욕탕에서 음악을 듣는 것 처럼 물먹은 소리로 들려왔다. 얼마 전의 건강검진 결과에 따르면 내 귀는 정상이라고 하니 귀가 이상한 것은 아니고.. 자리가 무대에서 너무 먼 탓인가?

두번째 곡에는 지휘자와 피아니스트가 동시에 등장. 슈만의 유명한 피아노 협주곡이 시작되었다. 쌍안경으로 피아니스트가 피아노 앞에 앉는 모습을 보느라 중요한 시작 부분에서 살짝 집중을 못했다. 티엠포는 아르헤리치의 애제자라고 하던데... 그 둘의 연주가 내 귀에는 꽤 다르게 들렸다. 공연장의 물먹은 음향상태에도 불구하고 티엠포의 피아노는 노래하고 폭발하고 우울하다가 또 노래하면서 슈만을 정말 멋지게 연주했다. 앵콜로는 피아졸라의 '천사의 죽음'. 계속 박수가 이어지자 피아노 앞에 앉아 고개를 갸우뚱하며 어떤 곡을 연주할까 하는 표정을 짓다가 연주를 시작했었다.

마지막 곡은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번. 성시연씨의 손동작과 제스쳐가 오케스트라를 휘어 잡으는 듯 하면서 연주가 진행되었다. 현의 연주가 좋았고 타악기도 괜찮았었던 듯 하다. 문제는 아마도 금관... 물먹은 듯한 음향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서너번의 삑사리가 들려왔다. 4악장에서는 보다 확실하게 곡의 흐름을 주도해야 할 금관이 뭔가 불안불안하게 들려 생각보다 시원치 않은 결말을 가져온 듯 했다. 그래도 그런대로...

곡이 끝나자 관객들이 환호를 하기 시작했다. 꽤 많은 사람들이 기립박수를 보냈다. 티엠포에게 보다 두세 배는 더 많은 환호가 쏟아졌다. 그렇게 연주가 훌륭했었나... 살짝 다시 생각해 보기까지 할 정도..;; 결국 앵콜곡이 나왔는데 2악장 왈츠의 일부분. 긴장이 풀렸는지 너무 지쳤는지 앵콜은 본 연주보다 별로였다. 그냥 앵콜 안하는 게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좀 들었다.

음향 상태 때문인지, 오케스트라 때문인지, 지휘자 때문인지... 전에 두어번 실황으로 들었던 다른 5번의 연주보다는 터져나오는 폭발력이 약했고, 물론 우울하고 느려야 하긴 하지만 3악장은 살짝 지루한 느낌도 있었긴 했다. 그래도 젊은 지휘자의 활기에 찬 모습, 오케스트라를 힘있게 이끌어 가는 여성 지휘자의 모습은 보기가 좋았다. 좋은 지휘자가 될 수 있을지 없을지를 판단할 능력은 없지만... 앞으로 잘 되었으면 하는 바램도 생겼다.

저녁시간이 늘 자유롭지가 못하기 때문에, 놓치고 나면 정말 땅을 치고 후회 할 것 같은 연주회만 가거나 (그런 연주회가 요즘 너무 많아져서 고민이다) 주말공연을 선호한다. 사실 이번 주에 시간이 없었으면, 관심은 있지만 이번 공연은 가지 않았을 지도 모르겠다. 공연장이 세종인데다가... 프로그램도 딱히 끌리지는 않았었고... 지휘자도 잘 모르는 사람이고. 티엠포를 다시 볼 수 있다는 것이 이 공연의 거의 유일한 매력이었었으니... 하지만 별 기대없이 갔어도 보면서 나름 즐거운 기분이 되었었다. (아마 기대가 없었기 때문일지도...?) 편안하게 바이올리니스트들의 비브라토도 구경하고, 젊은 지휘자의 한국 데뷔무대도 보고, 처음 듣는 현대음악도 감상해 보고, 쌍안경 성능도 테스트 하면서 말이다.

댓글 2개:

  1. 서울시향 금관은 언제 들어도 불안불안해요.. -_-;;;

    공연 듣다보면 살살 미묘하게 이게 삐살이 날랑 말랑 한게.. 코끝이 간지러운 느낌이랄까요.. ㅠ.ㅠ

    현이나 목관은 나쁘지 않은데. 금관이 어렵긴 한가봐요 ^^

    답글삭제
  2. @진혁군★ - 2008/01/12 17:35
    금관 잘 하는 오케보면 정말 곡이 달라 보이죠. 특히 쇼심 5번 같은 곡은 정말 금관이 중요한데 말이죠^^

    답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