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월 16일 수요일

[책] 신인본주의의 기치를 높이 올리다 - 황금나침반 (His Dark Materials)

!스포일러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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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로 영화예매권이 생겼었다. 겨우 1장이어서 어떻게 할까 하다가 추가로 3장을 더 사서 아이들과 같이 볼 수 있는 영화를 보기로 했다. 그래서 낙점된 영화가 황금나침반. 조카까지 아이들 3명을 데리고 갔는데, 도윤이는 무섭다고 울고.... 3-4학년인 아이들은 아주 재미있게 봤다. 영화에 대한 배경지식이 전혀 없이 갔던 나는 영화가 결말이 모호한 상태에서 느닷없이(?) 끝나버리자 좀 황당해 졌다.

집에 와서 좀 찾아 보고 나서야 이 영화의 원작이 필립풀먼의 3부작 소설이고, 영화화된 것은 1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콜터부인이 정말 라이라 (영화에서의 발음)의 엄마인지 아닌지가 너무나 궁금했기 때문에 책을 주문해 버렸다.

주문하고 3권을 모두 읽는 동안, 책에 관한 이야기들을 조금씩 찾아 봤다. 나니아 연대기의 기독교적인 세계관과는 거의 정반대적인 입장에서 쓰여졌다고 소개가 되어 있었다. 영화를 먼저 본 나로서는 어떤 면이 반기독교적이라는 것인지 잘 알 수가 없었다. 카톨릭 쪽 어디선가는 영화가 개봉되면 반기독교적인 책의 판매와 영향력을 증가시킬 것이라고 영화 개봉도 반대했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책 내용의 무엇이 문제였을까?

영국판 표지 (1995-2000)
Image:Hisdarkm.jpg

미국판 표지
Image:HisDarkMaterialsUS.jpg

한국판 표지 (2007)
(원래 1998년 또는 1999년에 출간되었으나 절판되고, 2007년 영화 개봉에 맞추어 재발간되었다. 원래 책의 표지는 저런 영화의 장면이 아니었을 텐데, 찾기가 쉽지 않다.)



일단, 1권을 다 읽고 보니 영화는 책과 너무나 달랐다. 특히 마지막 부분은 아예 영화화되지도 않았으며, 이오렉 버니슨과 이오푸르 락니손의 싸움 장면과 볼반가르에서의 도주 장면은 순서가 바뀌어 있었다. 콜터 부인이 말하던 마지스테리움은 교회를 말하는 것이었다는 것을 영화 보는 내내 알 수가 없었고, 고블러로 불리우는 성체위원회도 종교단체라는 것을 영화에서는 알 지 못했었다. 슬슬 왜 이 영화가 반기독교적인 영화인지 알 법했다.

2권에서는 우리와 같은 세계에 살고 있는 윌이라는 남자아이가 새로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동화나 판타지 소설에서 나올법한 캐릭터다. 아버지가 실종되어진 아이이고 친구들에게 왕따도 당하는, 그러나 용감하고 책임감있는 소년. 또 다른 주인공인 리라가 일반적인 기준의 주인공의 성격에서 약간씩 어긋나 있는 점과는 좀 대조적인다. 리라는 용기있다기 보다는 지나치게 겁이 없어 보였고... 거짓말을 너무나 잘하며.... 좋은 편인지 나쁜 편인지 판단하기 힘든, 이상한 부모를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2권에서 약간 힘이 빠졌던 이야기는 2권 말미에 윌이 아버지인 존 패리를 만나면서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 3권은 확실히 이 시리즈의 하이라이트였다. 그리고 책이 종결에 다가가면서, 이 책은 단지 은유적으로만 기독교를 비판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 또 기독교의 어떤 부작용을 '건설적으로'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명확해 졌다. 작가는 근본적으로 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있었다. 게다가 책의 말미에서, '신'이라고 불리우는 천사는 너무 오래 살아 외부공기에 접촉하여 녹아 버렸거나, 색을 탐하다가 어두운 구멍에 빠져 죽어 버리고 만다. 작가는 오랫동안 서양 사람들의 뇌를 지배해 온 기독교 중심적인 세계는 독재자들의 세계였고 광기에 빠져 있는 迷妄의 세계였다고 말한다. 

또, 이 책의 중심소재인 "더스트", "스라프", "섀도우" 또는 his dark materials은 이성을 가진 동물의 주위에서만 흐르고 있으며, 인간 또는 이성을 지닌 동물의 이성적인 활동을 통하여 더 증가하기도 한다는 점, 물리학 또는 실험신학의 힘을 줄곧 보여주고 있다는 점, 그리고 윌과 리라의 사랑의 힘으로 뮬레파 부족의 세계에서 더스트의 흐름을 바꿀 수 있었다는 점 및 콜터부인이 자식에 대한 애정으로 변화하게 된다는 점... 이런 점들은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그는 이성의 힘을, 사람의 사랑의 힘을 믿고 있는 신인본주의자인 것이다.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의 낡은 세계와 싸우는 주인공들을 보고 있노라니.... 모차르트의 마술피리에서 프리메이슨적인 신념으로 이성의 힘과 밝은 세계를 찬양하는 마지막 장면이 떠올랐다. 중세의 어둠과 교회의 압제에서 벗어나 인간으로서의 자신감과 스스로의 힘에 감탄하고 있던 근대인들의 모습이 바로 저것 아니던가?

필립풀먼은 이 책에서 내내 놀라운 상상력을 보여준다. 가장 눈에 띄는 점, 그리고 영화의 큰 매력이 되기도 했던 것은 데몬의 존재. (심지어 영화의 공식 웹사이트에서는 접속하여 몇가지 설문에 응하면 자신의 데몬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며 팬서비스를 하고 있다.) 영화에도 나오는 갑옷을 입은 곰, 마녀들. 그 외에도 여러가지 세계의 다양한 버전들. 천사, 뮬레파부족, 스펙터, 저승의 묘사, 갈레스피부족인들.... 어떻게 이 많은 것들을 상상하여 만들어 내었는지 놀라울 정도이다. 독자에게 흥미를 유발시키는 다양한 캐릭터들의 모습은 이 소설의 큰 장점이다.

영화를 보고 1권만 읽고 났을 때는 아마도 이 영화는 해리포터처럼 2부, 3부로 이어지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주제가 너무나 불경(?)스럽고, 더스트라는 것이 무엇인지가 좀 어렵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3권까지 다 읽고 나니 영화로 만들면 상당히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CG로 온통 뒤덮혀지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1부가 그다지 성공적이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기대를 해볼만 한지는 모르겠다.

그나저나... 지윤이가 엄마 읽는 것을 보고 자기도 읽겠다고 나서는데... 말려야 하나 놔둬야 하나... 잔인한 장면이 많은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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