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2월 29일 금요일

[공연] 계몽시대 오케스트라, 합창단 2008년 2월 28일

요한수난곡. 슈클에서 단체예매를 했는데 1층이나 2층 뒷자리보다 3층 맨앞 또는 박스석이 나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공연 날짜가 다가오자 슬슬 자리를 잘못 골랐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3층은 무대에서 너무 멀다. 더구나 내 예상과는 달리 관객이 별로 많지 않을 것이라고 했기 때문에, 1, 2층 뒷편에 앉아도 그다지 시야가 방해받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결국 공연 당일 아침 기획사에 전화해서 1층 뒷편으로 바꾸었는데... 결국 이건 매우 잘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사실 예당 콘서트홀에선 그날 오후 뉴욕필의 공연이 있었던 모양인데... 그 시끌벅적했었을 흔적이 저녁무렵에 내가 갔을 때는 별로 남아 있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

수난곡 공연이라서 교회 다니시는 엄마를 모시고 갔다. 공연 전 엄마에게 곡과 연주단체에 대해 좀 말씀을 드리려고 했는데, 부지런하고 학구적인 엄마는 이미 인터넷에서 마사키 스즈키의 요한수난곡 동영상을 보셨고 책을 뒤져서 가사까지 복사해서 들고 오신 데다가 공연에 대한 설명도 꼼꼼히 찾아서 읽고 오신 것이라는 걸 알았다. 존경스러운 우리 엄마다 ^^;;

공연장에 들어가니 한 연주자가 비올라다모레를 조율하고 있었다. 오오... 비올라다모레로 연주를 할 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막상 보니 조금 흥분이 되었다. 비올라다모레는 세컨 바이올린 1풀트의 연주자들 두명이 가지고 있었다. 한편에는 비올라다감바도 놓여 있었고 오보에 연주자 옆에도 여러 가지가 놓여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 오보에다카치아와 오보에다모레도 연주될 모양이다.

Viola D'Amore / Th. Eberle / 1772 / Napoli www.practiceofpaul.net/

Boy with Viola da Gamba
www.cama-lekx.com/

Image:Oboe da caccia.jpg
(Wikipedia.org... 원래 붙였던 사진이 웹상에서 사라져서 사진 급 변경;;)

연주자들이 입장. 솔리스트가 합창도 겸하는데 뒷편의 합창 및 솔리스트들은 모두 12명. 파트별로 3명씩인 듯. 바이올린은 각 4명씩, 비올라 2명, 첼로, 베이스, 트라베르소 2명, 오보에 2명, 바순 그리고 오르간. 성우 김종성씨가 나와서 요한복음을 낭독하고 곡은 시작되었다.

놀랄만큼 힘이 있으면서 조용한 합창. 오케스트라와 앙상블을 이루면서 시종일관 경건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 중의 백미는 누가 뭐래도 마크 패드모어. 혼자 라운드티를 입고 머리를 빡빡 깎은 모습으로 나와서 저게 누군가 했는데, 그가 바로 에반겔리스트였더라. 나중에 보니 발에도 깁스를 하고 공연 후반부에선 기침까지 하는 것으로 보아 몸 컨디션이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도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해 처음부터 끝까지 수난곡 공연을 이끌고 있었다. 정말 청아한 그의 미성은 예수의 수난에 같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으로 비추어 졌다. (얼굴도 고통에 찬 표정으로 줄곧이었다.) 요한수난곡은 마태수난곡처럼 극적이지는 않았지만 매우 경건하고 에반겔리스트의 역할도 더 중요한 것 같다.

캐롤린 샘슨이 빠지고 들어온 소프라노 리디아 토이셔는 얼굴만큼이나 목소리도 아름다왔고, 간혹 커크비여사를 연상시키는 청아함을 들려 주었다. 알토의 마이클 챈스, 빌라도역의 매슈 브룩을 비롯 모든 단원들이 훌륭했다.

실연으로는 처음 들어보는 비올라다모레. 소리가 매우 작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1층으로 좌석도 바꿨고..) 생각보다는 그렇게 작지는 않았다. 특유의 곱고 부드러운 음색이 테너 (마크 패드모어)와 또 베이스와 아름다운 앙상블을 만들었다. 류트가 없는 것이 조금 아쉬웠지만.... (비올라다모레 중 한 분은 바로크보우로, 또 한 분은 모던보우에 가까와 보이는 활로 연주를 했다. 조금 멀어서 정확히는 안보이긴 했다. )

처음부터 끝까지 콘티뉴오를 담당하여 연주하던 오르간, 베이스, 첼로도 멋졌다. 특히 첼리스트인 조나단 맨슨은 매우 안정되고 깨끗한 음색으로 슬픔에 가득찬 선율을 연주해 주었다. 알토와 함께한 그의 비올라다감바도 좋았는데, 사실 그가 연주하는 바로크첼로 소리도 만만치 않게 좋았다. 비올라다감바는 정말 고요하고 아름답게, 비장하게 최후가 다가왔음을 노래하는 알토와 같이 노래하고 있었다. 비올을 내려놓자 마자 다시 첼로를 잡은 조나단 맨슨은 이어지는 베이스의 아리아에서 서로 선율을 주고 받으며 이어 나갔다. 정말 아름다운 첼로!

오보에다카치아는 소프라노의 아리아에서 트라베르소와 같이 부드럽게 예수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었다.

2부 시작 전에 시편과 T.S. 엘리엇의 시 낭독도 성우분이 나와서 했는데, 과문한 탓에 엘리엇의 시를 이해하기가 쉽지는 않았다. 한국어로 듣는데도 무슨 말인지 이해가 잘 안가서 자막을 읽고 있었는데, 어차피 읽어야 할 것이라면 원래 영시로 들려 주는 편이 영시라면 있었을 라임도 느껴질 수 있고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수난곡의 마지막 합창까지 매우 감동적이었다. 수난곡이 끝나고 합창단과 오케스트라가 모두 같이 야코프 한들의 '보라, 의인이 어떻게 죽었는지를'을 부를 때에는 정말 같이 따라 부르고 싶을 정도였는데... 불행히도 나는 그 노래를 예습하지 못해 프로그램에 가사가 쓰여져 있는 데에도 부를 수는 없었다... (따라 불렀으면 돌 맞았을까?) 오케스트라까지 같이 부르는 데도 합창단의 맑은 음색이 압도하고 있어서 무반주로 울려 퍼지는 곡이 수난곡의 끝부분에 너무나 아름다운 여운을 남기고 있었다.



(미디파일 링크: http://wso.williams.edu/cpdl/sound/handl/gall-ecq.mid)

종교가 없슴에도 들으면서 감동을 느끼게 되는 바흐의 수난곡.... 바흐가 느끼고 이해하고 가슴 아파했던 예수의 수난이 그의 음악을 타고 300년 가까운 세월을 뛰어넘어 나에게 온다니... 그렇기에 음악은 신비한 것인가 보다.

프로그램

요한복음 1장 1절-5절 낭독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요한수난곡 BWV 245 1부
시편 22장 1-29절 낭독
리틀 기딩 5부 (T.S. 엘리엇, 4개의 사중주 중) 낭독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요한수난곡 BWV 245 2부
야코프 한들: 보라, 의인이 어떻게 죽는지를

Reading from Gospel of St.John I: 1-5
J.S.Bach : Johannes Passion BWV245 PART I
Reading of Psalm 22:1-19
Reading of T.S.Eliot "Little Gidding" part V from "Four Quartets"
J.S.Bach : Johannes Passion BWV245 PART II
Jacob Handl: Ecce quomodo moritur just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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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 성토마스 합창단 2008년 2월27일

재작년 헤레베허가 와서 B단조미사를 연주했을 때 미국 출장과 날짜가 겹쳐 버렸다. (올해도 이미 예매한 허프 리사이틀과 출장 날짜가 겹칠 듯...ㅡㅜ) 정말 가고 싶었는데 갈 수가 없게 되어 버렸다. 나중에 공연이 감동적이었다는 후문을 듣고 어찌나 안타깝던지...

28일의 계몽시대오케스트라의 요한수난곡을 일찌감치 신청하여 놓고, 이 공연은 갈까 말까 한참을 망설였다. 다른 이유가 아니라, 연이어 이틀을 공연을 가야 하고, 또 바로 전 주말에는 페레니와 쉬프 공연을 잡아 놓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프로그램이 B단조 미사였던 탓에 결국은 예매를 했다. 합창석.

공연 시작전. 내가 앉은 좌석 주변이 영 분주하다. 아마도 별로 바람직하지 않은 이웃 관객들을 만난 듯 했다. 그래도 정숙하길 요구하는 자막과 안내문, 방송까지 계속 하고 있으니 별 탈이야 없겠지라고 생각했다.

생각보다 오케스트라의 규모가 작았다. 바이올린은 파트별로 6명씩, 비올라 4, 첼로3, 베이스2. 트럼펫, 오보에, 플룻, 바순, 혼, 오르간, 하프시코드.... 아주 작다고 할 수는 없을지도 모르지만 예상했던 것보다는 작은 규모였다. 성토마스 합창단은 오케스트라에 비해 규모가 컸다. 대충 60명이상이 되는 듯.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의 아이들에서 고등학생 정도까지 되는 큰 아이들까지 있었다. 동양아이로 보이는 소년도 한 명있었다.

오케스트라는 합창에 비해 숫적으로도 작았지만 소리도 좀 작았다. 현은 비브라토를 거의 하지 않은 채로 연주를 했다. 요즘 같은 세상에 바흐의 음악을 논비브라토로 연주하는 것은 전혀 특이한 일은 아니긴 하지만 말이다. 대체로 오케스트라는 깔끔하고 간결한 연주를 들려 주려고 노력했었던 것 같다.

합창석에 앉은 탓에 독창자들의 노래는 충분히 감상하기에 좀 어려움이 있었다. 합창은 좀 어수선한 감이 없잖아 시작하긴 했지만, 몇몇 곡들은 꽤 멋진 화음과 여운을 들려 주었다. 먼 나라에 와서 열심히 부르는 꼬마들이 정말 귀여웠다고나 할까...^^;

악장 아저씨가 소프라노와 연주할 때는 사실 좀 실망스러웠다. 대체적으로 현의 연주는 큰 감동이 없었다. 그에 비해 관은 괜찮았고... 연주가 모두 끝나고 솔리스트로 연주를 했던 사람들이 하나씩 일어나 인사를 하는데, 오르간과 하프시코드가 인사하는 차례가 되자 합창단 아이들이 발을 굴렀다. 아마도 평소 오르가니스트와 같이 연습했었거나.. 그 아줌마와 상당히 친밀한 관계인 듯... 박수가 이어지자, 예정에 없던 앵콜이 있었다. 칸토르가 합창단 쪽으로 다가가 아이들에게 곡명을 이야기하고는 바로 합창이 시작되었는데... 아마도 평소 잘 부르던 곡인지 모두들 악보없이 불렀고 무척 아름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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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

그 "바람직하지 못한" 이웃 관객은 사실 나의 이번 공연관람을 거의 완벽하게 망쳐 주었다.

뭔 짐이 그렇게 많은지 공연 시작 전부터 부시럭대던 내 옆의 아가씨 또는 아줌마는...  인터미션 전까지 전반부 내내 어디론가 문자를 보내고 있는 듯 했다. 문자를 보내기 않을 때는 비단조 미사에 맞추어 머리를 흔들었다. 이봐요... 이건 춤곡이 아니라 미사곡이란 말입니다...;; 라고 말하고 싶은 걸 참았다. 살살 흔드는 것이 아니라 거의 상체가 움직여서 바로 옆의 나는 음악에 집중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후반부, 빈자리로 옮길까 말까 심각하게 고민하다가... 그냥 그자리에 앉은 것이 나의 잘못이었다. 전반부 문자대화의 주인공인 남자친구가 온 모양이다. 이제 문자는 안보내겠구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아가씨 기침을 시작한다. 기침을 막아 보려고 사탕통과 물병을 번갈아 찾으며 사탕을 물었다 물을 마셨다 난리가 났다. 다 좋은데... 동작이 다 크다. 짐이 많아 사탕통은 바닥에 내려 놓고 집었다 놨다. 물병은 손에 들고 있다가 귀찮은지 의자 뒤로 어정쩡하게 세워 두려다 결국 바닥에 떨어 뜨리더라... 후반부 내내 그러면서... 곡에 맞춰 머리 흔드는 것도 여전하다. 정말 짜증이 엄청나게 밀려 왔는데....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곡. 그 두 남녀는 급기야 떠들기 시작했다. 뭔 이야기인데 공연 중에 손곤소곤 대냔 말이다.

공연이 끝나고 30초를 기다려 달라는 안내문을 무시하고 그다지 오래지 않아 박수가 나왔다. 그러나 그 남녀, 자랑스럽게.. "30초 기다리라는데 박수친다"며 낄낄대며 떠들기 시작했다. 본인들은 최대한 공연장 예절를 지켰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사실 공연 내내 무시하려고 애쓰고, 끝나고도 기억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난 아직까지 아마 화가 풀리지 않은 모양이다. 박자 맞춰 춤추는 것... 제발 집에서 혼자 음악들으면서만 하세요.... ㅡㅜ)

그냥...

어제 오늘 연달아 바흐 연주를 들었는데도 - 둘은 좀 많이 다른 바흐였지만... - 계속 바흐를 듣고 싶은 기분인데다가... 사놓고 뜯지도 않은 음반들이 집안 여기저기 돌아 다니고 있는데도 이리저리 만나는 음악들을 또 듣고 싶으니...

마치 숙제가 잔뜩 밀린 학생이 된 것 같은 느낌이다.  (지겹고 하기 싫은 숙제말고... 재밌고 흥미진진한 숙제...)

세상은 넓고 음악은 너무나 많다. 너무나 많은 작곡가들의 너무나 많은 곡들이 있고 너무나 멋진 수많은 연주자들이 있다.... ㅡㅜ

그나저나 어제와 오늘의 공연 후기는 다음 기회에....

2008년 2월 25일 월요일

[공연] 안드라스 쉬프 독주회 2008년 2월 24일

일요일이라서 가족모임이 있었는데, 연주회 시간에 맞춰 저녁도 먹다말고 일어나 나왔다. 드디어 오늘이 쉬프의 바흐를 듣고 볼 수 있는 날이 아니던가...

가격대비 효용이 큰 합창석. 역시 피아니스트의 손가락이 보이는 위치에 자리를 잡았다. (공연을 보면서 합창석 중간으로 할 걸 그랬다는 후회가 좀 들었다. 뒤쪽에서는 그의 페달링 - 뭐.. 바흐에선 페달을 전혀 안썼다고는 하지만 - 이 잘 보이지 않았고, 어떤 표정으로 연주하고 있는지도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연주회장 밖에서 김선욱군이 친구들과 같이 있는 모습을 보았는데, 홀에 들어 오니 멀리 1층에 정명화씨가 앉아 있는 모습도 보인다. 엊그제 페레니와의 듀오 연주회가 끝나고 나서도 정명화씨를 볼 수 있었는데 말이다.

프랑스 모음곡으로 시작된 쉬프의 연주는 놀랍도록 명확한 아티큘레이션을 들려 주었다. 명료한 음색. 주선율과 부선율이 또렷또렷 살아나 마치 바흐의 악보를 눈 앞에 펴 놓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쉬프의 연주하는 뒷모습에 악보들이 펼쳐져 같이 흐르고 있는 환상이 보이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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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
J.S. Bach, French Suite No.5 in G major BWV 816
J.S. Bach, Italian Concerto BWV 971
J.S. Bach, Partita No.2 in c minor BWV 826
Schumann, Fantasie in C major, Op. 17
Beethoven, Piano Sonata No.21 in C major, Op. 53 "Waldstein"


인터미션에 계단에서 임동혁군이 걸어 내려오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쉬프의 바흐를 들으면서 요즘 한창 바흐로 전국투어를 하고 있는 임동혁군이 생각났었다. 바흐와 임동혁을 연결시키는 것이 어려워 그 공연은 보지 않기로 했었는데, 그래도 임동혁의 바흐는 어떨까 조금 궁금했었는데... 쉬프의 연주회에 와 있었을 줄은 몰랐다. 같은 연주자로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인터미션 후에 이어진 슈만의 환상곡은 피아노곡이라는 생각을 넘어 마치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듣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만들었다. 요즘 슈만 교향곡 1번을 연습하고 있기 때문에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정서적인 불안감을 느끼게 만드는 조울증 환자의 곡 같은 ... 그런 매우 슈만스러운 느낌은 쉬프의 극적인 연출로 더 힘을 얻었다. 프로그램의 마지막 곡인 발트슈타인. 헉.... 지금까지 들어왔던 수많은 발트슈타인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역시 매우 극적인 연출이고 매우 독특한 해석으로 느껴졌는데, 템포를 꽤 많이 변화시키면서 연주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피아노 한 대로 들려 줄 수 있는 가장 다양한 음색을 연출해 내는 낯선 발트슈타인이었다고나 할까....

어떻게 피아노, 피아니시모로 연주하면서 저렇게 명확한 음색을 들려 줄 수 있는 것일까....

열광적인 박수갈채가 이어지고, 쉬프는 예의바르게 객석 이쪽 저쪽을 향해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예전에 보았던 키신의 절도 있는 인사와도 비슷했다. 쉬프는 이어 3곡의 앵콜을 들려 주었다. 슈만의 아라베스크, 슈베르트의 헝가리안 멜로디, 그리고 바흐 파르티타. 슈만은 너무나 유려했고, 헝가리안 멜로디는 슈베르트의 곡이라는 것을 못듣고 제목만 간신히 알아 들었는데 헝가리 출신이라 선곡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다 어영부영... 마지막 바흐의 파르티타 1번은 연주회 전반부에 감동을 주었던 바로 그 바흐를 다시 들려 주었다. 브라보!

(역시 집에와서 구글에서 헝가리안 멜로디로 검색.... 유튜브에서 너무나 젊은, 아니 젊다 못해 어린 쉬프의 연주를 찾아 냈다 ^^)
Schubert Hungarian Melody D817 in B minor

[공연] 미클로스 페레니, 안드라스 쉬프 듀오 콘서트 2008년 2월 22일

금요일 저녁.  페레니의 공연을 마다하다니... 본인이 싫다는데에야 어쩌랴. 첼로 공부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것 같아 2장이나 표를 구입했었는데... 남편 대신 이제 8살인 도윤이와 같이 예술의전당을 찾았다. 워낙 유명한 연주자들이라 관객이 많을 줄 알았는데, 콘서트홀을 반정도 채웠을까 싶을 정도.. 도윤이와 같이, 피아니스트의 손가락과 첼리스트가 바로 보이는 박스석에 앉았다. 8명이 앉을 수 있는 박스석엔 우리 밖에 없었다.

프로그램은 전곡 베토벤. 피아노와 첼로를 위한 소나타 2번이 시작되자 페레니가 들려주는 첼로의 음색에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쉬프의 선명한 아티큘레이션과 페레니의 아름다운 음색이 어우러져 만들어 지는 베토벤의 첼로소나타...

Photo: Miklos Perenyi and Andras Schiff











페레니 사진 더보기

프로그램:
베토벤,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제2번 G단조, Op.5 No.2
베토벤,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제4번 C장조, Op.102 No.1
베토벤, 모차르트 <마술피리> 중 ‘한 소녀나 여인을 파파게노 원하오’ 주제에 의한 12개의 변주곡 F장조, Op.66 베토벤,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제3번 A장조, Op.69


페레니와 쉬프는 오래 전부터 작업을 같이 해왔다고 들었는데, 언젠가 누군가의 블로그에서 둘의 연주를 듣고 하모니가 엉망이었다고 평을 올려 놓은 것을 본 적이 있어서 사실은 내심 불안했었더랬다. 2004년에 베토벤 첼로소나타 음반을 내놓은 이후로 두 연주자는 베토벤으로 이루어진 유사한 프로그램으로 세계 곳곳에서 상당히 많은 연주를 해왔었고, 각각이 너무나 뛰어난 연주자인데... 앙상블을 이루지 못했다니...

그러나, 그런 불안감은 연주가 시작되자 서서히 사라져 갔다. 쉬프의 피아노는 첼로와 듀오일때 피아노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대답을 들려 주는 것 같았고, 페레니의 첼로는 안정적이고 거침없는 피아노를 바탕으로 자신의 길을 가고 있었다. 예전에 동영상으로 본 굴드와 로즈의 연주보다 맑고 투명한 느낌이었지만, 둘의 조화와 앙상블은 그 연주처럼 완벽했다.

관객의 태도도 나무랄데가 없었다. 나는 도윤이가 혹시라도 부시럭대고 소릴 낼까봐 좀 불안했지만, 꼬마는 나름대로 의젓하게 "지루한" 2시간을 참아 주었고... 관객들은 곡의 마지막 여운까지 감상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유명한 3번 소나타로 본 프로그램을 마친 후, 쉬프와 페레니는 차례대로, 멘델스존의 무언가, 베토벤의 마술피리 변주곡, 쇼팽의 첼로소나타 3악장을 앵콜로 연주해 주었다. (지극히 쇼팽다운 쇼팽의 첼로 소나타는 너무나 감성적이었다.)

음악을 들으면서 한동안, 콘서트홀의 높은 천정들 아래 공간 속에서 음표들이 부드럽게 날아 다니며 춤을 추는 모습을 보는 것 같은 착각에 빠졌었다. 페레니의 첼로가 들려 주던 놀라울 정도로 맑은 음색은 절대 잊을 수가 없을 것 같다.

(페레니의 음색에 빠져버린 나는... 집에 와서... 한참 인터넷을 뒤져 페레니의 악기가 1730년 갈리아노라고 쓰여 있는 사이트를 발견했다. 어느 갈리아노가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Alessandro Gagliano? 코지오닷컴에도 별다른 정보는 없었다.) 하지만, 페레니 음색의 비밀은 결코 악기만은 아닐 것 같다. 놀라울 만큼 완벽해 보였던 그의 보잉이 아마도 맑고 투명한 음색의 비밀이지 않을까...)

2008년 2월 19일 화요일

허접 블로그에 대한 변명

큰오빠가 내블로그에 와본 모양이다. 사용하지도 않고... 사용한 적도 거의 없는... 싸이월드 미니홈피 대문에 블로그 주소를 써놓았는데 그걸 보고 이 쪽으로 넘어 왔다고 한다. 나이와 이름만 알면 검색이 되는 대단한 싸이월드....

블로그가 왜 그리 조잡하냐는 둥... 바이올린 관련된 블로그라는데 뭐 별로라는 둥.... ㅡㅜ 한 시니컬씩 하는 우리집 식구들답게 영 맘에 안든다는 투로 얘기한다.

사실 블로그를 만들어 볼까라는 생각을 했을 때는, 내 이야기를 많이 써볼 생각이었다. 바이올린을 배우면서, 음악을 들으면서 느낀 이런 저런 생각들을 적으면서 스스로 정리도 하고 (허공에 대고 떠드는 것 같긴 하겠지만) 스트레스도 풀고...ㅎㅎ 그러다가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글들도 가끔은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또, 영어로 되어 있거나 체계적으로 되어 있지 않은 자료들도 나 나름대로 정리하고, 번역하여 볼 생각도 있었다. 내가 영어를 그다지 잘 못해서인지, 영어로 된 글을 읽으면 우리말처럼 머리에 쏙쏙 들어오질 않는다. 문장을 하나하나 번역하면 비록 시간도 걸리고 어떤 식으로 옮겨야 할지 고민도 하게 되지만, 내용이 나 스스로에게 더 잘 이해가 되기도 하여, 관심이 있는 article은 블로그에 번역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여러가지 다른 내 블로그 아니어도 인터넷의 곳곳에 엄청나게 깔려 있는 것이니 굳이 그걸 옮겨다가 반복할 생각은 없었다. 음악파일의 경우도, 굳이 블로그에 올려서 들어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면 별로 올려 보고 싶지 않았고...

그런데, 블로그를 관리하고 읽어볼 만한 글을 정기적으로 올리는 일은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일단, 블로그에 게시글을 하나 올리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단지 인터넷에 접속하여 글을 쓰는 시간이 아니라... 그 글에 어떤 내용을 담기 위해서 내가 준비하고 생각해야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저 스쳐지나가는 일들에서 한 가지를 잡아내어 논리적으로 또 풍부한 자료를 가지고 그것을 나만의 생각과 내가 관심있어 하는 주제로 연결시키는 일은, 단순히 (이 글이나 다른 글들처럼) 느낌이나 감정을 문자로 적어보는 일과는 많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현재는 그저 다분히 감정적인, 그리고 지루하게 반복적인 나의 일상사에 관련된 글들이나... 또는 어딘가에 있는 자료의 reproduction만을 하고 있다 (copy & paste만 하는 것은 아니라고 자위하면서....). 더구나 번역이라고 해 놓은 글들은 아름다운 우리말을 파괴할 뿐만 아니라... 도무지 무슨 뜻인지도 알 수 없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기도 하고...;;

흠... 언젠가는 나도 매우 informative하면서도 나만의 논리가 들어 있는 '좋은' 글을 쓸 수 있을까나...

2008년 2월 18일 월요일

프랑수와즈-조세프 고섹 1734-1829


François-Joseph Gossec (1734-1829)

가보트와 탕부랭으로 유명한 고섹. 어린이를 위한 음악을 주로 작곡한 작곡가가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들만큼 발랄하고 아름답고 신나는 선율의 곡들이다.

고섹은 1734년 1월17일에 네덜란드 남쪽의 베르니스 (현재는 벨기에)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고, 17세에 프랑스로 건너간 이후로 프랑스에서 작곡가로서, 지휘자와 음악감독으로, 또 교수로서 일생을 보냈다. 그는 요한 슈타미츠의 영향으로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교향곡 형식을 익혔고, 라모의 지휘 하에서 바이올린과 베이스를 연주하기도 하였다. 수많은 교향곡을 써서 프랑스에서 교향곡을 대중화시켰고, 줄곧 귀족들을 위한 오케스트라와 오페라좌에서 일했었지만,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자 공화주의자로서 신체제를 옹호하며 혁명 대중을 위한 음악들을 작곡하기도 하였다. 프랑스 학술원 및 콩세르바튀르의 창립멤버이기도 했으나, 나폴레옹이 득세하고 다시 귀족정치가 시작되자 물러나 후학을 양성하는데에 몰두한다. 나폴레옹의 워털루 패전 후 콩세르바뛰르가 문을 닫자 그는 파리교외의 파씨로 은퇴한 후 95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고섹은 서정적인 곡을 쓰는 재능과 오케스트라의 소노리티에 대한 예민한 감각을 가지고 있었고 이 둘은 결합되어 그의 최고의 작품들에서 뛰어난 효과를 거두었다고 한다. 앞서 언급한 바대로, 요한 슈타미츠의 강한 영향을 받았으나 매우 독자적인 면도 있었다. 후기 교향곡들은 충만한 소노리티와 뛰어난 관파트가 있는 훌륭한 작품들이다.

그는 실질적으로 18세기 프랑스 음악을 이끌며 많은 작품을 쓴 다재다능한 작곡가였다. 그는 화성적인 상상력과 소리의 질감에 대한 감각에 의존하여 오케스트라의 역량을 증가시켰다고 한다. 또한 그는 낭만주의를 예고하는 많은 실험을 하는데, 예를 들어, 그의 테 데움 (1779, 1200명의 가수와 300명의 관악주자)은 훗날 베를리오즈의 작품에 영향을 주었다. 그의 음악에 있어서 분명한 형식과 오케스트라 색채의 혁신은 프랑스 기악음악 발전에 강한 영향을 주었다. 프랑스 밖에서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작곡가라고 할 수 있으나, 모차르트와 베를리오즈는 그의 레퀴엠을 극찬하고 자기들의 장례미사곡의 모델로 삼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