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3월 31일 화요일

[공연] 바이올린과 콘티뉴오를 위한 7개의 소나타 2009. 3. 21

헨델 250주기를 맞아서 인지, 아니면 그냥 그렇게 프로그램이 짜여졌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번 연주회는 꽤 저렴한 가격에 헨델 바이올린 소나타 중 7곡의 연주를, 그것도 비올라 다 감바까지 가세한 바쏘 콘티뉴오를 곁들여 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여겨졌다.

바이올린은 기리야마 다케시. 감바는 사쿠라이 시게루, 그리고 챔발로는 오주희씨가 맡았다. 감비스트는 전에도 종종 본 적이 있었던 듯 하지만, 기리야마 다케시의 공연은 못 본 터라 궁금하기도 하고 기대가 되기도 했다.

연주되는 소나타 중에서 2곡은 스즈키 6권, 그리고 한 곡은 스즈키 7권에 있는 곡이라서 바이올린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는 매우 친근한 음악들이었다. 더구나 모던 바이올린에 피아노 반주로 곡을 공부했던 학생들에게 바로크 바이올린에 감바와 쳄발로로 어우러지는 연주는 새롭고 흥미로운 것이 될 수 밖에 없다.

1부는 유명한 A major 소나타에서 시작하여 4곡의 소나타가 연주되었다. 익숙하고 아름다운 멜로디가 이어지긴 했지만, 군데 군데 앙상블이 살짝 어긋나기도 하고 건조한 날씨 탓인지 거트현의 삑사리도 들려와서 조금 아쉬웠다. 3곡의 바이올린 소나타가 기다리고 있는 2부에서 기라야마 다케시는 기력을 회복한 듯 투명한 바로크 바이올린 특유의 사운드를 계속해서 들려 주었다. 나는 기리야마 다케시가 어떻게 바이올린을 연주하는가에 집중할 수 밖에 없었는데.. 스즈키 6권의 헨델 소나타들의 슬러, 운지, 보잉은 모두 완전히 다르게 연주되고 있었다. 챔발로와 감바의 바쏘콘티뉴오도 피아노 반주와는 달라서 곡이 완전히 다른 곡처럼 느껴졌다.

다른 작곡가들과는 달리 (예를들어 바흐는 매우 진지하고 성실한 이미지) 나에게 헨델이라는 작곡가는 어쩐지 좀 사기꾼같은 이미지인데ㅡㅡ;; 그렇다고 내가 헨델의 음악을 싫어하지는 않는다. 사실 오히려 매우 재미있어 하는 편이다. 바이올린 소나타에는 다른 좀 규모가 큰 곡들에서 느껴지는 드라마틱한 느낌이나 박진감은 그다지 없지만 한 곡 한 곡이 마치 작은 오페라와 같은 스토리가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4악장으로 이루어진 소나타들의 느린 3악장은 오페라의 아리아들 사이에서 한 숨 쉬어가면서 마음 속에 있는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레치타티보같은 느낌도 들었다. 연주자의 표현력이 돋보일 수 있는 부분.

기리야마 다케시의 왼손은 좀 큰 편인 것 같았다. 왼손을 운지할 때 손에 힘이 많이 들어가 있는 것 처럼 보였는데 손이 크기 때문에 또 손의 움직임이 커 보여서 그렇게 느껴졌었던 것 같다.

흥미진진했던 2부가 끝나고, 이어진 앵콜곡에 앞서 기리야마 다케시는 서툰 한국말로 곡명을 이야기 해주었는데 D장조 1악장이라는 것만 알아 들을 수 있었다. 앵콜곡은 너무 삑사리가 많이 나서 집중하기는 힘들었다. 아무래도 건조한 날씨에 거트현을 연주하는 것은 정말 까다로운 일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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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3월 24일 화요일

Karsh展 - 파블로 카잘스

가보고 싶긴 한데... 아직 못 가봤다. 아마도 못 가볼 것 같다.

호주의 National Gallery 웹사이트에는 카쉬의 작품이 몇 점 실려 있는데, 그 중에 파블로 카잘스의 사진도 있다.

Yousuf KARSH, Pablo Casals

1954년 작품. 사진을 찍은 카쉬의 감상....

‘I decided to photograph the master of the ’cello from the back, in a partially restored abbey in Prades … lost in his music. For me, the bare room conveys the loneliness of the artist, at the pinnacle of his art, and also the loneliness of exile.’ (Karsh)

카쉬는 누구도 뒷모습을 카메라에 담은 적이 없다고 하는데, 카잘스의 경우는 그것이 맞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사진은 카잘스가 망명지인 프라드의 한 성당에서 연주하는 모습을 찍은 것인데, 파시즘정권에 항거하여 떠나온 고향을 그리며 단호한 모습으로 뒤돌아 앉아 (내 추측이지만 아마도 바흐를) 연주하는 노 첼리스트의 뒷모습에서 외로움과 경건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 얽힌 유명한 일화 - 보스턴에서 전시되고 있을때 어느 노신사가 매일 찾아와 한참을 그림 앞에 서 있다가 가곤 했단다. 호기심을 느낀 큐레이터가 왜 늘 거기 서있냐고 질문하자, 그 신사는 "쉿. 조용히 하게. 지금 내가 음악을 듣고 있는 것이 보이지 않는가!"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제 조용히 음악을 들어 보자...

2009년 3월 23일 월요일

메종드라뮤지크와 코르다앙상블

파랑곰님이 뒤포르에 올려주신 사진 중에서 몇 개를 가져왔다. 내가 가본 가장 이쁜 연주장소였던 메종드라뮤지크와 우리 멤버들 사진.

무대와 객석 사이에 놓여 있던 테이블. 아기자기한 소품들로 가득하다.

객석. 유럽의 어느 살롱에 온 것 같은 느낌이랄까. 객석에만 앉아 있어도 영화속으로 들어 온 듯한 느낌이다.

무대. 우리 앙상블 연주때문에 보면대가 너무 어지럽게 많이 나와있다. 작지만 깔끔하고 산뜻한 무대. (야노쑤님 리허설 중...)

오보에 독주를 맡아준 귀여운 예은이. 배운지 얼마되지 않았다는데 너무 잘한다는... 그나저나 이번에 아줌마들이 잘 못 맞춰줘서 미안해...ㅠㅠ

피아노와 써드 바이올린을 맡은 꿈꾸는이님. 그 날 반주하느라 고생많이 하셨다.

첼로, 착한반장. 자학당수로 이 엽기적인 음악회를 주관.

비올라, 동글맘님. 연습녹음마다 스펙트럼분석까지 하시는 진지함과 성실함을 보여 주는 분.

세컨바이올린, 셔니양. 어쩌다가 어영부영 내 꼬임에 빠져 가입한 앙상블의 막내.

행사 주관하느라 바쁜 착한반장을 빼고 몰래 찍은 앙상블 사진.

위 사진에서 반장을 빼고 찍었더니... 이번엔 내가 빠졌당...;; 너무 멀찍이 떨어져서 서서 더 소리가 따로 국밥이었던 걸까...;;;;
내가 악기들고 서 있는 사진은 별로 없어서 몰랐는데, 어찌 연주할 때 표정이 저 모양인지. (보칼리제 연주할 때 찍은 듯... 곡이 구슬퍼서 표정도 저렇다고 우기는 수 밖에...)
뭔가 상당히 못마땅한 듯하며 귀찮은 듯한 표정....;; 파랑곰님이 사진 전공자라고 하시더니... 사진에 내 인간성이 담겨있는 거 아닌가 싶다. 다음엔 좀 밝은 표정으로 찍혀야지.

먼나라 이야기가 아님...;

Dilbert.com

늘 공감과 썩소를 불러일으키는 만화.. 딜버트의 오늘자 코믹인데.. 먼나라 이야기이기는 커녕.. 바로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인 것 같아 심히 공감이 되는 중이다. 

2009년 3월 22일 일요일

제1회 노관객 연주회 2009년 3월 21일

관객없는 연주회인데 뭐.... 라면서 그다지 걱정을 하지 않았긴했는데.... 막상 연주회가 다가오면서 조금씩 불안해졌다. 연습도 많이 못했고 (아마추어들이야 늘 하는 변명이지만)... 앙상블 연습날 모여 연습해보면 잘 안맞는 것 같은데다가, 나름 독주곡 준비한 것도 집에서 할 때와는 달리 버벅대기만하고... 하여간, 불안하기는 하지만, 즐거운 놀이하는 기분으로 아침 10시에 연주 장소 근처의 모 교회에서 모였다.

생판 모르는 남의 교회를 빌려서, 2시간 연습을 했는데, 연습장소가 뜻밖에 너무 울림이 좋아서... 이런 울림이 있는 장소라면 소리는 괜찮게 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었다. 밥을 먹고, 연주장소인 메종드라뮤지크로...


이건 우리가 찍은 사진은 아니고, 메종드라뮤지크 까페에 올라와 있는 사진을 퍼왔다. (사진은 많이 찍'히'긴 했는데 아직 못받았다) 전에도 여러번 봤던 사진이기는 했는데... 막상 가보니 사진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멋진 곳이었다. 연주회 생각이 싹 사라지고 이런 홀에서 매일매일 음악회하면서 살면 진짜 행복하겠다는 생각만 가득....;;

홀에서 맞춰 본다고 몇 번 해봤는데.. 영 만족스럽지가 않다. 특히 오보이스트랑은 한 번 맞춰보고 바로 연주회를 시작해야 하는 상황인데, 막상 해보니 오보에소리도 잘 안들리고. 오보에따로 우리따로 따로국밥 연주가 되고 있었다. 게다가 꼬마 오보이스트가 다른 스케쥴이 있어서 맨 첫 순서로 우리가 연주해야하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어쨌거나, 자학당 당원들이 속속 모여들고... 시작시간인 4시가 되자 아침부터 모여 있던 우리들은 이미 엄청 지치고 피곤한 상태가 되어 버렸다.

첫 순서로 무대로 올라가 연주하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긴장이 되고 말았다. 바이올린을 할 때 긴장이 되면... 몸에 힘이 들어가기 때문에 보잉이 엉망이 된다. 가뜩이나 평소에도 소리를 크게 내지 못해서 걱정이었는데, 활이 떠서 밀착이 안되니 소리가 붕붕 뜬다..그걸 무시하지 못하고 "헉..."하고 생각하다 보니 더욱 긴장이 되고 활이 더 뜨고...;;;

가브리엘즈 오보에는 오보이스트도 떨고... 뒤에서 오보이스트의 박자에 맞추며 우리끼리 박자도 맞추다 보니 역시 예상했던 대로 따로국밥이 된 모양이다. 끝나고 내려와서도 한동안 긴장이 안 풀려서.. 지금 독주곡을 해야 하면 난 죽었다... 라는 생각만 들더라는... 희한하게도, 무대에 올라가기 전보다 연주를 시작하고 좀 지나서 그리고 끝나고 나서가 더 긴장이 되는 걸 보면, 생각했던대로 연주가 되지 않자 당황하기 시작한 것이 문제였던 모양이다.

연주한 사람이 그 다음 차례를 제비뽑기로 정하는 식으로 연주순서가 정해지는 방식이어서, 내가 언제 나가서 연주하게 될 지 모르는 상황... 그래도 다행이 바로 연주하는 것이 아니어서 몇 차례가 지나자 어느 정도 진정이 되었다. 대부분이 일찍 와서 한 번씩 반주랑 맞춰보고 했었는데, 거의 본 연주가 리허설만 못했다. 노관객이어도 긴장이 되는 것은 누구에게나 당연한 일인가보다. 차분하게 연주를 하던 사람들도 가끔씩 당황도 하고.

내 순서가 되니 또 긴장... 떨린다기 보다는... 몸에 들어간 긴장감을 덜어내어 보잉을 안정시키는 것이 잘 되질 않았다. 박자도 나도 모르게 급해지고... 비브라토는 경련이고..;;;;; 대강 끝내고, 세원씨 차례에 세컨으로 한 번 더 연주해 주고나서 연주회가 끝났다. 홀 옆에 있는 회의실겸 티파티룸에서 캐이터링한 식사를 하고 얘기만 들어왔던 듣던 자학당당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은하네 선생님도 만나고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우리 앙상블과는 커피 마시고 연주에 대한 자학을 좀 하고..;;; 다음 곡을 무얼할까 이야기를 나누었다. 앙상블 규모는 당분간 늘리지 않기로 했고... (사실 바이올린 잘하시는 분이 같이하신다면 언제나 환영이기는 하지만..ㅎㅎ) 이제 솔리스트를 초빙하는 일도 안하기로 했다. 늘 같이 호흡을 맞추는 것이 아니고 갑자기 만나서 연주를 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 무대공포증은 별 답이 없지만... 자주 연주를 하다보면 좋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

집에 와서 뒤포르의 한 회원이 찍어 놓은 내 독주곡 연주 동영상을 봤는데.... 음... 소심하기 짝이 없는 연주였다. 연주할 때도 소리가 영 힘이 없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역시 생각했던 대로였다. 활 밀착에 문제가 있고 자신감 부족까지... 보잉연습이 확실히 많이 필요하다.

(그나저나... 연주회 다음 날인 오늘 아침에 현을 갈았다. 연주회 끝나고 줄을 갈아 주는 이 황당한 센스란...ㅡㅡ;;; 미리 사 놓은 줄이 하나도 없는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었는데 아침에 줄을 주문할까하고 책장을 뒤져 보니 도미넌트 한 세트에 골드 e, 그리고 인펠트 한 세트가 나오더라는... 요즘 줄 값도 비싼데 돈 굳었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연주회 다음날 줄을 갈아 주는 것은 뭔가... 소 잃고 외양간 고치고 버스 떠난 후에 손 흔드는 듯한 느낌...ㅡㅜ)

관련글: 주최측인 자학당 당수의 공연 후일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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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3월 18일 수요일

잡담

한 열흘 정도 감기 몸살에 시달렸다. 그래서인지, 하여간 이상하게 피곤하다. 환절기인 탓도 있을 것 같다. 감기는 이제 좀 나아 졌는데, 어제 오늘은 황사 때문에 꽤 괴로웠다. 아... 정말 황사없는 봄을 맞을 수 있는 곳에 살고 싶다. 눈도 따끔한데다가 목도 계속 아프고. 중국에 손해배상청구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지...

한 2주 전 쯤 주가가 free fall을 할 때 회사 전체에 퍼졌던 암울함은, 지난 주 (매우 아이로니컬하게도) 신용등급 하락이 최종 결정되며 주가는 반등에 완벽하게 성공하게 되고, 이제는 좀 나아진 것 같다. (나아졌다는 건 순전히 내 느낌일지도...) 시장은 bad news보다는 불확실성에 더 동요한다. 그리고 확실한 bad news는 더이상 나쁘지 않고, 오히려 good news가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 하여간 그 동안 이 회사 관련된 뉴스가 온통 도배를 하고 해외 경제관련 블로그에 홍수를 이루는 바람에 읽을 거리가 많아져 한동안 심심하진 않았었다. (아직도 계속 읽을거리야 많지만...;;)

그러나, 한국 비즈니스가 어떻게 될 지는 본사의 사정과는 크게 관계가 없을 것 같고, 좀 더 시간이 흘러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하여간 요 며칠 안정적인 흐름이 이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아주 흥미로운 상황이기는 하다. 1분기가 지나고 나면 또 다른 상황이 벌어지지 않을까 싶다.

3월은 3월인 듯... 이번 달 들어 할 일이 많다. 사무실 화이트보드에 to do를 쭉 적어 놓았는데 번호가 계속 늘어간다. 게다가 거기 적어 놓고는 쳐다 보지 않아서, 모니터에 다시 포스트잇으로 당장 해야할 일을 따로 적어 붙여 놓았다. 하루 종일 미팅에 콜에 시달리다가 대강 마무리하고 퇴근을 하면서.... 이 정도로만 바쁘면 그래도 바쁜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바빠서 건강을 상하거나, 다른 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가 되면 문제겠지만, 그 정도는 아니니까. 이 정도로 바쁜 것은 할 일이 없어서 눈치를 보게 되거나, 회사 내 가십이나 불평 불만을 들어 주면서 시간을 보내야 할 정도로 한가한 것 보다는 백 배 낫다. 최근엔 계속 회사 다니기 싫다는 생각만 했는데 오늘 같이 "건전한" 생각을 한 것은 참 오래간만이다..ㅡㅡ;;

작년 말부터 우리 과 출신 여자 선 후배 동창들과의 모임이 꽤 잦아 졌다. 정말 오래간만에 만나는 사람들인데, 만나서 이야기를 하다 보면, 아직도 20년 전 그대로의 모습들이다.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 것인가 보다. 그녀들은 모두 참 씩씩하다.

노관객 공연이 이번 주 토요일로 다가왔다. 내일은 마지막 연습을 하기로 했는데, 그래도 처음보다는 조금이나마 나아지고 있는 것 같아서 다행이다. 공연 자체도 중요하긴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같은 마음으로 음악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공유하는 것인 듯 하다. 매 번 연습을 하면서, 그것을 단순히 과정으로 생각하지 않고, 한 번 한 번이 우리에게 중요한 연주라는 느낌을 가질 수 있게 되면 좋겠다. 연습을 통해서 곡을 좀 더 테크니컬하게 잘 연주하게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마추어 연주의 즐거움이라는 것은 완벽함의 추구 보다는 함께하는 음악에서 나오는 즐거움이어야 하는 것이 더 맞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2009년 3월 17일 화요일

[책] 알링턴파크 여자들의 어느 완벽한 하루


이 책을 읽으면... 삼사십대 소위 중산층 아줌마들의 사고방식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집단"에 속한 사람들과 교류하는 법을 사실 잘 모르는 것 같다. 나랑 비슷한 나이 또래에, 비슷한 나이의 아이들을 둔 사람들인데 말이다. 하여간... 그것이 이 책을 고른 이유이다.

최근에 이런 의도로 읽은 이 비슷한 책으로는 일본 작가인 에쿠니 가오리의 "장미 비파 레몬"이 있었는데, 한국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일본 여성들의 이야기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책 보다는 레이철 커스크의 이 책이 훨씬 더 한국 아줌마들의 삶과 비슷하게 느껴졌다. 그것은 아마 에쿠니 가오리가 세상을 보는 시각보다는 레이철 커스크의 시각을 내가 더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인 듯 하다.

그녀들의 "완벽한" 하루는 커스크의 시니컬한 표현법으로 읽힌다. 그러나, 소설에 등장하는 아줌마들의 생활은 "완벽하게" 현실적이다. 그녀들의 삶에는 어떤 환상도, 어떤 꿈도 더이상 남아있지 않다. 그녀들의 모성애는 신화가 아니며 전혀 감동적인 것도 아니다. 그것은 나에겐 완벽하게 현실로 다가 온다.

알링턴파크의 아줌마들은 지구 반대편 영국에 사는 사람들인데, 나에게는 무척 낯익은 모습이다. 그녀들은 내가 종종 아이들 학교에서 만나는 다른 아이 엄마들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가 않은 것 같다. 아이들을 위해서 정말 열심히 정보 수집을 하는 등 아이들 교육에 "올인"하는 것 같은 그 아줌마들에게 가끔 말을 걸어 보면 뜻밖에도 그녀들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곤 한다. 그녀들의 모습에서 엄마로서, 아내로서, 며느리로서 살아야 하는 지루함, 고통스러움, 갑갑함이 종종 느껴지는 것은 내가 심하게 시니컬한 인간이어서 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레이철 커스크는 이런 내 느낌과 비슷한 것을 느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이런 책을 쓸 수 있는 것은 작가가 그녀들에 대한 애정이 있어서 일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내가 소설가라면 이런 주제와 소재로 소설을 쓸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 나는 긍정으로 대답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 그리고 바로 그 점이 항상 그녀들과는 빈곤한 대화를 할 수 밖에 없는 나의 문제점인듯 하다.

사족 1 - 이 책 표지 그림은 퍽 마음에 들었다.
사족 2 - 레이철 커스크는 매우 섬세한 관찰력과 풍부한 표현력을 지닌 작가이다. 다음엔 그녀의 다른 작품을 한 번 읽어봐야 할 것 같다.

2009년 3월 8일 일요일

아베 야로, 심야식당 그리고 요시나가 후미, 어제 뭐 먹었어?

심야식당이라는 만화를 추천하길래, 그 책을 사다가 요시나가 후미의 요리만화라고 쓰여 있길래 어제 뭐 먹었어?도 같이 사 버렸다.

먼저 심야식당.... 단순한 메뉴판이지만 손님의 주문대로 만들어 지는 끝도 없이 다양한 음식들. 밤 12시부터 아침 7시까지의 영업시간. 눈에 칼자욱 흉터가 나 있어 험상궂어 보이지만 너무나 친근한 주인장.

그 시간에 음식점을 찾는 손님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조폭, 게이바 마담, 가수, 스트립걸, 조연전문 배우, 성인영화 배우, 회사원, 등등... 험한 세상을 쉽지 않게 살아가는 이웃들이다. 그들이 찾는 음식은 비엔나 소시지 볶음 (아래 그림 참조)에서부터 어제 만든 카레, 수박, 라면, 심지어 회에 곁들이는 무채 (그걸 먹는 사람은 첨 봤다..)에다... 베이컨... 기껏 고급요리여봤자 굴튀김 정도...


일본인들 뿐만 아니라 우리도 출출한 한 밤 중에 야식으로 먹을만한 바로 그런 음식들이다. 게다가 만화 속에서 그 음식들은 무지무지 맛있어 보인다.

소탈하면서도 특징있는 그림들에 밤에도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신주쿠를 헤매다 밥집을 찾는 사람들의 인간적인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우리 주위의 사람들을 바라보는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밥집 주인의 눈을 통해 느껴진다.

3권은 일본에서는 출시한 모양인데, 한국엔 언제 나올지...?

일본 소학당의 심야식당 소개 페이지: http://www.comics.shogakukan.co.jp/midnight_dining/index.html
(전에도 말했다시피.. 일본어는 문맹이라서...ㅡㅜ)



그리고 나서 읽은 어제 뭐 먹었어? 얼마 전 국내에서 영화로도 만들어졌다는 (아직 못 봤다. 앞으로도 볼 기회가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만화는 한 두권 정도 읽어 본 듯 한데.. 잘 기억이 안남..;;;;) 서양골동과자점의 작가 요시나가 후미의 신작이라고 한다. 원래 소위 BL류의 책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긴 하지만.. 이 책은 게이가 주인공이기는 하지만 그다지 부담스럽지 않게 읽힌다.

43세의 변호사인 시로. 매일 6시 칼퇴근하여 알뜰하게 장을 보고 솜씨 좋게 저녁 식사를 차린다. 미용사인 룸메이트이며 애인인 켄지와 함께 저녁을 맛있게 냠냠... 주인공이 심하게 동안에 미남인데다가 나오는 사람들도 어째 심하게 쿨하여 묘하게 현실성이 없게 느껴진다는 점을 제외하면 괜찮은 만화이다.

이야기가 중심이 아니라 만화는 곁다리이고 요리와 레시피가 중심인 요리책으로 보아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드는데.... 나오는 요리들은 완전히 전형적인 일본인의 밥상이다. 덕분에 일본 음식이라는 것이 우리나라 음식의 재료와 거의 비슷한 것들을 많이 쓴다는 점도 알았고... 하지만 정말 요리법이 다르다는 점도 알았다. 나물이나 국, 찌개 같은 것도 어쩐지 맹숭맹숭하다는 느낌이랄까...; 먹어 보지 않아도 맛이 느껴질 듯...;

이 책도 3권으로 이어지는 모양이긴 한데 또 사고 싶어질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