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3월 17일 화요일

[책] 알링턴파크 여자들의 어느 완벽한 하루


이 책을 읽으면... 삼사십대 소위 중산층 아줌마들의 사고방식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집단"에 속한 사람들과 교류하는 법을 사실 잘 모르는 것 같다. 나랑 비슷한 나이 또래에, 비슷한 나이의 아이들을 둔 사람들인데 말이다. 하여간... 그것이 이 책을 고른 이유이다.

최근에 이런 의도로 읽은 이 비슷한 책으로는 일본 작가인 에쿠니 가오리의 "장미 비파 레몬"이 있었는데, 한국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일본 여성들의 이야기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책 보다는 레이철 커스크의 이 책이 훨씬 더 한국 아줌마들의 삶과 비슷하게 느껴졌다. 그것은 아마 에쿠니 가오리가 세상을 보는 시각보다는 레이철 커스크의 시각을 내가 더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인 듯 하다.

그녀들의 "완벽한" 하루는 커스크의 시니컬한 표현법으로 읽힌다. 그러나, 소설에 등장하는 아줌마들의 생활은 "완벽하게" 현실적이다. 그녀들의 삶에는 어떤 환상도, 어떤 꿈도 더이상 남아있지 않다. 그녀들의 모성애는 신화가 아니며 전혀 감동적인 것도 아니다. 그것은 나에겐 완벽하게 현실로 다가 온다.

알링턴파크의 아줌마들은 지구 반대편 영국에 사는 사람들인데, 나에게는 무척 낯익은 모습이다. 그녀들은 내가 종종 아이들 학교에서 만나는 다른 아이 엄마들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가 않은 것 같다. 아이들을 위해서 정말 열심히 정보 수집을 하는 등 아이들 교육에 "올인"하는 것 같은 그 아줌마들에게 가끔 말을 걸어 보면 뜻밖에도 그녀들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곤 한다. 그녀들의 모습에서 엄마로서, 아내로서, 며느리로서 살아야 하는 지루함, 고통스러움, 갑갑함이 종종 느껴지는 것은 내가 심하게 시니컬한 인간이어서 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레이철 커스크는 이런 내 느낌과 비슷한 것을 느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이런 책을 쓸 수 있는 것은 작가가 그녀들에 대한 애정이 있어서 일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내가 소설가라면 이런 주제와 소재로 소설을 쓸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 나는 긍정으로 대답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 그리고 바로 그 점이 항상 그녀들과는 빈곤한 대화를 할 수 밖에 없는 나의 문제점인듯 하다.

사족 1 - 이 책 표지 그림은 퍽 마음에 들었다.
사족 2 - 레이철 커스크는 매우 섬세한 관찰력과 풍부한 표현력을 지닌 작가이다. 다음엔 그녀의 다른 작품을 한 번 읽어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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