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9월 29일 토요일

[곡해설] 드보르작 교향곡 8번 G장조, 브루흐 비올라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로망스 Op.85

드보르작 교향곡 8번 G장조 (Dvorak, Symphony No. 8 in G Major Op. 88)
 
드보르작은 프라하 교외의 한 마을인 Nelahozeves에서 태어났고 아버지는 아마추어 음악가로 여관과 정육점을 운영했다고 한다. 삼촌의 후원아래 음악을 배울 수 있었던 드보르작은 1857년에 프라하 오르간 학교에 입학하여 수학했고 당시 새로이 문을 연 Prague  Provisional Theatre의 오케스트라에서 스메타나와 바그너의 지휘하에 비올라를 연주하는 경험을 얻기도 했었다. 그의 첫 교향곡은 1865년에 작곡되었는데, 이 곡은 영향력있는 비엔나의 비평가인 한슬릭(Hanslick)과 브람스의 눈에 띄게 되었고, 그 이후로 그의 명성은 서서히 전 유럽과 미국으로 퍼지게 되었다.

드보르작 교향곡 8번 G장조는 드보르작의 교향곡 중에서 9번 신세계 교향곡에 이어 두번째로 유명하고, 두번째로 많이 연주되는 곡이다. 이미 국제적인 작곡가로서의 명성을 얻고 있던 드보르작은 성공적인 영국여행을 마친 후 귀국하여 그동안 꿈꾸어 왔던, 언덕과 수풀에 둘러싸인, 보헤미아의 비소카 (Vysoka)의 소박한 전원주택의 음악실에서 그의 교향곡 중에서 가장 체코적인 곡인 G장조 교향곡 8번을 작곡하였다.


이 곡은 1889년 8월 26일에서 11월 8일까지 두 달 반 동안에 작곡 되었다. 악보에는 "To the Bohemian Academy of Emperor Franz Joseph for the Encouragement of Arts and Literature, in thanks for my election." 라고 헌정사가 쓰여져 있다. 곡은 작곡자 본인에 의하여 1890년 2월 2일 프라하에서 초연되었다.


교향곡 8번 가끔 “영국교향곡”으로도 불리는데, 사실 곡의 분위기나 주제는 영국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 당시 드보르작은 베를린의 출판가와 약간의 분쟁이 있었고, 그리하여 그는 그의 곡들 상당수를 런던의 노벨로에게 보냈는데, 거기에는 이후에 "The English"라는 부제가 달리게 되는 8번 교향곡도 포함되어 있었고 이런 이유로 이 교향곡에 “영국”이라는 부제가 붙게 된 것이다. 드보르작은 영국에서 매우 유명했었고 1891년 6월에는 캠브리지 대학에서 명예 박사학위도 받았었는데, 그는 논문을 제출하는 대신, 학위수여식에서 이 G장조 교향곡을 지휘했다. 그는 또한 1893년 시카고의 세계 박람회에서 체코의 날에 이 교향곡을 지휘하기도 하였다.
 
8번 교향곡은 활기찬 분위기의, 드보르작이 사랑했던 보헤미아의 민속음악에서 영감을 얻어 작곡된 곡이다. 비록 종종 신세계교향곡의 유명세에 가리기도 하지만, 보헤미아의 시골길을 산책하는 듯한 이 작품은, 낙천적인 19세기 후반의 교향곡 작곡의 최고봉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이전의 소나타 형식을 벗어나 주제들이 자발적인 흐름을 보이는 듯한 방식을 보여준다.


1악장: Allegro con brio (G major) –
팀파티가 자유롭게 사용되며, 힘차고 열정적인 전개가 이루어진다. 첼로, 혼, 클라리넷이 장엄하고 서정적인 G단조의 주제로 시작되고, 새가 지저귀는 듯한 플룻의 멜로디로 이어진다. 곡은 점점 더 힘차고 빛나며 행진곡풍의 G장조 선율이 나오면서 율동적인 목관의 2주제가 나타난다.


2악장: Adagio (C minor) –
아다지오라고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꽤 속도가 있다. 현에 의한 C단조의 셋잇단음표의 업비트로 시작한다. 만족감으로 가득 찬 전원생활을 그리고 있으며 새들의 노랫소리로 곡을 메운다. 마을 축제와도 같은 분위기이다. 


3악장: Allegretto grazioso – Molto vivace (G minor) –
악장의 대부분이 3/8박자의 춤곡으로 되어 있고 끝부분에서 2/4로 변하고 2악장과 비슷한 방식으로 속삭이면서 끝나게 된다. 선율적인 매력으로 가득찬 우아한 왈츠이다. 중간에 시골풍의 춤곡으로의 갑작스런 변화와 두배로 빨라진, 끝부분으로 달려가는 코다는 체코의 춤곡인 Dumka를 연상시킨다. 중간에 나오는 주제는 "Pig-headed Peasants"라는 드보르작 초기의 오페라에서 사용한 것이었다고 한다. 


4악장: Allegro ma non troppo (G major) –
이 피날레는 가장 휘몰아치는 듯한 악장이다. 팡파레의 활발한 2/4로 시작해서, 팀파니가 이끌고 첼로가 시작하는 아름다운 멜로디로 전개가 된다. 긴장이 쌓여가다가 악기들이 최초의 주제를 폭포처럼 차례로 연주하면서 해소가 된다. 그 곳에서부터 악장은 몇 번씩 장조와 단조를 오고 가면서 광포한 중간부분을 통과하기 시작한다. 다시 느리고 서정적인 부분으로 돌아온 후에, 곡은 금관과 팀파니가 두드러지는 크로마틱 코다로 끝을 맺는다. 마지막 코드 전의 서두르는 듯한 부분은 보헤미안의 춤곡인 Furiant이다.

연주시간은 36분 정도.


브루흐, 비올라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로망스 (Max Bruch, Romance in F major for Viola and Orchestra, Op. 85)
 
부르흐는 후기 낭만파의 작곡가로 분류되어 지며, 그의 음악은 일반적으로 아름답고, 상상력이 넘치고, 고상하다. 브루흐는 1838년에 쾰른에서 출생했다. 그는 독일, 영국 등에서 지휘, 작곡, 교수로 일하였고 1890년부터 1911년 은퇴할 때까지 베를린 음대에서 작곡교수로 봉직했다.

가장 잘 알려진 그의 작품은 열정적이고 낭만적인 바이올린 협주곡 제1번 g단조 (1868년작)이며 첼로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단악장의 작품 콜니드라이 (1881년작, 첼로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히브리 멜로디에 의한 아다지오)도 유명하다. 브루후의 작품들은 독일의 낭만주의 전통에 따라 보수적으로 구성되었고 아름다운 선율을 보여준다. 그는 스스로를 리스트나 바그너와 같은 ‘신음악’ 보다는 브람스와 같은 낭만적 고전주의 학파로 여겼다. 지금은 자주 연주되지 않지만 생전에 그는 주로 합창곡 작곡가로 알려졌었다.
 
브루흐의 이 아름다운 곡, 로망스 Op.85는 1911년에 작곡되었다. 같은 해에 스트라빈스키가 봄의 제전을 위한 첫번째 스케치를 시작하였다는 것을 보면 그가 얼마나 보수적인 전통을 따르는 작곡가인 것을 알 수 있다. 로망스는 파리오페라의 수석 바이올리니스트인 모리스 비외(Maurice Vieux)에게 헌정되어 졌으나, 1911년 제국주의 베를린의 반프랑스적인 정서로 인하여 이 곡은 베를린 음악학교에서 부르흐와 같이 교수로 재직하던 독일인 바이올리니스트인 빌리 헤스 (Willy Hess)에 의하여 초연되었다. (헤스는 브루흐의 작품을 많이 초연하였었는데,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콘서트 피스 Op.84는 그에게 헌정되어 졌었다.)

작곡자는 이 곡의 악보에 Andante con moto 라고 적었고, Q=69, 72라고 메트로놈의 표시도 적어 넣어놓았다. 단순한 오케스트레이션은 비올라 음역의 그윽함이 두드러지게 한다. 굳건하지만 우아하게 끌어내온 비올라의 음색으로 모든 감정적인 긴장이 섬세하게 그려내어 지며, 솔직하지만 충분한 반주와 완전히 융합되어 진다. 이 곡은 브루흐의 어느 다른 작품들과도 겨룰 수 있을 만한 랩소디적인 테마를 보여주고 있으며, 간절한 열망과 멜랑콜리한 풍부함을 가지고 있다. 투명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는, 매우 개인적이고 낭만적인 러브레터라고 할 수 있다. 곡은 열정적인 웅변으로 시작하여 고요한 엔딩에 이르게 된다.
 
연주시간은 약 8분.



2007년 9월 27일 목요일

[책] 타네씨 농담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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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네씨 농담하지 마세요
Vous plaisantez, Monsieur Tanner
장폴 뒤부아| 김민정| 밝은세상| 2006.04.13 | 216p | ISBN : 8984370711

어떤 책이 재미있을까 인터넷 서점을 둘러 보던 중, 엄청 재미있고 익살스러운 이야기라는 말에 혹해서 구입한 책이다. 이번 추석 연휴에 시댁에 들고 내려갔던 3권의 책 중에서 유일하게 읽고 온 책이기도 하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낮동안엔 읽을 시간이 없기도 했고, 이동 중이나 밤에는 몸살 기운 때문데.. 끙끙 앓느라 심각한 내용의 책을 읽을 기분도, 기운도 아니었다.

한 페이지에 들어가는 글자 수도 몇 글자 되지 않았고, 책도 그다지 두껍지 않아서 펼치고 나서 금방 끝까지 다 읽을 수 있었다. 책을 살 당시에는 무슨 내용인지, 작가가 누구인지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산 터라.. 책을 열고 나서야 이 책이 집을 고치는 이야기라는 걸 알게 되었다. 어느 나라나 건축 관련된 일을 하는 것은 힘든가 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에, 윗집의 인테리어 공사를 하면서 우리집을 물바다로 만들어 버린 초짜 돌파리 업자도 생각이 나고...;

여러가지 에피소드들에 등장하는 엉터리 외국인 기술자들의 이야기는 타네씨, 또는 작가의 외국인노동자에 대한 시선을 보여 주는 듯도 했다. 프랑스 주류 백인들의 외국인에 대한 생각을 보여 주는 듯한 그다지 곱지만은 않은 눈길이었다. 그러나, 어느 정도는 사실적인 묘사일 수도 있고... 책의 가벼운 분위기와 내용으로 판단컨대, 별로 중요한 것은 아닌 듯하여... 이해해(?) 주기로 했다. 우리가 중국산 제품을 우스개로 삼듯, 외국인 노동자들이 와서 이삿짐 나르는 것에 대해 이리 저리 불평하는 것 처럼 프랑스인들도 그들 나라에 온 외국인들을 그렇게 느끼고 있겠지...

가볍게 읽을 만한 책이다. 내가 이 책을 읽고 있는 걸 보면서 남편이 묻는다. "이 책 샀어?" "응." "난 읽었는데." "어떻게?" "작년에 도서관에서 빌려서..." 헉... 생각해 보니 도서관이라는 좋은 곳이 있었다. 왜 그걸 생각 못했을까... 슬슬 책 값이 아까와 지기 시작했다.. ;

Max Bruch, Romance in F major for Viola and Orchestra, Op. 85

막스 부르흐는 후기 낭만파의 작곡가로 분류되어 지며, 그의 음악은 일반적으로 아름답고, 상상력이 넘치고, 고상하게 들리지만, 비평가들은 종종 그를 비주류 작곡가로 분류하곤 한다. 브루흐는 비제가 태어난 해와 같은 1838년에 쾰른에서 출생했다.

브루흐는 어린 아이 시절부터 비상한 음악적 재능을 보여 주며 피아노를 배우고 작곡을 했다. 1852년 그는 교향곡과 현악사중주를 작곡하였는데, 그 현악사중주로 그는 푸랑크푸르트의 모차르트 재단으로 부터 장학금을 수여받을 수 있었다. 1858년에는 쾰른에서 교사생활을 시작하면서 첫 오페라인
Scherz, List und Rache를 작곡하였다. 그는 1861년에서 1862년 사이에 독일의 중요한 문화 중심지들을 방문했었다. 1862년부터 64년까지 브루흐는 만하임에 거주하면서 칸타타Frithjof를 작곡했고 청중들을 열광하게 했었다. 만하임의 자리를 떠난 수 브루후는 파리와 브뤼셀을 방문했었고 1865년에는 결국 코블렌츠의 음악감독직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1867년, 브루흐는 Sonderhausen에서 궁정의 카펠마이스터가 되었고 1870년까지 머무르게 된다. 그 해, 브루흐는 베를린으로 이주하여 그의 3번째 오페라인 Hermione를 작곡한다. 이 곡은 1872년 출판되었다. 1873년에서 1878년사이에, 브루흐는 뛰어난 독일 작곡가로서의 명성을 누리면서 본에서 독립적으로 작업을 했다. 1881년, 그러나 그는 Julius Benedict를 이어 영국의 리버풀 필하모닉 소사이어티의 지휘자로서 일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엄격하지 못했던 연주자들과 잘 지내지 못하였다. 1883년 브루흐는 리버풀을 떠나 브레슬라우 (현재 폴란드의 브로츠와프)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이 되었고 그 곳에서 1890년의 시즌까지를 보내게 된다.

그해 가을 브루흐는 베를린 음대의 작곡교수로 임용되었고, 1911년 은퇴할 때까지 그곳에서 일을 하였고 1920년 82세의 나이로 사망할 때까지 교수로서의 직함을 유지하게 되었다. 레스피기, 본 윌리암스가 그의 학생들이었다.

가장 잘 알려진 그의 작품은 의심할 바 없이 열정적이고 낭만적인 바이올린 협주곡 제1번 g단조 (1868년작)이다. 이 작품은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부터 몇가지 테크닉을 차용하는데, 이것은 악장간의 연결이나, 그리고 관습적인 관현악 전개와 이전의 협주곡의 완고한 형식으로 부터 벗어나는 점들이다. 많은 비평가들이 언급하듯이 낭만적인 전통의 정점을 대표하는 이 곡의 특징은 단선적인 선율이 쓰였다는 것이다.

두번째로 자주 연주되는 곡은 첼로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단악장 작품인 콜니드라이 (첼로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히브리 멜로디에 의한 아다지오)이다. 이 사랑스러운 작품은 이질적인 민속적 그룹에서 유래한 선율적인 소재를 이용하는 그의 취향을 잘 보여준다. 이 작품으로 인하여 사람들은 그를 유태계로 생각하지만, 브루흐가 유태인이라는 증거는 없다. 그는 러시아, 스웨덴, 스코틀랜드, 켈틱 선율들을 이용하여 곡들을 쓰기도 했다. 이들 작품들과 그의 교향곡은 그다지 잘 연주되지는 않으나 가끔은 콘서트홀이나 레코딩에서 다시 살아나기도 하고, 이런 경우에, 청중들은 그 아름다움과 세련된 솜씨에 놀라 매료되곤 한다.

브루흐는 자신의 작품을 고치고 또 고치는 부지런한 작곡가였으며, 그는 3개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포함하여 200여곡의 작품을 썼다.

오늘날 브루흐는 바이올린 작품들의 작곡가로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으나, 그는 생전에 현재는 잊혀진 큰 스케일의 합창곡들 - Odysseus, Frithjof 또는 Das Lied von der Glocke 같은- 로 유명했었고 그 같은 곡들이 그에게 생전에 브람스를 능가하는 명성을 가져다 주었었다. 그는 독일의 낭만주의 전통에 따라 보수적으로 그의 작품을 구성했었고 그 스스로를 리스트나 바그너와 같은 "신음악"으로 보기 보다는 브람스와 같은 낭만적 고전주의 학파로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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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올라는 오케스트라 앙상블에서 뻗어나가는 소리를 얻는데에 따른 문제점을 가지고 있어서 솔로 악기로서 그다지 대중적으로 사용되지는 않았었다. 몇몇의 비평가들 (알프레드 아인슈타인 같은)에 따르면, 협주곡의 핵심은 비루투오즘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갈등과 해결을 보여주는데에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오케스트라에 대해 비올라로 균형을 맞추는 것은 피아노나 또는 바이올린으로 하는 것보다 적합하지 않아 작곡가들은 비올라협주곡을 많이 쓰지 않아왔다. 과거에는 비올리스트들은 순위에서 밀려난 바이올리니스트였고 그렇기 때문에 비올라 솔리스트들은 최근까지 찾아 보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윌리엄 왈튼, 랄프 본 윌리암스, 폴 힌데미트는 새롭고 더 능력있는 비올리스트들을 위하여 비올라 솔로 작품을 작곡한 작곡가들이었다. 이들 새로운 연주자들은 또한 원래는 다른 악기들을 위하여 작곡되었던 곡들을 비올라곡으로 편곡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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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스 브루흐 (1838 - 1920)의 이 아름다운 곡은 1911년에 작곡되었고 같은 해 베를린에서 초연되었다. 작곡자는 이 곡에 Andante con moto 라고 적고, Q=69, 72라고 메트로놈의 표시도 적어 넣어놓았다.

브루흐는 이 사랑스러운 작품을 스트라빈스키가 봄의 제전을 위한 첫번째 스케치를 시작한 것과 동일한 시기에 완성했다는 것을 보면 그가 얼마나 보수적인 작곡가였는지 알 수 있다. 브루흐는 림스키 코르사코프와, 믿을 수 없지만, 브람스 같은 부드러운 음악들도 바이로이트 야수의 새끼악마들로 여겼었다. 그의 우상은 베토벤 - 또는 비창소나타와 바이올린 협주곡의 베토벤이었으며, 후기 현악사중주곡의 미심쩍어하는 모험가인 베토벤은 아니었다. 로망스는 파리 오페라의 수석 바이올리니스트인 모리스 비외(Maurice Vieux)에게 헌정되어졌다. 그러나, 1911년 제국주의 베를린에서의 성난 반프랑스적인 정서로 말미암아 이 곡은 베를린 음악학교에서 부르흐와 같이 교수로 재직하던 독일인 바이올리니스트인 빌리 헤스 (Willy Hess)에 의하여 초연되었다. 헤스는 브루흐의 작품을 많이 초연하였었고,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콘서트 피스 Op. 84는 그에게 헌정되어 졌었다.

단순한 오케스트레이션은 비올라의 깊은 음역의 그윽함이 로망스에서 두드러지도록 한다. 굳건하지만 우아하게 끌어 내온 음색으로 이 작품은 자제되어지고 모든 감정적인 긴장을 섬세하게 그려내며 작곡가의 솔직하지만 충분한 반주와 완전히 융합되어 진다. 이 곡은 브루흐의 어느 다른 작품들과도 겨룰 수 있을 만한 랩소디적인 테마를 보여주고 있으며, 간절한 열망과 멜랑콜리한 풍부함을 가지고 있다. 투명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는, 매우 개인적이고 낭만적인 러브레터라고 할 수 있다. 곡은 열정적인 웅변으로 시작하여 고요한 엔딩에 이르게 된다.

참고:
http://gbyo.com/behindthemusic.php
http://www.wooster.edu/music/twood/bruchcatalog.html#85
http://www.wooster.edu/music/twood/maxbruch.html
http://wm06.allmusic.com/cg/amg.dll?p=amg&sql=41:7108~T1
http://www.naxos.com/composerinfo/148.htm
http://www.violinman.com/Violin_Family/history/composer/biography/bruch/Bruch.htm
http://en.wikipedia.org/wiki/Max_Bruch
http://www.musicweb-international.com/classrev/2005/July05/Bruch_Fifield_book.htm
http://www.h-net.org/reviews/showrev.cgi?path=208071159992206
http://en.wikipedia.org/wiki/Viola_concerto

2007년 9월 18일 화요일

오케스트라 연습 (2007. 9. 13 목) 레슨일지 (2007. 9.15 토)

오케스트라 연습

지난 주 목요일인데 상당히 까마득하게 오래 전인 것처럼 느껴진다. 그 동안 바빴었나..ㅡㅡa
슈만, 교향곡 1번 1악장 (짧게 연습)
드보르작, 교향곡 8번 4악장
이번에는 슈만을 빨리 연습하고 나서 드보르작 4악장에 좀 더 집중을 했다. 슈만은 여전히 오리무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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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영화 감상기]

음악에 대한 이해도와 슈만의 교향곡에 대한 이해도를 좀 더 높여 보고자, 어제는 1983년 영화인 Spring Symphony (한국어 제목은 "애수의 트로이메라이" - 도무지 영화의 내용과는 연결이 안되는...;;;)를 봤다. 슬프게도 내가 생각했던 슈만의 모습과 영화 속의 슈만은 그다지 연결이 잘 되지 않았다. 내가 어릴 적에 슈만의 전기나 관련된 책을 읽어 본 적이 있었던가? 내 머리속의 슈만의 이미지는 어디서 나온 걸까? 슈만은 똑똑하고, 부드럽고, 다정한 이미지다. 아름다운 슈만의 가곡들과 피아노곡들에서 그런 느낌을 얻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슈만은 부인인 클라라 덕에 명성을 얻었었다고 한다. 본인이 재능이 없었을 리는 없겠지만, 유럽의 음악계에서 별 볼일 없는 예전의 법학도, 손가락이 말을 안들어 피아노도 제대로 칠 수 없었던 가난한 작곡가가 실력만으로 명성을 얻어 나간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도 같다. 멘델스존처럼 부잣집 명문가의 도련님도 아니니....

영화 속에서 슈만은 불안정한 정신상태를 가지고 있는 이기적인 바람둥이처럼 그려진다. 클라라를 사랑하고 그녀를 얻기 위하여 노력하지만, 실제로 그녀를 배려하지는 않는다. 아마 실제로도 그러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기다리고 기다리던 슈만의 교향곡 1번은 영화의 끝 무렵에 등장한다. 슈만이 법정소송을 통하여 클라라와의 관계를 인정받아 결혼을 하고 난 후, 교향곡 1번을 작업하는 모습이 나온다. 펠릭스 멘델스존이 그와 같이 작업을 하고.. 작업에 골몰해 있는 남편은 천재 피아니스트인 클라라가 피아노를 되찾게 되었다는 소식에도 기뻐하기는 커녕 집도 좁은데, 벽도 얇은데.. 하며 투덜댄다. 클라라가 외로이 거리에 나가 아버지의 피아노 가게를 들여다 보며 "봄" 교향곡이 흐르고, 장면은 멘델스존이 지휘하는 교향곡의 초연 무대로 바뀐다.

교향곡 1번이 실제로 결혼 직후에 작곡되었고, 멘델스존이 초연에 지휘를 한 것은 맞는데, "봄"이라고 명명된 이 교향곡은 로베르트 슈만의 작곡가로서의 인생에 봄이 오게 하긴 했고, 결혼으로 안정을 찾게 도와 주긴 했지만, 앞으로 이어지는 클라라의 인생에서의 봄은 끝나버리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곡은 매우 "봄"의 느낌이지만.... 내가 연주해야할 봄은 로베르트의 봄일까 클라라의 봄일까? (뭐가 되든 음정과 박자가 맞는 봄이 었으면 좋겠다....ㅡ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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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드보르작 4악장. 이 곡이 뭐였더라...라는 느낌이 오케스트라를 감돌고 있었다. 오래간만에 보는 4악장이 엄청나게 낯설었다. 여러 파트들이 다 헤매고... 한시간 반 정도의 연습시간이 지나자.. 이제서야 아.. 이게 이런 곡이었지... 라는 느낌이 간신히 들기 시작했다..ㅜㅜ 역시 앞날이 심히 우려 된다...


토요일 레슨

늘하던 연습은 그대로... 기존 멤버들이 시간대를 많이들 바꾸셔서 새로운 분들이 많아졌다. 이번에는 새로오신 2분과 나, 그렇게 3명이 레슨을 받았다. 새로 하시는 분들이 들어와서 좋지 않을 일이 그렇게 많지는 않으나.... 시라디크 연습을 할 때는 음정 때문에 간혹 괴롭다. 사실 이건 새로오신 분들이 있어서 생기는 문제는 아니었다. 그 전에도 음정이 안맞는 경우가 꽤 많기 때문에... 문제는 내 바이올린 소리를 듣고 바른 음정을 찾아야 하는데, 여러 바이올린이 한번에 울리니 내가 맞는데 맞지 않는 것처럼 들리는 것인지, 다른 사람이 맞는데 내가 틀린 것인지, 다 틀린 것인지...... ;;; 알 기가 힘들다. 정말 음정에는 악영향이다...

바흐, 두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 1악장.
오늘도, 선생님과 맞춰 봤는데... 혼자 하면 될 듯도 한 것이 선생님과 같이 하기만 하면 머리가 어지럽고 눈이 촛점을 잃어 악보를 놓치고 정신이 혼미해지고 손가락은 마비증상이 생긴다... ;;;; 쭉 한번 했으나 영 만족스럽지가 못하여... 후반부를 다시 한번 맞춰 보았다.. 아까 보다는 좀 낫네...

선생님께서 다음 시간엔 2악장을 나갈 것이라고 하셨다. 비브라토를 많이 넣어서 한다고... 2악장을 하는 것은 좋으나... 뭔가 완성되지 못하고 진도가 나가는 듯한 찜찜함... ㅠㅠ

[공연] 2007 윤이상 페스티벌 (개막공연)

2007년 9월 16일 (일) 16:00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윤이상 실내 앙상블을 위한 <낙양(洛陽)>(1962/1964)
- 지휘: 프란시스 트라비스 (Francis Travis)
음악상 수상곡 1위, 2위 연주 / 지휘: 정치용
윤이상 첼로와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1975/76/ 협연: 고봉인(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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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시 연주회. 윤이상 페스티벌. 마음이 좀 급해졌었다. CD로 들어본 윤이상의 첼로협주곡은 일단 쉽게 들리진 않았었고.. 사실은 윤이상 페스티벌에서 화요일 또는 수요일의 실내악 공연이나, 목요일의 나의 땅 나의 민족을 가보고 싶었는데... 어쩌다가 손에 들어온 티켓은 일요일의 개막공연. 고봉인군의 첼로협주곡이 들어 있다는 말에 일단 신청을 했더니, 바로 당첨이 되어 버린 것이다. 주어진 티켓은 2장인데, 윤이상의 곡들을 들어 줄 수 있을 만한 사람으로는 남편이 그 중 나아 보였다.

자리가 1층 귀퉁이어서, 메뚜기를 뛸 것을 강력하게 주장하였으나.... 꼼지락거리기 싫어하며, 편법을 싫어하는 남편은 그 자리를 고수하겠단다. 개막공연이어서 사회자로 배우 서태화씨가 나와서 마이크에 진행멘트를 하는데, 그다지 깨끗하게 들리지 않아 더군다나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막상 첫 곡인 낙양의 연주가 시작되자 다행히도 음악소리는 사람 목소리보다는 잘 들렸다. 낙양이 끝나고는, 윤이상 음악상의 1, 2위 수상곡인 말레이지아 작곡가 Chong Kee Yong의 Splattered Landscape과 중국의 Lin Wang의 La..de la memoire가 연주되었다. 다양한 타악기들이 사용되었고, 특히 1위인 린왕의 곡은 흥미로왔다. 여러가지 소리가 나는 악기들이 적절하게 사용되어, 작곡가의 말대로 살바도르 달리의 늘어진 시계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느낌이 드는 연주였다.

인터미션 후의 관현악과 첼로를 위한 협주곡. 젊은 연주자인 고봉인씨가 첼로를 들고 나왔다. 조용하게 시작했으나, 곧 첼로를 비롯한 오케스트라가 격렬한 연주를 하기 시작했다. 첼로라는 악기가 저런 소리로 저렇게 연주될 수도 있구나.. 라고 생각하는 순간. 음이 명확하지 않고 틱~하는 소리가 나더니, 고봉인씨가 허탈하게 웃으며 지휘자를 보면서 뭐라고 이야기를 하고는 무대 뒤로 나갔다....

헐.. 현이 끊어졌거나, 완전히 풀렸거나... 뭔가 그런 것 같았다. 몇 분 후에 고봉인씨가 돌아와서는, "처음부터 다시하겠습니다"라고 객석을 향해 이야기 한 후, 연주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갔다.. 공연 중에 현이 끊어지는 것을 본 것도 처음이지만, 바이올린도 아니고 첼로현이 끊어지다니...;;;; 예전에 재클린 뒤프레가 어린시절 (아마 처음으로 큰 무대에 섰을 때였을 듯) 공연 중에 현이 점점 느슨해져서 그에 따라 운지를 계속 넓게 잡으며 연주하다가 결국은 현을 갈고 다시 처음부터 연주했다고 하는 일화를 들은 일이 있었는데...

오케스트라의 편성에는 첼로가 전혀 없었다. 피아노는 뚜껑이 열려진 채로 놓여 있었고, 피아니스트가 때때로 열려진 윗판에서 현을 막대로 두들기거나 하면서 음을 만들어 내곤 했다. 약간 프리페어드 피아노적인 시도인 것인가. 독주 악기인 첼로는 엄청나게 힘겨운 투쟁을 하고 있는 듯이 보였고... 중간에 피치카토로 한동안 연주되는 부분이 있었는데, 그 부분은 사실 피치카토라기 보다는... 첼로가 거문고화되는 시간들로 들렸다. 서양악기인 첼로로 윤이상은 한국의 느낌을 내고 있었던 걸까?

CD로 들을 때는 가질 수 없었던 느낌들이 고봉인씨의 열정적인 연주를 통해 되살아나고 있었고, 아주 어렴풋하게 나마 윤이상이 음악에 대해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기분이었다. 쉽지 않은 곡이었지만, 첫부분이 두 번이나 연주된 덕에 (?) 나름 예습도 한 느낌이었고...^^;;

이야기는 들었지만 실제 연주를 본 적 없었던 고봉인이라는 연주자의 연주에 대해서도 상당히 감동을 받았다. 나중에 앵콜곡으로 세계평화를 위한 카잘스의 새의 노래를 연주했는데 그 연주도 매우 좋았다. 악기는 어떤 걸 쓰는지도 궁금해졌다...^^;; 너무나 몰입하여 열심히 연주하는 그의 모습은 다음 번에 또 그의 연주가 있다면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윤이상 페스티벌은 개막공연 이외에도 많은 공연들이 있지만, 아마 더이상은 가기 힘들 듯 하고... 윤이상의 곡들을 실연으로 들었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기회였다. 앞으로 2년에 한 번씩 윤이상 페스티벌이 열린다고 하니 들을 기회는 더 많아 지지 않을까 싶다.

[공연] 보리스 베레조프스키 러시안 협주곡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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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8시 공연. 주말 공연은 보통 2자리를 예약해놓기 때문에, 이번에도 2석를 예매했었다. 피아니스트의 손이 전혀 안보이는 박스석... ㅜㅜ 그런데, 결국 같이 갈 사람을 못구해서... (이런 재미있을 법한 공연에 같이 살 사람을 못구한다는 건 사실 말이 안되는 이야기다...) 10살짜리 딸과 같이 가게 되었다. 저번에 보니 안자고 열심히 들을 때고 있긴 하더군... 하면서...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으로 시작. 정말 괴력의 피아니스트다. 피아노 소리가 저렇게 쩌렁쩌렁 들리다니... 작년인가 재작년 라흐를 연주했을때는 불행히도 난 합창석에 앉아 있었다. 그 때도 야블론스키가 지휘했었는데, 합창석에서 피아노 협주곡을 들으니, 정말로 피아노소리가 너무나 묻혀 버렸었다. 비록 박스석이지만, 앞쪽에서 들으니, 베레조프스키가 얼마나 강한 타건을 하는 피아니스트인지가 실감이 난다.

그런데, 차선생의 이 유명한 곡은 그다지 큰 감흥이 생기질 않았다. 베레조프스키만의 무언가를 들려 주지도 못하고 있는 듯했고... 첫번째 인터미션에서 딸아이와 차 한잔씩을 마시고 9월에 빵빵한 냉방을 틀어 주고 있는 공연장을 원망하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프로코피에프 피아노협주곡 3번. 베레조프스키가 본 궤도에 올랐다는 느낌이 확실하게 들기 시작했다. 원래는 이 곡이 마지막이었는데, 공연전에 프로그램이 바뀌었다는 안내방송이 있었었다. 엄청난 스피드, 기교, 그리고 그걸 무리없이 소화해내는 괴력의 피아니스트... 건반을 볼 수 없는 자리가 안타까왔지만.... 이 곡을 끝 곡으로 했었다면 정말 관객들이 이성을 잃을 정도로 열광할 수 있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연주를 들으면서... 아이는 새근새근 잠에 빠져들었다. ㅡㅡ;;; 조용한 부분에서 아이의 숨소리가 앞 사람에데 방해가 될까봐 어찌 걱정이 되던지... 혼자 갔었으면 더 음악에 몰두할 수 있었을 텐데... 두번째 인터미션은 아이가 자는 관계로 자리에 앉아 있었고.. 쇼스타코비치의 아기자기하고 아름다운 피아노협주곡 2번이 시작되었다.

베레조프스키는 스피드와 파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장난스럽고, 재치있고, 아기자기한 곡을 매끈하게 살려낼 줄도 아는 피아니스트였다. 이전의 두 곡과는 달리 암보에 자신이 없었던 듯, 페이지 터너를 대동하고 나왔지만, 연주는 더할 나위없이 멋졌다. 신나는 3악장을 끝내고 터져나오는 박수갈채에 그는 앵콜로 바로 그 3악장을 다시 연주했다.

"왜 두번째 인터미션은 없었어? 끝난거야?" 정신없이 자던 아이를 깨웠더니 그렇게 말한다. 그 멋진 두 곡을 꿈속에서 들은 아이...;;

69년생이라는 베레조프스키. 비슷한 시간대를 전혀 다른 공간에서 전혀 다른 일을 하면서 살아온 스스로를 잠깐 생각해봤다. 그러나, 어찌되었건 지금 이순간은 같은 것을 듣고 느끼고 있지 않은가..

피아노라는 악기가 얼마나 다채롭고, 강하며, 또 아름답고 재미있는지 보여준 멋진 공연.                                                                                                              
                             

2007년 9월 10일 월요일

Dvorak, Symphony No. 8 in G Major Op. 88에 대해

이번 주는 오케스트라 연습이나 레슨일지 대신에 드보르작 8번에 관한 이야기를 올려 볼까 한다. 일지에 쓸 말도 없고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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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보르작 교향곡 8번 G장조. 드보르작의 교향곡 중에서 9번 신세계 교향곡에 이어 두번째로 유명하고, 두번째로 많이 연주되는 곡이다.

1884년경에 드보르작은 소품들 뿐만 아니라 d 단조 교향곡의 성공으로 교향곡 작곡가로도 명성을 얻어 국제적으로 유명한 작곡가가 되었다. 성공적인 영국여행을 마치고 귀국하고 나서 그는 그간 꿈꾸어 왔던  것 - 언덕과 수풀에 둘러싸인, 음악실이 있는 소박한 전원주택 - 을 실현시킬 수 있었다. 그가 그의 교향곡 중에서 가장 체코적인 곡인 G장조 교향곡 8번을 작곡한 것은 1889년의 가을, 전원으로 조용히 물러나 있을 때였다.

이 곡은 1889년 8월 26일에서 11월8일까지 보헤미아의 비소카 (Vysoka)에서 두달반 동안에 작곡되어 졌다.  "To the Bohemian Academy of Emperor Franz Joseph for the Encouragement of Arts and Literature, in thanks for my election." 라고 쓰여져서 헌정되어졌다. 작곡자 본인에 의하여 1890년 2월 2일프라하에서 초연되어졌다.

7번 교향곡이 폭풍우가 몰아치는 듯한 낭만적인 작품인데에 반해, 8번은 활기찬 분위기이고, 드보르작이 사랑했던 보헤미아의 민속음악에서 영감을 얻어 작곡된 곡이다. 비록 종종 신세계교향곡의 유명세에 가리기도 하지만, 보헤미아의 시골길을 산책하는 듯한 이 작품은, 낙천적인 19세기 후반의 교향곡 작곡의 최고봉을 보여준다. 이 작품에서 드보르작은 그 전에 얽매여 있던 소나타형식을 벗어나게 되었고, 주제들이 자발적인 흐름을 보이는 듯하는 방식으로 작곡을 하였다.

보통 연주시간은 36분 정도이어서 짧은 교향곡에 속한다고 할 수 있겠다.

악기 구성은,
2 플룻 (세컨은 피콜로와 더블링),
2 오보에 (세컨은 잉글리쉬 혼과 더블링),
2 클라리넷,
2 바순,
4 혼,
2 트럼펫,
2 트럼본,
튜바,
팀파니,

 
오보에는 하나로 막는다 쳐도, 트럼펫과 트럼본, 튜바, 팀파니는 구해야 곡을 연주할 수 있는 것인가...;;

드보르작은 프라하 교외의 한 마을인 Nelahozeves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아마추어 음악가였으며, 여관과 정육점을 했는데, 드보르작은 3년간 그 일을 배우기도 했다. 삼촌의 후원아래, 소년은 음악을 배울 수 있었고, 1857년에 프라하 오르간 학교에 입학했다. 음악가로서 그는 새로이 문을 연 Prague  Provisional Theatre의 오케스트라에서 스메타나와 바그너의 지휘하에 비올라를 연주하는 경험을 얻을 수 있었다.

그의 첫 교향곡은 1865년에 작곡되어 졌는데, 그의 음악은 영향력있는 비엔나의 비평가인 한슬릭(Hanslick), 그리고 브람스의 눈에 띄게 되었고, 그 이후로 그의 명성은 서서히 전 유럽으로 퍼졌으며 결국에는 미국에까지 미치게 되었다.

드보로작은 영국을 수차례 방문했다. 1885년에 런던에서 7번 교향곡의 성곡적인 초연이 있었을 때, 드보르작은 베를린의 출판인인 Simrock과 문제가 있었고, 그리하여 그는 그의 곡들 상당수를 런던의 Novellos에게 보냈는데, 거기에는 이후에 "The English"라는 부제가 달리게 되는 8번 교향곡도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 (8번의 부제가 The English라는 것은 처음 듣는 정보이다....)

사실 곡의 분위기나 주제는 영국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고, 이 이름은 사실 독일 출판업자인 짐록 (Simrock)과의 분쟁때문에 얻어지게 되었다. 작곡가의 큰 스케일의 곡에는 흥미가 없었고 소품들을 출판하여 이윤을 많이 얻고자 했던 이 출판업자는, 작곡가에게 교향곡의 대가로 매우 적은 금액을 제시했다. 그 결과로 드보르작은 짐록과의 배타적인 계약을 종결하고 영국회사인 노벨로(Novello)와 계약을 맺어 이 곡을 출판하게 되었다. 드보르작은 영국에서 매우 유명했었고 1891년 6월에는 캠브리지 대학에서 명예 박사학위도 받았었는데, 그는 논문을 제출하는 대신, 학위수여식에서 G장조 교향곡을 지휘했다. 그는 또한 1893년 시카고의 세계 박람회에서 체코의 날에 이 교향곡을 지휘하기도 하였다.

드보르작은 기차매니아였던 것으로 유명하고 이에 얽힌 재미있는 일화들이 잔뜩있다. 아름다운 곡을 썼던 위대한 작곡가가 기차에 관한한 거의 오타쿠적인 모습을 보여줬었다는 것이 상당히 재미있다.

악장별 설명:

1악장: Allegro con brio (G major) –
팀파티가 자유롭게 사용되며, 힘차고 열정적인 전개가 이루어진다. 첼로, 혼, 클라리넷이 장엄하고 서정적인 G단조의 주제로 시작되고, 새가 지저귀는 듯한 플룻의 멜로디로 이어진다. 곡은 힘과 빛남을 더해가다가 행진곡풍의 G장조 선율이 나오며 율동적인 목관의 2주제가 나타난다.

2악장: Adagio (C minor) –
아다지오라고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꽤 속도가 있다. 현에 의한 C단조의 셋잇단음표의 업비트로 시작. 만족감으로 가득차 있으며, 전원생활을 그려보여 주고 새들의 노랫소리로 가득차 있으며 마을악단도 등장한다.

3악장: Allegretto grazioso – Molto vivace (G minor) –
3악장 대부분은 3/8박자의 춤곡이다. 끝부분에서 박자는 2/4로 변하고, 음악은 2악장과 비슷한 방식으로 속삭이면서 끝나게 된다. 열정적인 스케르쪼 (또는 심지어 체코의 춤곡 (furiant))라기 보다는 선율적인 매력으로 가득찬 우아한 왈츠이다. 중간의 시골풍의 춤곡으로의 갑작스런 변화와 두배로 빨라진, 끝부분으로 달려가는 코다는 사랑받는 체코의 춤곡인 Dumka를 연상시킨다. 중간에 나오는 주제는 작곡자가 "고집센 농부 (Pig- headed Peasants)"라는 초기의 오페라에서 사용한 것이었다고 한다. 

4악장: Allegro ma non troppo (G major) –
이 피날레는 가장 휘몰아치는 듯한 악장이다. 팡파레의 활발한 2/4로 시작해서, 팀파니가 이끌고 첼로가 시작하는 아름다운 멜로디로 전개가 된다. 긴장이 쌓여가다가 결국에는 곡이 시작하고 나서 약 2분 정도 전에서 악기들이 최초의 주제를 폭포처럼 차례로 연주하면서 해소가 된다. 그 곳에서부터 악장은 몇 번씩 장조와 단조를 오고 가면서 광포한 중간부분을 통과하기 시작한다. 다시 느리고 서정적인 부분으로 돌아온 후에, 곡은 금관과 팀파니가 두드러지는 크로마틱 코다로 끝을 맺는다. 마지막 코드 전의 서두르는 듯한 부분은 보헤미안의 춤곡인 Furiant라고 한다.

참고: http://www.bhso.org.uk/repert-163-Dvorak-Symphony-no-8-in-G-major.htm
http://www.andrews.edu/~mack/pnotes/feb1399.html

스코어: http://www.dlib.indiana.edu/variations/scores/adr4498/large/index.html

2007년 9월 9일 일요일

[영화] Copying Beetho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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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정보: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64093
http://en.wikipedia.org/wiki/Copying_Beethoven

영화는 안나홀츠가 마차를 타고 어딘가로 가면서 지나가는 들판에서 어디에선가로부터 "대푸가"를 듣는 것으로 시작한다. 오오... 대푸가로 시작하는 영화라니.... 안나는 죽음을 기다리는 베토벤의 침상에서 선생님 저도 대푸가를 들었어요... 라고 말하고.. 거장은 알고 있었어. 그러길 바랬지...라고 답한다.

이 영화는 1824년에 9번교향곡의 초연을 둘러싼 이야기가 중심소재이다. 원래의 베토벤의 카피스트가 병이 심해지자 그는 새로운 카피스트를 구해서 베토벤에게 보낸다. 그녀가 바로 안나홀츠. 가상의 인물이다.

실제의 카피스트는 두 명의 남자였다고 한다. 베토벤이 아끼던 카피스트가 죽자, 대신할 카피스트가 왔으나, 그는 베토벤의 자필악보를 해독하는 데에 상당히 어려움을 느꼈고, 그래서 악보에는 지금도 베토벤의 낙서와 교정이 적혀있다고 하고.. "이 바보같은 놈"이라는 글귀까지 쓰여 있다고 한다. 이 악보는 2003년 2.1백만파운드에 소더비에서 개인 소장가에게 판매되었다. (
http://news.bbc.co.uk/2/hi/entertainment/3049061.stm)

영화의 백미는 런던심포니가 연주하는 9번의 초연 장면이라고들 말할 것 같다. 물론 원곡의 길이만큼이 영화에 들어가진 않았지만, 멋진 실제의 연주장면이 들어 있는 것은 이 영화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베토벤의 9번 초연때, 완전히 귀가 먹어버린 이 위대한 작곡가는 스스로 지휘를 하고 싶어 했으나, 곡을 이끌어 갈 자신이 없었던 모양이다. 그는 12년만에 처음으로 지휘봉을 잡았고, 연주회장은 관객으로 가득차 있었다. Michael Umlauf는 비엔나의 Kärntnertortheater 의 음악감독이었는데, 베토벤은 그와 함께 무대에 서로 마주보고 서서 (영화에서의 안나홀츠처럼 숨어서가 아니라) 지휘를 했다고 한다. 그는 합창단과 연주자들에게 귀머거리 베토벤의 지휘를 무시하라고 지시를 했었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영화에서는, 베토벤이 연주가 끝난 후 관객의 환호를 듣지 못하자 안나홀츠가 나가 뒤로 돌려 관객들에게 인사하도록 하는 장면 (상당히 감동스러운 부분이어야 할 듯)이 나오는데, 이 일화는 일면은 사실이고 다른 면은 픽션이다. 귀가 먹은 대가는 당연히 관객들의 환호성을 듣지 못했지만, 그 환호성이 나온 것은 전 악장 종료 후가 아니라 스케르초악장의 후라는 이야기도 있고... 베토벤은 오케스트라와 박자가 안 맞아서 혼자 지휘를 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지휘자를 뒤로 돌려 인사하게 한 것은, 알토였던 Caroline Unger 라고 한다.

영화는 엄청난 감동을 주기 보다는 다소 억지스러운 이야기 전개들을 보이는데, 베토벤과의 관계를 제외한 안나의 이야기는 너무나 힘이 없어 보인다. 그녀의 이야기들에 좀 더 설득력을 주려면, 그녀가 어떻게, 어떤 의지로 이 일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더 그럴싸한 스토리가 필요하지 않을까... (아.. 난 왜 맨날 딴지인지..) 그녀의 연애 이야기도 그다지 필요없는 곁가지인 것 같기도 하다. 영화에 '재미'가 아닌, '개연성'을 넣으려면 차라리 남자카피스트가 더 어울릴 법 했겠다는 생각도 든다.

베토벤을 연기한 에드 해리스는 불멸의 연인의 게리 올드만 보다는 덜 베토벤 같다는 생각이 든다. 생긴건 오히려 더 비슷한데도 말이다. 진짜 베토벤은 에드해리스가 연기한 베토벤보다 더 예민하고, 더 광적이며, 더 삶이 고통스러웠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안나홀츠는 19세기의 여인보다는 21세기의 음대생에 더 가까와 보였고...;;;

또 하나 영화의 흥을 깨는 장면은...;; 베토벤이 안나에게 콘서바토리에서 내 피아노 소나타를 배웠나? 어떤 작품이 마음에 들었지? 열정? 발트슈타인? 아니 월광이겠지? 하며 엉덩이를 보이는 (mooning)하는 장면. 그 부분도 내가 보기엔 전혀 베토벤같지 않은 모습인 듯 한데... (실제 베토벤은 어땠을지 몰라도...) 더 황당한 것은 "열정" 또는 "월광"이라는 부제는 베토벤이 죽고 한참 뒤에 붙여진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걸 알고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상당히 당황할 수 밖에 없는 노릇이다...ㅡㅡ;;

베토벤의 마지막 순간에 안나홀츠같은 재기발랄하고 헌신적인 제자가 옆에 있었다면, 그는 얼마나 행복했을까... 그 옆에 누가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조카 칼조차 떠나버린 위대한 작곡가가 죽음을 앞두고 마음 편히 갔을런지... 영화를 보며, 실제로 대가가 어떻게 마지막을 맞았을지가 마음에 걸렸다.. (200년 가까이 되어가는데..;;;)

그리고 대푸가. 영화의 첫머리에 등장해서 내 가슴을 설레이게 만들었던 바로 그 곡.... 영화의 뒷부분에서는 대푸가의 초연장면이 나오는데, 대부분의 관객들이 연주 중에 자리를 뜨며, 남아서 듣던 사제도 you must be deafer than I thought라고 말하고는 자릴 뜬다. 이에 앞서, 베토벤은 이 음악이 ugly하다는 안나의 말에, 추하고 추하기 때문에 아름답다라고 말한다. 음악은 신의 말씀인데, 신은 머리속에 있지 않으며 바로 창자에 있다고 반라의 차림으로 대푸가를 작곡하던 베토벤은 이야기 한다. 이 작곡 부분이 실제가 어땠는지는 전혀 알 수 없지만, 그리고 대푸가가 그만큼 기괴한 음악이라고는 생각이 들지 않지만, 재미있는 해석인 것 같다^^

21세기를 사는 내 귀에는 이 음악이 전혀 전혀 추하지 않게 들리지만, 19세기초의 사람들에게 이 음악이 어떻게 들렸을 지는 대략 상상이 가긴 한다.. 스트라빈스키는 대푸가를 가리켜 절대적으로 현대음악 작품이며, 영원히 현대음악일 것이라고 말했으니...

대푸가에 얽힌 일화들도 알려진 것과는 조금 다르긴 했지만.... 그런대로 영화의 재미있었던 부분 중의 하나라고 할 만하다. 다만, 곡에 대한 당시 대중의 관객의 냉대가 전체적인 영화의 맥락과 어떻게 연관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안나가 베토벤을 전적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과 연결되는 것인 듯.....

음악영화는 재미있지만, 늘 음악 그 자체보다는 못한 것 같다. 실제의 모델을 가진 영화들은 역시 재미는 있을 수 있으나, 그 실존인물의 실제의 삶보다는 역시 감동이 덜하다. 이것이 논픽션을 픽션화하는 어려움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아마데우스 처럼, 비록 사실의 왜곡이 꽤 있었다고 하더라도, 감독의 주제의식이 너무나 명확하게 살아나는... 그런 영화도 있는 걸 보면..... 조금은 아쉬운 영화... 같은 베토벤의 영화라면 불멸의 연인이 나은 듯...

2007년 9월 5일 수요일

Schumann, Carnaval, Op. 9

작곡시기는 1834-1835년. 바이올리니스트인 카롤 리핀스키 (Karol Lipinski)에게 헌정되었다. Scènes mignonnes sur quatre notes (Little Scenes on Four Notes)라는 부제가 달려 있고, 각각의 모티프에 의한 22개의 피아노 모음곡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 부분은 아래와 같은 일련의 음들이 둘 다 혹은 하나씩 사용 되어져 있다.

A, E-flat, C, B; 독일어로는 A-S-C-H
A-flat, C, B; 독일어로는  As-C-H.

위의 철자는 슈만의 그 당시 약혼녀였던 Ernestine von Fricken이 태어난 고장의 독일이름이다. (Asch는 현재는 체코공화국) 이것들은 또한 슈만 자신의 이름에 있는 음 이름들이기도 하다. Schumann

Carnaval은 멋진, 화음으로 이루어진 패시지와 리듬의 변화로 유명하다. 작품은 모두 22개의 부분으로 되어 있으나, 20개만 번호가 붙여져 있고, "Sphinxes"와 "Intermezzo: Paganini" 는 작곡자에 의한 번호는 붙여져 있지 않다.

1. Préambule (A-flat)
2. Pierrot (E-flat)
3. Arlequin (B-flat)
4. Valse noble (B-flat)
5. Eusebius (E-flat; depicting the composer's calm, deliberate side)
6. Florestan (G minor; depicting the composer's fiery impetuous side)
7. Coquette (B-flat; depticting the flirtatious servant from
Friedrich Wieck's house who may have given him syphilis)
8. Réplique (G minor)
Sphinxes
9. Papillons (B-flat)
10. A.S.C.H. - S.C.H.A: Lettres Dansantes (but despite the title, the pattern used is As.C.H; E-flat)
11. Chiarina (C minor; depicting
Clara Wieck)
12. Chopin (A-flat)
13. Estrella (F minor; depicting Ernestine von Fricken)
14. Reconnaissance (A-flat)
15. Pantalon et Colombine (F minor)
16. Valse Allemande (A-flat; German waltz)
Intermezzo: Paganini (F minor; with a reprise of the Valse Allemande)
17. Aveu (F minor)
18. Promenade (D-flat)
19. Pause (A-flat; leading directly without pause into ...
20. Marche des "Davidsbündler" contre les Philistins (A-flat, in which quotations from a number of the previous sections fleetingly reappear).


악보: http://imslp.ca/images/imslp.ca/1/1b/Schumann_-_Carnaval,_Op_9.pdf
http://www.pianopedia.com/w_299_schumann.aspx
해설 및 듣기: http://www.piano-net.com/schumann.htm




2007년 9월 3일 월요일

[전시] 모차르트전

세종문화회관에서 모차르트전이 열린다는 이야기를 들은 지가 몇 달 전이다. 아이들 데리고 가보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쭉 해왔는데, 벌써 여름방학이 끝나버렸고, 전시회도 며칠 남지 않았다. 주말마다 일이 생기거나, 아니면 너무 피곤하거나...

토요일에 가야지 했으나 또 무산... 일요일에 일찍 일어나, 그 동네에서 하는 전시회를 두개 혹은 세개 보고 와야지 했으나... 이래 저래 나갈 준비를 하려고 보니 어느새 오후 4시...;;

결국 5시가 다되어서야 출발을 했다. 세종문화회관 근처의 주차사정이 별로 좋지 않아 지하철을 타고 가기로 했다. 아이들에게 자주 지하철을 비롯한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도록 해주고 싶은데, 별로 기회가 없다. 오늘 같은 날은 지하철 경험도 늘리고 좋은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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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근처 지하철역에서 한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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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해서 표를 끊고 들어가자 마자 있는 커다란 모차르트의 초상화 앞에서 한 컷.

전시실에 들어가면서 부터는 사진촬영이 안되는 것으로 알아서 열심히 구경을 했다. 기다란 모차르트의 이름을 그의 세례명부에서 따라 읽고, 연대순으로 정리되어 있는 모차르트의 일생을 읽어보면서 전시관람을 시작. 

그 시절의 다양한 물건들, 모차르트가 쓰던 악기들, 모차르트의 악보들, 그리고 그의 곡을 들을 수 있는 공간, 모차르트의 자동작곡기로 뽑아낸 피아노 곡들. 생각보다 재미있는 구경거리들이 많았고, 아이들도 "또 음악관련된 거야"라는 처음의 생각에서 벗어나서 진심으로 재미있어 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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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가장 즐거워 했던 모차르트 시절의 옷입기. 둘이 가발까지 쓰고 있는 모습이 정말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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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가 쓰던 바이올린. 거트현에 라이온 헤드.. 살짝 작아 보이는 사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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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의 피아노라고 전시되어 있는 악기. 피아노라기 보다는 스피넷, 클라비코드. 비슷한 악기가 두 대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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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관람을 마치고 나와서 한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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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문화회관 뒤뜰의 조형작품들.

아이들에겐 모차르트에 대해 조금 더 배우는 시간이 되었는데.. 나에겐 그의 작품의 심오함과 처절한 상황에서 가장 아름답고 즐거운 곡들을 썼던 모차르트의 경이로운 천재성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책] 단테의 신곡 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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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노 들랄랑드 저
권수연 역
황매
2007. 4. 16 간
576 페이지

여름도 되고, 뭔가 시원한 추리소설이 읽고 싶어졌다. 베스트셀러에 올라와 있기도 했고 여러 서평들도 눈에 띄고 해서 쉽게 이 책에 손이 갔다. 내가 보통 선택하는 책과는 조금 다른 유형의 소설이긴 하지만...

소설의 배경은 18세기 베네치아. 1756년... 그 해는 모차르트가 태어난 해이기도 하다. 책을 읽어 나가면서, 2005년초, 겨울에 갔었던 베네치아의 풍경이 다시 생생하게 떠올랐다. 물의 도시, 축제의 도시, 타락과 퇴폐의 도시인 베네치아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연쇄 살인사건과 정치적 음모가 소설의 소재이다.

소설에 등장한느 9번의 살인, 죽음 중 처음의 몇 번은 정말 소름끼치도록 잔혹하다. 영화로 만든다면 정말 엄청난 하드고어무비가 될 듯 하다. 살인마는 그야말로 '지옥'을 연출하고 있는 듯했다. 단순한 살인광의 살인으로 보였던 소설의 전개는 점점 정치적인 사건으로 변해가고, 표적은 베네치아의 고위관료들과 총독이 된다.

그러나, 단테의 신곡의 내용에 따라서 살인을 저지르고 있는 악마, 일디아블로의 행동은 이 모든 것의 배경이 정치적인 이유라고는 믿어지지 않았고.. 결국 소설의 끝에서 일디아블로의 존재와 그의 목적이 밝혀지게 된다. 반전이라고 할 수가 있겠지만... 아주 충격적인 반전은 아니었던 듯도 하다^^

소설은 매우 끔찍할 뿐만 아니라 상당히 퇴폐적이다. 베네치아의 창녀들, 동성애자들, 축제에서의 난잡함 등이 묘사되어 있다. 그러나, 피에트로나 캄피오니의 모습에서 보여지는 한 여인에 대한 '사랑'의 묘사는 상당히 이율배반적이다. 작가는 진실한 사랑에 대해 쓰고 싶은 것은 아니었을 것 같은데.... 저건 무슨 장치일까.. 라고 계속 생각을 하게 된다.

주인공이라고 볼 수 있는 피에트로 비라볼타는 그야말로 영화에 등장하는 매력적인 영웅의 모습이다. 뛰어난 기지와 재능을 가지고 있으나, 그 역시 퇴폐적이고 난잡한 베네치아를 닮아 있다. 그는 실제로 이 지옥기행을 하고 있는 단테의 역할이라고 볼 수 있는데, 결국 일 디아볼로를 끝장내는 데에 성공을 하지만, 할리웃 영화의 주인공들처럼 "정의"의 편은 분명 아니다.

나에게 이 소설은 세간의 평처럼 엄청나게 재미있지도 않았고 너무나 스릴있지도 않았는데... 사실 원래 이런 류의 소설을 좋아 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소설이 독자들에게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잘 몰랐기 때문이기도 하다. 단순한 악의 묘사를 원하는 것일까? 아니면 베네치아의 퇴폐적인 상황을 묘사하고 싶은 것일까? 지옥처럼 보이는 세상을 비웃고 싶은 것일까? 그 모든 것을 배경으로 피에트로라는 매력적인 인물을 만들어 보고 싶었던 걸까? 내가 너무 소설을 소설로 읽으려 하지 않는 건가?ㅡㅡ;;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베네치아를 비롯한 북부이태리를 가보고 싶어졌다. 일디아볼로를 쫓아서 가게되는 피렌체도 다시 보고 싶고...

2007년 9월 2일 일요일

오케스트라 연습 및 레슨 2007년 8월 30일 (목) 및 9월1일 (토)

8월 30일

드보르작, 교향곡 8번 2악장
슈만, 교향곡 1번 1악장
Treasury 관련한 conference call이 7시 30분에 끝날 예정이어서, 악장님에게 먼저 가시라고 했는데, 생각보다는 일찍 끝났다. 8시 되기전에 연습실에 도착. 연습은 10분 정도 지나서야 시작되었다. 슈만 악보가 모자란 관계로 드보르작부터 연습했는데, 다행히...;; 2악장을 했다.

그나마 2악장이 가장 나은 억장이지만, 음들이 깨끗하지는 못한 것 같다. 2악장을 하면서도, 나머지 악장들 특히 1, 4악장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마음의 부담이 된다... 연습은 언제 할꼬. 이제 연주회는 약 2달정도 남았는데 말이다.....;;

슈만도 역시 1악장을 했다. 지난 번에 수박같핥기 식으로 읽어 봤던 악보를 좀 더 세밀하게 봤는데, 알레그로 비바체가 시작되는 부분부터는 정말 정신이 하나도 없다. 아.. 왜 곡들이 이리도 빠른 건지..

9월 1일

2주 연속 지각을 하다가 오늘은 간만에 제시간에 도착했다. 그런데, 나샘은 결혼식이 있으셔서 일찍 가셔야 한다고 하신다. 일찍 가셔도 1시간이 넘게 레슨을 해주시니 고마울 따름..

시라디크, A현 연습, 같은 방식으로 D현
흐리말리, d minor 연습,
         A major 2포지션으로 연습 (3음슬러 1음, 3음슬러 1음 식으로 연습)
바흐, 두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 1악장, 1바이올린
늘 하던 연습곡들을 조금씩 시간을 줄여서 했고, 새로오신 분이 한 분 계셔서, 시라디크 연습이 좀 느려지고 쉬워진 듯? 두 줄 연습은 생략...;;

흐리말리 연습도 조금 줄여서 하고, 더블 콘첼토 첫페이지를 선생님과 맞춰 봤다. 처음으로 맞춰 보는 거라... 1바이올린이 어디서 들어가야 하는지도 모르고 헤맸다...;;;

스타카토를 좀더 확실하고 가볍게 끊어주는 것과 박자가 엉기지 않도록 하는 것을 지적받았다. 포지션 이동 후에도 확실하게 음정을 맞춰 주어야 하는 것과, 3포지션에서 D현의 4번을 짚을 때 확실하게 높여서 운지를 해주는 것 (자꾸 3번 옆에 붙는다..ㅠㅠ)이 레슨 받으면서 내가 생각했던 문제점.

선생님이 가시자, 다른 분들은 다들 점심을 먹으러 나가고... 혼자 연습실에 앉아서 바흐를 조금 더 연습했다. 하다가.. 정관씨가 하고 있는 자이츠 악보를 보고 오랫만에 해봤는데... 흠.. 정말 다 까먹어 버렸다 ㅡㅡ;; 연습을 하는 동안에만 잠시 기억하다가 다음 곡으로 넘어가면 바로 다 까먹어 버리는 것이 스즈끼의 묘미(?) 던가....;;; 그래도 오래간만에 해보니 재미 있어서 한 두번 반복해 보다 보니 집에 갈 시간.

여름 다 갔는데, 장마처럼 비가 주륵주륵 내린다. 습도 내려가서 맑은 소리가 난다고 좋아했었는데, 도로 물먹은 소리가 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