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9월 9일 일요일

[영화] Copying Beethoven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영화정보: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64093
http://en.wikipedia.org/wiki/Copying_Beethoven

영화는 안나홀츠가 마차를 타고 어딘가로 가면서 지나가는 들판에서 어디에선가로부터 "대푸가"를 듣는 것으로 시작한다. 오오... 대푸가로 시작하는 영화라니.... 안나는 죽음을 기다리는 베토벤의 침상에서 선생님 저도 대푸가를 들었어요... 라고 말하고.. 거장은 알고 있었어. 그러길 바랬지...라고 답한다.

이 영화는 1824년에 9번교향곡의 초연을 둘러싼 이야기가 중심소재이다. 원래의 베토벤의 카피스트가 병이 심해지자 그는 새로운 카피스트를 구해서 베토벤에게 보낸다. 그녀가 바로 안나홀츠. 가상의 인물이다.

실제의 카피스트는 두 명의 남자였다고 한다. 베토벤이 아끼던 카피스트가 죽자, 대신할 카피스트가 왔으나, 그는 베토벤의 자필악보를 해독하는 데에 상당히 어려움을 느꼈고, 그래서 악보에는 지금도 베토벤의 낙서와 교정이 적혀있다고 하고.. "이 바보같은 놈"이라는 글귀까지 쓰여 있다고 한다. 이 악보는 2003년 2.1백만파운드에 소더비에서 개인 소장가에게 판매되었다. (
http://news.bbc.co.uk/2/hi/entertainment/3049061.stm)

영화의 백미는 런던심포니가 연주하는 9번의 초연 장면이라고들 말할 것 같다. 물론 원곡의 길이만큼이 영화에 들어가진 않았지만, 멋진 실제의 연주장면이 들어 있는 것은 이 영화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베토벤의 9번 초연때, 완전히 귀가 먹어버린 이 위대한 작곡가는 스스로 지휘를 하고 싶어 했으나, 곡을 이끌어 갈 자신이 없었던 모양이다. 그는 12년만에 처음으로 지휘봉을 잡았고, 연주회장은 관객으로 가득차 있었다. Michael Umlauf는 비엔나의 Kärntnertortheater 의 음악감독이었는데, 베토벤은 그와 함께 무대에 서로 마주보고 서서 (영화에서의 안나홀츠처럼 숨어서가 아니라) 지휘를 했다고 한다. 그는 합창단과 연주자들에게 귀머거리 베토벤의 지휘를 무시하라고 지시를 했었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영화에서는, 베토벤이 연주가 끝난 후 관객의 환호를 듣지 못하자 안나홀츠가 나가 뒤로 돌려 관객들에게 인사하도록 하는 장면 (상당히 감동스러운 부분이어야 할 듯)이 나오는데, 이 일화는 일면은 사실이고 다른 면은 픽션이다. 귀가 먹은 대가는 당연히 관객들의 환호성을 듣지 못했지만, 그 환호성이 나온 것은 전 악장 종료 후가 아니라 스케르초악장의 후라는 이야기도 있고... 베토벤은 오케스트라와 박자가 안 맞아서 혼자 지휘를 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지휘자를 뒤로 돌려 인사하게 한 것은, 알토였던 Caroline Unger 라고 한다.

영화는 엄청난 감동을 주기 보다는 다소 억지스러운 이야기 전개들을 보이는데, 베토벤과의 관계를 제외한 안나의 이야기는 너무나 힘이 없어 보인다. 그녀의 이야기들에 좀 더 설득력을 주려면, 그녀가 어떻게, 어떤 의지로 이 일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더 그럴싸한 스토리가 필요하지 않을까... (아.. 난 왜 맨날 딴지인지..) 그녀의 연애 이야기도 그다지 필요없는 곁가지인 것 같기도 하다. 영화에 '재미'가 아닌, '개연성'을 넣으려면 차라리 남자카피스트가 더 어울릴 법 했겠다는 생각도 든다.

베토벤을 연기한 에드 해리스는 불멸의 연인의 게리 올드만 보다는 덜 베토벤 같다는 생각이 든다. 생긴건 오히려 더 비슷한데도 말이다. 진짜 베토벤은 에드해리스가 연기한 베토벤보다 더 예민하고, 더 광적이며, 더 삶이 고통스러웠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안나홀츠는 19세기의 여인보다는 21세기의 음대생에 더 가까와 보였고...;;;

또 하나 영화의 흥을 깨는 장면은...;; 베토벤이 안나에게 콘서바토리에서 내 피아노 소나타를 배웠나? 어떤 작품이 마음에 들었지? 열정? 발트슈타인? 아니 월광이겠지? 하며 엉덩이를 보이는 (mooning)하는 장면. 그 부분도 내가 보기엔 전혀 베토벤같지 않은 모습인 듯 한데... (실제 베토벤은 어땠을지 몰라도...) 더 황당한 것은 "열정" 또는 "월광"이라는 부제는 베토벤이 죽고 한참 뒤에 붙여진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걸 알고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상당히 당황할 수 밖에 없는 노릇이다...ㅡㅡ;;

베토벤의 마지막 순간에 안나홀츠같은 재기발랄하고 헌신적인 제자가 옆에 있었다면, 그는 얼마나 행복했을까... 그 옆에 누가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조카 칼조차 떠나버린 위대한 작곡가가 죽음을 앞두고 마음 편히 갔을런지... 영화를 보며, 실제로 대가가 어떻게 마지막을 맞았을지가 마음에 걸렸다.. (200년 가까이 되어가는데..;;;)

그리고 대푸가. 영화의 첫머리에 등장해서 내 가슴을 설레이게 만들었던 바로 그 곡.... 영화의 뒷부분에서는 대푸가의 초연장면이 나오는데, 대부분의 관객들이 연주 중에 자리를 뜨며, 남아서 듣던 사제도 you must be deafer than I thought라고 말하고는 자릴 뜬다. 이에 앞서, 베토벤은 이 음악이 ugly하다는 안나의 말에, 추하고 추하기 때문에 아름답다라고 말한다. 음악은 신의 말씀인데, 신은 머리속에 있지 않으며 바로 창자에 있다고 반라의 차림으로 대푸가를 작곡하던 베토벤은 이야기 한다. 이 작곡 부분이 실제가 어땠는지는 전혀 알 수 없지만, 그리고 대푸가가 그만큼 기괴한 음악이라고는 생각이 들지 않지만, 재미있는 해석인 것 같다^^

21세기를 사는 내 귀에는 이 음악이 전혀 전혀 추하지 않게 들리지만, 19세기초의 사람들에게 이 음악이 어떻게 들렸을 지는 대략 상상이 가긴 한다.. 스트라빈스키는 대푸가를 가리켜 절대적으로 현대음악 작품이며, 영원히 현대음악일 것이라고 말했으니...

대푸가에 얽힌 일화들도 알려진 것과는 조금 다르긴 했지만.... 그런대로 영화의 재미있었던 부분 중의 하나라고 할 만하다. 다만, 곡에 대한 당시 대중의 관객의 냉대가 전체적인 영화의 맥락과 어떻게 연관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안나가 베토벤을 전적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과 연결되는 것인 듯.....

음악영화는 재미있지만, 늘 음악 그 자체보다는 못한 것 같다. 실제의 모델을 가진 영화들은 역시 재미는 있을 수 있으나, 그 실존인물의 실제의 삶보다는 역시 감동이 덜하다. 이것이 논픽션을 픽션화하는 어려움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아마데우스 처럼, 비록 사실의 왜곡이 꽤 있었다고 하더라도, 감독의 주제의식이 너무나 명확하게 살아나는... 그런 영화도 있는 걸 보면..... 조금은 아쉬운 영화... 같은 베토벤의 영화라면 불멸의 연인이 나은 듯...

댓글 2개:

  1. trackback from: 베토벤의 말년을 재해석한 작품 "카핑 베토벤"
    카핑 베토벤 포토 감독 아그네츠카 홀란드 개봉일 2006,미국,독일 별점 전반적인 리뷰 2007년 9월 17일 본 나의 2,681번째 영화. 한마디로 보라고 하고 싶다. 말로는 설명하기가 조금 힘들다. 왜냐면 음악은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음악을 모른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나오는 음악은 전율을 느끼게 하고도 남는다. 현란한 특수효과가 들어간 영화라면 사진으로도 맛을 느낄 수 있다. 스토리가 있는 잔잔한 드라마라면 글로도 맛을 느낄 수 있다...

    답글삭제
  2. trackback from: 카핑베토벤 보시지요2......
    '카핑베토벤'과 '대푸가'!'카핑베토벤'은 '대푸가'를 이해시키기 위한 영화라 생각될 때가 많다. 시작과 함께 흐르는 강렬한 선율이 바로 '대푸가'인데, 감독이 천착하려는 이런 메시지는 처음과 끝을 관통한다. 베토벤의 후기음악은 그의 귓병이 심화되어 소리로부터 절연된 삶을 살아가는 독특한 개인사의 아픔이 서려있으며, 중기까지에서 보였던 작풍이 심화하여 더욱 이질적이고 내면적인 세계를 탐구하는 쪽으로 방향을 튼다. 베토벤 작품번호 100을 넘는 ...

    답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