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9월 18일 화요일

[공연] 보리스 베레조프스키 러시안 협주곡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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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8시 공연. 주말 공연은 보통 2자리를 예약해놓기 때문에, 이번에도 2석를 예매했었다. 피아니스트의 손이 전혀 안보이는 박스석... ㅜㅜ 그런데, 결국 같이 갈 사람을 못구해서... (이런 재미있을 법한 공연에 같이 살 사람을 못구한다는 건 사실 말이 안되는 이야기다...) 10살짜리 딸과 같이 가게 되었다. 저번에 보니 안자고 열심히 들을 때고 있긴 하더군... 하면서...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으로 시작. 정말 괴력의 피아니스트다. 피아노 소리가 저렇게 쩌렁쩌렁 들리다니... 작년인가 재작년 라흐를 연주했을때는 불행히도 난 합창석에 앉아 있었다. 그 때도 야블론스키가 지휘했었는데, 합창석에서 피아노 협주곡을 들으니, 정말로 피아노소리가 너무나 묻혀 버렸었다. 비록 박스석이지만, 앞쪽에서 들으니, 베레조프스키가 얼마나 강한 타건을 하는 피아니스트인지가 실감이 난다.

그런데, 차선생의 이 유명한 곡은 그다지 큰 감흥이 생기질 않았다. 베레조프스키만의 무언가를 들려 주지도 못하고 있는 듯했고... 첫번째 인터미션에서 딸아이와 차 한잔씩을 마시고 9월에 빵빵한 냉방을 틀어 주고 있는 공연장을 원망하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프로코피에프 피아노협주곡 3번. 베레조프스키가 본 궤도에 올랐다는 느낌이 확실하게 들기 시작했다. 원래는 이 곡이 마지막이었는데, 공연전에 프로그램이 바뀌었다는 안내방송이 있었었다. 엄청난 스피드, 기교, 그리고 그걸 무리없이 소화해내는 괴력의 피아니스트... 건반을 볼 수 없는 자리가 안타까왔지만.... 이 곡을 끝 곡으로 했었다면 정말 관객들이 이성을 잃을 정도로 열광할 수 있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연주를 들으면서... 아이는 새근새근 잠에 빠져들었다. ㅡㅡ;;; 조용한 부분에서 아이의 숨소리가 앞 사람에데 방해가 될까봐 어찌 걱정이 되던지... 혼자 갔었으면 더 음악에 몰두할 수 있었을 텐데... 두번째 인터미션은 아이가 자는 관계로 자리에 앉아 있었고.. 쇼스타코비치의 아기자기하고 아름다운 피아노협주곡 2번이 시작되었다.

베레조프스키는 스피드와 파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장난스럽고, 재치있고, 아기자기한 곡을 매끈하게 살려낼 줄도 아는 피아니스트였다. 이전의 두 곡과는 달리 암보에 자신이 없었던 듯, 페이지 터너를 대동하고 나왔지만, 연주는 더할 나위없이 멋졌다. 신나는 3악장을 끝내고 터져나오는 박수갈채에 그는 앵콜로 바로 그 3악장을 다시 연주했다.

"왜 두번째 인터미션은 없었어? 끝난거야?" 정신없이 자던 아이를 깨웠더니 그렇게 말한다. 그 멋진 두 곡을 꿈속에서 들은 아이...;;

69년생이라는 베레조프스키. 비슷한 시간대를 전혀 다른 공간에서 전혀 다른 일을 하면서 살아온 스스로를 잠깐 생각해봤다. 그러나, 어찌되었건 지금 이순간은 같은 것을 듣고 느끼고 있지 않은가..

피아노라는 악기가 얼마나 다채롭고, 강하며, 또 아름답고 재미있는지 보여준 멋진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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