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9월 1일 금요일

[번역] KV.Anh294a Adelaide Violin Concerto

아래 글에서.. 아델라이데 협주곡의 진위도 역시 의심스럽게 여겨지고 있다고 하네요..


http://www.mozartforum.com/Lore/article.php?id=040&pt_sid=71f5cde08ba54f47d8f623fed00769ba


KV.Anh294a Adelaide Violin Concerto


Dennis Pajot

(이사람..위 주소의 모차르트포럼 사이트 운영자군요...^^)


아델라이데 협주곡은 1933년 Marius Casadesus에 의해 편집, 출판되어졌다. Jelly d'Aranyi가 런던에서 초연했다. (이 부분은... 좀 이상하군요. 메뉴인 연주가 1932년 녹음이라고 되어 있던뎅.....ㅡㅡ;;; 뭐가 맞는 건지 몰겠네요...) Casadesus에 의해 아델라이데로 명명되었는데, 그가 작업한 짧은 악보는 두 개의 보표 위에 서명이 있었고 - 위의 것은 독주부분 (D)에, 아래것은 베이스 (E)에 - 루이15세의 큰딸인 Adelaide de France부인에게 헌정되어졌다고 쓰여 있었으며 1766년 5월 26일, 베르사이유라고 되어 있었다고 그는 주장했다.


이 소위 서명이라는 것은 처음부터 의심스러웠는데, 이것이 프랑스의 개인 소장품이라고 주장되어졌지만, 그 당시의 전문가들 (당시 뛰어난 모차르트 전문가인 Georges St.Foix를 포함하여)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것이었다. 또 다른 뛰어난 전문가인 알프레드 아인슈타인 (알버트 아인슈타인과 친척이긴 하나 다른 사람입니다^^;; 유명한 음악학자죠)는 그 서명을 볼 수가 없었다. 심지어 출판사인 Schott도 서명을 봤다라고 얘기하지 못했다.

아인슈타인은 1934년 처음으로 이 작품의 근원을 분석했다. 그는 왜 이 협주곡이 레오폴드 모차르트가 1768년 작성한 그의 아들의 작품목록에 빠져있는지를 의문시했다. 아인슈타인은 또한 모차르트 일가가 1766년5월28일에 베르사이유에 도착하였고 (작품이 헌정되었다고 주장되는 날보다 2일 뒤이다) 6월1일에 파리로 돌아갔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왜 모차르트가 미완성된 작품을 헌정했는지도 질문했다. 그는 만약 볼프강이 "협주곡을 쓰길 원했다면, 그는 협주곡으로 썼을 것이지, 두 오선지로 쓰지 않았을 것이고, 모차르트는 총보를 다루는 일에 아주 익숙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그 작품의 스타일이 모차르트 후기 작품으로 부터 나온 것 같다고 믿었다. 이러한 모든 증거들로 인하여 아인슈타인은 이 작품이 모차르트의 작품이라는 점을 의심했다. 그러나, 혹시 네델란드에서 스케치된 "변주곡"의 잃어버린 부분이며 나중에 파리로 간 것일지도 모른다고 이야기함으로서 약간의 가능성은 남겨놓았다.


10년후,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모차르트 책에서, 이 협주곡은 Casadesus의 크라이슬러 식의 신비화된 곡이라고 부드럽게 서술했다. (크라이슬러가 본인의 곡인데도 마치 예전 작곡가의 곡인 것처럼 하곤 했다는 군요. 그래서 Casadesus도 본인의 곡을 모차르트의 곡인 것 처럼 신비화 시켰을 수도 있다는 뜻인 것 같네요. -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서 고클에 물어봤더니 어느 분이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Friedrich Blume은 1956년에 이 헌정에 관한 문제의 해결점에 도달했다. 원고와 헌정사는 서로 전혀 관계가 없으면 우연히 같이 있게 된 것이라는 것; 그리고는 놀라운 이야기를 했는데 "그 근원을 알 수 없다면 그 작품과 서명 모두를 부인하는 것 보다는 가설을 세우는 것이 훨씬 낫다"라는 것.. 그리하여, Blume은, 1764년의 바이올린 소나타 작품 1과 2에 있는 것과 비슷한 그 헌정사가.. 볼프강의 알려지지 않고 실종되었던 또 다른 작품에 대한 헌정사일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하도록 했다. 그는 이 작품에 대한 질문들에 대답을 하는 것보다는 "그 질문은 이제 별로 흥미 있는 것이 아니다"라도 말했다. !!!! Blume은 아델라이데 협주곡이 K207,  K211과 구조적으로 비슷하다고 보았고, 이 두 곡이 아델라이데를 능가하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그는1775년 4월과 7월 사이에 스케치가 있었다는 사실을 "전적으로 배제할 수 없다"고 믿었다.


내가 알고 있는 바로는 세계에서 이 곡을 밀고 있는 단 한 사람은 에후디 메뉴힌이었다. 그는 이 곡을 7번 협주곡과 같이 녹음했다. K6 (나중에 6번째로 다시 매겨진 쾨헬 번호)체계에서는 이 곡을 Anh C (Anhang, 쾨헬 목록의  appendix인데, 의심스럽운 작품들을 그 쪽으로 넣더군요) 섹션에 넣고 있으며, New Grove (음악백과사전)는 이 곡을 단순히 위작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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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역시.... 제가 번역하니 뭔말인지 종잡을 수가 없네요...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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