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5월 27일 화요일

[공연] 지기스발트 쿠이켄과 라 프티트 방드 2008년 5월 21일





2008년 5월 21일 오후8시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이 공연은 쿠이켄 (또는 카위컨)과 라 프티트 방드의 공연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비올론첼로 다 스팔라의 한국 데뷔무대이기 때문에 더 큰 기대를 하고 예당을 찾았다. 예당에는 생각보다는 관객 수가 많지 않았다.

쿠이켄은 비올론첼로 다 스팔라를 목에 걸고 무대로 나와 약간 구부정한 자세로 바로 바흐의 무반조 첼로 조곡 1번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첼로라는 악기는 커도 안고 연주해야 하지만 저렇게 좀 작게 만들어져도 안는 것같은 자세로 연주해야 하나 보다. 동영상이나 오디오 파일로 들어봤던 악기의 소리와 예당 콘서트홀에서 들리는 소리는 비슷하기는 했지만 조금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매끈하고 반지르르한 모던 악기의 소리도 아니고, 저음이 풍부한 첼로의 소리도 아닌 낯선 느낌의 바흐가 연주되고 있었는데, 보잉이나 운지가 완벽하게 되지 않아 살짝 불편했던 것을 제외하고는 그런대로 괜찮은 느낌이었다. 보면서.... 아 나도 첼로를 연주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라는 생각을 했었다^^;;

이어지는 비발디의 리코더 협주곡 홍방울새는 페터 판 하이겐이 협연자로 등장했는데, 워낙 곡이 즐겁고 발랄한 것이어서도 그렇지만, 가장 열렬한 반응을 얻어 낸 연주였다. 특히 2악장에서 리코더와 비올론첼로 다 스팔라가 이중주를 연주할 때의 앙상블은 정말 아름다운 것이었다. 쿠이켄의 다 스팔라도 바흐 연주때 보다는 훨씬 더 안정된 모습으로 독특한 그만의 음색을 맘껏 들려 주기 시작했었다. 하이겐은 바흐의 리체르카레 이후에 소프라니노 리코더를 들고 나왔는데, 큰 몸집에 그렇게 작은 악기를 들고 마치 작은 새가 지저귀는 것 같은 소리의 연주를 하고 있는 모습도 상당히 재미있었다.

하프시코드를 담당하고 있던 젊은 청년은 하이겐의 연주 사이에 바흐의 음악의 헌정 중 3성 리체르카레를 연주했는데, 예상 외로 매우 깔끔, 말끔한 연주였다. 그는 연주가 끝나면 얼른 뒤로 들어가 다른 단원들 옆에서서 인사를 하곤 했는데 매우 예의바른 젊은이라는 생각도 살짝 들었다.

1부의 마지막은 바흐의 관현악 모음곡이었는데, 관은 없이 현만으로 연주되었다. 원래 오리지널 스코어가 현악기만으로 되어 있었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고 한다. 현악기로 연주되는 곡은 정말 기름끼가 쫙 빠진 듯한 소박한 아름다음을 느끼게 해주었다. 언젠가 같이 앙상블을 할 멤버들을 만나면 이 곡을 스트링버전으로 연주해 보면 좋을 것 같다.

2부는 비발디의 사계. 솔리스트, 바이올린 2, 비올라, 비올론첼로 다 스팔라, 하프시코드. 6명의 연주자들이 연주하는 사계는 기존의 연주와는 상당히 다른 느낌이었다. 물론 그것을 의도한 것이겠지만... 좋게 말하자면 소박하고 투명한 느낌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어딘가 힘이 좀 빠진 듯한 면도 없지 않았다. "봄"을 연주할 때에는 무척 어울리는 음색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여름이나 겨울에는 어쩐지 좀 약하게 느껴지는 연주였다. 지기스발트 쿠이켄의 큰딸인 사라 쿠이켄은 1부 마지막곡에서 합류하여 2부의 사계에서는 내내 솔리스트로 연주했는데, 뛰어난 솔리스트라고 느껴지지는 않았다. 무대를 장악하는 카리스마도 느껴지지는 않았고...

내 자리는 1층의 뒷편이어서 악기 상태가 좋지 않으면 감상에 좀 지장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큰 홀임에도 불구하고 음향의 상태는 좋았다. 다만 뒤쪽이어서 그런지 주변의 관객들의 태도는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었다. (나가고 들어오고, 떠들고...ㅡㅡ;;)

악기의 배치도 조금 독특했는데, 객석에서 바라 볼 때 무대의 오른쪽부터 고음의 악기가 배치되어 왼쪽에 비올론첼로 다 스팔라가 있었다. 그 반대 방향으로 배치되는 것이 보통이라서 이유가 궁금했는데 알아 내지는 못했다. (혹시 쿠이켄이 리더이기 때문에 그가 왼쪽에 서게 된 것일까?)

또 한 가지 눈길을 끌었던 것은 바이올리니스트 중 일본분의 자세인데, 악기를 완전히 어깨에 들쳐 맨 (?) 듯한 모습이었다. 보통 모던 악기라면 턱받침이 있는 자리 또는 많이 가봐야 테일피스 위에 턱이 오는 것이 보통이고, 바로크 바이올린의 경우에도 대부분 그 위치가 얼굴 밑에 오게 되는데 그분의 경우에는 악기의 트레블쪽으로, 그러니까 왼쪽 어깨에 악기가 거의 다 올라간 것 같은 상태로 연주를 하고 있었다. 들려오는 연주에는 아무 이상이 없었는데 나는 그분의 그 자세에서 활이 움직이는 모습이 매우 신기하게 보였다..ㅡㅡ;

사실 이번 공연은 매우 독특한 것이었는데, 새로운 (?) 고악기도 등장했을 뿐만 아니라, 매우 익숙한 곡들은 상당히 색다르게 연주했기 때문이다. 쿠이켄의 음악적인 탐구에 같이 동참하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이런 연주가 과연 대중적인 동의를 얻어낼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회의가 든다. 그런 점에서 공연 이후에 여기 저기에서 발견한 매우 호의적인 감상평들은 다소 의외였다. 고음악애호가라고 하여도 쿠이켄의 '실험'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갈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말이다. 어쩌면 꽤 많은 사람들이 기존 방식의 연주에 식상하여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면 요즘 유행하는 '웰빙'의 흐름이 음악감상에도 접목되어 기름빠진 연주에 환호성을 올렸는지도...^^ (어쨌건 나는 이 연주방식이 꽤 마음에 들었다. 이번 공연의 연주 자체는 아주 만족스러웠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말이다.)

프로그램

J.S. Bach : Suite No. 1 in G major for Violoncello Solo, BWV 1007 (Solo : Sigiswald Kuijken, violoncello da spalla)
A. Vivaldi : Concerto for recorder in D major, RV 428, "Il Gardellino" (Solo: Peter Van Heyghen, recorder)
J.S. Bach : Ricercar a 3, Musikalisches Opfer, BWV 1079 (Solo : Benjamin Alard, harpsichord)
A. Vivaldi : Concerto for flautino in C major, RV444 (Solo : Peter Van Heyghen, flautino)
J.S. Bach : Suite No. 3 in D major, BWV 1068 (version for strings)

Intermission

A. Vivaldi : Four Seasons (Solo : Sara Kuijken, violin )
Concerto in E major, Op.8 No.1 "La Primavera"
Concerto in g minor, Op.8 No.2 "L'Estate"
Concerto in F Major, Op.8 No.3 "L'autumno"
Concerto in f minor, Op.8 No.4 "LInvierno"

라 프티드 방드의 홈페이지: (위 사진들의 출처)
http://www.lapetitebande.be/ 

쿠이켄이 연주하는 악기를 만든 드미트리 바디아로프의 홈페이지: (그가 직접 자신의 악기를 연주하는 동영상은 유튜브에 상당히 많다)
http://violadabraccio.com/

댓글 2개:

  1. 트레블 위 쪽으로 턱을 가져감으로써 악기가 어깨 위로 올라가는 자세는 19세기 이전의 문헌에서도 자주 언급되는 당시의 관습이었습니다. 그래서 간혹 바로크 바이올린이나 비올리스트들이 이런 자세로 연주하는 사람들이 있죠.

    이제 곧 유럽으로 바로크 바이올린을 공부하러 오는 동생벌 친구가 그러던데 브뤼셀 음악원에서의 쿠이켄의 정년이 이제 1년 밖에 남지 않았다고 하네요. 존경하는 분들이 연로해지는 모습을 본다는 건 참 안타까운 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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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슈타이너 - 2008/05/29 01:44
    그렇군요. 그분의 독특한 방법이라기 보다는 옛 연주방식을 나름대로 복원한 것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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