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0월 28일 일요일

[공연] 피에르 앙타이 쳄발로 독주회 2007. 10. 26

바흐 페스티벌 공연 중 두번째 관람. 뛰어난 하프시코드 연주자 피에르 앙타이가 온다는 소식에 예매를 안할 수가 없었다. 원래는 27일 공연을 보려고 했으나, 뮤직캠프 때문에 26일 표를 예매했던 어느 분과 표를 교환했다. 사실 프로그램 자체는 26일 것에 더 흥미가 있었기 때문에 잘 된 일이었다. 바흐까지 건반악기의 역사적 흐름을 훑는 듯한 곡들로 구성되어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하프시코드 연주는 종종 봤지만, 늘 오케스트라 또는 실내악 연주자들과 함께 연주되는 것이 었기 때무네, 하프시코드만의 독주회는 처음이었다. 작은 홀, 가까이에서 하프시코드의 소리를 보고 들을 수 있다는 것이 무척 설레는 일이었다. 하지만, 사실 악기는 가까이에서 보지 못했고, 홀이 작았슴에도 불구하고 악기의 소리가 별로 크게 느껴지진 않았다.

 하프시코드는 소리도 작고, 역시 강약의 구별이 두드러지지 않는... 그리고 단조로운 음색을 가지고 있는 악기이다. 그래서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그 악기가 독주악기로 쓰이는 음악들보다는 오케스트라와 어우러 지는 것을 더 좋아한다. 세상에는 하프시코드가 들어가면 100배쯤 아름답게 들리는 관현악곡들이 잔뜩있다. 그러나, 역시 독주만으로는 지나치게 단조롭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러나, 앙타이는 이 악기가 매우 흥미로운 연주를 들려 줄 수 있는 악기라는 생각이 드는 연주들을 들려 주었다. 그의 연주는 영국의 오래된 작곡가들의 곡으로 시작되었는데, 그 오래된 음악들은 화려한 장식음들이 고풍스러운 선율과 어우러지면서 그의 손가락을 통해 신선한 느낌을 주는 현대의 연주로 바뀌어 지고 있었다. 쿠퍼랭의 곡은 얼마 전 타로의 연주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같은 프랑스 사람인데, 앙타이의 쿠퍼랭은 몰랑했던 타로의 쿠퍼랭이 아니라 역동적이고 다채로운 느낌을 주는 음악이었다.

그가 쉬지 않고 8곡이나 연주한 스카를라띠의 소나타는 (물론 단악장으로 구성된 짧은 곡들이긴 하지만) 음반을 구입하고, 악보를 읽고 싶은 생각이 드는 흥미로운 연주였다. 빠르고 화려한 곡들이 나오는가 하면 느리고 서정적인 곡이 나왔고, 특히 마지막 소나타는 불협화음이 놀랄만큼 많이 쓰여서 굉장히 강렬한 느낌을 주었다. 이어지는 이탈리안 콘체르토도 생동감이 넘치는 연주였다.

앙타이는 예정된 프로그램의 전반부에 바흐의 푸가와 프렐류드를 더했고, 후반부엔 5개를 연주하기로 했던 스카를라띠는 8곡을 연주했으며, 이어지는 박수에 앵콜을 3곡이나 연주했다. 7시반에 시작된 연주회를 마치고 나오니 10시. 독주회로는 이례적으로 긴 연주회였다.

앙타이는 의자에 상당히 어정쩡하게 앉아서 연주했고, 무대에서 인사를 할 때에는 약간 삐딱하게 고개를 숙였다. 사실... 7시반 연주회인데 5분전에서야 관객들을 홀로 입장시켰고, 들어가서는 방송멘트 뿐 아니라 직접 관계자가 나와서 전화기 등 소음을 내지 말라고 부탁을 여러번 했었으며, 연주는 관객들이 모두 자리에 앉은 후에도 한참이나 지나서야 시작되었다. 조명기사가 문제가 있었는지, 아니면 앙타이의 요구가 까다로왔는지 모르겠지만, 홀의 조명은 전반부 내내 왔다갔다 했고, 프로그램에 바흐가 추가되었는데도 불을 환하게 켜 버려서 앙타이가 바로 연주에 들어가지 못하는 일도 있었다. 이런 모든 일들이 무엇때문에 벌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연주를 듣는 동안 앙타이가 까칠한 것인지 아니면 공연장 측에 문제가 있었는지 아주 궁금했었다.

인터미션 때 무대로 가까이 가서 악기를 좀 봐야지... 라고 생각했었는데,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나는 인터미션이 시작되자마자 홀 밖으로 나와 버렸다...;; 나왔다가 다시 제정신이 들어 다시 홀로 들어갔는데, 앙타이는 도로 무대로 나와 열심히 튜닝을 하고 있었다. 그가 가져온 악기인지, 국내에 있는 악기를 빌린 것인지... 한 음 한음 튜닝을 하고 있는데, 그 쪽으로 다가가서 악기 구경을 하기는 좀 민망해서 그냥 자리에 앉아 있었다. 인터미션에 자리에 남아 있던 관객들은 그의 튜닝하는 모습이 신기했는지, 사진을 찍어 대기 시작했다. 플래쉬를 터뜨리지 않는 한 두장 쯤은 이해를 할 수 있겠는데... 플래쉬가 여기저기서 터지기 시작하자... 정말 짜증이 났다. 어떻게 튜닝하는데 저렇게 할 수가 있나 싶은 생각에 공연장 관리자에게 이야기를 할까 생각하던 차에... 입구에 서있던 아가씨가 들어와 제지를 하기 시작했다.

앙타이는 스카를라띠 소나타 마지막 곡을 연주하기 전에 잠깐 한 두 음을 다시 튜닝했다. 보고 있노라니.. 하프시코드 튜닝에 대해 좀 알아 보고 싶어졌다....

또 한 가지 재미있었던 점은 앙타이의 악보. 많은 피아니스트들은 암보로 연주하고, 일부는 악보를 가지고 나와서 연주를 하기도 하지만, 소위 '클리어 파일'이라고 불리우는 비닐로 된 파일에 악보를 넣어서 들고 나오는 연주자는 처음 봤다. 사실 나는 종종 악보를 인쇄하거나 복사해서 클리어파일에 넣어 놓고 쓴다. 하지만 무대에 그런 악보를 들고 나가면 조명 때문에 상당히 보기가 어렵게 될 것 같다.. (앗... 그러고 보니, 그래서 홀 조명이 그렇게 왔다갔다 했던 걸까? 앙타이는 악기에 별도의 조명도 부착했던데...;;;) 또 보통 연주자들은 인쇄되어 나온 책을 쓰기 때문에 그런 파일을 이용하는 것인 좀 특이해 보이기도 했다.  특별히 최근에 출판되어진 악보를 쓰는 것이 아닌 이상에는 저작권에 문제가 없을 것 같긴 하지만... 하여간 특이했다.

Prog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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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menico Scarlatti (1685-1757), Sonatas K535 and K371
<-- 동영상을 가장한 음악파일

(유튜브에는 앙타이의 유명한 골드베르크 변주곡 연주가 올라와 있기도 하다. )

관련기사: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7/10/29/2007102900025.html (다음날이었던 세종체임버홀에서의 공연에 관한 기사와 사진)

댓글 2개:

  1. 비밀 댓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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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Anonymous - 2007/11/05 14:55
    아...넹.. 아티큘레이션은 정말 끝내줬었어요^^ 역시 스카를라티였죠.. 앙타이의 명성을 유감없이 보여준... 전 바흐도 괜찮았었는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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