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0월 3일 금요일

10월 초에 적어 보는 2008년 이야기

4분기가 시작되었다. 2008년이 아직 3달이나 남아 있는데도, 이런 한 해는 다시 오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여러가지 변화들이 몰아쳐 왔다. 그리고 아직도 계속되고 있고...

1. 지난 10년 간 내가 세상 걱정 별로 안하고 살아 왔었다는 사실을 사무치게 깨닫게 해주고 있는 새 정부. 정말 잘 해도 미국발 경제위기의 여파 때문에 잘했다는 이야기 듣기 어려울 텐데... 가야할 길을 기막히게 잘 피해서 엄한 길로 간다. 80년대에는, 역사의 수레바퀴가 굴러 가지 않고 멈추어 있는 것이 답답했었다면... 이제는, 그 바퀴가 거꾸로 굴러 가고 있는 것이 뻔히 보이는 데에도 너무나 당당한 사람들이 있어 답답하다. 그들의 움직임에서 발언에서 개발독재의 망령이 자꾸 보이는 것 같아 가끔씩 소름이 끼친다.

2. 90년 그리고 그 이후 공산권 국가들이 사라지고, 중국도 시장경제를 도입하고.. 세계경제는 정말 미국을 중심으로 돌고 있었다. 실물경제의 흐름에 직접 뛰어 드는 것 보다는, 투자은행이나 컨설팅으로 가는 것이 경영학도들의 꿈이 되었고... 자본시장은 많은 사람들에게 아주 가까운 곳이 되었고 더이상 가난한 아빠는 아이들에게 존경을 받을 수 없고 모두 부자아빠가 되는 길을 궁리하기 시작했다. 근로소득이 아니라 자산소득이 있는 사람들만이 중산층 또는 그 이상의 생활 수준을 유지할 수가 있게 되었는데... 이런 현상은 아마도 전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었던 것 같다.

경기는 순환한다. 하지만 잔 물결과 큰 물결은 차이가 나는 것이고... 아예 바닷 속 지진이라도 일어나 해류의 흐름이 근본적으로 변화하는 경우도 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확실히 잔물결은 아닌 것 같은데... 어느 정도의 큰 물결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불과 얼마 전만해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만은 틀림이 없다.

3. 이런 변화를 역사적인 맥락에서, 그리고 보다 거시적인 시각에서 관찰하고 숙고하고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여전히 냄비처럼 부르르 끓어 올랐다가 식었다가... 갈팡질팡하고 있는 사람들만 잔뜩 있을 뿐이다. 아니면... 그저 일상사에 허덕이며 전전긍긍하느라 변화에 대한 고민조차 할 수 없는 사람들이거나...

4. 그래서 그런 것일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 지도자 또는 리더를 자부하며 나서고들 있다. 전에는 그래도 조금은 도덕적이고, 가끔은 부끄러워 할 줄도 아는 사람들이 있었다면, 지금은 도무지 그 머리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매우 궁금한 사람들이 정말 많다. 요즘은 TV에서 더이상 개그프로그램을 보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더라... 세상 이야기가 뉴스와 기사가 훨씬 더 기막힌 코메디인 걸...

5. 그리고.. 세상은 점점 더 끔찍해 진다. 원래 세상은 끔찍한 일 투성이인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원래 본성적으로 매우 심하게 잔인해 질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점점 더 충격적인 일들이 많이 보인다. 미디어의 발달로 인해서 안 봐도 될 뉴스까지 전해지기 때문인 것인지...

6. 지금까지 내가 다녔던 회사들은 그다지 상황이 어려웠던 적이 없었다. 내가 보기에는 그다지 훌륭한 경영전략이 없었어도.... 워낙 시장 상황이 좋아 수요를 다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였거나... 네임 밸류 때문에 가만히 있어도 일이 생겼었거나... 제품이 좋아 특별한 마케팅 전략없이도 성장에 큰 어려움이 없었던 경우들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쉽지는 않을 것 같다. 어떤 식으로 진행될 지는, 그저 tax를 하고 있는 나로서는 잘 모르겠다 - 알고 싶지 않은 걸지도...;; - 하지만 확실히 변화가 필요하고.. 변화는 진행되고 있는 듯하다. 다만, 미국도 한국도 시장이 좋지 않아서 바람직한 결과가 나올 지는 미지수일 것 같다.

7. 추석 연휴 마지막날, 리만브러더스의 파산신청 기사가 나온 이후.... 시계가 한 10배쯤 빨리 돌아가기 시작한 것 같다. 작년 말에 고점을 찍었던 이 회사의 주가는 정말 문자 그대로 반토막이 났다. 뭐.... 아예 문을 닫는 회사들이 수두룩한 판에 반토막이 난 정도야...; 어제는 유상증자 플랜이 나왔는데, 예상대로 확실히 시장에는 bad signal이 되었다. 오늘도 현재 9% 정도 하락 중...; 다음주에 3분기 실적발표가 나오면 어찌 될지...

8. 오늘 (12시가 넘었으니 어제) 아침, 워렌 버핏의 우선주 매입과 유상증자 뉴스는 약 10정도의 충격이었다면, 출근해서 본 최진실의 자살 뉴스는 한 70-80정도의 놀라움을 안겨 주었고, 퇴근시간 즈음에 들은 회사 내부 announcement는 200정도.... 어제는 확실히 특별히 뉴스가 많은 날이긴 했지만... 올해는 내내 며칠 간격으로 놀라운 소식들을 계속 듣고 있다. 아무래도 魔가 낀 듯... 우리는 광화문 사거리에서 살풀이를 하고 뉴욕에서는 월스트리트에서라도 살풀이를 한 판해야 하지 않을까...ㅡㅡ;;;

댓글 2개:

  1. 안녕하세요^^ 음악과 관련된 정보검색하다가 우연히 들렀는데, 좋은 글들이 많아 잘 읽고 갑니다.ㅎ

    몇개 글들을 읽다보니, 마치 저의 미래 모습을 보는 듯해요. 바이올린이 플룻으로만 바뀐다면요. 전공분야도 저랑 같으시고. (물론 아직 광역계열입니다만 2학년 때 경제학과 갈 예정이에요. 08학번이란 얘깁니다.^^) 그리고 이준구교수님 사이트가 링크되어있으신 것을 보아 저랑 같은 취향(?)이신 듯해요. ㅎ



    다시 이 사이트에 방문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좋은 글들 읽었기에 감사하다는 말씀드리고 싶어서 글남겼습니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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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하늘 - 2008/10/03 15:05
    반갑습니다^^; 08학번이면 저와 딱 20년 차이가 나는군요... 아직도 20년 전 학교 다니던 시절이 엊그제 일 같게 느껴지긴 하지만요^^



    전 경제학과는 아니고 경영학 전공입니다. 이준구교수님은 학부시절 미시경제학 강의를 한 번 들은 것, 그리고 나중에 시험공부할 때 미시책을 그 분 책으로 봤던 것 이외에는 사실 별다른 인연은 없구요. 그땐 '신진경제학자'이셨지요..ㅎㅎ



    사실은, 학부때는 주류보다는 비주류 경제학에 더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그분 성향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지요. 시간이 지나고... 자의 반 타의 반 제 관심사도 더 '주류'에 가까워 지고... 이교수님 사이트의 글들을 읽다보니.. 아, 이분이 이런 생각을 가지신 분이셨구나라는 것을 정말 거의 20년이나 지나서 알게 되었어요. 단지 '깔끔한 미시교과서의 저자'...라는 이미지였었는데..ㅎㅎㅎ



    다시 오시게 되실지는 모르지만.. 감사의 댓글 정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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