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0월 30일 목요일

[공연] 카르미뇰라와 베니스바로크오케스트라 2008년 10월29일

카르미뇰라의 공연은 꼭 봐야만 했다. 요즘 이래저래 우울한 일 투성이인데 이 공연을 보면 기분이 상승기류를 탈 수 있을 것 같아서일까... 오래간만에 기대에 가득 차서 예당으로 간 듯 하다. 바이올리니스트들이 거의 정면으로 보이는 합창석에 자리를 잡고 공연이 시작되길 기다렸다. 합창석에서 제일 바람직한 자리를 잡아 주신 슈클에 감사...

첫 세 곡은 베니스바로크오케스트라의 연주. 투명하고 맑은 현의 울림이 물결을 타는 듯한 연주였다. 비발디 시절의 베니스로 돌아가 축제의 서막을 알리는 느낌이랄까. 보통 류트가 합주와 같이 나올 때는 류트소리가 다른 악기들 소리에 묻혀서 잘 들리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베니스 바로크의 류트 소리는 간간히 곡의 흐름을 주도하면서 꽤 파워풀한 소리를 들려 주었다.

네번째 곡에서 등장한 카르미뇰라는 사진이나 동영상 클립에서 봤던 것과는 달리 백발의 모습이었다. 그 사이 나이가 많이 들은 걸까... 하지만 미모(?)는 여전했다. 이 협주곡에서 카르미뇰라의 바이올린은 앙상한 소리를 내고 있었는데, 건조한 날씨 탓인지 의도적인 것인지가 궁금했었다. 하지만 후반부의 사계를 들어 보니... 날씨 탓은 아니고 의도적으로 음색을 그렇게 만들었던 듯.... 이 곡은 처음 듣는 곡이었는데 (비발디 곡은 처음 듣는 곡도 처음 듣는 것 같지 않은 듯한 느낌을 주긴 하지만...;;) 눈 앞에서 카르미뇰라의 너무나 자연스러운 슬러스타카토와 리코셰 테크닉, 그리고 놀랍게 빠르게 움직이는 오른팔 보잉을 보고 있노라니 감탄이 절로 나왔다. 어찌 부럽던지...

노란 바니쉬의 1732년 바이오 (Baillot) 스트라디바리에는 턱받침에다 어깨받침까지 달려 있었고, 카르미뇰라의 활은 다른 바이올리니스트들의 뾰족한 바로크활과는 달리 상당히 투르트 모델에 가까이 간 듯한 모양새로 보였다. 이러한 그의 악기와 활의 특성이 후반부의 사계 연주에서 매우 "모던"한 음색을 보여 주게 되었던 모양이다.

사계. 여러가지 종류의 사계를 들어봤지만, 음반을 통해서 들어본 카르미뇰라와 베니스바로크의 사계는 매우 강렬하고 아주 재미있는 사계였었다. 과연 실연에서는 어떻게 연주할까 매우 궁금했었는데, 드디어 눈 앞에서 그들의 연주를 보게되었다. 사계의 주인공은 확실히 카르미뇰라였는데, 솔직히 이런 사계는 처음이었다. 콘서트홀의 무대가 봄에서 여름으로 가을로 그리고 겨울로 바뀌는 모습이 너무 생생해서 신기할 정도였다.

카리스마 넘치는 카르미뇰라의 솔로는 매우 조화롭게 합주를 맞추어 주는 베니스바로크와 너무나 잘 어울렸다. 군데군데 들려오던 카르미뇰라의 장식음도 연주를 매우 독특하게 들리게 했다. 카르미뇰라의 바이올린 음색은 전반부와는 달리 강하고 풍부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베니스 음악이라서 그런가... 피치도 높아서 음색이 매우 화려하게 들려왔다.

재미있었던 것은... 역시... 폭풍우처럼 몰아치는 카르미뇰라의 여름과 상상하지 못했던 겨울 2악장. 여름은, 내가 과연 시대악기 연주단체의 연주회에 와 있는 것인지 모던 록그룹의 콘서트에 와있는 것인지를 매우 헷갈리게 만들었고, 어... 하고 깜짝 놀라게 만들면서 장식음 (또는 카덴차)를 붙여시작한 겨울 2악장은 조영남이 가곡을 자기 멋대로 가요로 바꾸어 부르는 장면을 연상케 만들었다.

카르미뇰라 말고... 계속 등만 바라봐야 했던 첼리스트와 비올라 아줌마도, 인사하려고 돌아섰을 때 보니 모두 훈남훈녀들인 듯 했는데, 사실은 신나게 연주해준 류티스트 아저씨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관객들의 환호와 이어지는 박수에 이 마음 좋은 이탈리아 사람들은 앵콜을 3곡이나 이어서 해주었는데, 본 연주만큼이나, 아니 본 연주보다 더 멋진 연주였다. 이탈리아인들의 비발디 연주. 같은 나라 사람이지만 이무지치의 교과서적인 연주와는 전혀 다르고, 나름대로 파격과 풍류가 있는 비발디... 빨간머리 사제 비발디가 21세기에 나타나면 이렇게 연주할 지도...? 하여간 간만에 정말 재미있었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던 연주회.

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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