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1월 5일 수요일

[공연] 로버트 레빈 피아노 리사이틀 2008년 10월31일

많이 기대했었고, 기대했던 것 만큼 재미있었던 공연이다. 클라라 하스킬이 모차르트를 가장 아름답게 연주하는 연주자라면, 레빈은 모차르트를 가장 재미있게 연주하는 연주자가 아닐까.

CD를 들고 갔었더라면 연주회가 끝나고 싸인을 받는 건데... 라는 생각도 간만에 들었다. (시간이 안맞아 연주회를 갈까 말까 계속 망설였었는데.. CD를 들고 가는 것까지 생각을 했었을리가 없긴 하다..ㅠㅠ)

특이하게도 레빈은 무대로 나오자 마자 마이크를 들었다. 오랫동안 교단에 서왔던 교수님답게 어찌 달변이던지... 사려깊은 교수님께서는 영어에 익숙치 않은 한국 관객들을 위해 아주 천천히 또박또박 알기 쉽게 자신이 오늘밤 어떤 연주를 계획하고 있는지, 그 연주가 현대의 많은 연주자들의 연주와 어떻게 다른 것이 될지 잘 설명을 해주셨다. 모차르트 시대에는 notes들을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story를 들려 주는 것이라는 것 (지금도 음악 아니 모든 예술은 예술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있어야 예술이 되는 것이 아닌가..). 전반부는 fake improvisation이 될 것이라며 볼프강 아마데우스가 즉흥연주를 잘 하지 못하는 누이 난넬을 위하여 작곡한 곡을 연주할 것이며, 후반부에는 real improvisation을 선보일 것이라며, 관객들이 적어내는 테마를 improvise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Art is all about communication"이라는 이야기를 하며 여기 있는 모두가 10월31일 H.O.A.M 아트홀에서의 콘서트를 잊지못할 시간으로 만들어 보자고 하면서 그는 뒤에 놓여 있는 스타인웨이 피아노로 돌아가 연주를 시작했다.

레빈의 포르테피아노 연주를 은근히 기대했었지만, 악기가 스타인웨이여도 그의 연주는 특징적이고 인상적이다. 다양한 장식음과 카덴차들이 그의 연주들을 반짝반짝 빛나게 만들었는데, (그 연세에도 불구하고) 정말 재기넘치는 연주자가 아닐 수 없다. 언뜻 봤을 때는 전에 왔을 때 보다 좀 더 나이들어 보였지만, 모차르트를 연주하고 있어서인지 피아노 앞에 있는 그는 마치 모차르트의 재현인 듯 젊고 열정이 넘쳐 보였다.

첫 곡 F major 소나타의 빠른 악장에서는 정말 18세기 관객들 앞에서 연주하는 모차르트가 상상되었고... 짧은 프렐류드로 12개의 변주곡과 첫 소나타를 연결했다. 12개의 변주곡은, 그가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variation에 more variation이 넣어져 연주되었는데, 변주마다 단순히 몇 개의 음들이 바뀌면서 조금씩 느낌이 달라지기도 했고, 장식음들이 첨가되면서 색다른 느낌을 주기도 했다.

드디어 후반부. 악보를 읽고 쓸 수 있는 사람들은 다 모차르트 풍의 테마를 적어 넣어 달라고 레빈이 부탁했었는데... 나와는 달리... 악보를 읽고 쓸 수 있는 분들이 많았던 듯 하다..^^; (음치인 나는 인터미션 동안 음악과 전혀 관계없는 책을 읽었...) 레빈이 연거푸 C major 테마 두 개를 뽑아 내었고, 그 다음엔 too many C major라고 살짝 투덜대면서 다른 조성의 테마들을 두 개 더 뽑았다. 아마도 b minor와 c minor (나는 속으로 "음.. 다장조가 아닌 테마들을 써낸 사람들도 있군..."이라고 생각했었다는...;;;) 뽑은 4개의 테마들을 들고 그는 이제 연주를 시작한다며 Ladies and gentlemen, Fasten your seat-belt! 하고는 연주를 시작했다.

호... 4개의 테마들이 레빈이 생각하는 모차르트 스타일의 변주들로 쭉 엮이기 시작하는데.. 정말 그것은 놀랍고 즐겁고 특별한 경험이었다. 그제서야... 나도 테마를 한 번 써내어 볼 걸 그랬다는 후회가 들기 시작했다..ㅠㅠ 어떻게 저렇게 아이디어가 풍부할까 싶은 변주들이 이어졌고, 그 중 그다지 모차르트스럽지 않은 테마들마저 그의 변주로 모차르트식의 음악으로 탈바꿈하는 모습도 정말 재미있는 장면이었다. 그는 첫 주제로 다시 돌아가 4개의 혼합 테마에 의한 모차르트 즉흥변주곡을 끝마치고는 잠시 무대 뒤로 들어갔다 나와서는, 마치 지금 빨리 안가면 열차를 놓칠 사람처럼 이제 우리는 b flat major로 가야한다면서 피아노에 앉았다. 모차르트가 너무 빨리 죽는 바람에 완성하지 못했을 거라는 두 개의 소나타의 연주와 K.333도 역시 그의 재기발랄한 음악으로 가득 메워졌다.

레빈이라는 천재가 보여 준 유쾌한 음악적 상상력으로 가득 찬 특별한 연주회. 그는 확실히 communication이 무엇인지를 아는 예술가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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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ll Mozart Program 

-소나타 F 장조 K. 533/494
-프렐류드(F 장조에서 C 장조로 전조, K. deest + 624 (626a) Anh. I, (K6 Anh. C 15.11)
-‘아, 어머님께 말씀 드리죠’ 주제에 의한 변주곡, K. 265

Intermission 

-모차르트 테마에 의한 즉흥연주 (10-15분)
-알레그로, 소나타 B-flat 장조, K. 400 * 
-알레그로, 소나타 in G 단조, K. 312 *
-소나타 B-flat 장조 K. 333 

* 는 본래 미완성 곡이며, 이번 공연에서 로버트 레빈이 직접 완성한 버전으로 연주합니다. 


레빈이 관객들이 적어 낸 테마들이 있는 통에서 테마를 뽑으며 읽어 보고 있는 장면
(출처: 호암아트홀. 조선일보)

댓글 4개:

  1. 오...놀라운 음악회네요. 특히 2부. 글 읽으면서 왜 이리 흥분되고 두근거리는지. 못 갔다는 사실--엄밀히 말해 몰랐지만--이 너무 안타깝네요.

    한국에 다시 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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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amaDeus - 2008/11/08 13:27
    아마 다시 오시겠죠.. 1년 이내에는 어려울지 모르겠지만, 2-3년 내에는요. 다음에는 꼭 보러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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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이 글 읽고 유투브에서 Robert Levin으로 검색했더니 Mozart Lecture라는 제목으로 세 편의 동영상이 검색되네요. 한 번 보세요.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저에게는 새로운 것을 보여주더군요. 특히 현대 피아노와 과거의 피아노를 비교하는 부분이 아주 재미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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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amaDeus - 2008/11/08 19:03
    그 동영상은 레빈의 모차르트 소나타 씨디에 보너스로 들어 있는 DVD에서 온 것이랍니당. 꽤 오래 전에 유튜브에서 봤는데 아직도 있군요^^ 그 동영상 올린 사람 아이디가 Levin is my hero 라는....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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