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6월 22일 월요일

넋두리

토요일 오전에 레슨을 갔다왔다. 요즘 하루에 한시간도 연습을 못한다. 그나마 하는 날은 다행이고... 아예 못하는 날도 많다. 레슨을 갔더니 깐깐한 우리 샘... 제자리 걸음 계속하고 있는 내 진도를 매우 불쌍히 여기시는 듯 하다. 그냥 진도 나가자며, 이전 곡들 몇 번씩 집에서 더 연습해 보라고 하신다. ㅠㅠ

 

레슨 받고 있는 다섯 권의 책들 중 네 권에서 진도가 나갔음에도... 기분은 매우 꿀꿀하다.ㅠㅠ

 

요즘 악기 소리도 영 마음에 안든다. 어저스트를 좀 받아봐야 하는데 시간도 없고 귀찮고 주말엔 공방들도 안하고... 연습 별로 하지도 않았는데 현을 가는 건 돈 아깝고.. 줄간다고 소리가 나아질 것 같지도 않고...

 

앙상블에서 받은 숙제(?)도 주말에 했어야 하는데 전혀 하질 못했다. 주말에 시간을 내어 녹음을 하려고 했었는데, 결국은 전혀 할 수가 없었다. 혼자서 조용히 시간을 가지고 연습하고 녹음해야 하는데 이리저리 약속에 아이들 쫓아다니고 하느라...

 

이번 주에도 뭔가 일이 많은데.... 약음기끼우고 녹음을 할 수도 없고..;;;;

2009년 6월 19일 금요일

[공연] 타카치 콰르텟 & 손열음, 6월18일

공연 운이 안따라 주는 올해.... 간만에 기다리던 공연을 별 탈 없이(?) 볼 수 있었다.

LG아트센터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북적북적. 아무래도 타카치 콰르텟보다는 손열음양의 인기 덕이 아닌가 싶다. 관객들의 분위기도 그렇고..^^

 

(아래 사진은 어제 공연 사진은 아니고 이전 사진인 것 같다. 아마도 반클라이번 콩쿨 때 브람스 연주했던 사진이 아닐까 추측... 어제 손열음양은 붉은 상의에 검은 바지를 입고 나왔었다. 출처: 연합뉴스)

 

프로그램:

하이든 현악4중주 Op.77 No.2 "로브코비츠"
바르토크 현악4중주 No.4, Sz91
Intermission (20분)
슈만 피아노 5중주 Op.44 (손열음 협연)

 

물 흐르듯이 시작한 하이든. 모차르트나 하이든의 현사에서 그렇듯이 퍼스트 바이올린의 비중이 매우 높은 곡이어서 계속 시선이 퍼스트인 에드워드 듀슨베리에게로 향하게 된다. 퍼스트는 아주 안정적인 연주인 것처럼 느껴지지는 않았는데, 나머지 멤버들의 연주가 탄탄하게 곡을 지지해 준다. 2악장에 들어서면서 통통튀는 스타카토, 마르카토의 향연이 눈부시다. 듀슨베리의 연주도 물이 올랐다. 매우 서정적이면서 아름다운 3악장에서는 분명 누구도 약음기를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마치 콘 소르디노를 하는 듯이 부드럽고 조화로운 음색을 들려 주었다.

 

두번째 곡인 바르토크는 타카치만의 색깔을 느낄 수 있는 곡이었다. 악장마다의 특징을 명료하게 보여주는 해석과 멤버들이 신뢰를 바탕으로 스스로가 생각하는 방향으로 연주를 끌고 가는 모습도 멋졌다. 아름다운 3악장과 피치카토로도 이렇게 다양한 음색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4악장, Jazzy한 느낌으로 헝가리풍 선율을 보여준 5악장, 등 흥미진진한 연주였다.

 

마지막 슈만에서는 관록있는 타카치 멤버들에 손열음양이 같이 나와 연주를 시작했다. 피아노는 현악기들과 보기드물게 잘 어우러졌다. 타카치 단원들과 눈을 맞춰가며 (페이지 터너도 없이 악보를 휙휙 넘겨가며;;;) 앙상블을 이루는 손열음양의 모습이 좋아 보였다. 그녀는 실내악에도 재능이 있는 것 같다.

 

슈만의 피아노 5중주는 곡 전체에 슈만에 '이건 내 곡'이라고 적어 놓은 것 같은 느낌이 들만큼 너무나 슈만스럽다. 예전엔 슈만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아니면 전혀 관심이 없었거나..) 전에 교향곡 1번 연주에 참여해 본 이후로 슈만에 호감이 생긴 듯 하다. 낭만주의적인 아름다움이 주조를 이루면서도 특유의 불안함과 변덕스러움이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슈만의 곡들은 그의 인생과도 닮아 있는 것 같다.

 

타카치와 손열음의 연주는 3악장과 4악장으로 활기차게 이어져 멋지게 마무리되었다. 관객들은 열렬하게 환호와 박수를 보냈지만, 여러번 이어지는 커튼콜에도 앵콜은 없었다. 아마도... 피아노 5중주곡으로 끝났기 때문에 앵콜곡 고르기가 쉽지 않아 준비를 안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타카치 콰르텟(Takács Quartet) 사이트: http://www.takacsquartet.com


에드워드 듀슨베리(Edward Dusinberre) / 바이올린
카로이 슈란츠(Károly Schranz) / 바이올린
제랄딘 월더(Geraldine Walther) / 비올라
안드라스 페어(András Fejér) / 첼로

 

타카치 과르텟의 오리지널 멤버인 카로이 슈란츠와 안드라스 페어는 무척 즐겁고 행복해 보이는 연주자들이었다. 연주도 그에 어울리게 했는데, 슈란츠는 세컨바이올린의 모범을 보여주는 듯 시종일관 안정적이고 탄탄한 연주를 들려 주었고, 페어의 첼로는 즐겁고 재미있고 때로 유머러스한 분위기였던 것 같다. 바르토크 3악장에서는 매우 서정적인 선율을 들려 주기도 했지만. 유일한 여성 멤버이며 가장 최근에 콰르텟에 들어온 제랄딘 월더의 비올라도 정말 좋은 연주였다. 튀지 않으면서도 비올라 파트를 명확하게 보여주었는데, 슈만 피아노 5중주에서 들려 주는 강렬한 비올라 선율들이 인상적이어서 솔리스트로도 매우 훌륭한 비올리스트이지 않을까 싶다. 에드워드 듀슨베리의 리더쉽도 다른 멤버들과 조화를 잘 이루었던 것같다. 콰르텟에서 퍼스트 바이올린의 역할이야 말할 필요도 없는 것인데, 그의 경우는 혼자 먼저가는 리더가 아니라 다른 멤버들과 같이 가는 부드러운 리더의 모습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2009년 6월 17일 수요일

3주 만의 앙상블 연습 (6월13일 토)

지난 번 연습 끝날 무렵 잡은 이번 연습 날자를 보니 한 주가 더 뒤로 밀려 있었다. 현충일을 피해서 잡다 보니 그렇게 되어 버린 듯 한데.... 문제는 하도 간만에 모이는 것이다 보니 막상 연습 당일 아침에 약속을 까먹어 버린 것이다.

 

원래 형편없는 기억력인데다가 요즘은 집중력도 떨어지고 건망증은 더욱 심해지고 있는데, 토요일 아침 큰 애 스카우트 활동 때문에 학교에 데려다 주고 집에 와서는 아~ 오늘은 좀 쉬자... 하고 늘어져 있었던 것. 약속장소에 10분이 늦도록 나타나지 않자 세원씨가 전화를 했고, 그제서야 까맣게 잊고 있던 연습모임이 생각이 났다.

 

그리하여... 지각. 레슨 받는 곡들도 연습을 도통 못하고 있었으니.... 앙상블곡들은 정말 3주 만에 처음 열어 보았다. 포지션을 어떻게 했었는지도 오락가락하고... (악보에 표시를 해놓았어야 하는데..) 음정은 지멋대로에 조표도 잘 못 읽고...;;;

 

경희씨가 각자 레슨샘에게 이번 연습곡들을 레슨을 받아 오자는 제안을 했다. 도무지 이 상태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든 모양이다. 그리고 다음 연습때까지 녹음을 해오기로...ㅠㅠ 레슨을 받는 건 그다지 내키지는 않고... 녹음은 주말에 좀 해봐야 겠다.

 

나는 지각을 하고... 은하는 바쁜 일이 생겨서 먼저 갔다. 가뜩이나 부족한 연습시간이 날라간 것이 어찌 아깝던지.. 게다가, 개인 연습도 부족하고 해서인지 계속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아니면 좀 퇴보했을지도..ㅡㅡ).

 

테크닉적인 면에서의 발전은 각자 개인연습을 하고, 녹음도 하고 하면서 단점을 보와하면서 좋아 질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지난 번 연주회 이후, 연습시간에 같이 모여 서로의 소리를 들어 가면서 한 걸음씩 조화를 찾아 가는 과정을 즐기려는 각자의 모습이 조금 부족해진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이 살짝 들었다. 더 나은 음악을 만들기 위해서 각자가 서로 발전적인 조언도 하고, 곡에 대한 스스로의 생각도 이야기하면서 즐겁게 연습하는 것. 그런 시간을 만들기 위해서 조금 더 고민해 봐야 할 것 같다.

 

다음 연습은 2주 뒤. 이번 주말엔 숙제인 녹음을 준비해 봐야겠다^^

2009년 6월 15일 월요일

작은 고양이들

블로그를 하나 더 만들었습니다.

 

http://petitchat.tistory.com/

 

요즘 제 블로그가 음악블로그라고 하기엔 좀 다른 글들이 많아져서요...^^;;;

 

여러가지 이야기들을 많이 적고 있기는 하지만, 요즘 특히 많이 올린 글들이 고양이나 달팽이 이야기여서 따로 블로그를 만들어서 관리하려고 합니다. 배너는 옆에 달아 놓았습니다.

 

 

앞으로도 이 곳에 꼭 음악과 관련있는 글만 올리지는 않겠지만, 동물들과 관련된 이야기는 이제 작은고양이들 쪽으로 올리고 예전 글들도 그 쪽으로 옮깁니다.


(오늘 글을 이런 저런 방식으로 옮기다가 첫번째로 글 남겨 주신 슈모씨의 방명록 글을 날려 버리고 말았습니다. ㅠㅠ 죄송함당...;; 그래도 이전 댓글을 살려 놓았으니 너그럽게 용서해 주세용^^;;;)

2009년 5월 23일 토요일

왜 당신이...

조금이라도 양심적으로 살고 싶은 사람이 정말 살기 힘든 세상이군요. 

수천억 받고 떳떳한 사람들도 있는데, 헛소리 하면서 떵떵거리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인데, 29만원밖에 없다면서 고급아파트로 이사가는 사람들도 있는데... 

왜 당신이 죽는 겁니까.... 

2009년 5월 22일 금요일

앙상블 연습, 레슨

수요일 저녁. 서대문 모처에서 모였다. 다들 일 끝나자 마자 달려온 터라 배가 고파 냉면을 시켜먹고, 동글맘님이 사온 계란빵 (빵에 계란하나가 통째로 들어 있음..;;;)까지 먹고 나자 너무 배가 불러 숨도 쉬기 힘든 지경이 되어 버렸다. ㅠㅠ

 

그렇다고 퍼질러 있을 수는 없고... 배가 불러서 서서 연주하기도 힘들고..;;;; 앉아서 연습을 시작. 요즘 가벼운 활로 연주하면 뭔가 슥슥대는 소리가 나길래 좀 무거운 활을 꺼내서 써봤다. 소리가 좀 더 힘이 있어진 것 같았다. 연습하던 곡들을 하고 녹음을 했는데... 같이 연주하면서 들었을 때는 그런대로 들어 줄 만 한 것 같았는데.... 조그만 녹음기에서 나오는 소리를 같이 들어 보니 흠...;;; 전혀 들어 줄만하지가 않았다. 


나중에 동글맘님에 보내준 녹음 파일을 다시 찬찬히 들어 보니, 활을 너무 눌러 연주를 했었던 것 같다. 울리는 소리 대신 눌리는 소리가..ㅠㅠ 집에서 따로 연습을 하지 않아서 그런지 음정도 안습이고...; 


비오는 목요일 저녁엔 레슨을 받으러 갔다. 전반적으로 연주할 때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가 있었던 것 같고. 박자도 왔다 갔다 했었다. 박자는 앙상블 연습할 때도 문제였던 것 같은데, 긴 음표들에서 느려지고 짧은 음표들에서는 빨라지는 것이 아주 고질적인 문제인 듯 하다. 게다가 박자가 맞는 경우라도 어쩐지 급한 느낌이 들게 연주하는 점도 문제다. 해결책은 메트로놈 밖에 없을 것 같긴 한데... 언제나 좀 나아질 지 ㅠㅠ 

2009년 5월 15일 금요일

황당하고 허탈한 이야기

어제 아침 신문 읽다가 황당했었는데.... 이 기사 이후로 어제 오늘 말들이 꽤 많은 것 같다. 일단 기사를 인용:

 

그는 현 정치 구도에 대해 “영호남 토착인 한나라당, 민주당으로는 진보, 보수를 따지기 어렵다”면서 “진보, 보수를 할 단계까지 못갔으나 한나라당이 서울의 지지를 얻어서 전국정당의 기틀을 잡은 것은 진전이자 진보로 본다”고 평가했다. 이어 “나는 2005년부터 중도론을 얘기해온 사람”이라며 “(진보·보수) 양극단이 선거 과정에서 진영 싸움을 벌이고 줄세우기를 하는데 이건 소모가 너무 심하다. 전세계가 비정규직, 청년실업 문제에 직면하고, 생산관계도 바뀌어 고전적 이론틀로는 안 된다”고도 했다.

황씨는 또 “용산 참사 같은 것은 이명박 정부의 실책”이라고 말했지만, “해외 나가서 살면서 광주사태가 우리만 있는 줄 알았는데 70년대 영국 대처정부 당시 시위 군중에 발포해서 30~40명의 광부가 죽었고 프랑스도 마찬가지다.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사회가 가는 것이고, 큰 틀에서 어떻게 가야 할지를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래된 정원' 이후로는 황석영의 소설을 읽지 않아서 최근에 어떤 글을 썼었는지는 모르겠다. 인터넷에 연재하던 소설을 읽어 보려고 했었는데 시간이 없었고... 세월이 흐른 만큼 그도 예전과 같은 글을 쓰지는 않겠지만 ('오래된 정원'에서도 그는 좀 달라져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렇게 되는 것도 이해가 안되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완만한 변화일 뿐 거꾸로 간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하긴, 몇달 전에 TV오락 프로그램에 출연한 것을 보고는 좀 쌩뚱맞다는 생각은 든 적이 있다. 하지만, 유명 소설가가 TV에 출연하는 것이 이상한 일도 아니고...

 

그가 진보에서 중도로 갔건, MB와 친해졌건, 유라시아 문화대사를 하건 말건 사실 큰 관심은 없다. 그냥 그렇게 되었구나하고 생각하고 넘어갈 수 있다. 그 쪽 방향으로 조금씩 움직이던 사람이 크게 움직였다고 생각하면 된다. 게다가 저 인터뷰의 구절구절.. 너무 진부해서 이야기 하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그가 위의 인용 기사 두번째 문단에서 처럼 이야기했다면 그건 용서가 안된다. 87년. 고3때 그의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를 읽고 내가 받았던 충격과 분노, 슬픔을 생각한다면 말이다. 어떻게 바로 그 책을 쓴 그가, 저런 문장을 입에 담을 수가 있는 것인지... 그저 세월탓, 나이탓을 하며 웃어 넘기기에는 아직도 우리 가슴에 남아 있는 분노와 슬픔이 너무 크지 않나.

 

돌아서고 싶으면 조용히 본인만 돌아서면 되는 것이지 왜 총질을 하면서 돌아서는지...

재작년에 오래된 정원을 읽고 내가 썼던 글을 읽어 보니 더 가슴이 답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