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9월 16일 화요일

[책] 어느 악기병 환우의 피아노 연가 ..... 파리 좌안의 피아노 공방

파리 좌안의 피아노 공방
Front Cover
book cover


파리 좌안의 피아노 공방
The Piano Shop on the Left Bank: Discovering a Forgotten Passion in a Paris Atelier
사드 카하트| 정영목 역| 뿌리와이파리| 2008.05.15 | 352p | ISBN : 9788990024817

제목부터가 매우 끌리는 책이 아닐 수 없었다. 소설인지 에세이인지, 지은이가 누구인지를 떠나, 피아노 "공방"이라고 번역되어져 나온 이 제목은 악기와 악기 공방에 대한 애정이 절절히 묻어 나오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좌안"이라는 번역은 살짝 낯선 느낌이긴 하지만 (우리 식으로 하면 파리 강남의...라고 해야 할까..?) 말이다.
Note by Note 중에서

나에게는, 파리에서 외국인으로 살면서 그들의 생활을 배워가는 이야기라는 이 책의 한 축보다는, 피아노라는 악기가 우리의 삶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었는지 보여 주면서, 그 악기에 대한 사랑을 뒤늦게 깨닫게 되는 작가의 모습이, 훨씬 더 생생하게 다가왔다.

어린 시절부터 배워왔던 피아노에 대한 기억들이 줄줄이 떠올랐는데... 작가와 마찬가지로 나도 끔찍하게 느껴졌던 발표회.. 왜 나 혼자 연주하면 이렇게 즐거울 수 있는 악기를 사람들 앞에서 연주해야 하는지... 카하트처럼 나도 의문을 가졌었다. 조금 더 커서 중고등학교 때에는 혼자 방에서 피아노를 치는 시간만큼 행복했던 시간이 없었는데, 만일 그 '나만의 연주'가 누구에게 보여 주기 위한 것이었다면 결코 행복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책을 읽는 내내 나의 첫 피아노가 계속 떠올랐다. 77년에 구입해서 아마도... 2000년 경에 처분되었던... 검은 업라이트. 사실 가끔씩 그 악기를 생각하곤 했는데, 오랜 시간 내 곁에서 나를 가장 많이 봐온 친구였다는 점에서... 그 악기를 그냥 처분해 버리는데 동의했던 일은 정말 잘못한 것이 아니었나...라고 간혹 후회를 하곤 했었다. 캐비넷을 여닫는 뚜껑 경첩에 달린 나사들이 모두 빠질 정도로 낡은 악기였지만... 조율도 자주 해주지 않고 자주 이사를 다녀서 상태도 좋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음색은 아주 맑은 악기였다. 음색 만큼은 지금 가지고 있는 악기보다 더 좋았었던 것으로 기억이 된다. (하지만, 우리 딸들은 지금 저 피아노를 한 20년 쯤 지나면 그렇게 추억하게 될지도...^^)

무엇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바이올린이나 첼로 같은 현악기가 아닌 피아노에도 "악기병 환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재미있었다. 피아노 경매는 현악기들과는 별개로 하는 경우가 많긴 하지만, 그래도 해외 악기 경매에서 우연히 보게 되는 옛 피아노의 사진들을 보면서 즐거워 하곤 했었는데, 악기의 크기나 운반비용 등을 생각하면 지름신이 찾아 오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만약 내가 영국이나 미국에 살고 있다면... 혹은 경매가 열리는 유럽의 어느 나라에 살고 있다면, 그리고 그 중에 카하트가 만났던 아담한 슈팅글과 같은 악기를 만난다면... 어찌 지르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러나, 이 책에서 만나는 진정한 악기병 환우는 공방의 주인인 뤼크이다. 그를 흥분시키는 "꿈의 피아노"들의 이야기는 내가 꿈의 바이올린들을 보며 아쉬워하고 부러워하며 느끼는 감정과 다르지 않다.. 아니 솔직히... 그보다 훨씬 더 한 듯 하다.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은, 카하트가 "도대체 꿈의 피아노가 몇 댑니까?"라며 놀려대는 데에 대한 뤼크의 대답이다...

"꿈의 피아노는 가져도 가져도 늘 모자라죠."

명백한 악기병 말기 환자의 선언이 아닌가!



피아노... 피아노... 피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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