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8월 8일 금요일

전남에서 보낸 여름 한 자락

3박4일의 여름휴가를 전라남도의 천관산 주변에서 보내고 왔다. 산림청에서 운영하는 자연휴양림 중의 하나인 천관산 자연휴양림의 통나무집에 신청을 했었는데, 운 좋게 당첨이 되어 숙소는 천관산으로 정했고, 해남, 완도, 강진 주변을 돌아 볼 수 있었다. 올라오는 길에 담양에도 잠시 들렸다. 전남은 오래 전에 선배 결혼식에 가느라 비행기타고 광주에 갔다온 것 이외에는 가본 적이 없는... 나에게는 미지의 지역이다.

길이 많이 좋아져서인지... 서울에서 남도 끝자락까지 가는 데에도 생각보다는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았다. 5시간 정도 걸렸던 듯. 여름 휴가철인데도 서해안 쪽으로 가는 사람들이 없어서인지 길도 별로 밀리지 않았고...

숲 속의 통나무집에서 잠이 들고, 벌레들 울음 소리, 나뭇잎 사이로 내리는 빗소리에 잠이 깨는 하루 하루도 즐거웠고, 상쾌한 공기와 그림처럼 아기자기한 해안과 작은 섬들도 아름다왔다. 반도의 끝, 바다에서 가까운 곳이라 산이라고 해도 그렇게 높거나 험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었는데, 뜻밖에 높게 솟은 산, 특히 아름다운 돌산들의 모습을 보고 신기하기도 했다.

천관산의 숲속의 집 근처 산책로. 쭉쭉 뻗은 나무들로 숲은 울창하고 길 가에는 예쁜 꽃들도 많이 피어 있다.
(사진이 많아서 작은 사이즈로 넣었다. 자세한 사진이 보고 싶으신 분들은...... 아마도 없을 듯...^^;;)

   

한 고개 넘어가 만난 사찰. 천관사라고 했다. 조용한 절집의 공부방에서 스님은 책을 읽고 계셨고, 오래된 돌탑과 석등, 그리고 색 바랜 절집의 단청을 한참 바라보다가 돌아 왔다. 돌아 오는 길에 바라본 천관산은 옛날 이야기에 나오는 마법의 성처럼 산등성이에 삐죽 삐죽 바위들이 나와 있는 예쁜 산이었다.

   

숲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나서다가 산 중턱에서 아랫마을을 바라다 보고...



강진을 거쳐... 해남으로 향했다.



우리의 첫 목표는 땅끝. 알고 보니 땅끝은 꽤 유명한 관광지였다..; 무더운 날씨여서인지, 바다 건너 보이는 섬들은 안개로 뒤덮여 있어서 신비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땅끝 기념비로 향하는 길에 앉아서 쉬어본 정자에서 부채를 펴든 도윤이는 마치 윤선도의 어부사시사라도 읊을 것 같은 모양새....

   

땅끝탑에 적힌 싯구들을 읽어 보고... 방명록에 소원도 적어 보고... 계단 아래 바다에도 내려갔다가... 다시 땅끝 탑이 있는 곳으로 뛰어 올라가보고.... 언덕 위에 있는 전망대는 생략...

   



근처의 식당에서 전복구이를 먹었다. 살아 있는 싱싱한 전복구이가 맛은 있었는데.... 몸부림치는 전복을 보다가 먹는 기분은 그다지 좋지만은 않더라... 그리고 해물탕... 전복죽...

   

그 옆의 완도로 이동. 완도를 한 바퀴 돌고 이어지는 신지도도 한 바퀴 돌고... 김이며, 미역, 다시마, 멸치 등을 하나 가득 샀다. 완도에는 수산물 가공 공장들이 가득있었는데... 수퍼에 가면 여기저기 완도산이라고 쓰인 제품들이 많은 까닭이 그것이었나 보다.

오다가 들른 완도의 정도리 구계등. 동글동글한 자갈들이 가득 차있는 해변에 신이 나서 뛰어 다니던 아이들은, 자갈들 사이로 엄청나게 돌아 다니는 갯쥐며느리떼와 마주치고는 공포에 질리고 말았다. 무서워서 이리로도 저리로도 못가고 어쩔 줄 몰라하는 서울 아이들을 데리고 예쁜 자갈과 시원한 바다로 가득 차있는 해변을 벗어났다.

   

구계등의 매점에서 마주친... 마루 밑에서 피서 중인 강아지 한 마리. 그리고 숲 속의 집으로 돌아와 만난 자벌레 한 마리.
   

다음날, 윤선도의 어부사시사로 유명한 보길도를 가면서 남해의 섬들을 둘러 보려던 나의 계획은, 아침 내내 내리던 비와 비를 핑계대고 숙소에서 게으름을 피운 우리 모두의 탓으로.... 강진 구경으로 바뀌어 버렸다. 강진 시내에 있는 영랑 김윤식의 생가는, 예쁜 주차장과 생가에 이르는 벽돌 도로, 근처 동네의 돌담길에서 부터 예사롭지 않더니, 안으로 들어가니 아주 잘 꾸며져 있었다. 집 뒤뜰 위에 높은 담장 구실을 하고 있는 대나무숲, 정감있는 초가 지붕, 꽃이 만발한 아름다운 정원, 영랑이 책 읽은 모습이 있는 별채, 그리고 곳곳에 영랑의 시가 담겨 있는 바위들. 비록 생가는 원래의 모습은 아니고 90년대에 복원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이 아름다운 남도의 집은 영랑의 맑은 싯구들을 닮아 있었다.

   
 
     

영랑생가 앞에서 담쟁이의 부착뿌리의 모습을 확인하는 서울의 초등학생...;;;  

  

강진 시내는 작았지만, 생각보다 잘 정리된 모습이었다. 여기 저기 맘에 드는 구석구석들이 엿보였는데, 잠시 들른 것만으로 무어라고 말한다는 것이 맞지는 않지만..... 우리나라의 다른 지방 소도시들과는 달리.. 유럽의 아름다운 지방 소도시들처럼 발전해 나갈 가능성이 보였다.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다산초당을 향했다. 다산박물관에서 초당으로 가는 길도 역시 아름답게 가꾸어져 있었는데, 황토로 다져놓은 길과 신비스럽고 아름다운 숲은 정말 오랫동안 머무르고 싶게 만드는 매력으로 가득 차 있었다. 가는 길에는 작은 차밭이 자연스러운 정원을 이루고 있었고, 황톳길을 따라 초당으로 걸어가는 기분은 정말 상쾌하기 그지 없었다.

   

   

 

아침 내내 내린 비때문에 산 길을 오르는 우리 식구들은 땀으로 범벅이 된 채로 초당에 도착했다. 오르는 길에는 곧게 뻗은 대나무와 또 다른 곧은 나무들이 울창하고 나무뿌리들과 바위들이 자연계단을 만들고 있었다. 초당과 동암, 서암을 둘러 보고.. 다산이 만들었다는 못도 보고....

내려오는 길에.. 누군가가 초당의 "당"을 "딩"으로 만들어 놓은 안내판을 보고는.. 지윤이가 재미있어 하며 카메라를 가져가더니 사진을 한 장 찍었다. 아이들은 그런 것들이 재미있는가 보다.

       

강진 시내로 들어와서 늦은 점심 또는 이른 저녁을 먹으로 한정식집엘 갔다. 분재들로 가득한 너른 마당을 가지고 있는 한옥집이었는데, 음식도 맛갈스러웠다. 다양한 반찬과 요리들과 찰밥. 친절한 종업원들. 여행 중에 만난 전라도 사람들은 대체로 친절하고 다정했다.

   
밥을 다먹고 난 상을 바라보는 도윤이.
   

강진에서 천관산 쪽으로 넘어와 해변을 따라 드라이브를 했다. 해변에는 허수아비인지... 달걀귀신 인형들인지... 죽창과 삼지창 등을 들고 해안을 따라 쭉 세워 놓은 장면도 있었는데, 차를 세우지 않아 사진을 찍지 못했다. 그게 무슨 전시였는지 잘 모르겠다. 일본이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 하니 우리 땅을 지키는 농민들의 모습을 전시한 것일까?

어느 해변가에 차를 세우고 갯벌에 바다를 향하여 길게 난 길을 따라 걸어가 보았다. 갯벌 위에 있는 수백 수천 수만마리의 게들이 따딱 따딱 소리를 내고 있었고 무엇인지도 잘 모르는 수많은 갯벌 생물들이 길 위에서도 잘 보였다. 남해의 저녁 석양이 비치기 시작한 하늘은 그림처럼 아름다왔다.

   

   

   

   

조금 더 가니 두 개의 상록수섬이 연달아 있는 해안이 있었는데, 저 숲에는 무엇이 있을지... 사람이 살고 있지 않은 저 섬에 만들어진 상록수 숲이 궁금해졌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마량항. 아마 이곳은 바다 낚시로 유명한 곳일 지도 모르겠다. 해안을 따라 낚시도구를 파는 가게들이 즐비하다. 여기에도 잘 지어진 방파제가 두어 곳이나 있었는데, 우리는 하방파제에서 저녁 노을과 지는 해를 바라보면서 바다를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 날. 천관산의 숙소를 정리하고... 아열대의 숲처럼 푸르름이 우거진 한여름의 남도를 떠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오는 길에는 담양의 소쇄원을 들렀다. 입구에서 만난 토종닭은 풍채도 참으로 당당하더라. 아름다운 대나무 숲을 지나면 아기자기한 정원과 정자, 옛집과 담장이 나타난다. 영국에서 보았던 고성과 그 정원의 아름다움이 떠올랐다.

   

   

   

   

대나무들을 좀 더 많이 보고 싶어서 담양 대나무숲을 찾아갔는데... 그 찾아가는 길에 늘어선 포도밭 앞에서 포도를 한 상자 샀다. 덤으로 얻은 한 송이를 먹어 보니 포도가 정말 달다.

담양 대나무숲. 담양에는 다른 유명한 대숲과 아름다운 산책길들도 있다는데... 우리가 허기도 때울 겸 들른 곳은 드라마와 CF촬영장소로도 유명한 곳이었다. 대숲에 있는 까페에서, 죽순이 가득 들어 있는 수제비를 먹고, 댓잎차도 마셨다. 도윤이는 입구의 밤나무의 덜 익은 밤열매들이 신기한지 한참 쳐다보다 가시를 만져 보았다. 아야..

까페를 나와서 "출입금지" 표시가 있는 대나무숲에 들어갔다. (물론 허락을 받고...) 엄청나게 굵은 대나무들도 잔뜩 있었고, 여러해에 걸쳐 대나무들을 잘라낸 자리들도 꽤 많이 보였다. 산책로는 온통 댓잎들로 뒤덮여 있었다. 문제는 모기들과 거미들... 모기들이 간만에 대숲에 들어온 방문객을 환영하는 잔치를 벌이려고 달려 드는 통에 아이들은 소리를 질러대고... 사진은 다 흔들려 버렸다..^^;;

   

   

   



서울로 돌아 오는 길... 마침 퇴근시간에 딱 맞추게 되고 말았다. 차는 오산.. 기흥...에서부터 밀려서 서초까지 줄곧 밀렸다. 역시 서울은... 한참 남도의 자연에 빠져 있던 우리를 반갑게 맞아... 생활로 돌아오게 해주려는 것인가 보다.
휴가가 끝났다.

댓글 4개:

  1. 좋은 풍경과 좋은 사진입니다.

    저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더 자연인이 되어가는 느낌입니다.

    자연안에 있으면 어머니의 품처럼 아늑하고 평화롭고

    편안하라고 인간이 쌓아올린 문명 안에서는 더욱 불안감을 느끼게 되니...

    저만 이런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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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Stainer - 2008/08/09 06:04
    나이가 들면서 자연을 더 찾게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인 것 같아요. 결국 사람이 만든 것들이 자연을 이길 수는 없는 것이지요. 저는 자연과 더불어 살 수 있는 편안한 날들을 매일 꿈꾸지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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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저도 전복 좋아해요................................. 해물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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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ViolinHolic - 2008/08/09 10:27
    해남, 완도에 전복이 지천으로 널렸더라구요...^^;; 바빠지시기 전에 여행이라도 다녀 오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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