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8월 13일 수요일

[책] 셀프



파이 이야기를 읽고 나서 얀 마텔이라는 작가에 관심이 생겨서 읽은 책이다. 이 책도 책장에 꽂혀 있으니 한참이나 된 책인데, 곰곰히 생각해 보니 주인공이 하룻밤만에 남자에서 여자로 성별이 바뀌게 된다는 이야기에 혹하여 구입을 했던 것 같다. 워낙 만화스러운 판타지류를 재미있어하는 철없는 어른이라...;;;

얀 마텔의 세심한 묘사와 뛰어난 문장력, 그리고 문학적인 상상력은, 읽다가 깜짝깜짝 놀랄만큼 훌륭하다. 파이이야기에서도 보여 주었던 천진난만하면서도 순수한,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태도가 이 소설에서도 보여 지는데, 특히 주인공의 어린 시절에 대한 묘사는 매우 유쾌하다. 얀 마텔의 첫번째 장편소설로, 파이이야기의 전작인 이 소설은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있는 듯 느껴진다. 많은 소설가들이 첫 소설에 자전적인 내용을 넣는다는데, 그도 그런 것이었는지 모르겠다.

이 소설의 중반이후, 주인공이 남자에서 여자로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의 화자는 내가 보기에는 분명한 "남자"이다. 그가 "여자"인 동안에도 화자가 "남자"로 보이는 것은 얀 마텔이 남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더구나 끝도 없이 나오는 성적인 묘사들은 소설에 몰입하는데 상당한 방해가 되고 말았다. 과연 작가의 의도가 무엇이었을까. 남성, 여성이라는 성 정체성을 심도있게 다루고 싶었던 작가의 생각은, 적어도 나와 같은 독자에게는 그러한 묘사들로 인해 오히려 잘 전달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흥미롭다. 지루한 묘사들을 조금 건너뛰면, 초조하고 불안하고, 유치하지만 순수하며, 진심으로 자신이 바라는 삶에 대한 강렬한 열망을 품고 있는 진지한 젊은이의 모습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행복한 유아기에서 조금씩 세상에 노출되어가는 10대로 그리고 혼란의 20대를 살아가는 주인공의 모습은 세상 어디에나 있기 때문에 이 소설은 지구 반대편에서도 보편성을 얻을 수 있는 것 같다.

그나저나... 얀 마텔은 어느 인터뷰에서 "셀프"가 본인이 원한 방향으로 세상에 받아 들여지지 않은 것 같다고 했는데... 아마도 그것은 이 소설이 본인이 원한 대로 쓰여지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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