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8월 30일 토요일

오래간만에 써보는 레슨 & 오케스트라 연습 일지

한 동안 레슨일지를 쓰지 않았었는데... 그 이유는, 별로 특이한 점도 없이 같은 말만 계속 반복되어 쓰는 것이 너무 지루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가끔씩 레슨일지를 써볼까 싶기도 했는데... 어찌 귀찮은지..;

레슨은 여전히 빡세게 진행되어 왔다. 5권의 교재를 조금씩 하다보면 어느 덧 한 시간이 후딱 지나가 버리곤 했다. 사실은 그간 장마철에다 더위에 레슨받는 것도, 연습하는 것도 쉽지 않았었는데... 습도가 좀 떨어져 가을날씨가 되어 가기 시작한 이번 주엔 좀 할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이포지션에서 좀 더 철저한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ㅜㅜ 그리고 겹음을 피아니시모로, 음정 안틀리고 연습해야 한다는 것 등이 이번 레슨의 지적사항. 그리고... 곡의 템포를 스스로 정하고 본인의 악기와 본인의 해석에 맞추어 곡을 어떻게 연주할 지 미리 생각해 볼 것.

수요일에 레슨을 받고 목요일에는 오케스트라 연습을 갔다. 요즘엔 자꾸 연습을 걸러서... 꼭 2주에 한 번씩 가게 되는 것 같다. 이상하게 이번 가을 연주회는 개인적으로도 전혀 연습을 못해왔고, 전체 연습도 많이 빠졌고... 초심을 잊어 버리게 된 것인가.. 라는 생각이 좀 든다. 어쨌거나... 브람스가 딱 어울리는 가을이 오고 있으니... 이제 정말 연습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연습실로 갔다. 그러니까... 연습실에 갈 때까지의 기분은 대략... 아래 3악장과.. 그에 어울리는 가을 분위기의 사진들...;;;


좀 늦게 도착했다. 바그너를 한창 연습하고 있는 중이었는데.. 이건 정말...; 전에 연습할 때 뒤까지 봤는지 안봤는지도 도통 기억이 안나는 악보. 눈은 변화무쌍한 조표를 좇아가려고 노력하나.. 임시표들 사이에서 손가락이 방황하고..;;; 이게... 이런 곡이 아니었는데....ㅠㅠ

(아래는 카라얀과 BPO의 1957년 일본 연주... 유튜브에 여러가지 버전의 동영상이 있는데, 사실은 푸르트벵글러가 나치 깃발아래 군인들 앞에서 지휘하는 동영상도 있다. 그런 영상이 있다니... 유튜브엔 정말 별게 다 있다..;;;)

처참하게 무너져 가는 세컨바이올린을 바라보던 지휘자 샘의 표정이... 처음에는 당황과 짜증이더니... 결국 측은함으로 바뀌었다. 세컨이 어렵네요...라고 애써 위로해 주시고..;;

잠시 휴식을 한 후에 브람스 1악장을 연습. 분명히 이전 연습시간에 여러번 연습했었는데... 어찌 생소한지..;; 이것 저것 가르쳐 주면 바로 다음시간에 완벽하게 깨끗해진 기억을 가지고 연습실로 들어 오는 단원들을 그래도 끝까지 열심히 지도해주는 지휘자샘 성격이 정말 좋으신 것 같다는 생각이....ㅠㅠ

대략 다음과 같아야 할 연주를 전혀 다른 곡으로 만들고... 연습을 마쳤다..;


정말 정말 연습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오늘 집에서 다시 바그너를 펼치고 악보를 읽다 보니... 내 연주에 내가 기막혀서 10분하다가 일단 중지....;;; 다음에는 몽땅 각 활로 박자부터 잡아봐야겠다.

2008년 8월 22일 금요일

이번 주에 있었던 미팅 이야기

내가 하는 일이 세무이고, 일하는 곳이 미국회사이다 보니... 다른 한국 회사에서 다른 부서의 사람들이 하고 있는 일과는 좀 다른 종류의 일이 내 업무인 것 같다. 소위 말하는, "국제조세 (플러스 한국세무)"인데... 그렇게 간단히 이야기하면 보통의 경우 사람들은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전혀 알아 듣지 못하는 것 같다 ^^;; 그렇기 때문에 tax와는 별 관계없는 세상에 살고 있는 분들이 들르곤 하는 이 블로그에 내가 직업으로 삼고 있는 일에 대해 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래도 가끔씩은 쓰고 싶을 때가 있다. 이번 주에 내내 계속되었던 회의 같은 경우가 그렇다.

다른 나라, 특히 아시아에서는 Tax는 보통 회계사들의 업무인 반면, 미국에서는 세무를 담당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변호사들이고 세무회계를 하고 있는 약간의 회계사들이 있다. 내 보스를 비롯하여 주로 이야기하고 같이 일하는 미국 동료들도 거의 변호사들이다. 하지만 미국 동료들 중에도 가끔 세무회계 담당인 회계사들을 만나게 되면 재미있는 이야기도 듣고 재미있는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 (과연 재미있는 상황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번엔 회계사 1명, 변호사 5명이 한국에 와 같이 회의를 했는데, 그 회계사는 변호사들이 실제로는 숫자에 익숙하지 않으면서 Tax attorney이기 때문에 마치 잘 아는 것처럼 항상 일하고 있는 것에 대해 이리저리 농담을 섞어가며 이야기를 했다. tax planning을 하는 것은 미국에서 보통 변호사들이 담당하고 있지만, 결국 결과는 숫자로 나타나기 때문에 구체적인 자료를 손에 들고 조물락거리는 것은 회계사들의 몫.

이번 회의에서 논란이 되었던 문제는 1분기말에 불거져 지난 6개월간 나를 비롯하여 온갖 관련된 사람들을 괴롭혀왔던 것인데... 한국 세법상 일시적 차이였고 다음해에 이월결손금이 된 부분이, 미국 세무상으로는 영구적차이이기 때문에 effective tax rate이 엄청나게 높아지게 된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고 문제의 출발점이었다. 3월말에 그 이야기를 듣고 황당해하면서 전화통을 붙잡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설명을 요구했지만, 여전히 이해할 수 없었고... 뭐... 어쨌건 그렇게 주장하는 분이 내 "보스"이기 때문에 일단은 그렇게 받아들였지만, 한동안 '그렇게 높은 세율로 어찌 비즈니스를 하라는 거냐'는 영업부서와 finance팀, business leader들의 불평불만에... 사실 나는 완전히 동네북이 되어야 했었다.

사실 나만 동네북이 된 것은 아니고... tax 전체가 동네북이 되었다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공공의 적이 되었다고나 할까...ㅡㅡ;; 그래서 이런 저런 해결방안들을 만들어 내었었는데, 어느 하나 속시원하게 해결되는 것은 없었고 골치만 더욱 아파져 갔다. 이걸 해결하면 저것이 저걸해결하면 또 다른 것이 계속 문제가 되는데... 정말 overwhelming했다... (이번에 온 미국 친구들이 저녁 먹으며 입을 모아 이야기한 단어가 바로 저것. 한국의 문제가 이렇게 까다로울지는 몰랐다나. 자기들이 원인제공을 했으면서...;;)

그런데, 나를 비롯한 한국의 tax에서는 누구도 그 "영구적 차이"를 지난 6개월 동안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내 보스를 비롯한 US tax team에서는 십수년가 세무업무를 해본 나로서는 듣도 보도 못한 "영구적인 일시적 차이 (permanent timing difference)"라는 새로운 개념까지 등장시켜가면서 나에게 설명을 해서.. 난 진심으로, US tax accounting을 좀 더 체계적으로 공부해야 겠다고 생각하게 되기 까지 했다. 아마존닷컴에서 어떤 책이 도움이 될까 찾아 보고, FAS109을 다시 찾아 보고, Subpart F rule도 다시 읽어보고... 왜 미국에 있을 때 tax를 좀 더 serious하게 공부하지 않았을까 후회도 해보면서 괴로운 나날을 보냈었던 것이다.

6명의 방문객 중 한 명 있는 그 회계사 친구가 하루 먼저 도착했다. 전화통을 붙잡고 이야기하는 것보다 앞에 장부를 놓고 얼굴을 보고 이야기하는 것이 나으니... 나는, 이러 저러하기 때문에 한국 세무상 이것은 절대로 영구적 차이일 수 없다고 설명했다. 몇 주 전부터 한국 장부를 붙잡고 이리 저리 고민을 해보던 그 회계사 친구는 반나절 만에 나와 완벽하게 동일한 의견을 가지게 되었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피치를 해야 변호사 친구들을 설득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되고... 2001년... 아니 결국 1995년까지의 법인세 신고서를 쌓아 놓고서 소위 "와꾸"를 맞추어 놓았다. (보통 한국회사나 다른 외국계에서 이건 쉬운 일일 수도 있지만, 이 독특한 회사에서는 와꾸를 맞추고 sub business별로 숫자를 tracking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난 정말 성질이 급하다. 모두 도착하여 다들 같이 모여 회의를 시작하고 이슈들을 쭉 설명하기 시작한지 약 2-3분 후에 난 "일시적 차이"에 대해 이야기 하고 말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한국 세무상 일시적 차이이며, 미국 세무가 어떻게 다른지 나는 여전히 이해 못하겠다고...;;  아침에 택시에서 내리다가 블랙베리를 잃어 버리고 두 블럭이나 떨어진 곳에서 사무실로 걸어와 조금 짜증이 나 있던 내 보스 앞에서 말이다. ^^;; 하여간... 내가 시작하자 나와 같이 전날 대충 시나리오를 짜 놓은 회계사 친구가 나를 support하고... 물론 그 친구의 피치가 대충 정리될 때까지는 2일이 더 필요했기 때문에 정말 불꽃이 튀었던 것은 사실 어제였다.

지난 6개월간 자신이 주장해 왔던 논리를 뒤집어야 하는 상황이 되어 버리는 것은 사실 끔찍한 일이다. 하지만, 그런 경우 미국친구들은 비교적 합리적인 것 같다. 논쟁은 매우 격하게 진행이 되었지만, 잠정적으로 내 보스는 자기가 틀렸을 수도 있다는 점을 받아 들이기 시작한 것 같다. 물론 다음 주에 미국에서 다시 논의가 이루어져야 최종적인 결론이 나오겠지만 말이다. 하여간... 오늘 회의는 같이 회의에 참석했던 다른 한국 동료가 핸드폰으로 그 논쟁을 녹화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할 정도로 상당히 재미(?)있었던 모양이다. (사실 내가 제일 재미있었던 부분은 논쟁이 아니라... 논쟁은 사실 painful했다..ㅠㅠ 그 미국 회계사 친구가 "혹시 너네들이 변호사일지도 몰라서 하는 말인데, 피치에 있는 숫자들의 부호는 차변과 대변을 의미하는 거란다..." 라고 말했을 때.  물론 회의에서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변호사였다...^^;;; 일반적으로 tax attorney들이 대변 차변을 모르지는 않지만, 그의 독특한 회계사다운 시니시즘이 느껴져서 나는 폭소를 했었다.)

그리하여... 결론적으로는 그 이슈는 드디어 6개월만에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고, 나머지는 자료를 정리해서 좀 더 우리의 입장을 깔끔하게 보여주는 것만 남았다. 다음 주까지 문제가 해결되고 나면 먹구름이 쫙 걷힐 것 같다^^;;

그건 그렇고.....; 다른 function의 visitor들과 tax visitor들은 참 다르다. 일단, 이 폐쇄적인 인간들은 다른 사람들과 communication하는 것을 그다지 내켜하지 않는다. 내가 이런 저런 다른 부서사람들과의 간단한 회의를 schedule해 놓았더니... "나 그거 꼭해야 되니?"라고 하면서 간절히 도망가고 싶다는 소망을 이야기 하기도 하고...ㅡㅡ;; 우리가 하는 회의에 같이 앉아 있겠다는 우리 비즈니스의 CFO에게 "이어질 세션에서는 매우 테크니컬한 내용이 논의되기 때문에 굳이 참석할 필요없다"며 쫓아내기도 하고... ;; 전에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저녁 먹으러 가서는 다른 사람들은 별로 신경쓰지 않고 tax조직에 있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씹으며 즐거워 하기도 하고...ㅡㅡ;; 그 이유를 곰곰히 생각해 보면, tax를 하는 사람들이 모두 변호사나 회계사들로, independent하게 일을 하는 것에 매우 익숙해져 있기 때문인 것 같다. 회계법인에서도 감사쪽에서 일하는 회계사들 보다는 세무부서 쪽이 훨씬 더 독립적으로 일하게 되곤 했었다. 결국 내가 논리적으로 오피니언을 내야 하고 내가 결론을 제시해야 하는 것이니.... 결국 우리는 independent contributor이고 조직을 관리하고 이끌어 나가는 것에는 그다지 익숙하지 않은 편인 것 같다.

참고로 말하자면.... 내가 몸담고 있는 이 회사는 800명이 넘는 tax조직을 가지고 있어서 웬만한 회계법인이나 로펌의 세무부서보다도 훨씬 큰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 그 800명은 모두 꽤 오랜 경력을 가지고 있는 Big4출신의 또는 유명 로펌 출신들이기 때문에 초보 회계사나 초짜 변호사들이 가득 넘치는 회계법인이나 대형로펌과 단순히 숫자로 비교할 만한 조직은 아니기도 하다. 주로 정부나 국회에 로비를 하거나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역할을 하는 높으신 분들부터... 이런 저런 세부적인 분야의 전문가들이 잔뜩 있다. Finance쪽에 여성 비율이 높은 것에 비해, 이 조직은 절대적으로 백인 남성의 비율이 높고, 고위직에 상당수의 유태인들이 포진해있는.... 언뜻 보기에 매우 보수적인 집단인 듯 하다. (하지만 금융 쪽의 tax head는 예일-스탠포드 출신 40대 초중반의 잘 나가는 '여성' 변호사이긴 하다. 이쁘고 자상하기까지 한 아줌마다^^; 뭐 그래도 전체 tax head는 시카고 출신의 이런 저런 동부의 대학에서 강의도 하시는 훌륭한 '남자'변호사이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매우 엘리트주의적인 분위기이고 tax organization에 대한 자부심이 상당히 강하다.  이런 큰 회사에서 이런 재미있는 조직이 있다는 것을 대부분은 잘 모르겠지만 (심지어 같은 회사 직원들도.. ) 하여간 매우 재미있고 독특한 집단이다. 아마도 이 회사에서 이 집단과 비슷하게 독특한 조직은 두 군데 정도 더 있을 것 같은데.... 하나는 물론(!) "legal"이고 (엄청난 수의 변호사들이 있다..) 다른 하나는 treasury일 것 같다.

(사실.... "조직원"으로서 이렇게 조직의 뒷담화를 공공연하게 하는 것은 좀 곤란한 일이긴 하지만... 뭐... 여기까지 읽었을 사람들도 별로 없을 것 같고....ㅎㅎㅎ 가끔은 이렇게 혼자서라도 떠들고 싶은 기분이 들기도 하는 것이니^^)



아래는 윗 내용과는 별로 관계없는 이야기이긴 한데....

오늘 저녁 뉴스를 보니 MB정부가 약속했던 법인세율 인하를 내년으로 미룰 것 같다고 한다. 사실 난 세율인하를 하건 말건 별 상관 없지만.... 이런 식의 뉴스는 정말 황당하기 짝이 없다. 내가 여기서 "이런 식"이라는 것은... 정부 정책이 신중하게 발표되지 않는 다는 점이다.

작년 말 원화 강세로 인해 과소자본세제에서 자본 부채 비율을 3:1로 바꾸더니 불과 6개월 후, 원화가 급격하게 약세가 되자 다시 6:1로 환원한다는 발표를 했다. 복잡한 증자 절차 (회사 내부적으로)를 거쳐야 하는 회사로서는 정말 기막힐 노릇이다. 사실 절차의 문제를 떠나, 본사에 이러저러한 사정을 설명하면 결국 본사로서는 한국 정부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질 수 밖에 없다. 과소자본세제에서 한 방 먹이더니.... 이번엔 세율이다. 지난 봄에 나왔던 세율인하에 대한 발표를 이미 보고했고 한국의 투자환경이 좋아 지고 있다는 점에서 전체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었고, 또 회계상으로는 몇몇 회사에 쌓여 있는 이연법인세차를 떨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하여 이미 analysis를 끝내고 모두 보고한 상황인데... 1년 연기를 한다고 다시 이야기하면 너네 정부는 왜 그러냐는 이야기를 (직접적으로는 아니더라도) 들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신뢰도의 문제는 아닐지라도... 느닷없이 금융업에 부가가치세를 부과하겠다는 것도 사실 황당스럽긴 마찬가지다. 부가가치세법이 만들어진 이래 한번도 없었던, 부가가치의 '요소'인 금융서비스에 부가가치세라니... 아직 어떻게 법이 개정될지는 모르지만... 지켜야할 세법의 원칙과 논리를 그다지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특히 법적 안정성이라는 점에서 이번 경제팀은 과연 기본이 되어 있는 팀인가하는 의문이 든다.

2008년 8월 18일 월요일

무의도 가족여행

광복절 다음날인 토요일, 엄마와 오빠들네 식구들과 다 함께 무의도로 갔다. 공항 고속도로를 따라 영종도로 가 옆길로 빠져 나가서 배를 타고 들어가면 무의도라는 작은 섬이 나온다. 영화로 유명한 실미도가 지척이어 물이 빠지면 걸어서 건너갈 수도 있다는 그 섬이다.

잠진도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데, 막바지 여름 여행을 가려는 사람들로 선착장에 늘어선 차들의 행렬이 무척 길었다. 차 안에서 잠진도와 영종도가 이어지는 갯벌 풍경을 찍었다.

  

무의도에 차를 내려 찾아간 펜션은 널찍하고, 바다와 갯벌이 바로 집 앞 마당이 되는 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서울에서 그렇게 더웠는데, 비도 간간이 내리고 바람이 많이 불어서 무척 날이 쌀쌀했다. 긴 옷들을 별로 가지고 오지 않아 조금 지나자 감기가 오는 것 처럼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점심을 먹으러 찾아간 식당은 예쁘게 꾸며져 있었는데, 2층은 펜션이고 1층은 식당. 음식 맛은 그냥 그랬지만, 마당이며 집 안은 아기자기 꾸며져 있었다. 마당의 작은 분수와 우리가 먹은 두부전골.

  

식당에서 키우고 있는 강아지들과 고양이들. 아기 고양이들인지 추운 건지 상자에 들어가서 나오질 않는다. 휴가철에 잔뜩 찾아 오는 손님들에 별 관심이 없는 모양이다.
 

그리고 찾아간 곳은 하나개 해수욕장. 날이 춥고 비가 내려서 물어 들어갈 상황은 전혀 아니었는데다가.... 어찌나 사람들이 많은지 주차장이 넘쳐나고 해변은 사람들로 가득차 있었다. 무엇보다 경악스러운 것은 쓰레기... 모래사장이며 바다며... 온갖 쓰레기가 넘쳐나는데, 해수욕장은 전혀 관리가 되고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바다를 별로 보고 싶지가 않아서 그 위에 있는, 드라마 천국의 계단 세트장엘 가봤다. 그 드라마를 보긴 했는데... 어떤 내용이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권상우가 나온 것 같기는 한데 말이다...ㅡㅡ;; 세트장 앞에는 드라마에 등장했던 피아노를 연상시키는 거대피아노가 있었다. 아이들보고 올라가 보라고 하고는 사진을 한 장 찍었다. 사실, 권상우가 바닷가에서 피아노를 치던 장면은 기억이 나는데... 저런 저러다가 피아노 다 망가지겠군...이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하나개 해수욕장은 별로 더 머무르고 싶지 않아, 실미도 쪽으로 갔다. 이 쪽은 사람도 덜하고 해변도 깨끗했다. 밀물이라 실미도까지 걸어가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아이들은 바닷물에 들어가 조개껍질을 주으며 즐거워 했다.

   

이 쪽에는 낚시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별로 깊지 않은 바닷물에서 연신 망둥어를 잡아 올리는 모습이 신기했는지, 남편이 계속 쳐다보다가는 가게에 가서 4천원하는 낚싯대를 3개 사왔다. 갯지렁이를 여러마리 낭비한 끝에 오빠가 작은 망둥어를 한 마리 잡았고, 이어서 남편도 망둥어를 잡아 올렸다. 초보자들이 문방구 낚싯대로 마구 잡아 올리는 걸 보니... 이 동네는 그야말로 물반 고기반인가 보다...

     

기울어 가는 오후, 서해의 작은 섬의 서쪽에서 바라보는 하늘이 무척 아름답다. 아이들은 조개를 줍고 갯지렁이를 가지고 놀고... 초보 낚시꾼 아빠들은 손맛에 정신이 빠져 있다.

     

도윤이는 아빠 옆에서 같이 낚시줄을 보며 참견을 한다. 하지만 갯지렁이 한 통을 다썼어도 잡은 고기는 모두 7 마리. 꽤 그럴듯한 크기의 망둥어들도 있고 아주 작은 것도 있고.... 모두 다시 바다에 놓아 주고 돌아섰다. 나오면서 보니 텐트촌의 어떤 집들은 조개 한 냄비에 망둥어 한 쟁반을 올려 놓고 저녁준비를 하고 있었다.

  

섬의 동쪽에 있는 펜션으로 돌아왔는데, 손맛을 못잊어 또 바다로 낚싯대를 들고들 나가는 사람들이 있더라... 결국 별 수확없이 서울에서부터 사들고 온 고기로 바베큐를 했지만.... 역시 숯불에 구운 고기가 맛있긴 했는데, 바람이 너무 불고 날씨가 장난아니게 추워 나는 점점 머리가 아파져 왔다...ㅡㅜ



올림픽 중계를 보다가 자다가.... 책을 읽다가 또 자다가... 감기인지 심한 두통에 시달리다가 보니 아침이 되었다. 나는 비몽사몽인데, 남편은 간밤에 와인을 꽤 마셔댔는데도 오빠들과 같이 또 낚싯대를 들고 바다로 간 모양이다. 새벽에 우리가 묶은 펜션 위로 무지개가 떴다고 한다. 사진에 희미한 무지개의 모습이 보인다. 인천이 보이는 동쪽 해안이라서 일출도 볼 수 있었던 모양이다.

   

   

아침을 먹고 어디에선가 두통약을 찾아 먹은 나는 다시 잠이 들었는데, 아이들은 갯벌에서 조개와 게를 잔뜩 잡아 왔다. 비가 그치고 해가 나서 모두들 신이 났다. 마루에서 잡아온 게들을 데리고 노느라 정신이 없다. 한참을 데리고 놀다가... 점심먹고 출발할 때 모두 바다로 돌려 보냈다. 새벽에 나가 잡아온 망둥어들은 바로 놓아 주질 않아서 비닐봉지에서 죽은 모양이고...ㅠㅠ 아이들이 어딘가 갯벌에 묻어 준 모양이다.

    

    

오는 길에 영종도 한 바퀴를 돌아 보고 서울로 왔다. 서울도 별로 덥지 않고... 밤이 되면서 바람이 많이 불고 비가 온다. 이제 정말 여름이 다 가나 보다.

이번 주엔 줄창 회의다. 미국에서 5명 일본에서 1명이 온다는데... 과연 3일 동안 그동안 쌓인 문제들을 다 해결할 수 있을지... 하여간 무척 바쁜 일주일이 될 듯하다.

2008년 8월 17일 일요일

[책] 리진

       

신경숙 저 | 문학동네 | 2007년 05월

페이지 293 / 389g
ISBN-13 : 9788954603225

오랫만에 읽어 본 신경숙의 소설이다. 그것도 역사소설. 그러나 일반적인 역사소설보다는 읽기에 좀 더 가벼운 문체이고 그렇다고 현대소설의 분위기도 아닌 그런 소설이다.

리진은 조선말에 실존했던 궁중무희라고 한다. 신경숙과 비슷한 시기에 역사소설을 주로 쓴 김탁환의 "리심"이라는 소설이 나왔는데, 동일한 인물을 그리고 있다고 하는데, 읽어 보지는 않았지만 신경숙의 리진과는 많이 다른 느낌이리라는 생각이 든다. 솔직히 역사소설로 읽기에는 리심 쪽이 더 나을 것 같다는 추측을 해본다.

신경숙은 시종일관 아주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이어 나간다. 소설 속의 리진의 목소리가 그렇기 작고 그러나 분명한 느낌이었을 것도 같다. 리진은 매우 그럴법한 조선의 여인으로 그려져있다. 그녀가 프랑스 공사와 같이 살게 되었고, 그나라 말을 하고 그나라 책을 읽었으며 파리에서 프랑스 사람들과 살았어도.. 소설은 시종일관 그녀가 조선여인이었다는 것을 느끼게 해 준다.

콜랭공사, 명성황후, 고종, 블랑주교, 홍종우, 모파상 등 실제 리진과 같은 시대를 살았던 인물들이 신경숙의 손으로 재창조되고, 강연, 서씨, 그리고 리진이 파리에서 만나게 되는 가상의 인물들도 적절히 배치되어 소설의 재미를 느끼게 해준다. 그 중 가장 소설적인 인물은 강연. 그의 존재가 이 소설의 큰 흐름에 많은 영향을 끼치지는 않지만, 매우 낭만적인 감성을 느끼게 해주어 독자들에게 절절한 마음을 느끼게 한다. 살짝 순정만화적인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중고등학교 시절 국사책의 뒷부분을 읽어 나가는 것은 항상 안타까움과 아쉬움으로 시작하여 서러움과 분노로 마무리 되었었다. 구한말 이전의 역사는 그렇게까지 가슴 아프게 느껴지지 않는데 유독 구한말의 역사가 서글픈 것은 그만큼 내가 살고 있는 시대와 더 가깝기 때문일 것이고.... 그래서 아직도.. 21세기에도 그 시절의 아픔이 계속 이어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리진은 바로 그 시대, 연약한 나라 조선의 여인으로 살아가야 했다. 그녀의 삶은, 궁중무희가 아니었어도 그저 평범한 여인이었어도, 쉽지는 않았으리라... 그녀의 총명함과 외국문물에 대한 적응력이 사실 명성황후에 대한 그녀의 시종일관한 마음과의 연결이 내게는 설득력있게 보이지는 않긴 하지만, 그녀의 마음이 왕비를 중심으로 돌고 있는 해바라기와 같은 것이라고 작가는 설명하고 있는 듯 하다.

실제로 리진이 금조각인지 금종이인지를 먹고 자살을 한 이유는... 찾아 본 바에 의하면... 왕비 시해 사건이라기 보다는, 궁중무희의 삶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상황에 대한 극렬한 항의였다고 하는데... 그 편이 더 설득력이 있기는 하다. 신경숙은 그 보다는 리진의 삶에 왕비의 운명과 조선의 운명을 투영시켜 비극성을 고조시키고 싶었던 것 같다.

이 소설은 리진 푸른눈물이라는 제목으로 2006년에서 2007년 초까지 조선일보에 연재되었고, 김동성 작가가 삽화를 담당했었다. 위의 책 사진 옆의 그림도 그 연재 삽화 중 하나인데, 2권으로 발행된 책에도 실려 있는 그림이다. 매우 서구적인 외모의 리진이다. 연재 시에 실렸었던 그 외의 삽화들도 쭉 찾아서 보았는데, 무척 아름다운 그림들이다. 소설의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는 느낌. (글에 건 링크들에는 연재 시리즈들이 있는데, 이미 출간된 책들이라... 저작권의 문제가 있을 것도 같다)

2008년 8월 13일 수요일

[책] 셀프



파이 이야기를 읽고 나서 얀 마텔이라는 작가에 관심이 생겨서 읽은 책이다. 이 책도 책장에 꽂혀 있으니 한참이나 된 책인데, 곰곰히 생각해 보니 주인공이 하룻밤만에 남자에서 여자로 성별이 바뀌게 된다는 이야기에 혹하여 구입을 했던 것 같다. 워낙 만화스러운 판타지류를 재미있어하는 철없는 어른이라...;;;

얀 마텔의 세심한 묘사와 뛰어난 문장력, 그리고 문학적인 상상력은, 읽다가 깜짝깜짝 놀랄만큼 훌륭하다. 파이이야기에서도 보여 주었던 천진난만하면서도 순수한,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태도가 이 소설에서도 보여 지는데, 특히 주인공의 어린 시절에 대한 묘사는 매우 유쾌하다. 얀 마텔의 첫번째 장편소설로, 파이이야기의 전작인 이 소설은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있는 듯 느껴진다. 많은 소설가들이 첫 소설에 자전적인 내용을 넣는다는데, 그도 그런 것이었는지 모르겠다.

이 소설의 중반이후, 주인공이 남자에서 여자로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의 화자는 내가 보기에는 분명한 "남자"이다. 그가 "여자"인 동안에도 화자가 "남자"로 보이는 것은 얀 마텔이 남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더구나 끝도 없이 나오는 성적인 묘사들은 소설에 몰입하는데 상당한 방해가 되고 말았다. 과연 작가의 의도가 무엇이었을까. 남성, 여성이라는 성 정체성을 심도있게 다루고 싶었던 작가의 생각은, 적어도 나와 같은 독자에게는 그러한 묘사들로 인해 오히려 잘 전달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흥미롭다. 지루한 묘사들을 조금 건너뛰면, 초조하고 불안하고, 유치하지만 순수하며, 진심으로 자신이 바라는 삶에 대한 강렬한 열망을 품고 있는 진지한 젊은이의 모습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행복한 유아기에서 조금씩 세상에 노출되어가는 10대로 그리고 혼란의 20대를 살아가는 주인공의 모습은 세상 어디에나 있기 때문에 이 소설은 지구 반대편에서도 보편성을 얻을 수 있는 것 같다.

그나저나... 얀 마텔은 어느 인터뷰에서 "셀프"가 본인이 원한 방향으로 세상에 받아 들여지지 않은 것 같다고 했는데... 아마도 그것은 이 소설이 본인이 원한 대로 쓰여지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2008년 8월 8일 금요일

[책] 파이 이야기



얀 마텔| 공경희| 작가정신| 2004.11.15 | 400p | ISBN : 8972882437

캐나다 작가인 얀 마텔이 쓴 베스트셀러. 태평양에서 조난당한 한 인도소년의 모험을 그린 소설이다. 언제 책을 샀었는지 잘 기억이 안나는데.... 책장을 보니 이 책이 번역판과 영문판, 두 권이나 꽂혀 있었다. 무슨 생각으로 샀었는지도 물론 기억이 나지 않는데.... 사놓고 읽지 않은 이유는 아마도 주인공이 "인도"소년이고... 태평양 한 가운데서 조난을 당하는 내용은 내가 좋아하는 스토리는 아니었기 때문이었던 듯 하다. (그럼 대체 왜 책을 사놓은 거지??)

그러나, 일단 손에 들고 읽기 시작하자 과연 베스트셀러가 될 만한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얀 마텔의 글은 21세기를 살아 가고 있는 동시대 작가의 글답게 매우 친근하게 느껴졌고, 내가 생각하는 "인도"라는 나라와는 달리, 소설 속의 70년대의 인도는, 비슷한 시기의 한국이나, 또는 캐나다나 별로 다르지 않은 장소였다. 매우 종교적인 사람들이 많은 나라로 알고 있었고 힌두교신자들만으로 가득한 나라로 생각했지만, 파이의 가족들은 무신론자들이고 매우 현실적인 사람들이었고, 파이는 인도에서 힌두교 이외에 기독교와 이슬람교를 접하며 신을 사랑하는 소년으로 성장한다.

정치적인 상황때문에 인도를 떠나 낯선 미지의 나라 캐나다로 향하는 파이의 가족들 모습도 70-80년대 한국을 떠나던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과도 유사하다. 배가 조난을 당하기까지의 이야기에는 태평양 한가운데에서 동물들과 같이 바다 위에 버려진 파이가 어떻게 행동을 하게 되는지와 연결이 되는 고리들이 가득 들어 있다. 신을 사랑하고 동물을 다루는 법을 익힌 소년 파이는 소설의 중반부 이후 펼쳐질 바다 위의 모험의 주인공이 되기에 딱 맞는 인물인 것이다.

리처드 파커. 소설의 또 다른 주인공으로 파이와 같이 태평양을 건너는 벵골호랑이. 다리가 부러진 얼룩말, 오랑우탄, 하이에나, 그리고 소년이 타고 있는 보트의 생태계에서 자연스럽게 가장 위의 포식자의 자리를 차지할 거대한 호랑이다. 그러나 파이는 운좋게 리처드 파커를 길들일 수 있게 되고... 소년과 호랑이는 수없이 많은 날들을 바다 위에서 보내면서 공생의 관계가 된다.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게 되는 과정이 놀랍기 그지 없다.

파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영리하고 강인한 정신력을 가진 소년. 그리고 무엇보다 신 - 자연과 동물들을 사랑하는 소년의 순수함은 그가 끝내 구원받게 되는 원동력이다. 그는 보트 위의 호랑이를 길들이는 방법을 깨닫게 되고, 보트 밑의 바다 속 생물들을 이용하여 생존을 해 나간다. 파이의 모험의 막바지에 만나게 되는 식충해초섬의 이야기는 그의 순수함이 불의와 타협하는 것을 용납치 않고 다시 풍랑이 이는 바다로 돌아가게 - 리처드 파커까지 데리고 - 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또다른 이야기. 멕시코의 병원에서 파이는 침몰한 침춤호 관계자들과 만나 이야기를 들려 주게 되는데, 파이의 이야기를 믿지 못하는 일본인들에게 파이는 지금까지의 이야기와는 다른 버전의 조난 이야기를 들려 준다. 동물은 단 한 마리도 등장하지 않는 보트 위의 이야기는 동물들이 등장했던 이야기와 다름없이 끔찍한 이야기이다. 어느 이야기가 사실이었을까? 이 이야기에서 파이는 바로 리처드 파커이다. 파이는 호랑이와 자신을 동일시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 이야기가 사실이건 두 이야기는 동일한 이야기일 수 밖에 없다.

휴가 가기 전부터 읽기 시작하여 휴가지에서 다 읽었는데, 숲 속에서 태평양의 동물들 이야기를 읽는 기분이 꽤 괜찮았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바다 구경을 갔는데, 해안에 정박해 놓은 보트들을 보니.... 정말 크기가 작더라. 아마도 파이 이야기에 나오는 구명보트의 크기가 비슷한 크기일 듯 한데, 실제 보트들의 크기를 보니 보트에 탄 동물들이 얼마나 절박했을지... 파이가 리처드 파커가 있는 배에서 어떻게 같이 생활할 수 있었을지... 이야기가 마구 실감나는 느낌이었다.

일러스트판의 파이 이야기도 나온 모양인데, 나중에 서점에 가서 그림을 살펴보아야겠다. 영화도 찍는 다는 이야기가 들리는데 사실인지는 모르겠다.

전남에서 보낸 여름 한 자락

3박4일의 여름휴가를 전라남도의 천관산 주변에서 보내고 왔다. 산림청에서 운영하는 자연휴양림 중의 하나인 천관산 자연휴양림의 통나무집에 신청을 했었는데, 운 좋게 당첨이 되어 숙소는 천관산으로 정했고, 해남, 완도, 강진 주변을 돌아 볼 수 있었다. 올라오는 길에 담양에도 잠시 들렸다. 전남은 오래 전에 선배 결혼식에 가느라 비행기타고 광주에 갔다온 것 이외에는 가본 적이 없는... 나에게는 미지의 지역이다.

길이 많이 좋아져서인지... 서울에서 남도 끝자락까지 가는 데에도 생각보다는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았다. 5시간 정도 걸렸던 듯. 여름 휴가철인데도 서해안 쪽으로 가는 사람들이 없어서인지 길도 별로 밀리지 않았고...

숲 속의 통나무집에서 잠이 들고, 벌레들 울음 소리, 나뭇잎 사이로 내리는 빗소리에 잠이 깨는 하루 하루도 즐거웠고, 상쾌한 공기와 그림처럼 아기자기한 해안과 작은 섬들도 아름다왔다. 반도의 끝, 바다에서 가까운 곳이라 산이라고 해도 그렇게 높거나 험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었는데, 뜻밖에 높게 솟은 산, 특히 아름다운 돌산들의 모습을 보고 신기하기도 했다.

천관산의 숲속의 집 근처 산책로. 쭉쭉 뻗은 나무들로 숲은 울창하고 길 가에는 예쁜 꽃들도 많이 피어 있다.
(사진이 많아서 작은 사이즈로 넣었다. 자세한 사진이 보고 싶으신 분들은...... 아마도 없을 듯...^^;;)

   

한 고개 넘어가 만난 사찰. 천관사라고 했다. 조용한 절집의 공부방에서 스님은 책을 읽고 계셨고, 오래된 돌탑과 석등, 그리고 색 바랜 절집의 단청을 한참 바라보다가 돌아 왔다. 돌아 오는 길에 바라본 천관산은 옛날 이야기에 나오는 마법의 성처럼 산등성이에 삐죽 삐죽 바위들이 나와 있는 예쁜 산이었다.

   

숲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나서다가 산 중턱에서 아랫마을을 바라다 보고...



강진을 거쳐... 해남으로 향했다.



우리의 첫 목표는 땅끝. 알고 보니 땅끝은 꽤 유명한 관광지였다..; 무더운 날씨여서인지, 바다 건너 보이는 섬들은 안개로 뒤덮여 있어서 신비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땅끝 기념비로 향하는 길에 앉아서 쉬어본 정자에서 부채를 펴든 도윤이는 마치 윤선도의 어부사시사라도 읊을 것 같은 모양새....

   

땅끝탑에 적힌 싯구들을 읽어 보고... 방명록에 소원도 적어 보고... 계단 아래 바다에도 내려갔다가... 다시 땅끝 탑이 있는 곳으로 뛰어 올라가보고.... 언덕 위에 있는 전망대는 생략...

   



근처의 식당에서 전복구이를 먹었다. 살아 있는 싱싱한 전복구이가 맛은 있었는데.... 몸부림치는 전복을 보다가 먹는 기분은 그다지 좋지만은 않더라... 그리고 해물탕... 전복죽...

   

그 옆의 완도로 이동. 완도를 한 바퀴 돌고 이어지는 신지도도 한 바퀴 돌고... 김이며, 미역, 다시마, 멸치 등을 하나 가득 샀다. 완도에는 수산물 가공 공장들이 가득있었는데... 수퍼에 가면 여기저기 완도산이라고 쓰인 제품들이 많은 까닭이 그것이었나 보다.

오다가 들른 완도의 정도리 구계등. 동글동글한 자갈들이 가득 차있는 해변에 신이 나서 뛰어 다니던 아이들은, 자갈들 사이로 엄청나게 돌아 다니는 갯쥐며느리떼와 마주치고는 공포에 질리고 말았다. 무서워서 이리로도 저리로도 못가고 어쩔 줄 몰라하는 서울 아이들을 데리고 예쁜 자갈과 시원한 바다로 가득 차있는 해변을 벗어났다.

   

구계등의 매점에서 마주친... 마루 밑에서 피서 중인 강아지 한 마리. 그리고 숲 속의 집으로 돌아와 만난 자벌레 한 마리.
   

다음날, 윤선도의 어부사시사로 유명한 보길도를 가면서 남해의 섬들을 둘러 보려던 나의 계획은, 아침 내내 내리던 비와 비를 핑계대고 숙소에서 게으름을 피운 우리 모두의 탓으로.... 강진 구경으로 바뀌어 버렸다. 강진 시내에 있는 영랑 김윤식의 생가는, 예쁜 주차장과 생가에 이르는 벽돌 도로, 근처 동네의 돌담길에서 부터 예사롭지 않더니, 안으로 들어가니 아주 잘 꾸며져 있었다. 집 뒤뜰 위에 높은 담장 구실을 하고 있는 대나무숲, 정감있는 초가 지붕, 꽃이 만발한 아름다운 정원, 영랑이 책 읽은 모습이 있는 별채, 그리고 곳곳에 영랑의 시가 담겨 있는 바위들. 비록 생가는 원래의 모습은 아니고 90년대에 복원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이 아름다운 남도의 집은 영랑의 맑은 싯구들을 닮아 있었다.

   
 
     

영랑생가 앞에서 담쟁이의 부착뿌리의 모습을 확인하는 서울의 초등학생...;;;  

  

강진 시내는 작았지만, 생각보다 잘 정리된 모습이었다. 여기 저기 맘에 드는 구석구석들이 엿보였는데, 잠시 들른 것만으로 무어라고 말한다는 것이 맞지는 않지만..... 우리나라의 다른 지방 소도시들과는 달리.. 유럽의 아름다운 지방 소도시들처럼 발전해 나갈 가능성이 보였다.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다산초당을 향했다. 다산박물관에서 초당으로 가는 길도 역시 아름답게 가꾸어져 있었는데, 황토로 다져놓은 길과 신비스럽고 아름다운 숲은 정말 오랫동안 머무르고 싶게 만드는 매력으로 가득 차 있었다. 가는 길에는 작은 차밭이 자연스러운 정원을 이루고 있었고, 황톳길을 따라 초당으로 걸어가는 기분은 정말 상쾌하기 그지 없었다.

   

   

 

아침 내내 내린 비때문에 산 길을 오르는 우리 식구들은 땀으로 범벅이 된 채로 초당에 도착했다. 오르는 길에는 곧게 뻗은 대나무와 또 다른 곧은 나무들이 울창하고 나무뿌리들과 바위들이 자연계단을 만들고 있었다. 초당과 동암, 서암을 둘러 보고.. 다산이 만들었다는 못도 보고....

내려오는 길에.. 누군가가 초당의 "당"을 "딩"으로 만들어 놓은 안내판을 보고는.. 지윤이가 재미있어 하며 카메라를 가져가더니 사진을 한 장 찍었다. 아이들은 그런 것들이 재미있는가 보다.

       

강진 시내로 들어와서 늦은 점심 또는 이른 저녁을 먹으로 한정식집엘 갔다. 분재들로 가득한 너른 마당을 가지고 있는 한옥집이었는데, 음식도 맛갈스러웠다. 다양한 반찬과 요리들과 찰밥. 친절한 종업원들. 여행 중에 만난 전라도 사람들은 대체로 친절하고 다정했다.

   
밥을 다먹고 난 상을 바라보는 도윤이.
   

강진에서 천관산 쪽으로 넘어와 해변을 따라 드라이브를 했다. 해변에는 허수아비인지... 달걀귀신 인형들인지... 죽창과 삼지창 등을 들고 해안을 따라 쭉 세워 놓은 장면도 있었는데, 차를 세우지 않아 사진을 찍지 못했다. 그게 무슨 전시였는지 잘 모르겠다. 일본이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 하니 우리 땅을 지키는 농민들의 모습을 전시한 것일까?

어느 해변가에 차를 세우고 갯벌에 바다를 향하여 길게 난 길을 따라 걸어가 보았다. 갯벌 위에 있는 수백 수천 수만마리의 게들이 따딱 따딱 소리를 내고 있었고 무엇인지도 잘 모르는 수많은 갯벌 생물들이 길 위에서도 잘 보였다. 남해의 저녁 석양이 비치기 시작한 하늘은 그림처럼 아름다왔다.

   

   

   

   

조금 더 가니 두 개의 상록수섬이 연달아 있는 해안이 있었는데, 저 숲에는 무엇이 있을지... 사람이 살고 있지 않은 저 섬에 만들어진 상록수 숲이 궁금해졌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마량항. 아마 이곳은 바다 낚시로 유명한 곳일 지도 모르겠다. 해안을 따라 낚시도구를 파는 가게들이 즐비하다. 여기에도 잘 지어진 방파제가 두어 곳이나 있었는데, 우리는 하방파제에서 저녁 노을과 지는 해를 바라보면서 바다를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 날. 천관산의 숙소를 정리하고... 아열대의 숲처럼 푸르름이 우거진 한여름의 남도를 떠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오는 길에는 담양의 소쇄원을 들렀다. 입구에서 만난 토종닭은 풍채도 참으로 당당하더라. 아름다운 대나무 숲을 지나면 아기자기한 정원과 정자, 옛집과 담장이 나타난다. 영국에서 보았던 고성과 그 정원의 아름다움이 떠올랐다.

   

   

   

   

대나무들을 좀 더 많이 보고 싶어서 담양 대나무숲을 찾아갔는데... 그 찾아가는 길에 늘어선 포도밭 앞에서 포도를 한 상자 샀다. 덤으로 얻은 한 송이를 먹어 보니 포도가 정말 달다.

담양 대나무숲. 담양에는 다른 유명한 대숲과 아름다운 산책길들도 있다는데... 우리가 허기도 때울 겸 들른 곳은 드라마와 CF촬영장소로도 유명한 곳이었다. 대숲에 있는 까페에서, 죽순이 가득 들어 있는 수제비를 먹고, 댓잎차도 마셨다. 도윤이는 입구의 밤나무의 덜 익은 밤열매들이 신기한지 한참 쳐다보다 가시를 만져 보았다. 아야..

까페를 나와서 "출입금지" 표시가 있는 대나무숲에 들어갔다. (물론 허락을 받고...) 엄청나게 굵은 대나무들도 잔뜩 있었고, 여러해에 걸쳐 대나무들을 잘라낸 자리들도 꽤 많이 보였다. 산책로는 온통 댓잎들로 뒤덮여 있었다. 문제는 모기들과 거미들... 모기들이 간만에 대숲에 들어온 방문객을 환영하는 잔치를 벌이려고 달려 드는 통에 아이들은 소리를 질러대고... 사진은 다 흔들려 버렸다..^^;;

   

   

   



서울로 돌아 오는 길... 마침 퇴근시간에 딱 맞추게 되고 말았다. 차는 오산.. 기흥...에서부터 밀려서 서초까지 줄곧 밀렸다. 역시 서울은... 한참 남도의 자연에 빠져 있던 우리를 반갑게 맞아... 생활로 돌아오게 해주려는 것인가 보다.
휴가가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