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2월 17일 월요일

뉴욕 출장

출장이 계획되어 있는 것은 몇달 전부터 였는데, 도무지 일정이 나오질 않았다. 일정이 나와야 비행기표도 확정하고 호텔도 잡고 출장 승인도 받을 텐데 말이다. 이번 conference의 준비과정을 (그런게 있었는지도 잘 모르겠지만) 가만히 지켜 보니, 이번 conference는 도무지 갈 이유가 없어 보였다. 지구 반대편까지 열 몇시간씩 비행기를 타고 가야하는데, 이렇게 이유도 없이 가야한다니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렇다고 보스가 가라는 걸 안갈 수도 없는 노릇. 제대로 된 agenda도 없는 상황에서 누굴 대상으로 어떤 미팅을 해야 하는지도 잘 모르는 채로 비행기를 탔다. 이렇게 organize가 안되어 있는 미팅은 정말 난생 처음이다..;;;

월요일 낮에 도착하고 조금 졸다가 저녁을 먹으러 갔다. Carmine's라는 곳으로 나름 유명한 곳이라고 한다. 패밀리 레스토랑같은 분위기에 엄청난 양의 음식이 잔뜩 나온다. 맛은 뭐... 그저 그렇다. 사람이 많아서 한참을 기다려서야 테이블에 앉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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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채요리라고 나온 오징어 (또는 쭈꾸미?) 튀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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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디쉬 중 하나였던 립. 고기 맛은 괜찮았다... 좀 짠 것만 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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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은 뉴욕에서 상당히 유명한 곳으로 저녁이면 유명인들이 약속장소로 삼는 곳이라고 한다. 그런데 누가 유명한지 알 수가 없어서 그랬던 것인지... 묵는 내내 그다지 인상적인 사람들을 보지는 못했다.

방에서 바라본 호텔 옆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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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은 호텔에서 그 다음날의 미팅의 내용을 모모씨들과 다시 쭉 훑어 보고... 늦은 오후에 사람들과 같이 나가서 잠깐 쇼핑을 했다. 쇼핑이라고 해봐야... 장난감 몇 개 사는 정도. 뉴욕이 처음도 아니고... 신발이 불편해서 발도 아프고, 곧 비가 오기 시작해서 얼른 저녁을 먹고는 돌아왔다.

2004년에 한국으로 돌아오고 나서... 작년 초에 한 이틀정도 Fairfield에 갔다 오고, 작년 여름엔 Orlando에 다녀왔었는데.... 모두 그다지 재미있지는 않았었고.... 최근에는 가끔 미국에 다시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물론 출장이 아니라 지윤이랑 같이 예전에 살던 필라델피아랑 뉴저지를 둘러 보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이번 출장이 계획되었을 때, 앞 뒤로 시간을 좀 내어서 필리에 가볼까 생각을 하긴 했었다. 하지만, 지윤이를 데리고 가면 미팅을 하는 동안 방에 혼자 둘 수도 없고... 더구나 아줌마도 편찮은 상황이어서 출장기간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것이 더 낫겠다고 결정을 내렸다.

비행기를 타고 가면서, 한동안 잊고 지냈던 미국에서의 생활이 쭉 머리속을 스쳐지나갔다. 자려고 눈을 감고 있었는데, 기억이 갑자기 너무나 생생하게 떠올라서 스스로도 당혹스러워 졌었다. 아파트의 모습, 주차장, 차, 매일 지나던 길들, 가끔 탔던 버스, 지윤이가 다니던 유치원, 아파트 근처의 수퍼.... 어떻게 거기서 그렇게 살았을까. 혼자서 외로왔던 기억, 겨울에 히터가 고장나서 떨며 잤던 기억까지... 역시 그다지 즐거운 기억들은 아니었던 것 같다. 덕분에 잠은 완전히 달아났고 13시간동안 한잠도 자지 못했다.

수요일, 미팅은 30 Rock에서 있었다. 뉴욕에 NBC Universal의 사무실이 있어서 그 곳에서 미팅을 하거나, 아니면 호텔에서 미팅을 할 것이라고 들었었는데, 결국 NBC가 있는 30 Rock에서 하기로 한 모양이다. 바로 앞에 크리스마스 즈음 뉴욕의 명물이 된다는 트리가 있으니, 이번엔 그 유명한 Rockefeller Center의 트리도 볼 수 있겠다고 생각을 했다. 생각해보니, 크리스마스 즈음에 뉴욕을 가본 적은 한번도 없었다...

911 이후로 강화되었다는 까다로운 방문절차를 밟아 30 Rock의 25층 회의실로 올라갔다. 오전 미팅은 나름 괜찮게 진행되었는데, 오후에는 우리 "조직"의 No.2인 아저씨가 예상과는 달리 불참하는 바람에.... 간략 버전으로 진행되었다. 준비해간 피치를 그냥 쭉 넘기는 것으로 끝나고 말았다...

일찍 미팅이 끝나고 회의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건물들에 불이 들어 올 즈음 사진을 찍었다. 회의실 유리창을 통해 찍은 것 치고는 그림이 꽤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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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팅 후에도 이런 저런 우여곡절 끝에.... 호텔로 돌아왔고 곧 저녁을 먹으러 갔다. Broadway 32번가의 한국식당에 갔는데 (왜 하필...;;) 짜기만하고 별 맛없는 양념갈비와 어색한 인테리어에... 서비스도 엉망이었다. 그나마 가격은 서울에 비하면 상당히 저렴했는데... 대략 어느 지방 소도시의 80년대식 식당의 느낌이랄까...;;

다음날이자, 마지막날에는 Stamford에서 미팅을 하기로 했었는데, 일기예보에서는 눈이 온다고 했다. 미국 동부에서 눈이 오면 얼마나 황당해질 수 있는지는 잘 알고 있긴 하지만... 이 조심성이 과다하게 많은 사람들은... 결국 그날 미팅을 모두 취소하고는 call로 대체하기로 결정을 해버렸다. 모두들 그날 아침에 또는 전날 저녁에 Stamford로 돌아가 버렸고, 우리들만 City에 남았다. 그 날 오후까지 미팅스케줄을 잡았던 나는 새벽까지 가야하나 말아야 하나를 결정을 못해서 맘고생을 좀 했다. 갔다가 눈 때문에 못 돌아올 경우를 대비해서 항공사에 다음날 좌석이 있는지도 체크해보고.... 어쨌거나, 결국은 호텔방에서 call을 했다. (결국 맨하튼에서는 눈이 아닌 비가 주륵주륵 내렸다.. 아마 Stamford에 갔다가도 충분히 제 시간에 돌아 올 수 있었을 듯 하다. 하긴 점심때쯤 통화에서는 그 윗동네에는 3인치쯤 눈이 왔다고는 하더만.. )

2-3시까지 밥도 못먹고 진 빠지게 call을 하고... 늦은 점심을 먹고는 잠시 쉬고 있었는데... MSN에 접속을 해보니 바로 어제 뉴욕에 도착한 옛 동료가 온라인이었다. 그는 이제 1년-1년반의 뉴욕 생활을 막 시작했으니, 오늘 보지 않으면 한동안은 얼굴 보기가 어려울 듯... 저녁에 잠시 보기로 했다.

로비에서 만나서, 다시 30 Rock으로 갔다. 시간이 얼마 없기 때문에 가까운 곳을 찾고 싶었고 32번가의 한국골목은 별로 땡기질 않았으며... 어제 미팅 후에 자세히 보려고 했던 트리를 이런 저런 이유로 제대로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가는 길에 찍은 GE Buildng과 크리스마스 트리. Saks Fifth Avenue앞에서 길 건너편을 찍었다. Saks Fifth에서는 귀여운 장난감 인형들이 전시중이었는데 사람도 많고 귀차니즘도 발동하여 사진은 생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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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들의 나팔부는 모양의 장식물들. 사진찍기 좋은 스팟이었는데... 역시 대충 찍었더니 좀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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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 앞의 아이스링크. 비가 조금씩 오고 있어서 스케이트 타는 사람이 없었다. 조금 후에 밥먹고 나오니 꽤 많은 사람들이 스케이트를 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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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펠러센터의 지하에서 대충 저녁을 먹고 (늦은 점심을 먹었으니 배가 고플리가 없다...) 호텔과 30 Rock 중간에 있는 Au Bon Pain에서 커피를 마셨다. 헌츠만홀에서 늘 먹었던 프렌치로스트다.  오봉뺑에 들어서자 죽 늘어서 있는 커피포트들이 옛날 헌츠만홀의 오봉뺑을 연상시켰다. 서울에 있는 오봉뺑도 이런 시스템인가? 안가봐서 모르겠다...

거기 앉아서 약간 수다를 떨고... 그에게 뉴욕생활 잘 하라고 이야기 하고는 호텔방으로 돌아왔다. 우리 팀 사람들은 모두 저녁을 먹으러 나간 듯, 연락이 되질 않았고... 이메일 한 통 써놓고는 체크아웃.

액체류가 반입금지였던 것을 까먹어서 공항 검색대에서 치약을 압수당하고... JFK 라운지로 갔더니... 헐... 아이들이 바글바글하다. 유학생들이 방학이 되어서 귀국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왜 애들이 다 비즈니스를...;;; 이코노미에 열 몇시간을 시달리며 다녔던 내 고달픈 유학시절이 또 생각난다...ㅡㅜ

그다지 부담스럽지도, 중요하지도 않은 출장이었는데.... 워낙 별로 가고싶지 않아서 그런지 엄청나게 부담스러웠다. Corporate쪽 사람들과 Business쪽 사람들 사이에 끼여서 눈치를 보고 있었기 때문인지... 가서도 이렇게 하는 일 없이 Manhattan에 죽치고 있으면 안될 것 같고... Stamford에 가야 할 것만 같은 생각이 마구 들었었는데, 눈온다고 오지도 말라고 하고...;;; 돈은 많이 썼는데, 얻은 것도 없고, 즐겁지고 않고... 마음도 편하지 않은 출장이다. 게다가 당장 다음주에 돌아가서는 할 일도 산더미....;;

이번 출장은 이렇게 마무리... 담에 비행기 타는 일은 즐거운 목적이길...
(그나저나.. 고작 며칠 갔다왔는데 시간감각이 망가지다니... 새벽 3시에 잠도 안오고... 큰일이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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