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박물관을 가려고 집을 나섰다. 국립박물관에 가려고 했는데, 그 앞까지 갔더니 차를 가지고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저히 주차불능인 상태를 보고는 시내로 나갔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하는 르느와르전을 봐야겠다고 마음을 고쳐 먹었기 때문이다.
비도 오락가락하는 일요일 오후. 금강산도 식후경. 이남장 앞에 차를 세우고 설렁탕과 도가니탕으로 일단 배를 채운 후 시립미술관까지 걸어갔다. 간간히 비가 오는 일요일 오후 한가로운 서소문의 풍경이 맘에 든다.
입구에는 역시 사람들이 많다. 전시회에는 늘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듯... 줄 서서 기다리고 나서야 입장을 했다.
르느와르의 그림이 미술관 곳곳에 커다랗게 붙어 있다.
눈에 익은 그림들을... 사람이 많은 곳은 대강대강, 적은 곳은 좀 꼼꼼히 보면서 한바퀴를 돌았다. 르느와르의 그림은 아름답다. 세상이 결코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닌데, 그는 마치 세상을 아름답게 그리는 것이 화가의 의무라고 생각한 듯 아름다운 그림을 그렸나 보다. 달콤한 설탕과 초콜렛으로 가려진 그의 그림 뒷 면의 그의 삶은 어떤 것이었을지... 그 시절의 그림이란 그래야만 하는 것이었던 건지..
르느와르 전을 다 보고 나오는 길에 1층에서 하고 있는 괴물시대라는 전시도 보았다. 일부러 이렇게 대조적인 전시를 한 것인지, 어쩌다가 그렇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르느와르의 그림과는 전혀 다른 작품들이 잔뜩 전시되어 있었다. 너무나 직설적이고 적나라한 작품들이 르느와르가 보여준 달콤한 당의 속에 들어 있는 바로 그 쓰디쓴 약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어쩌면 르느와르가 더 현실에 솔직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왤까...?
글쎄다.... 19세기에서 20세기 초까지를 살면서 행복한 여인들을 그리던 화가 르느와르의 모습이 21세기 작품들 보다 더 솔직하게 느껴진 건... 그 기괴한 작품들에서 위선이 느껴졌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아마도....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 위선이 아니라 외면이기 때문에 르느와르 편이 더 솔직하게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시립미술관을 한 바퀴 돌았는데도 아직도 배가 부르다. 설렁탕에 도가니탕을 너무 많이 먹었나 보다. 배가 고픈 상태에서 관람을 했다면 느낌이 달랐으려나....
하여간.... 달콤함이 좋았던 나는 피아노 치는 소녀들이 프린트된 엽서와 나무액자를 사서 피아노 위에 올려 놓았다. 귀여운 소녀들의 순수한 모습이 좋아 예전부터 가지고 싶었던 프린트였기에....
커피라도 마시면서 쉬려고 들어간 빵집. 또 너무 많이 먹었다..;;;;
우유 푸딩에 붙어 있던 스티커로 장난치는 둘째.
광화문 광장을 새로 열었다길래 거기까지 걸어가 보자고 했는데, 모두의 반대로... 차를 타고 광화문 광장 주변을 한 바퀴 돌았다. 흠... 청계천에 물 끌어다가 재미를 본 경험을 되살려 광장에 분수대도 설치하고, 주변에 물도 흐르게 해놓았다. 저 물은 아까 시립미술관에서 맛 본 "아리수"일까...?
게다가 저 꽃밭은 도무지 뭔지...;;; 나무를 심은 것도 아니고. 80년대초 서울대 아크로폴리스에 심었다는 장미들이 생각나는 순간이었다. 그나마 가시가 없으니 다행이려나...
그나저나 차를 타고 사람으로 가득찬 광장 주변을 돌다 보니, 차로와 광장 사이에 안전펜스 같은 것이 전혀 설치되어 있지 않아, 운전미숙으로 광장으로 차가 올라가면 어쩌나 싶은 불안감이 들었다. 다음날인 월요일 뉴스에 보니, 아니나 다를까 새벽에 차 한대가 사고를 낸 모양이다. 사고 이후엔 가보지 못했는데, 안전망을 설치했는지 모르겠다. 나중에 점심시간에 광화문 나갈 일 있을 때 들러 봐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