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1월 21일 금요일

[공연] 이안 보스트리지,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 2008년 11월 19일

고양 아람누리는 처음 가보는 곳이라서 시간을 넉넉하게 잡고 출발했는데, 퇴근시간의 강변북로가 심하게 막혔다. 허겁지겁 도착하니 공연 10분전이다. 표를 어디서 예매했는지도 기억이 안나서...;; 좀 헤매다가 표를 찾았는데 프로그램도 다 팔렸는지 없고 에라 모르겠다 그냥 들어가서 자리에 앉았다. 깔끔한 공연장이 맘에 든다. 합창석이 생각보다 넓게 되어 있는데, 내가 앉은 자리 앞에 설치되어 있는 안전바의 높이가 마침 내 눈높이라 무대가 잘 보일까 조금 걱정이 되기도 했다.

보스트리지와 함께 무대에 등장한 줄리어스 드레이크는 피아노에 앉자마자 첫 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보스트리지는 꽤 로맨틱하게 보이던 사진과는 달리 좀 심하게 마른 모습이어서 과연 노래는 끝까지 부를 수 있을까 심히 우려될 지경이었다. 프로그램이 없이... 따라서 가사도 없이... 독일어 리트를 듣고 있어야 하는 상황이라... 좀 불안했는데...

보스트리지의 노래는 그런 걱정을 말끔히 가시게 해주었다. 일단... 그의 목소리는 정말 미성이다. 씨디에서 듣던 그 목소리가 실제로도 그 목소리였군... 이라는 생각(당연하지만..;;)이 들었고.... 쓰러질 듯 피아노에 기대어서 또 피아노를 잡고 부르는 여윈 보스트리지의 음량은 생각보다 크고 맑았다. 그가 표현해 내는 슈베르트는 마치 연극을 보는 듯했고, 피아니시모를 정말 피아니시모 답게 그러면서도 아름답게 연주하는 모습은 정말 감동이었다.

원래 비극적인 곡이긴 하지만... 보스트리지의 음성으로 듣는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는 보다 더 슬픔과 쓸쓸함이라는 감성을 자극했다. 그게.... 추워진 날씨 탓으로 더욱 그러했던 것도 같고... 말도 안되게 어려워지고 있는 경제상황 때문에 더 그렇게 느껴졌던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그의 노래는 너무나 감성적이어서 눈물이 날 정도였다.

연주를 들으며 내가 예전에 정말 슈베르트를 좋아했었던 것을 생각해 내었다. 사실 중학교때 내가 제일 좋아했던 작곡가는 슈베르트였는데... 아름답고 서정적인 멜로디들이 가득 찬 곡들이 그렇게 많다는 것도 놀라왔고, 그의 비극적인 삶도 안타까웠다. 그의 천재가 가난과 고통에 묻혀 만개하지 못한 것이 한창 사춘기 시절이었던 그 때 무척 슬프게 느껴졌던 것 같다. 보스트리지의 슈베르트는 바로 그 슬픔이 절절하게 묻어나는 연주였고.... 눈을 감고 있으면 정말 슈베르트가 자신의 이야기를 자신의 감정으로 들려 주는 것 같다는 상상을 할 수 있었다.

피아니스트 드레이크와 보스트리지는 완벽한 듀오를 이루었다. 정말 한 팀을 이루어서 같은 감정과 같은 호흡으로 연주하는 모습이었다.

20곡의 연주는 한 두번의 인터발을 제외하고는 계속 이어져서 연주되었는데, 합창석에서 어떤 이상한 아저씨가 곡 사이 사이마다 박수를 쳐 곡의 흐름을 엄청나게 방해했다. 그 쪽으로 신경을 쓰지 않으려고 해도 끊기는 흐름때문에 정말 짜증이 났는데, 보스트리지도 중간에 한 번 그 아저씨를 째려 보았던 듯 하다..;;; 그나마 후반부에는 박수를 좀 덜 치긴 했는데.... 20번째 노래가 끝나기도 전에 터져 나온 안다 박수는 .... 정말 속상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어떻게 그렇게 끝나는 노래에 그런 박수를 칠 수가....;;; 도무지 이해가 안되는 상황.

보스트리지와 드레이크는 앵콜로 슈베르트의 작별을 들려 주었는데 (그가 한국어로 제목을 말해 주었던 것 같은데... 잘 안들려서 정확치 않다) 아무래도 그 곡을 선택한 이유는 관객들이 마지막 부분 쉼표에 있는 페르마타의 끝까지 관객들이 박수를 치지 않고 기다릴 수 있는지 시험해 보려는 게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여간... 그 날의 관객들은 본 공연의 안다박수를 반복하지 않고 무사히 시험에 통과했다. 곡의 여운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느낌인지.... 보스트리지와 드레이크의 표정도 아까보다는 훨씬 밝아진 듯 했다.

막 겨울이 시작된 차가운 날... 그리고 이 겨울이 얼마나 오래갈 지 또 얼마나 추울지 도대체 알 수가 없는 요즈음... 슈베르트의 아름다운 음악은 그래도 위안이 되었다. 멀리 고양까지 다녀온 보람이 있었다.

댓글 2개:

  1. 여전히 음악회 열심히 다니시는군요... 많이 부럽습니다...ㅜㅜ

    저는 말 그대로 공사다망한 관계로다가... 음악회는 커녕 바이올린도 못 꺼내보고 있습니다.

    악기 케이스를 마지막으로 열어본 것이 6월초니까 6개월이 다 되어가네요... 요즘은 카페도 자주 못가고... ㅜㅜ

    바이올린에게 소외당하는 쓸쓸한 느낌이랄까....ㅡ.ㅡ;;;

    아무튼... 슈삐님 글 보면서 대리만족하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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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PlusAlpha - 2008/11/22 08:55
    알파님 오랫만이에요^^ 정말 요즘 계속 바쁘신것 같더라구요.. 좀 나아지면 바이올린도 많이 이뻐해주시구요.. 저도 요즘 여러가지 정신이 없어서 오케스트라 쉬고 있답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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