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6월 3일 화요일

[공연] 스티븐 허프 피아노 리사이틀 "변주와 왈츠" 2008년 6월 1일

Stephen Hough
(출처: http://www.stephenhough.com)

스티븐 허프는 그다지 익숙한 피아니스트가 아니었는데, 그의 공연을 예약한 것은.... 일단 프로그램이 마음에 들었고 중요한 것은 올해 LG 아트센터 공연 패키지를 예약해야하는데 채워 넣을 공연이 하나 더 필요했었기 때문이었다. 영국출신의 피아니스트이고, 카톨릭신자이면서 동성애자라는 점 (슈클에서 그것 때문에 논란이 된 적이 있었서 알게 되었다), 호,불호가 꽤 갈리는 연주자라는 점.. 등을 대충 줏어 듣고 공연에 갈 수 있었다.

누구는 촛불집회에 간다고 연주회를 포기한다는데... 나는 자는 아이를 집에 두고 연주회나 쫓아 다닌다는 것이 좀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그냥 공연장으로 향했다. 처음 도착했을 때에는 공연장에 사람이 별로 없었는데, 연주 직전에 꽤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들어와 좌석은 거의 다 찼다.

변주. 강한 타건과 카리스마 넘치는 음색이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피아노라는 악기는... 현악기에 비해 단조로운 음색을 내는 것 같다... 라고 생각하다가도 이런 연주를 만나면, 피아노가 얼마나 다채로운 음색을 만들어 내는 악기인가를 깨닫게 되곤 한다. 아티큘레이션도 훌륭했고 곡을 완전히 장악하고 연주하는 모습도 멋졌다.

후반부는 왈츠. 첫 곡은 꼬마 때 피아노 명곡집에서 배웠던 베버의 무도회의 권유. 유머러스하고 즐거운 곡이라는 나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곡이 연주되고 있었다. 그의 권유는 훨씬 더 정열적이고 강하고 보다 심각했다. 이어지는 쇼팽의 왈츠도 내 생각과는 좀 다른 곡들이었다. 영국 피아니스트라는 선입관 때문이었는지... 쇼팽 특유의 가슴이 아린 듯한 애수가 전혀 느껴지지가 않았다. 물론... 화려한 왈츠는 그런 느낌의 곡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느끼는 쇼팽보다는 좀 더 건조한 해석이었다.

이어지는 생상, 샤브리에, 드뷔시는 꽤 마음에 들었다. 마치 까페에 앉아서 가벼운 마음으로 감상하는 피아노 소곡들을 듣는 느낌. 19세기의 프랑스 어느 까페나 살롱에 들어 온 것 같은 기분 좋은 느낌이었다. 마지막으로 연주된 리스트의 두 곡, 특히 마지막의 메피스토 왈츠는 피아노는 역시 타악기구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강렬하게 연주되었다.

박수갈채 이후에 허프는 3곡을 더 연주해 주었는데, 첫 곡은 매우 동양적인 느낌이 나는 묘사적인 곡이었고... 두번째 곡은 아주 재미있었다. 좀 재즈풍의 곡...  3곡 모두 처음 들어 보는 전혀 모르는 곡이었는데, 나중에 LG아트센터에서 나온 공지를 읽어 보니 그 두번째 곡이 바로 허프 본인의 작품이더라 (아래 앵콜곡명 참조).

새로운 연주자, 참신한 곡을 만나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아.. 그리고 허프는 이날 연주에서 차이나칼라가 있는 검은 옷을 입었었는데, 나중에 무대로 걸어나갔다 오는 모습을 보니 초록색 빛이 나는 천으로 된 구두를 신고 있었다. 특이한 구두의 색과 모양새에 한동안 발을 보려 고개를 빼기도 했었다는....^^

프로그램:

변주 Variations

멘델스존 FELIX MENDELSSOHN (1809-1847)
"엄격변주곡(Variations sérieuses)", Op. 54

베토벤 LUDWIG VAN BEETHOVEN (1770-1827)
피아노 소나타 제32번 c단조, Op.111 (Sonata No. 32 in C minor, Op. 111)

- intermission -

왈츠 Waltzes

베버 CARL MARIA VON WEBER (1786-1826)
"무도회에의 권유(Invitation to the Dance)", Op. 65

쇼팽 FRÉDÉRIC CHOPIN (1810-1849)
왈츠 C#단조 Op.64 No.2
"화려한 왈츠(Valse Brilliante)" Ab장조 Op. 34 No. 1

생상 CAMILLE SAINT-SAËNS (1835-1921)
"나른한 왈츠(Valse Nonchalente)" Db장조, Op. 110

샤브리에 EMMANUEL CHABRIER (1841-1894)
"소곡(Feuille d’Album)"

드뷔시 CLAUDE DEBUSSY (1862-1918)
왈츠 "렌토보다 느리게(La plus que lente)"

리스트 FRANZ LISZT (1811-1886)
"잊혀진 왈츠(Valse oubliée)" No. 1
"메피스토 왈츠(Mephisto Waltz)" No. 1

앵콜곡
1. Pining for the Spring Breeze (Arr. Stephen Hough)
2. Osmanthus Romp (Stephen Hough)
3. Young Girls in the Garden (Federico Mompou)

댓글 2개:

  1. 저도 다녀왔습니다. 처음 입장할 때 청록색에 펄(pearl)기운이 감도는 구두를 보는 순간, 이거 두고두고 회자 되겠구나 생각했죠^^. 허프는 처음 데뷔 음반 부터 최근 음반까지 꾸준히 들어 왔는데, 실황의 맛은 또 많이 다르네요. 허프를 두고 지인은 중심 레파토리에서는 자신 없으니까 변두리로 승부한다는 식으로 이야기 하곤 했는데 베토벤을 들어 보니 중심 레파토리에 밀려 특이한 곡들을 많이 하는 것은 나닌 듯했습니다. 1악장에 비해 변주곡쪽은 좀 나른 했지만 개성 있었다는 생각입니다.

    쇼팽은 말씀 하신 것과 동감이고, 생상, 샤브리에, 드뷔시도 아무생각 없이 즐거운 마음으로 들을 수 있어 좋았습니다. 메피스토는 처음 부터 너무 무리하는 것 아닌가 생각 했는데 의외로 후반부에 덜 무너지면서 요령있게 마무리 하더군요.

    아무튼 내내 즐거운 마음으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즐거운 연주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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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만술[ME] - 2008/06/03 16:39
    만술님도 가셨었군요^^ 구두 정말 인상적이었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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