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6월 4일 수요일

답답한 세상 이야기...

어떤 말을 어떻게 써야 할지 좀 난감해서 블로그에서 조용히 있었는데, 지난 주말 이후에는 정말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동안 내 생각을 쓰는 것이 난감해했던 이유는 여러가지인데.... 첫째는, 미국소고기를 먹으면 무조건 광우병에 걸리고 죽을 것이라는 주장이 과학적으로 과연 옳은가에 대한 의문 때문이었고 (나는 이런 방면에는 전혀 아는 바가 없으나 브릭 등의 글을 읽으면 아닌 것도 같고... 또 다른 글을 읽으면 그런 것도 같아서 영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둘째는, 지금까지 말도 안되는 2MB의 정책에 별 군소리 안하고 심지어 대선에서 그를 찍어 주기까지 하다가 갑자기 먹을 것이 걸린 문제에 민감해 지는 사람들도 잘 이해가 되지 않아서 였고.. 세째는, 시청 앞 광장에 모인 사람들의 이미지가 월드컵 때 나를 부르르 떨게 만들었던 집단주의의 재현처럼 느껴져서였다.

이번 일을 지켜보면서, 일단, 세번째 이유는 내 생각이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즉, 이번 일은 집단적인 의사표현임에는 틀림없지만 "집단주의"라고 불릴만한 것은 전혀 아니라는 것이다. 보다 강한 의사표현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사람들은 청계천이나 시청 앞 광장을 찾아 낸 것인데, 이건 집단의 힘을 과시하기 위함보다는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작은 힘이나마 모여 보다 큰 목소리를 만들려고 하는 노력이라는 것으로 보는 것이 맞다.

(첨언하자면... 나는 애국주의나 배타적 민족주의를 별로 좋아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또 한국사회의 큰 특징 중 하나인 집단문화도 그다지 즐기지 않는 편이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분명히 민족이나 국가에 대해 다른 한국인들과 같은 정도의 의식과 정서를 공유하고 있다고 믿는다. 단지 몇몇 표현방식과 우리들이 무의식적, 의식적으로 가끔씩 드러나는 배타성을 좋아하지 않을 뿐이다.)

첫번째와 두번째 이유는 내가 틀렸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지금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 소고기 문제는 인터넷이라는 매우 열려져 있는 소통의 공간을 타고 꽤 오랜기간 많은 사람들에게 노출이 되면서, 또 방송을 포함한 일부 언론들이 반대 여론 형성에 큰 기여를 하면서, 이슈를 단지 소고기 뿐만아니라 MB정권의 여러가지 다른 문제점에까지로 확대시켰기 때문이다. 이런 이슈 확대에  가장 큰 기여를 한 사람은 물론 2MB와 그 주변 사람들이겠지만 말이다. 그의 100일, 아니 사실은 정권 인수위가 꾸려지고 나서부터 지금까지의 기간 동안의 "활약"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가 없다....

경찰과의 충돌이 빚어지기 시작했던 지난 주, 특히 경악할 만한 폭력 진압이 이루어졌던 지난 주말의 사진과 동영상을 보면서... 갑자기 시계가 거꾸로 돌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물론 이건 나만의 느낌은 아닐 것이다. 물론 20년 전과 지금이 크게 다른 점도 있다....그건 시위에 참여하지도 못한 나도 TV에서 또 인터넷에서 폭력 진압의 증거들, 사진과 동영상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87년에 88년에 CNN이나 외국 신문에 난 "진실보도"를 접해 보고 싶어서... 과연 진실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서 자료를 찾아 헤매었던 그 시절과의 가장 큰 차이가 이런 점임은 틀림이 없다. 하지만 정부의 대응이나, 경찰의 모습은 80년대와 별반 다르게 느껴지지 않는다. 경찰과 공무원 조직이 정권 교체에 맞추어 변하는... 시대를 거슬러 가는... 모습은 정말 신속하고 경이로울 지경이다. 참... 답답하고 슬픈 일이다. 시민을 보호해야할 경찰이 오히려 시민을 구타하고 물대포를 쏘아대고 어린 학생들을 구금하는 모습을 2008년 서울에서 다시 보게 될 줄은 정말 꿈에도 생각 못했던 일이다.

오늘은 정부나 여당이 한 발 물러난 모습을 보여 주긴 했지만... 내일 선거를 위한 발언들인지.. 지실로 문제를 풀어갈 방책과 의지를 가지고는 있는 것인지는 매우 의심스럽다. 게다가 단지 소고기만이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 대충 이 문제를 무마시켜서 넘어가고는 그 다음에는 또 무슨 폭탄을 들고 나올지 정말 염려가 된다. (지금까지 터뜨린 폭탄들로도 충분히 숨도 못 쉴 지경인데 말이다.)

그래도... 이번 일은 희망을 보여 준다. 맑은 눈동자로 잘못된 점은 고쳐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어린 학생들과,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끝까지 같이 하는 많은 사람들과, 보이지 않게 뒤에서 응원하는 사람들의 존재가... 아직은 이 나라가 희망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못 살겠다고 우리 아이들 교육 한번 잘 시켜 보겠다고 한국을 등지는 사람들... 말도 안되는 전과자를 혹시 우리 집값 올려 줄까 싶어서 대통령으로 찍어 주는 사람들을 보면서 참으로 암담했었는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부상당하신 분들이 빨리 완쾌되시길... 지금도 빗속에서 촛불을 들고 계신 분들에게 별 일이 없기를... 기원합니다.

-----------------------------------------------------

덧1. 지난 12월 대선 다음날, 회사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도무지 왜 줄까지 서서 2MB를 찍는 것인지 이해 할 수 없다는 투의 이야기를 했더니... 그 중에 명박아저씨의 팬을 자처하는 분이 계셔서 당혹해 했던 생각이 난다. 요즘의 상황을 보시면 아마 시위대가 폭력을 쓰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시겠지...;;;

덧2. 폭력시위대 말이 나와서.... 엊그제 잘 나가는 로펌의 변호사를 만났는데, 버스 위로 기어 올라가면서 본인들이 불법시위 아니라고 하던데 그게 말이 되냐고....;;;; 흠... 그래서 폭력으로 진압하는 것이 정당화 된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시겠지. 그 분은 옆에서 같이 식사하던 다른 분들의 소고기 걱정으로 더이상은 말을 잇지는 못하셨다.

덧3. 오늘은 잘 아는 미국 아저씨가 어제 저녁 광화문 근처로 밥먹으로 갔다가 차가 막혀서 길에서 1시간 반을 갖혀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는 걸 들었다. You chose the wrong place... 라고 말했더니. I know.. 하면서 그래도 demonstration이 있다는 것은 democracy의 sign이 아니겠느냐고 말하더라. 상당히 이해심 많은 사람인 듯한 이미지를 보이시려 노력하시면서.... 또 그래도 MB가 민주주의자는 맞지 않느냐는 투로... 그래서 사람들을 다치게 하는 경찰이 있는 것을 democracy의 sign이라고 보긴 어렵지 않을까? 라고 답해 주었다...

덧4. 이런 주변 사람들의 생각을 듣고 있노라면... 난 내가 속한 소그룹들에서는 주로 조용하게 지낸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ㅠㅠ 아.. 또 하나의 에피소드. 2002년 대선의 개표상황을 미국에서 지켜보다가 노무현의 당선 소식을 듣고 나름 가슴 벅차 했었는데... 다음날 학교에서 만난 한국 학생들은 모두들 나라가 어찌되려고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나.. 하는 식의 반응이었던 기억...;;

덧5. 요 며칠 환율은 조금 떨어지고는 있던데... 2MB에게 정말 부탁하고 싶은 3가지는...
 
(1) 대운하 생각은 제발 접어 달라는 것
(2) 가뜩이나 불안한 달러 때문에 국제 유가도 오르고 이래저래 원자재 값도 오르는데.. 제발 환율과 물가는 좀 정리해 달라는 것
(3) 비즈니스 프렌들리도 좋지만, 국민 대다수를 차지하는 중산층, 그 이하 서민들하고도 조금은 친해지려는 노력을 해달라는 것..... 에휴....;;

댓글 1개:

  1. 휴~~

    요즘 상황을 보면 한숨만 나옵니다.

    힘없는 개인으로 어떻게 해 볼 수도 없는 노릇이고...

    전엔 하루 종일 뉴스만 나왔으면 좋겠다 라고 한 적도 있었는데, 요즘은 뉴스 보기도 싫어지는 군요.

    해결책은 딱 하나인데 당사자인 그 놈만 모르는 것 같네요.

    암튼 중요한 것은....

    블로그 촛불은 제가 한참 선배입니다요......-_-;;

    답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