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6월 16일 월요일

[공연] 앤드류 맨지 & 리처드 이가 듀오 2008년 6월 14일


(사진 출처: LG아트센터)

프로그램

바흐 J.S.Bach (1685 - 1750) 바이올린과 하프시코드를 위한 소나타 BWV1015
Sonata for violin and obbligato harpsichord, BWV1015 (c.1720) Dolce, Allegro, Andante un poco, Presto

코렐리 A.Corelli (1653 - 1713) 바이올린과 바소 콘티누오를 위한 소나타, Op.5 No.7
Sonata for violin and bass continuo in D minor, Op.5 no.7 (1700) Preludio, Corrente, Sarabanda, Giga

바흐 J.S.Bach (1685 - 1750)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 제1권 중 프렐류드와 푸가 BWV853 - 리처드 이가 독주
Prelude and Fugue for solo harpsichord BWV853 rom Book I of The Well-tempered Clavier (1722)

판돌피 G.A.Pandolfi (fl.c.1660) 바이올린 소나타 Op.3 No.2 La Cesta & No.6 La Sabbatina
Two sonatas from Op.3: no.2 La Cesta & no.6 La Sabbatina

Intermission

비버 H.I.F.Biber 묵주소나타 No.1 수태고지(受胎告知)
Rosary Sonata no.1: The Annunciation (c.1680) Praeludium, Variatio, Finale

바흐 J.S. Bach 반음계적 환상곡과 푸가 D단조 BWV903 - 리처드 이가 독주
Chromatic Fantasia and Fugue in D minor, BWV903 (1720?), for solo harpsichord

비버 Biber 1681년 소나타
Sonata III (1681) Praeludium, Aria e Variatio, Variatio


이 공연은 올해의 풍성한 고음악 공연 중 가장 기대되는 것 중의 하나였다. 앤드류 맨지의 연주에 대해서는 고음악 애호가들 중에서 별로 탐탁치 않게 여기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실제로 그가 어떻게 연주하는지를 보는 것은 상당히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오랫동안 호흡을 맞추어 온 이가와의 듀오 연주회라니... 놓쳐서는 안될 공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흐의 첫 곡은 돌체로 시작했는데, 부드럽고 휘청휘청한 그의 연주가 조금은 불안하게도 들려왔다 그러나, 맨지는 곧 자신감 넘치는 비르투오조 연주자의 모습으로 돌아와 이가와 미소를 주고 받으며 정말 즐겁게 연주하기 시작했다. (맨지와 이가는 내가 지금까지 실연으로 본 어떤 듀오의 연주보다도 즐겁게 호흡을 맞추어서 나중에는 거의 만담을 주고 받는 희극인 둘을 보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ㅡㅡ;;)

전반부에서는 바흐보다는 코렐리가 더 좋았고, 코렐리 보다는 판돌피가 더 재미있었다. 판돌피의 두 곡은 처음 듣는 곡으로, 집에 있는 맨지, 나이젤 노스, 존 톨의 17세기 바이올린 음악 "Fantastic Style"에 실려 있던 판돌피의 곡과는 다른 곡들이었다. 하지만, 곡의 분위기는 비슷해서 17세기 유럽의 음악이라는 것이 정말 흥미진진한 것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이 다시 한번 들게 했다. 맨지는 이 곡과 후반부 비버 소타타에서 온갖 종류의 바이올린 주법을 보여 주어 바로크 바이올린으로도 이런 다양한 연주가 가능함을 보여 주었다.

후반부의 묵주 소나타는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무난했고, 이가의 독주로 연주된 바흐의 반음계적 환상곡과 푸가는 전반부의 평균율 클라비어 보다 더 좋았다. 프로그램 중 가장 마지막에 배치된 비버의 1681년 소나타는 역시 처음 들어 보는 곡이었는데, 묵주 소나타의 느낌과는 다른 느낌의, 오히려 판돌피의 곡 같은 17세기 바이올린 곡들과 비슷한 느낌의, 즐거운 곡이었다. 맨지는 이 곡에서도 역시 다채로운 연주법을 보여 주었고 이가의 하프시코드와 함께 멋진 앙상블을 들려 주었다.

맨지는 박수가 이어지자, 무대로 나와 "The first movement of the Sonata by George Frideric Handel"과 "The last movement of the last sonanta by J. S. Bach"를 역시 이가와 함께 앵콜로 연주해 주었다.

공연 내내 보여 준 맨지와 이가의 모습은 너무나 즐거워 보였는데, 이것이 관객들에게 보여 주기 위한 것인지 그들이 스스로 저렇게 음악을 즐기고 있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런 모습이 공연장에 같이 있던 사람들에게 큰 즐거움을 준 것만은 사실이다. 고음악을 잘 모르는 우리 엄마도 매우 만족하시면서 시종일관 즐거워 하셨다. 음악이 비교적 '심각'해 지기 시작한 것이 고전파 이후라면.... 사실 고음악의 본질은 이런 즐거움이 아닐까 싶다. 이번 연주회를 통해서 맨지와 이가는 옛 음악을 어떻게 보고 들어야 하는가에 대한 자신들의 생각을 들려 주었고, 우리는 맨지와 이가의 환상적인 앙상블을 통해 오랜 시간을 같이 해온 음악적 동료와 함께 연주하는 것이 이토록 유쾌할 수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Four Seasons Hotel Tokyo at Chinzan-so

6월에 잡혀 있었던 출장 일정 중에서 올란도에 가는 것은 "다행히" 취소되었지만, 둘째 주 도쿄 출장은 절대로 취소할 수 없는 일정이라고 해서 예정대로 비행기를 탔다. 3일 내내 호텔에서만 머물면서 종일 교육, 미팅, group break-out이 이어졌다. 첫 날은 10시경에 호텔 근처의 작은 주점에서 같이 온 팀과 맥주 한 잔씩을 할 수 있었지만, 둘쨋날은 마지막 날 발표자료 준비 때문에 저녁 내내 계속 미팅룸에 있어야 했고, 세쨋날도 일정이 끝나고는 이메일 좀 보고 처리하다가 저녁 비행기를 타고 돌아왔다.
 
그러니까... 별로 일본 구경을 할 기회가 없는 아주 짧은 출장이기는 했지만... 호텔은 정말 훌륭했다. 사실 이 호텔이 처음은 아닌데, 2006년에 출장을 왔을 때도 며칠 머물렀었다. 그 때는 방이 가든뷰가 아니어서 인지 비싸다는 것 이외에는 별 감흥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방 밖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아래 사진과 같았다. 와~하는 탄성이 절로 나오더라...



방 안의 느낌은 대략 아래 사진보다 더 좋았는데... (아무래도 좋은 방이었던 듯)



화장실에는 일본식 히노끼욕조를 새로 들여 놓았는지... 하여간 예전에 없던 목조 욕조도 있었다. 교육 중에 나가서 산책할 수 있는 길과 정원도 정말 아름다웠는데, 같이 교육을 받는 일본사람 이야기로는 이 호텔이 메이지 시대 수상을 했던 사람이 소유하던 집이었다고 한다. 정원의 모습으로 보아 상당한 재력/권력가였나 보다. 일본의 호텔 홈페이지에는 정원에 대하여 소개가 나와있기는 한데, 일본어로 되어 있어서 패쓰... (사진도 모두 그 곳에서 가져온 것이다)

산책로의 다리. 밤에는 반딧불이 모여든다고 하는데, 밤에 나가보질 못해서 모르겠다.



호텔 전경.

Garden History

庭園の歴史

가족들과 같이 올 수 있으면 좋겠지만.... 하룻밤에 4-50만원이라는데 과연 개인적으로 올 일이 있을까 싶다. 혹시 다시 출장을 오게 되어 가족들과 같이 오면 모를까...

2008년 6월 4일 수요일

70761번째 촛불

70761번째 촛불을 받아 와서 블로그를 밝혀 봅니다. 받는 곳은...

http://www.sealtale.com/

답답한 세상 이야기...

어떤 말을 어떻게 써야 할지 좀 난감해서 블로그에서 조용히 있었는데, 지난 주말 이후에는 정말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동안 내 생각을 쓰는 것이 난감해했던 이유는 여러가지인데.... 첫째는, 미국소고기를 먹으면 무조건 광우병에 걸리고 죽을 것이라는 주장이 과학적으로 과연 옳은가에 대한 의문 때문이었고 (나는 이런 방면에는 전혀 아는 바가 없으나 브릭 등의 글을 읽으면 아닌 것도 같고... 또 다른 글을 읽으면 그런 것도 같아서 영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둘째는, 지금까지 말도 안되는 2MB의 정책에 별 군소리 안하고 심지어 대선에서 그를 찍어 주기까지 하다가 갑자기 먹을 것이 걸린 문제에 민감해 지는 사람들도 잘 이해가 되지 않아서 였고.. 세째는, 시청 앞 광장에 모인 사람들의 이미지가 월드컵 때 나를 부르르 떨게 만들었던 집단주의의 재현처럼 느껴져서였다.

이번 일을 지켜보면서, 일단, 세번째 이유는 내 생각이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즉, 이번 일은 집단적인 의사표현임에는 틀림없지만 "집단주의"라고 불릴만한 것은 전혀 아니라는 것이다. 보다 강한 의사표현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사람들은 청계천이나 시청 앞 광장을 찾아 낸 것인데, 이건 집단의 힘을 과시하기 위함보다는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작은 힘이나마 모여 보다 큰 목소리를 만들려고 하는 노력이라는 것으로 보는 것이 맞다.

(첨언하자면... 나는 애국주의나 배타적 민족주의를 별로 좋아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또 한국사회의 큰 특징 중 하나인 집단문화도 그다지 즐기지 않는 편이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분명히 민족이나 국가에 대해 다른 한국인들과 같은 정도의 의식과 정서를 공유하고 있다고 믿는다. 단지 몇몇 표현방식과 우리들이 무의식적, 의식적으로 가끔씩 드러나는 배타성을 좋아하지 않을 뿐이다.)

첫번째와 두번째 이유는 내가 틀렸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지금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 소고기 문제는 인터넷이라는 매우 열려져 있는 소통의 공간을 타고 꽤 오랜기간 많은 사람들에게 노출이 되면서, 또 방송을 포함한 일부 언론들이 반대 여론 형성에 큰 기여를 하면서, 이슈를 단지 소고기 뿐만아니라 MB정권의 여러가지 다른 문제점에까지로 확대시켰기 때문이다. 이런 이슈 확대에  가장 큰 기여를 한 사람은 물론 2MB와 그 주변 사람들이겠지만 말이다. 그의 100일, 아니 사실은 정권 인수위가 꾸려지고 나서부터 지금까지의 기간 동안의 "활약"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가 없다....

경찰과의 충돌이 빚어지기 시작했던 지난 주, 특히 경악할 만한 폭력 진압이 이루어졌던 지난 주말의 사진과 동영상을 보면서... 갑자기 시계가 거꾸로 돌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물론 이건 나만의 느낌은 아닐 것이다. 물론 20년 전과 지금이 크게 다른 점도 있다....그건 시위에 참여하지도 못한 나도 TV에서 또 인터넷에서 폭력 진압의 증거들, 사진과 동영상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87년에 88년에 CNN이나 외국 신문에 난 "진실보도"를 접해 보고 싶어서... 과연 진실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서 자료를 찾아 헤매었던 그 시절과의 가장 큰 차이가 이런 점임은 틀림이 없다. 하지만 정부의 대응이나, 경찰의 모습은 80년대와 별반 다르게 느껴지지 않는다. 경찰과 공무원 조직이 정권 교체에 맞추어 변하는... 시대를 거슬러 가는... 모습은 정말 신속하고 경이로울 지경이다. 참... 답답하고 슬픈 일이다. 시민을 보호해야할 경찰이 오히려 시민을 구타하고 물대포를 쏘아대고 어린 학생들을 구금하는 모습을 2008년 서울에서 다시 보게 될 줄은 정말 꿈에도 생각 못했던 일이다.

오늘은 정부나 여당이 한 발 물러난 모습을 보여 주긴 했지만... 내일 선거를 위한 발언들인지.. 지실로 문제를 풀어갈 방책과 의지를 가지고는 있는 것인지는 매우 의심스럽다. 게다가 단지 소고기만이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 대충 이 문제를 무마시켜서 넘어가고는 그 다음에는 또 무슨 폭탄을 들고 나올지 정말 염려가 된다. (지금까지 터뜨린 폭탄들로도 충분히 숨도 못 쉴 지경인데 말이다.)

그래도... 이번 일은 희망을 보여 준다. 맑은 눈동자로 잘못된 점은 고쳐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어린 학생들과,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끝까지 같이 하는 많은 사람들과, 보이지 않게 뒤에서 응원하는 사람들의 존재가... 아직은 이 나라가 희망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못 살겠다고 우리 아이들 교육 한번 잘 시켜 보겠다고 한국을 등지는 사람들... 말도 안되는 전과자를 혹시 우리 집값 올려 줄까 싶어서 대통령으로 찍어 주는 사람들을 보면서 참으로 암담했었는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부상당하신 분들이 빨리 완쾌되시길... 지금도 빗속에서 촛불을 들고 계신 분들에게 별 일이 없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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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1. 지난 12월 대선 다음날, 회사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도무지 왜 줄까지 서서 2MB를 찍는 것인지 이해 할 수 없다는 투의 이야기를 했더니... 그 중에 명박아저씨의 팬을 자처하는 분이 계셔서 당혹해 했던 생각이 난다. 요즘의 상황을 보시면 아마 시위대가 폭력을 쓰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시겠지...;;;

덧2. 폭력시위대 말이 나와서.... 엊그제 잘 나가는 로펌의 변호사를 만났는데, 버스 위로 기어 올라가면서 본인들이 불법시위 아니라고 하던데 그게 말이 되냐고....;;;; 흠... 그래서 폭력으로 진압하는 것이 정당화 된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시겠지. 그 분은 옆에서 같이 식사하던 다른 분들의 소고기 걱정으로 더이상은 말을 잇지는 못하셨다.

덧3. 오늘은 잘 아는 미국 아저씨가 어제 저녁 광화문 근처로 밥먹으로 갔다가 차가 막혀서 길에서 1시간 반을 갖혀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는 걸 들었다. You chose the wrong place... 라고 말했더니. I know.. 하면서 그래도 demonstration이 있다는 것은 democracy의 sign이 아니겠느냐고 말하더라. 상당히 이해심 많은 사람인 듯한 이미지를 보이시려 노력하시면서.... 또 그래도 MB가 민주주의자는 맞지 않느냐는 투로... 그래서 사람들을 다치게 하는 경찰이 있는 것을 democracy의 sign이라고 보긴 어렵지 않을까? 라고 답해 주었다...

덧4. 이런 주변 사람들의 생각을 듣고 있노라면... 난 내가 속한 소그룹들에서는 주로 조용하게 지낸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ㅠㅠ 아.. 또 하나의 에피소드. 2002년 대선의 개표상황을 미국에서 지켜보다가 노무현의 당선 소식을 듣고 나름 가슴 벅차 했었는데... 다음날 학교에서 만난 한국 학생들은 모두들 나라가 어찌되려고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나.. 하는 식의 반응이었던 기억...;;

덧5. 요 며칠 환율은 조금 떨어지고는 있던데... 2MB에게 정말 부탁하고 싶은 3가지는...
 
(1) 대운하 생각은 제발 접어 달라는 것
(2) 가뜩이나 불안한 달러 때문에 국제 유가도 오르고 이래저래 원자재 값도 오르는데.. 제발 환율과 물가는 좀 정리해 달라는 것
(3) 비즈니스 프렌들리도 좋지만, 국민 대다수를 차지하는 중산층, 그 이하 서민들하고도 조금은 친해지려는 노력을 해달라는 것..... 에휴....;;

2008년 6월 3일 화요일

[공연] 스티븐 허프 피아노 리사이틀 "변주와 왈츠" 2008년 6월 1일

Stephen Hough
(출처: http://www.stephenhough.com)

스티븐 허프는 그다지 익숙한 피아니스트가 아니었는데, 그의 공연을 예약한 것은.... 일단 프로그램이 마음에 들었고 중요한 것은 올해 LG 아트센터 공연 패키지를 예약해야하는데 채워 넣을 공연이 하나 더 필요했었기 때문이었다. 영국출신의 피아니스트이고, 카톨릭신자이면서 동성애자라는 점 (슈클에서 그것 때문에 논란이 된 적이 있었서 알게 되었다), 호,불호가 꽤 갈리는 연주자라는 점.. 등을 대충 줏어 듣고 공연에 갈 수 있었다.

누구는 촛불집회에 간다고 연주회를 포기한다는데... 나는 자는 아이를 집에 두고 연주회나 쫓아 다닌다는 것이 좀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그냥 공연장으로 향했다. 처음 도착했을 때에는 공연장에 사람이 별로 없었는데, 연주 직전에 꽤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들어와 좌석은 거의 다 찼다.

변주. 강한 타건과 카리스마 넘치는 음색이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피아노라는 악기는... 현악기에 비해 단조로운 음색을 내는 것 같다... 라고 생각하다가도 이런 연주를 만나면, 피아노가 얼마나 다채로운 음색을 만들어 내는 악기인가를 깨닫게 되곤 한다. 아티큘레이션도 훌륭했고 곡을 완전히 장악하고 연주하는 모습도 멋졌다.

후반부는 왈츠. 첫 곡은 꼬마 때 피아노 명곡집에서 배웠던 베버의 무도회의 권유. 유머러스하고 즐거운 곡이라는 나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곡이 연주되고 있었다. 그의 권유는 훨씬 더 정열적이고 강하고 보다 심각했다. 이어지는 쇼팽의 왈츠도 내 생각과는 좀 다른 곡들이었다. 영국 피아니스트라는 선입관 때문이었는지... 쇼팽 특유의 가슴이 아린 듯한 애수가 전혀 느껴지지가 않았다. 물론... 화려한 왈츠는 그런 느낌의 곡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느끼는 쇼팽보다는 좀 더 건조한 해석이었다.

이어지는 생상, 샤브리에, 드뷔시는 꽤 마음에 들었다. 마치 까페에 앉아서 가벼운 마음으로 감상하는 피아노 소곡들을 듣는 느낌. 19세기의 프랑스 어느 까페나 살롱에 들어 온 것 같은 기분 좋은 느낌이었다. 마지막으로 연주된 리스트의 두 곡, 특히 마지막의 메피스토 왈츠는 피아노는 역시 타악기구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강렬하게 연주되었다.

박수갈채 이후에 허프는 3곡을 더 연주해 주었는데, 첫 곡은 매우 동양적인 느낌이 나는 묘사적인 곡이었고... 두번째 곡은 아주 재미있었다. 좀 재즈풍의 곡...  3곡 모두 처음 들어 보는 전혀 모르는 곡이었는데, 나중에 LG아트센터에서 나온 공지를 읽어 보니 그 두번째 곡이 바로 허프 본인의 작품이더라 (아래 앵콜곡명 참조).

새로운 연주자, 참신한 곡을 만나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아.. 그리고 허프는 이날 연주에서 차이나칼라가 있는 검은 옷을 입었었는데, 나중에 무대로 걸어나갔다 오는 모습을 보니 초록색 빛이 나는 천으로 된 구두를 신고 있었다. 특이한 구두의 색과 모양새에 한동안 발을 보려 고개를 빼기도 했었다는....^^

프로그램:

변주 Variations

멘델스존 FELIX MENDELSSOHN (1809-1847)
"엄격변주곡(Variations sérieuses)", Op. 54

베토벤 LUDWIG VAN BEETHOVEN (1770-1827)
피아노 소나타 제32번 c단조, Op.111 (Sonata No. 32 in C minor, Op. 111)

- intermission -

왈츠 Waltzes

베버 CARL MARIA VON WEBER (1786-1826)
"무도회에의 권유(Invitation to the Dance)", Op. 65

쇼팽 FRÉDÉRIC CHOPIN (1810-1849)
왈츠 C#단조 Op.64 No.2
"화려한 왈츠(Valse Brilliante)" Ab장조 Op. 34 No. 1

생상 CAMILLE SAINT-SAËNS (1835-1921)
"나른한 왈츠(Valse Nonchalente)" Db장조, Op. 110

샤브리에 EMMANUEL CHABRIER (1841-1894)
"소곡(Feuille d’Album)"

드뷔시 CLAUDE DEBUSSY (1862-1918)
왈츠 "렌토보다 느리게(La plus que lente)"

리스트 FRANZ LISZT (1811-1886)
"잊혀진 왈츠(Valse oubliée)" No. 1
"메피스토 왈츠(Mephisto Waltz)" No. 1

앵콜곡
1. Pining for the Spring Breeze (Arr. Stephen Hough)
2. Osmanthus Romp (Stephen Hough)
3. Young Girls in the Garden (Federico Momp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