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1월 12일 일요일

상트 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11/8)

http://blog.naver.com/shubbiss/20030398590

■ 마에스트로_ 유리 테미르카노프
러시아의 영예로운 국민 아티스트이자 세계 정상의 지휘자 유리 테미르카노프는 1938년 날칙에서 태어나 레닌그라드 음악원의 무신 교수에게서 오페라 지휘를 수학한 후 1965년 졸업 후 레닌그라드 말리 아카데믹 오페라 & 발레 극장(Leningrad Maly Academic Theatre of Opera and Ballet)에서 첫 데뷔 무대를 가졌다.

1968년부터 1976년까지 레닌그라드 필하모닉 협회 산하의 아카데미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면서 지휘자로서의 경력을 시작한 테미르카노프는 1976년부터 러시아의 권위 있는 키로프 오페라 극장(현재 마린스키 극장)의 예술 감독과 수석 지휘자로 재직하였다. 그의 재임 당시 무대에 올려진 “에프게니 오네긴” 등의 작품들은 극장 역사상 최고의 무대로 손꼽힌다.

1988년 20세기의 위대한 지휘자 에프게니 므라빈스키의 뒤를 잇는 후계자로 전설적인 상트 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前 레닌그라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예술감독 겸 상임 지휘자로 임명되었고 현재까지 교향악단의 명성을 확고하게 지켜오고 있다. 1995년부터는 상트 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 협회의 예술감독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1979년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 런던 로열 오케스트라의 수석 객원 지휘자가 되었으며 1992년부터는 런던 로열 오케스트라의 상임 지휘자로, 1994년부터는 드레스덴 필하모닉 협회의 수석 객원 지휘자로 활동하였다. 1998년에는 덴마크 국립 방송 교향악단의 수석 객원 지휘자로 임명되었으며, 2000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5대 교향악단 중 하나인 볼티모어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수석 지휘자로 활약해 오고 있다.

이밖에도 보스턴 심포니, 베를린 필, 뉴욕 필,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LA 필하모닉 등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를 지휘하였고 최고 권위의 오페라 제작에 참여하였으며 다수의 음반을 녹음하며 1988년부터 BMG Classics와 함께 작업하고 있다.

■ 상트 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상트 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러시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교향악단으로 1882년 “궁정 음악 합창단”을 전신으로 창단되어 20세기 초에 이르러서야 대중들을 위한 연주회를 하게 되었다. 폴리나 비아르도, 클라라 슈만, 안톤 루빈스타인, 니콜라이 림스키-코르사코프와 같은 역사적인 음악가들과 함께 연주하였으며 차이코프스키가 세상을 떠나기 6일 전 자신의 지휘로 직접 교향곡 6번을 초연하기도 하였다. 1910년대에는 러시아, 서유럽 음악을 집중 탐구하는 “Meetings of Musical News”, “Historical Concerts”에 참가하였다.

1917년 3월 상트 페테르부르크 필은 국립 오케스트라로 새롭게 출범하면서 1921년 페트로그라드 필하모닉 협회에 소속되었다. 이 기간동안 에밀 쿠퍼, 알렉산더 글라주노프, 세르게이 쿠세비츠키와 같은 저명한 지휘자들이 거쳐갔고 해외 출신의 오스카 프리드, 프리츠 슈티드리, 오토 클렘페레, 에릭 클라이버 등이 지휘봉을 잡았다. 또한 바르톡과 오네거, 카젤라, 힌데미트 같은 유럽의 저명한 작곡가들이 지휘자로서 혹은 협연자로서 교향악단과 함께 활동하였다.

최초의 국립 오케스트라 상트 페테르부르크 필은 ‘Academic & Honoured Orchestra of Russia’의 지위를 인정 받은 첫 교향악단이자 외국으로 연주 여행(1946년)을 간 러시아의 첫 교향악단이다. 1938년부터는 20세기를 장식하는 가장 위대한 마에스트로 중 한 사람인 에프게니 므라빈스키가 50여년간 상임 지휘자로 재직하였으며 역사적인 거장 레오나드 스토코프스키, 문쉬, 이고르 마르케비치, 코다이와 브리튼이 오케스트라와 협연하였다.

1988년 므라빈스키 사망 이후 러시아 최고의 지휘자 유리 테미르카노프가 뒤를 이어 오케스라의 상임 지휘자로 임명되었다. 현재 상트 페테르부르크 필은 세계를 무대로 유수한 국제 음악제에서 활약하고 있으며 베를린 필, 빈 필,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세계 5대 교향악단의 하나로 인정 받고 있다.

■ 피아니스트_ 블라디미르 펠츠만
이 시대를 대표하며 그만의 독특한 음악세계와 끊임없는 실험정신으로 전세계 음악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피아니스트 블라디미르 펠츠만은 1952년 모스크바의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나 6세 때 피아노를 시작하였고, 11세 때 모스크바 필하모닉과 협연으로 데뷔했다. 1969년 모스크바 콘서바토리에 입학, 야코프 플리에르 교수의 지도 하에 피아노를 공부했고, 모스크바 음악원과 레닌그라드 음악원에서는 피아노와 더불어 지휘법도 공부했다. 1971년 파리의 롱-티보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이를 계기로 소련을 비롯하여 유럽, 일본 등지에서 연주여행을 하게 되고, 그 이후 무섭게 떠오르게 된다. 펠츠만은 이미 10대 때 많은 레퍼토리를 섭렵하였고, 그 때부터 자유롭고 개성 있는 해석으로 주목을 받았다.

1979년 소련 정부의 독재적인 문화적 통제에 대한 불만이 커짐에 따라 펠츠만은 음악적 자유를 위해 소련으로부터 다른 나라로의 이주를 신청하였다. 그 결과, 소련정부는 그가 공공장소에서 연주하는 것을 금지 하였고, 이어진 8년 동안의 투쟁과 예술계에서의 추방 기간을 거쳐 그는 결국 소련 정부로부터 다른 나라로 이주하는 것을 허락 받았다. 1987년 미국에 망명한 그는 그가 북미에서 처음 연주 한 곳인 백악관에서의 따뜻한 환영을 받았다. 같은 해, 그의 카네기홀 데뷔는 그를 미국 정상급 피아니스트로 입지를 굳히게 했다.

펠츠만의 레퍼토리는 바로크에서 현대음악에 이르기까지 방대하다. 그는 그의 음악적 일생을 바흐의 음악을 연구하는 데 쏟아, 뉴욕의 티쉬센터에서 바흐의 주요 건반작품들을 선보이는 연주회를 1992년부터 1996년까지 매년 4번의 시즌에 걸쳐 개최하였다. 또한, 그는 최근 프로젝트로 쇼스타코비치부터 현시대 러시아 작곡가 14명의 음악까지 현대 러시아 음악을 파노라마로 선보이는 시리즈를 펼쳐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또한 미국 정상급 오케스트라(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로부터 정기적인 초청을 받는 펠츠만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콘서트 시리즈와 뮤직 페스티벌에서 연주하고 있다.

펠츠만은 현재 뉴욕 주립대 피아노과 학과장이며 뉴욕 매네스 음대에서도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다. 그는 피아노를 전공하는 학생들을 위한 1달 동안의 포괄적이고 종합적인 프로그램을 갖추어 전 세계 음악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뉴 팔츠 여름 피아노 페스티벌의 설립자이자 예술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다. 펠츠만의 음반은 소니 클래식, 뮤직매스터스, 멜로디야 레이블을 통해 출시되었다. 바흐 클라비어 곡으로 구성된 여섯 장의 음반, 베토벤 후기 피아노 소나타 다섯 곡, 슈베르트 피아노 독주곡, 쇼팽, 리스트, 브람스, 메시앙, 바흐, 쇼팽, 차이코프스키, 라흐마니노프, 프로코피에프 협주곡 등을 포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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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코프스키 오페라 <예브게니 오네긴> 중 폴로네이즈
Tchaikovsky Polonaise from “Eugene Onegin”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제1번
Tchaikovsky Piano Concerto No.1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제5번
Shostakovich Symphony No.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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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근무를 하고.... 오후에 아산병원에 갔었다. 1년에 한번 있는 건강검진. 이번엔 내시경을 해야겠다고 생각을 했었고.. 이왕이면 안아프게... 수면 내시경을 했다. 약간 정신이 없는 상태였지만.. . .시간도 넉넉하고, 집에와서 약간 휴식을 취한 후에 예당으로 지하철을 타고 출발했다.

 

시간도 알맞게 도착. 예약해 놓은 합창석 맨 앞자리에 자릴 잡았다. 악기 배치를 보니, 금관과 팀파니가 반대쪽 합창석 앞 (오른쪽 뒤)쪽에 배치되어 있었다. 소리가 왜곡되어 들릴 걱정은 좀 덜했다. 피아노 소리가 관에 묻히면 정말 죽음이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에 상당히 안심이 되었다.

 

첫곡인 차선생의 예브게니 오네긴. 처음 듣는 곡이었지만, 역시 차선생의 곡 답게 듣기 편한 곡. 오케의 사운드는 첫 곡부터 화려했다. 역시 유명 오케는 다르군... 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두번째 곡은 기대하던 차선생 피협1. 수없이 들었던 곡이지만, 사실 실황은 처음이었다. 이걸 들으려고 예매한 거나 마찬가지였으니... 블라디미르 펠츠만의 1악장 피아노는 힘찼고, 매끈했다. 귀에 익은 선율과 화음이 2, 3악장 까지 연결되면서 피아노는 점점 더 좋아졌고, 오케는 세련되고 파워플한 사운드를 계속 들려줬다. ... 멋지다.. 생각하면서 은근히 후반부의 쇼심5번을 기대하고 있었다.

 

인터미션에 뭘했더라... 그날은 정신이 몽롱했다. 피로가 엄청나게 몰려들고 있었던 것 같다. 보통은 나가서 자판기 커피를 사먹거나, 주차권을 구입하고, 집에 전화도 한통 해주고... 뭐 그런 일을 하는데.. 그날은 꼼짝을 하고 싶지가 않았다. 그냥 좀 앉아서 프로그램을 읽다가, 눈을 감고 약간이라도 휴식을 취해보려고 했다. 하지만 잠은 아직 오지 않았고... 그냥 피곤했다.

쇼심 5. 저번 BBC가 왔을 때 피로를 못이기고 졸았던 기억에.. 오늘은 꼭 정신차리고 들어야지.. 생각하고 있었다. 1악장. 오케의 사운드는 정말 나무랄 데가 없었고. 곡은 아름다웠고 힘찼다. 그런데.. 내 정신은 점점 희미해져 가고 있었다. 역시 수면내시경의 후유증인가..... 계속 듣고 싶어하는 내 의지로 완전히 잠들지는 않게 했고, 오케의 멋진 사운드를 들리게는 했으나... 내가 들을 수 있는 것은 사... 였지, 심포니 5번이 더이상 아니었다. 곡의 맥락과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는 정신상태가 되지 못했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곡은 끝났고, 환호, 박수... 이어지는 앵콜은 엘가와 프로코피에프의 로미오와 줄리엣... 이라고 했다. 두번째 앵콜은 많이 귀에 익은 곡. 정신이 워낙 혼미하여.... 오케가 완전히 퇴장하기전에 나와... 택시를 잡아탔다. 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연주회장에서. 내 옆에는 50대 부부로 보이는 아저씨와 아줌마가 앉아이었다. 무심결에 들리는 대화 내용으로 미루어 보건데, 이 부부는 상당히 음악회에 자주 다니는 분들 같았다. 어디서 언제한 누구누구가 나오는 공연이 어쨌네 저쨌네...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난 오페라는 유치해서 싫어.. 뭐 그런 이야기도 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잠시 후..."유리 테미르카노프.... 유리가 성이야 이름이야?" ㅡㅡ;;; "유리가 성이지.(단호)" ".. 그렇구나. 유리가 흔한 성인가 보네, 그 나라는. 유리 바슈메트도 유리잖아." "그렇지" "그럼 블라디미르 펠츠만의 블라디미르도 성이네... 아 맞다. 아쉬케나지도 블라디미르지.." "블라디미르도 흔한 성인가 보네" "이 나라도 우리나라 처럼 성이 앞에 오는 구나"........... 할말이 없었다. 이 사람들이 나 재밌으라고 농담하는 건 아닐 테고.... 멀쩡한, 있어보이는 중년 부부가... 왜 이런.. 대화를....

 

그래도, 나름 스스로를 콘서트고어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결국 수면내시경의 기운을 못 이기고 혼미한 정신으로 후반부 공연을 망쳐버린 나에 비하면.. 그 부부.. 성과 이름이 어찌되었던, 음악을 맘껏 즐길 수 있었다면야... 쇼심 5번을 정신 차리고 즐길 수 있던, 성과 이름을 헷갈리던, 그 아줌마가... 정말 부러워 지는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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