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7월 30일 일요일

일본에서 잘 놀고 왔어요

출장을 시작으로... 도쿄 시내, 그리고 산토리홀에 대한 이야기를 올렸었는데요...
 
그 이후 가족들과 합류해서, 아사쿠사, 우에노공원, 황궁, 지브리박물관, 도쿄디즈니랜드, 디즈니씨, 그리고 도쿄에서 기차로 2시간 가량 떨어진 닛코까지... 잘 놀다가 왔습니다.
 
아래 사진은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는 닛코의 풍경입니다. 울 아이들의 뒷모습만 보여드립니당...ㅎㅎㅎ
 
금칠로 범벅을 해놓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사당은.... 좀 맘에 안들었지만,,,, 닛코의 삼나무숲은 정말 멋지더군요. 이렇게 자기나라 숲은 원시림 그대로 보호를 해놓고, 침략기와 2차대전 때에 울나라 산을 다 벌거숭이로 만들었다고 생각하니... 좀 화가 나긴 하더군요. 뭐랄까... 아름답다고 느끼면서도 분한.......
 
이제 휴가는 끝났고, 다시 업무로 복귀해야하는 일만 남았네요. 에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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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여행을 마치고 바친기에 올렸던 글~

2006년 7월 22일 토요일

도쿄에서 헤매기... 산토리홀... 그리고 베를리오즈

어제로 회사의 컨퍼런스가 끝나고, 오늘은 하루 더 있는 사람들은 후지산 근처 어드메로 가서 관광을 한다고 하고, 서울에서 같이 온분들은 낮에 서울로 돌아갔습니다. 후지산 근처로 따라갈까 하다가... 별로 친하지도 않은 미국애들과 영어쓰면서 친한척해야 하는것도 이제 그만하고 싶어서^^;; 혼자 떨어져 나왔습니다.


일단 첵아웃을 하고, 호텔에서 전철역까지 10분이라는 말을 들은지라... 가방을 메고 끌고 역을 향하여 걷기 시작했습니다. 꽤 걸은 듯 싶은데... 역이 안나오더군요. 그래도 , 동네가 아기자기하니 이뻐서 기분좋게 걷고 있었는데..... 점점 음.. 뭔가 이상하다 싶더군요. 제가 원래 시계를 안차고 다니는데다가, 로밍을 안해간 연유로.... 휴대폰도 불통이라,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알수가 없었는데.... 역에 도착하니....헉. 40분을 걸어왔더라구요. 음. 이게 차로 10분이란 얘기였나...ㅜㅜ 아님 내가 지나치게 다리가 짧은걸까.....ㅜㅜ


아무튼, 그리하여, 다음 숙소로 이동... 좀 놀다가 다시 나와서 이케부쿠로의 토큐한즈에 갔습니다. 별거별거 다 팔더군요. 메이드 코스튬 같은 것도 팔길래... 예전 웰백님이 관심을 보이던 사진이 생각나,,, 선물로 살까... 하다가 돈이 없어서 관뒀습니다.^^;; 꼭대기 층의 고양이 동물원 비슷한 곳에 가서 이쁘고 통통한 아해들과 좀 놀아주고 .... 다시 록본기로 출발.


록본기에서의 예정은 일단 산토리홀에가서 오늘 저녁 공연을 예매하고, 록본기힐에 있는 바비웨하스 가게에 가서 럭셜안식님이 부탁한 과자를 사는 것이었습니다. 5:30부터 표를 판다기에 좀 기둘려서 표를 사고, 지도를 구해서 록본기힐의 위치를 파악했습니다. 음.. 한 15분 걸으면 되겠더군요. 방향을 잡고 또 걸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역시 시계가 없죠. 한참을 걷다보니.. 참의원이 있는 건물도 나오고..ㅡㅡ;; 음.. 이건 아닌데.. 알수 없는 전철역이 눈앞에 보이더군요. 헐... 지도를 다시확인해 보니, 방향이 약간 어긋나, 다른 길로 접어들었었던 거였습니다.. 헉... 배두 고픈데ㅠㅠ 근처의 편의점에서 일단 삼각김밥과 커피를 사고, 도로 산토리홀로 돌아갔습니당.. 시간관계상 그제사 방향을 바꿔 록본기힐로 가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 나중에 시간을 보니 길에서 1시간을 왔다갔다...;; 에고 다리야....


산토리홀 앞에서 김밥과 커피를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먹어치운 후;;; 공연장으로 들어갔습니다. 엄청난 노력을 들여서 최고의 음향시설로 설계된 공연장이라지요.. 공연장 자체가 마치 하나의 커다란 악기처럼 공명한다는 전설적인 이야기를 들어온 터라... 동경에 가면 꼭가봐야지 했었더랬습니다. 오늘은 오... 도쿄필하모닉오케스트라 (음.. 이게 웬떡이냐....)의 연주.. 프로그램은 베를리오즈의 극적교향곡 로미오와 줄리엣. ...


흠... 베를리오즈의 로미오와 줄리엣도 있었던가...;;;;; 차갑석님과 프로코피에프의 로미오와 줄리엣... 혹은 구노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이해가 되는데...ㅡㅡ;;;; 베를리오즈... 엄청 친한 작곡가라고 생각했었는데, 사실 환상교향곡... 표제음악.. 밖에 아는게 없었더군요. 공짜로 주는 프로그램을 대충 훑어보니, 합창단에, 독창도 3명이나.... 이거... 머야. 베토벤 9번 교향곡에 대한 오마쥬인가? 흠...모두 7악장으로 되어있더군요.


무대는 별로 크지 않아서 합창단에 오케까지.. 꽉차서... 잘못하면 악장이 연주하다 객석으로 떨어지겠더군요^^;; 전 앞에서 두번째 줄, 비올라 코앞에 앉아서 봤습니다. 1악장은 몸이 덜풀리셨는지. 약간 잘 안맞는 느낌...그런데,, 오호... 이거 장난 아닌 곡이더군요. 전화번호부만한 지휘자의 총보를 가져다 놓을 때 이미 예상을 했지만, 거의 2시간 가까이 인터미션없이 진행된 곡을 지휘하던 카즈시 오노는 연미복이 다 젖어 버리고... 정말 땀이 뚝뚝 떨어지더군요.


연주자들도 점점 곡에 몰입해서.. 정말 진지한 좋은 연주를 보여주더군요. 저에게 상당히 낯선 곡이었는데도... 게다가 어제 4-5시간밖에 못자고 오늘 종일 계속 걸어다녀서, 사실 아마 연주회에서 자지 않을까 했는데,,, 정말 흥미롭게 감상할 수 있게 만들어 주더군요. 머.. 표제음악의 창시자 답게, 음악이 알기쉽기도 했습니다만.... ^^;; 글구 공짜로 주는 프로그램에 전곡의 불어가사와 일어 해석 (음.. 그나마 불어가 좀 낫습니다ㅜㅜ) 가 들어 있어서 좋더군요. 해석이 잘 되어있는지는 전혀 알수가 없지만요^^;; 하여간,, 멋진 공연이었습니다. 일본에선, 국내 오케의 정기연주회에 이렇게 관객이 많이 오는구나.....전혀 대중적이지 않은... 그것도 이렇게 대곡의... 연주인데도.... 하는 생각에 부럽더군요... 사실 국내오케 연주는 늘 있으니, 담에가지뭐.. 하면서 자주 못가고 있었었는데,, 역시 자주 가봐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하나 부러웠던 점은. 관객들의 연령층이 었습니다. 울나라 공연을 다녀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관객들은 대충 2-30대입니다. 말하자면, 먹고 살만해진 시대에 태어나 문화를 향유하는 법을 배운 세대들이죠. 가끔 유명공연들에 지긋하신 분들이 꽤 보이기도 하고, 백건우씨 처럼 고정팬이 있는 스타의 공연에 아줌마들이 많이 오기도 하지만, 대체로는 젊은 층입니다. 사실 연주자도..... 다 젊죠. 오케단원분들도 2-30대 (것두 초반)로 구성되어 있죠.. 그런데, 오늘 공연의 관객은 20대 아가씨, 10대 고등학생부터... 70-80된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정말 다양하더군요. 어느 연령대가 많다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요. 음.. 연주단원분들도 우리나라 보다는 연령대가 더 높아 보였구요. (성별도 다양해 보였군요^^) 클래식문화를 향유하는 사람들의 스펙트럼이 더 다양한 것일까요....


하여간,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아... 오후에 도큐한즈에 갔을때 1층에 악기를 아주 조그맣게 만들어놓은 것을 팔더군요. 기타, 바이올린, 플룻, 색소폰 등등... 그런데;;; 헉,, 비올라 다감바의 모형도 있더군요. 일본에선 비올라다감바가 이렇게까지 대중적인가... 100엔씩 하던데.. 살까 말까 하다가... 그냥 나왔습니다^^


전철타고 돌아오는데... 음악듣는 내내 느끼지 못했던.... 엄청난 피로가 몰려오더군요. 다리가;;; 무릎이;;; 엄청 아프네요. 내일부턴 가족들과 합류해서 여기저기 다녀야 하는데,,, ㅜ_ㅜ 오늘 넘 많이 걸었엉.....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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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일본 여행 중에 바친기에 올렸던 글~

2006년 7월 6일 목요일

[번역] Wechsberg, January 1959, 하이페츠에 대한 노트


글씨가 너무 작아서 워드에 붙여놓고 읽다보니 번역이 하고 싶어졌다. 그런데... 하다보니, 역시 번역은 내 적성이 아니다... 어쨌건.. 대충^^;; 베흐스버그가 어디다 쓴 글을 이 웹사이트가 가져온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 하이페츠의 어느 CD안의 설명서인지 Note인지가 아닐까 싶다. 이 사람.... 상당한 하이페츠의 팬이었던 것임에 틀림없다.


중간 (회색글자) 은 번역이 귀찮아 이덕희씨책이 이 글을 인용하고 있는 부분을 다시 집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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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re can be no doubt today that Jascha Heifetz is the greatest violinist of our generation. When all is listened to and said and done, Heifetz' supremacy as fiddler and musician emerges as one of the few unchallenged facts of our clouded musical age.

 

오늘날 야샤 하이페츠가 우리세대에서 가장 위대한 바이올리니스트라는 것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모든 것들을 들어보고 이야기 해보았을 , 하이페츠의 바이올리니스로서, 음악가로서의 최고 우위는 우리의 구름낀 음악의 시대에 도전받지 않을 진실이다.

 

I've been an ardent Heifetz fan since I first heard him one night in the 'twenties in Vienna's Konzerthaussaal when he performed the Mendelssohn Concerto. Like other Heifetz fans I've taken a proprietary interest in him and am secretly as pleased with his artistic durability as smart investors are with their IBM shares which they bought at 100 and watched go up and up all these years. Heifetz has always been a gold-plated investment for the listener; no matter what happened to others, he would pay off his regu­lar dividends.

 

나는 하이페츠가 ‘twenties in Vienna’s Konzerthaussaal’에서 멘델스존 협주곡을 공연했을 , 처음 그의 연주를 들은 이후로 그의 열광적인 팬이었다. 다른 하이페츠의 팬과 마찬가지로, 나는 우선적인 관심을 그에게 두었고, 그의 예술적인 내구력에 남몰래 즐거워 했는데, 이는 현명한 투자자들이 100 IBM주식을 사서 주가가 상승하는 것을 년간 보는 것과 비슷하다. 하이페츠는 언제나, 청중들에게는 금딱지가 붙는 투자였다. 다른사람들이 어떻게 되던, 하이페츠는 정규배당을 지급하곤 했다.

 

It has become a popular indoor sport in our concert halls to judge a performer not by the tens of thousands of right notes he plays in one concert but by the four or five false ones. It is almost impossible to hear Heifetz play five false notes in one evening, and some listeners amuse them­selves watching out for passages of "cold tonal beauty" or matching him against other prominent fiddlers—as if art­ists were ballplayers. These indoor sportsmen have to admit that Heifetz' batting average has been consistently high. And although the myth of his "brilliant coldness" persists in certain circles, he can still make it as hot for other fiddlers as some thirty years ago in Carnegie Hall when Leopold Godowsky made his famous crack that it wasn't hot in there during a Heifetz recital—not for pianists.

 

연주가를 그가 연주하는 수만의 '맞는' 음표들에 의하여가 아니라 4-5개의 '틀리는' 음표에의 하여 평가하는 것이 콘서트홀에서의 인기있는 실내스포츠가 되어간다. 하이페츠가 하루 저녁에 5개의 틀린 음을 연주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리고 몇몇 청중들은 차가운 음색의 아름다움 가진 패시지를 지켜보거나, 하이페츠를 다른 유망한 바이올리니스트 들과 견주는 것을 즐긴다 마치 예술가들이 야구선수들인 처럼. 이들 실내 스포츠맨들은 하이페츠의 타율 평균이 지속적으로 높다는 인정하여야 것이다. 그리고 몇몇 그룹들에서 주장되는 그의 빛나는 차가움 신화에도 불구하고, 30년전에 고도프스키가 카네기홀에서 (하이페츠의 카네기홀 리사이틀만큼 뜨거운 공을 아니지만) 유명한 타격을 가했을때처럼, 하이페츠는 여전히 다른 바이올리니스트에게 뜨거운 공을 있다.

 

An artist is the image of his times. Paganini's contem­poraries loved his stupendous technique, Kreisler's his warm, glowing tone. Today we take for granted Heifetz' technical prowess and disciplined emotion (which to some people may sound like "cold tonal beauty") before we even discuss his spiritual interpretation of a work. I am assured that G. B. Shaw really told young Heifetz "to make a habit of playing one wrong note every night before going to bed." Shaw knew that perfection per se was a dangerous thing because it implied mechanized, soulless virtuosity.

 

예술가는 시대의 초상이다. 파가니니의 동시대인들은 그의 불가사의한 기교를 사랑했고, 크라이슬러의 따뜻하고 빛나는 음색을 사랑했다. 오늘날 우리는 그의 작품에 대한 정신적인 해석을 논의하기에 앞서서, 하이페츠의 기교적인 솜씨와 훈련된 감정 (어떤 사람들에게는 차가운 음색의 아름다움으로 들리는) 당연하게 여긴다. 버나드 쇼 어린 하이페츠에게 잠자리에 들기전 틀린 음을 한음 연주하고 자는 습관으로 삼으라고 말했다고 한다. 쇼는 완벽 자체가 기계적으로 있으며, 영혼이 없는 기교가 있기에, 위험한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I remember one afternoon in Beverly Hills when I asked Heifetz, after a long talk, how he'd played an extremely difficult passage in a concerto that had puzzled me as well as a lot of fellow fiddlers. Heifetz nonchalantly picked up his Guarneri and performed the atrocious passage for me so quickly and easily that I was unable to see how he'd done it. I asked him whether he would do it once more. He obliged—and again I hadn't the faintest idea how he'd done it. Seeing the blank look in my eyes, he shook his head sadly at such ignorance. To this day I don't know how he'd played that passage; and I bet there are a lot of able fiddlers who wouldn't know it either if they saw it. It must be very lonely up there where Heifetz performs.

 

나는 비벌리힐즈의 어느 오후를 기억하는데, 그와 오랜 이야기 끝에 나는 어느 협주곡에서 나를 포함해서 다른 많은 바이올린 주자들을 당혹시켰던 극도로 까다로운 패시지를 그가 어떻게 연주했는가를 물었다. 하이페츠는 태연하게 과르네리 (페르디난트 다비드) 집어선, 나를 위해 지독한 패시지를 아주 빠르고 쉽게 연주해 주었는데, 도대체 그가 어떻게 연주했는가를 나는 도무지 수가 없었다나는 한번 연주해 있느냐고 물었고 그는 다시 한번 호의를 베풀었다 - 하지만 나는 그가 어떻게 그걸 연주했는가에 대해 손톱만큼도 없었다. 나의 눈에 나타난 멍청한 표정을 보고 그는 이와 같은 무지에 대해 슬프게 고개를 저었다. 이날까지도 나는 지독한 패시지를 그가 어떻게 연주했는가를 알지 못한다. 또한 맹세코 나는 숱한 바이올린 주자들도 설사 그들이 하이페츠의 연주를 가까이서 본다해도 나처럼 결코 그걸 없을 것이라고 단언할 있다. 이페츠가 연주하는 높은 곳은 매우 외로운 곳임에 틀림없다..

 

It isn't difficult to analyze Heifetz' greatness as a violin­ist but very difficult to get to the core of his art. Heifetz always sounds like himself, on his 1714 Stradivari, made in Cremona, or on a ten-dollar factory "Strad," made in Czechoslovakia. He is a great violinist because of his beau­tiful tone—which has a timbre all of its own—and the depth of his emotion, the incisiveness of his bowing, his impec­cable taste and sound instinct. (Asked by young Heifetz how he should play a certain passage, his great teacher, Leopold Auer, once said, "Play it with your nose; you'll make it sound all right.") Heifetz makes even the fasci­nating hillbilly passage in the Gruenberg Concerto sound wrong, as it should. No one has ever heard him play a false portamento.

 

하이페츠의 바이올리니스트로서의 위대성을 분석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그의 예술의 핵심으로 들어가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이페츠는 크레모나에서 만들어진 1714 스트라디바리로 연주하건 체코슬로바키아에서 만들어진 10불짜리 공장제 스트라드 연주하던 항상 자신의 소리를 냈다. 그는 그의 아름다운 음색 모두 자신만의 색깔을 가진 그의 감정의 깊이, 보잉의 날카로움, 흠잡을데 없는 취향 그리고, 소리에 대한 감각 등으로 인하여 위대한 바이올리니스트인 것이다. (하이페츠의 스승인 레오폴드 아우어는 어느날 하이페츠가 어떤 패시지를 어떻게 연주하는 가를 물었을 , “코로 연주해라, 바른 소리가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하이페츠는 그래야 했기 때문에 그루넨버그 협주곡에서의 환상적인 컨트리 뮤직 패시지를 심지어 잘못 소리내기도 했다.  누구도 그가 잘못된 포르타멘토 (슬라이딩 주법)를 연주하는 들은 적이 없다.

 

But there's a lot more to Heifetz, the artist. When he performed for the first time Prokofieff's G Minor Concerto No. 2, on December 17, 1937, with the Boston Symphony under Serge Koussevitzky, many listeners are said to have cried during the beautifully lyrical second movement. There are not many performers these days who would bring tears to my eyes, but Heifetz in his moments of lyrical expression is one of them. No artist can do that unless he's found the meaning of the music, the meaning behind the notes.

 

그러나 하이페츠에겐 많은 것이 있다. 예술가로서. 그가 1937 1217일에 Serge Koussevitzky 지휘하는 보스톤 심포니와 프로코피에프의 g단조 협주곡 2번을 처음으로 연주했을 , 많은 청중들은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2악장이 연주되는 동안 울었다고 했었다. 근래에는 눈에 눈물을 흐르게할 연주가는 많지 않다. 그러나 하이페츠는 서정적인 표현의 순간에는 바로 그런 연주가들 하나이다. 어떤 예술가도 음악의 의미, 음표 뒤의 의미를 깨닫지 않는 그렇게 없다.

 

The Prokofieff Concerto No. 2, which Heifetz recorded once before (with the Boston Symphony under Koussevit­zky), seems custom-made for him, with its lyrical sweep and incisive rhythms. This is the music of the new Russia —thumping steel hammers and blasting engine whistles instead of Ej Uchnjem Weltschmerz and Kremlin bells. The concerto is immensely alive, full of emotion—disciplined emotion, to be sure—and stimulating rhythm. The com­poser's brilliance for once is matched by the interpreter's brilliance. Watch out for the soaring sound of the solo violin in the first part and the devilishly difficult passages in 7/4 and 5/4 time in the finale. Or better, don't watch for anything. Turn off the light, close your eyes and enjoy yourself.

 

하이페츠가 녹음한 프로코피에프 협주곡 2번은 서정적인 흐름과 예리한 박자로 인하여 마치 하이페츠를 위하여 작곡된 음악처럼 보인다. 이는 Ej Uchnjem Weltschmerz (서글픈 러시아 노동요로 추정) 크렘린의 대신에 쇠망치를 두드리며, 엔진 휘슬을 울리 새로운 러시아의 음악이다. 협주곡은 거대하게 살아있으며 감정과 확실히, 훈련된 감정이다 자극적인 리듬으로 충만하다. 작곡가의 뛰어남은 해석자의 뛰어남과 어우러진다. 첫부분의 솟아오르는 바이올린 독주와 피날레 부분의 7/4, 5/4 박자의 악마적으로 어려운 패시지를 주시해 보라. 또는, 나은 방법으로, 아무것도 주시하지 말라. 불을 끄고, 눈을 감고 그리고 즐겨라.

 

Strangely enough, Heifetz has recorded the Mendels­sohn Concerto only once before, in 1949, with Sir Thomas Beecham; I would have sworn he'd done it at least three times. (In September 1920 he recorded the last movement as a solo piece, accompanied by Samuel Chotzinoff on the piano, but you will have trouble finding the recording which is a collector's item.) The Mendelssohn Concerto takes a special place in Heifetz' vast repertoire; he has played it on many important occasions of his career. Prob­ably the first was the evening in 1908, when little Jascha, aged seven, performed the concerto on a half-sized violin in Kowno, then in Czarist Russia, before an excited crowd of a thousand listeners. According to his biographers they were quite bewitched "by the smooth round tone he pro­duced and the masterly way in which his little fingers overcame the difficulties of the last movement. . ."

That was, mind you, fifty-one years ago.

 

이상하게도, 하이페츠는 멘델스존 협주곡을 한번만 토마스 비첨경과 같이 1949년에 녹음했다. 나는 그가 적어도 3번이상 연주를 했다고 맹세할 있다. (1920 9 그는 마지막 악장을 독주곡으로 새뮤얼 샤토지노프의 피아노반주와 같이 녹음했다. 그러나 음반은 구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멘델스존 협주곡은 하이페츠의 장대한 레퍼토리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는 그의 경력에서 많은 중요한 순간들에 곡을 연주했다. 아마도 첫번째는 1908 저녁이었을 것인데, 그때 7살짜리 어린 야샤는 러시아의 코브노에서 흥분한 수천의 청중들 앞에서 1/2사이즈 바이올린으로 협주곡을 연주했다. 그의 전기에 따르면, 그들은 그가 만들어 내는 부드러운 둥근 소리와 그의 작은 손가락이 고난도의 마지막 악장을 극복하는 숙련된 방식에  황홀해 했다고 한다.

그것이 51년전의 일이 었다.

 

—joseph wechsberg Vienna, January 1959